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일스팟 Jan 25. 2023

잠깐 멈추세요, 지금 하려는 그 브랜딩

요즘 브랜딩 그거 안 하는 사람이 없다며

시작은 보통 이렇습니다.


<Case 1>

대표님이 갑자기 말을 꺼냅니다. "우리 회사도 이제 브랜딩을 해야 하지 않겠어?" 마케터들과 디자이너들이 동시에 시선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어찌어찌 우리 회사 브랜딩 TF가 만들어집니다. 운이 나쁘면 마케터 1명이 모든 업보를 짊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침묵이 흐릅니다. 2달 뒤, 회사 홈페이지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로고와 미션, 비전이 적힌 '회사 소개'페이지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는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Case 2>

마케터 한 명이 대표님에게 의견을 내기 시작합니다. "우리 회사도 브랜딩을 해야 하는데, 브랜딩을 한다는 건 회사의 이미지와 철학을 일관성 있게, 블라블라.." 대표님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래서, 그걸 지금 왜 해야 하는데?" 10분 뒤, 자리로 돌아온 그 마케터가 투덜거립니다. "이 회사는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지금 눈 앞에 있는 돈만 쫓아다녀. 이러니까 회사가 더이상 성장을 못 하지..."


<Case 3>

마케터 한 명이 대표님에게 의견을 내기 시작합니다. "우리 회사도 브랜딩을 해야 하는데, 브랜딩을 한다는 건 회사의 이미지와 철학을 일관성 있게, 블라블라.." 대표님의 눈이 반짝입니다. "그래, 너무 좋은데!" 그 마케터는 신이 나서 브랜딩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을 진행하면 할수록 조금 기분이 이상합니다. 나는 분명 이 회사의 방향을 잡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귀찮아하기만 합니다. 1달 뒤, 그 마케터가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이 회사는 브랜딩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자기 눈 앞에 있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어. 이러니까 회사가 더이상 성장을 못 하지..."

그래 브랜딩 걔가 잘못했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브랜딩을 시도하려는(혹은 시도하고 싶어하는) 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맞습니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공감대가 전혀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아요. 브랜딩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건지, 브랜딩 가이드라고 이름붙인 무언가를 만들기는 했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모든 구성원들 사이에 생각의 온도가 다릅니다.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보죠. 브랜딩이 뭔가요? 벌써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지금 당장 구글이나 네이버에 '브랜딩'을 검색해 볼까요. 아마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브랜딩의 정의도 아마 100개 정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브랜딩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았지만, 저 또한 브랜딩의 정의를 쉽사리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가장 공감했던 설명은 있었습니다.


마케팅은 고객의 잠재적인 욕구를 자극해서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합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케팅은 곧 고객이 우리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모든 행위라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가 고객이라고 한 번 생각해 볼까요. 고객이 물건을 살 때 언제나 회사의 존재를 인지한 상태에서 구매하지는 않습니다.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는 모르더라도 제품만 보고 구매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실제적인 구매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티파니앤코를 떠올리셨다면, 그것이 브랜딩입니다.

브랜딩은 반대로 매출을 동반하지 않는 일종의 각인입니다. 우리는 민트색을 보면 티파니앤코를 떠올립니다. 브랜드의 컬러와 브랜드가 동일시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브랜드가 고객에게 각인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각인이 되면 회사 입장에서 굉장히 유리한 면이 많습니다. 비교적 적은 리소스를 들이면서도 우리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고, 세련된 은유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브랜딩이 잘 될수록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인지도 자체가 높아지는 현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특정 시점부터는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커집니다(여기에서 중요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각인이라는 것은 비단 고객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 내부 직원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잘 다듬어진 브랜드 메시지는 회사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기준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각인이 반드시 매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티파니앤코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심지어 브랜드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반드시 그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그만큼 구매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는 높지만 그 브랜드의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굉장히 낮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매출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 회사가 지금 당장 브랜딩을 반드시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는 뭐지?


이런 의문까지 도달했다면, 정확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왜 브랜딩을 해야 하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장기적인 성장을 생각했을 때 브랜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 회사에 필요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맥락과 필요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 우리 회사의 생존을 위해 달리고 있는데 브랜딩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사치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 구성원들이 대체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이 생기고, 디자이너가 우리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고 있다면 반드시 브랜딩을 고려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브랜딩을 했을 때에는 지속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를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고민해 보야야 합니다. 보통 브랜딩을 추진하면서, 혹은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는 브랜딩을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브랜딩을 시작하는 데 '멋있는 것'을 하고 싶다는 의도가 섞여 있다면, 그 브랜딩은 대부분 실패합니다. 반드시 지금 이 행위가 필요한 것인지, 왜 필요한 것인지 먼저 고민해 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죠.

작가의 이전글 요즘 신년 계획이 그렇게 유행이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