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예비군에 갔다 왔다. 늘 두려움에 떨던 예비군이었는데, 이번에는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
지난 몇 년 동안 예비군의 압박감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었다. 나는 공익 출신이고,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곤 해도 예비군 훈련에서 하는 훈련 종목 중 대부분은 전혀 해본 적 없는 것들이다. 그러한 훈련 내용을 교관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것, 성과제로 운영되어 분대별로 점수를 매기는 것, 나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운에 따라 분대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등 모든 게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 외에 족저근막염도 문제였고 식사 시간도 문제였다. 발 때문에 훈련에 열외하면 분대원들 눈치가 보였고, 밥도 남들은 10분 만에 먹고 일어서는데 나 혼자 30분 넘게 먹었다.
예비군 1년차 때는 학생 예비군이어서 괜찮았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동미참 훈련에 처음 갔을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매 순간순간이 그저 힘겨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버티고만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동미참 훈련은 그래도 한 번 해봤다고 약간은 익숙한 느낌이긴 했지만 역시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올해, 세 번째 동미참 훈련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나는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을 떠올리며, 훈련장 안에서 멘탈을 잡기 위해서 하나의 방편을 마련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문장들을 필사해서, 그 종이 뭉치를 고이 접어서 전투복 주머니에 넣어서 가져갔던 것이다. ‘급성 멘탈 털림 증후군’이 도질 때마다 그 종이를 꺼내서 읽으며 마음을 정돈시킬 작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훈련 동안에 내가 그 종이를 꺼내 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멘탈이 전혀 털리지 않았던 것이다. 예비군 4년 차가 되어서야 비로소 예비군 훈련에 적응해 버린 것인가. 오히려 훈련장이 편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특히 식사 시간 때 언제나처럼 틀어주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이젠 정겹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죽을 맛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느낌이 바뀌다니,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전까지의 나처럼 벌벌 떠는 사람들도 조금이지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아마 이번이 1년 차인 거겠지. 나는 마치 수능 끝난 고3 또는 캠퍼스가 너무 익숙한 대학교 4학년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조금 받았다.
이번에 훈련을 받는 4일 동안, 이례적으로 운이 잘 따라줘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훈련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또한 훈련 외적으로도 모든 면에서 운이 따라줘서 멘탈 케어가 특히 잘 되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운이 좋은 4일이었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훈련 이후의 1~2주 동안의 모든 운을 끌어모아서 4일 동안 몰아 쓴 형국이 되어버린 것 같다. 훈련이 끝난 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말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