최근에 다이소 매장에 갔다가 괜찮아 보이는 지갑을 발견했다.
‘염소가죽 슬림 카드지갑’
가격은 3000원. 인조가죽이 아니라 천연가죽이다. 물론 최하급 품질의 가죽을 사용한 거겠지만, 겉보기엔 정말 괜찮아 보였다. 촉감도 부드럽고 좋았다. 나는 일단 하나를 집어 들고 매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구매할지 말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약 5년 동안 잘 써온 카드지갑이 하나 있다. 쿠팡에서 5천원인가 6천원인가 주고 샀던 아주 얇고 가벼운 인조가죽 카드지갑이었는데, 매우 실용적이어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썼다.
이제는 밖에서 사용하기 부끄러울 정도여서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니, 사실은 한참 전부터 바꾸고는 싶었지만, 이것보다 더 나은 지갑을 도저히 찾지를 못해서 못 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똑같은 걸로 다시 사려고 검색해 보니 단종된 것인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쿠팡에서 샀던 이 지갑의 장점에 대해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저렴하다
2. 얇고 가볍다.
3. 인조가죽이라 관리가 편하다.
4. 양쪽으로 각각 2장씩 수납하면 딱 좋다.
5. 교통카드를 쓸 때 지갑을 열지 않고 그대로 찍으면 된다.
6. 눈에 띄는 로고가 없고 디자인과 구조가 단순하다.
7. 마그네틱이 내장되어 있다. 닫을 때 착-하고 붙는 느낌이 좋고 열 때도 편리하다. 주머니 속에서 멋대로 열리지 않고 고정되어 있어서 좋다. 또 이게 유사시에 은근 킥인데, 영수증 같은 것들을 자석 사이에 대충 끼워놓기 좋다.
무게감이 너무 없어서 성인 남성이 사용하기에는 옹졸해(?) 보인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내가 사람들 앞에서 지갑을 꺼낼 일이 잘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미친듯한 실용성 때문에 지금까지 잘 써왔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늘 새로운 지갑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내 내가 원하던 조건에 부합하는 지갑을 다이소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저렴할 것.
2. 얇고 가벼울 것.
3. 스크래치에 강할 것. (나는 가죽지갑의 에이징 같은 것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4. 딱 4장 수납이 가능할 것.
5. 카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납방식일 것.
6. 눈에 띄는 로고가 없고 디자인과 구조가 단순할 것.
7. 마그네틱 방식이면 좋겠지만 없다면 받아들일 것. (위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마그네틱까지 있는 제품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다이소 지갑은 7번을 제외한 모든 조건에 부합했다. 약 5분 간의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했다.
집에 와서 포장을 뜯고 손에 쥐어보니, 매장에선 느끼지 못했던 문제점을 발견했다. 크기와 부피가 쿠팡 것보다 약간 더 커서 한 손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쿠팡 것만큼이나 작고 얇은 카드지갑을 항상 바라왔었기 때문에, 그립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자마자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카드를 옮겨 담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와 부피가 약간 더 큰 것이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팡 것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니 쿠팡 것은 너무 작고 얇아서 볼품없어 보였고, 심지어는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이소 것도 물론 고급스러운 느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쿠팡 것보다는 확실히 지갑다운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내 생활패턴과 생활반경에서는 실사용에 문제없는 외양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소 지갑의 소재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천연가죽 지갑이 3천원? 이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부터 든다. 실제로 만져보니 촉감이 부드럽고 좋다.
PU(인조가죽) 소재라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천연가죽이라 명시되어 있고 실제로 촉감도 좋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대놓고 허접한 느낌은 들지 않아서 구매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최종적으로 내 판단력을 흐려지게 만들어 구매까지 이어지게 한 요소는 바로 가격이었다. 다이소 최고가인 5천원도 아닌 3천원이라니. 심지어 3천원에 천연가죽이라니.
나중에 검색해보고 알았는데, 염소가죽이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도가 높아 튼튼한 편이라고 한다.
소가죽만큼 내구성이 좋은 건 아니지만 소가죽은 무게가 있는 편이니, 내가 원하던 조건에는 염소가죽이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가죽지갑’하면 에이징이 멋들어지게 드는 제품들이 많은데, 물론 감성있고 멋있긴 하지만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 선호하지 않는다. 사피아노도 멋있고 튼튼하긴 하지만 이제는 조금 식상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너무 정교하고 빳빳한 느낌이 들어서 선호하지 않는다.)
좌우대칭이 미묘하게 안 맞다거나 내부 모서리 마감이 지저분하다든가 하는 몇몇 사소한(?)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애당초 나는 너무 반듯하거나 너무 깨끗한 건 좋아하지 않는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러프한 느낌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런 단점들은 3천원이라는 가격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다이소 지갑이 참 마음에 든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고 군더더기 없이 무척이나 실용적이다.
누군가는 무슨 다이소 지갑을 가지고 이렇게 진지하고 장황하게 글을 쓰느냐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그들이 처한 환경 또한 제각기 다르다. 나는 5년 넘게 쓴 지갑이 다 해져서 새로운 지갑을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한 참이었고, 나의 7가지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지갑을 우연히 눈앞에서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저렴한 걸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내 환경에서는 문제없는 선택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다이소 지갑을 사용할 수는 없다. 후에 좀더 지갑다운 지갑을 써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7가지 조건들도 모두 뒤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가 되더라도 내가 명품 지갑을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행위 중 하나가 ‘명품 소비’라고 생각한다. 명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게 왜 멋있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공짜로 주더라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이런 생각조차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