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이 아프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얼마 전부터 턱에 통증이 있었다. 입을 벌리는 게 부담스럽고 음식을 먹는 게 힘들었다. 좀 괜찮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안 좋아지길 반복했다.
어젯밤, 치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저녁을 먹는데 통증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만두면 자연스레 나을 것이라는 요행을 더 이상 바라고 있을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두려움을 떨쳐내고 치과로 직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거리가 멀었다. 아니, ‘나에게는’ 멀게 느껴졌다. 발이 아팠다. 그렇다고 못 갈건 없었지만, 선뜻 출발하기도 쉽지 않았다.
혹시 몰라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안 해봤으면 큰일 날 뻔했다. 예약이 다 차서 진료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치과를 찾아서 또 전화를 걸었다. 여기도 예약이 다 찼단다. 그래도 와서 기다리고 있으면 남는 시간에 끼워줄 수는 있다고 한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에 나는 옷을 입었다. 나갈 준비를 마쳤는데도 집을 나설 확신이 들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그 치과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른 날 예약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예약은 다음 주에 가능했다. 나는 일단 예약을 해놓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다음 주까지 기다리는 게 맞는 걸까? 그사이 내 턱은 넘지 말아야 할 강을 넘어버리는 게 아닐까? 지금 출발할까? 무작정 가서 기다릴까? 어느덧 시간은 세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었다. 슬슬 배가 고팠다. 발도 아팠다. 지금 가서 언제 진료를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이후로도 약 두 시간을 불안에 떨었다. 시간은 어느덧 다섯 시. 참 대단하다. 나는 한 가지 사안을 두고 하루 종일 불안에 떨 수 있었다.(I can do this all day)
불안 떨기 챌린지를 시작한 지 10시간이 지났을 즈음, 브런치에서 글 하나를 읽었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글이었다. 그는 걱정에 “한 시간의 제한”을 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내일의 한 시간에 넘겨버리고, 오늘은 그만 걱정하라는 것이었다.
좋아. 이해했어.
내일 오전에 치과에 가보기로 결심한 후에, 책상에 앉아서 하루키의 책을 손에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온통 치과 얘기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