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물과 십자가

by 자오

브런치에서 다른 사람의 글을 시간 들여 읽는다. 누군가가 시간 들여서 쓴 글일 테다. 그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조금 상쇄시킬 수 있을까. 등가교환은 아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데에는 시간이 덜 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이 있다.


타인의 생각을 잠자코 듣는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 글을 읽을지 말지는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그의 글을 읽게 되기까지, 그리고 좋아요를 누르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사람도 나를 모르고, 나도 그 사람을 모르니까 말이다. 그 정도 거리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일종의 편안함을 느낀다. 글이 좋았으면 좋아요를 누른다. 좋았으면 좋았다고 전하는 것, 바로 그 행위로부터 충만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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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졸업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이 그렇다. 너무 뻔한 주제인 것 같기도 했다. 오고 가는 기차 안에서 브런치 글을 읽었다. 읽는 동안 불안을 조금 잠재울 수 있었다.


졸업식에 관한 글을 쓰다가 전부 지워버렸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이었는데 쓰고 보니 더 엉망이었다. 그래도 시간 내서 졸업식을 챙겨 준 후배 한 명, 동기 한 명, 선배 한 명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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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늦게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TV를 보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이 엄청 딱딱하게 느껴졌다. 서 있는 게 무서워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앉은 채로 옷을 벗었다. 부모님이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나는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몸은 무거웠고 정신은 황황했다.


졸업식, 그 하루 동안 발이 걱정만큼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리가 많이 갔을 것이었다. 나는 엉거주춤 서서 샤워하고 머리를 감았다.


오늘 길에, 기차역에서 편지를 읽었었다. 그 글들은 브런치의 글과는 달랐다. 거리가 한껏 가까운 글이었고, 독자가 오직 나로 한정된 글이었다. 편지를 써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문장을 조금 써서 보냈다. 약을 먹고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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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언뜻 십자가 같기도 했다. 나는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발을 바닥에 내디딜 자신이 없었다. 그대로 누워서 눈만 흐릿하게 뜬 채로 십자가를 올려다봤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다시 눈을 감고 싶었다. 얼마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십자가는 더 밝아지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후 침대에 걸터앉아서 신성한 빛을 조금 받으며 발을 주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