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으로 가득 찬 비극

by 자오

어젯밤, 저장해 놓은 글들을 토해냈다. 씹어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있던 수필들. 욕심 없다. 좋아요가 몇 개 찍히면 좀 반가울 뿐이다.


다시 읽어보니 수필이 참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났다. 지금 상태는 또 다르다. 희망을 붙잡는 것도 꾸준함이 필요한 일이었고, 그 꾸준함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점점 더 야위었다. 루틴은 무너졌고, 발은 다시 아파져 왔다.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주 5일 수필 쓰기는 중단되었다. 이전에 써놓은 수필들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게 무슨 과거의 빛나는 성취라도 되는 양.


어젯밤, 글을 토해내기 전에 눈물을 쏟았다.

아빠가 무슨 공부든 좀 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안의 모든 게 쪼그라들었고, 커다란 벽이 나를 둘러싸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비참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변명이었다.


아빠는 하루빨리 내가 돈을 벌기를 원했다. 사실은 나도 그걸 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발이 아파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글쓰기 말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이라는 것도 영 시원치 않았다. 부모님께 조금의 신뢰도 안겨줄 수 없었다.


대학 생활이 끝난 후부터 쭉 초등학생의 방학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동시에 할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쉬었고, 이제 쉴 날만 남은 것처럼 몸을 뉘었다.


취업 회피생, 그런 존재다. 졸업까지 했으니 더 이상 몸을 숨길 곳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숨었다. 우울증과 족저근막염이라는 병력 뒤로.


약 6개월간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마음은 좀 괜찮아진 것 같다. 다만 몸이 문제였다. 한곳을 막으면 한곳이 새는 고장 난 파이프처럼, 몸은 여기저기가 아팠다.


고통. 나는 나의 고통에 기대서 글을 써왔던 건 아닐까.

얼굴도 모르는 이의 고통 경험담을 누가 순순히 읽어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글을 읽으면 건강한 사람도 괜히 몸 어딘가가 불편해지는 게 아닐까. 아니면 얼굴을 찡그리며 읽으면서도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사람보다는 건강하구나, 이 사람보다는 살만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그럴듯한 비극에 투영해 자위하는 것도 이젠 지쳤다. 나는 세상이 무서웠고, 그걸 이겨낼 의지가 나에겐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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