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침이 오기를 바랍니다

by 마일스

며칠 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비상계엄입니다.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된 뒤 많은 사람들은 적법한 절차를 통한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획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당 의원들은 지금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8년 전을 상기시키며 탄핵만은 절대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탄핵이 남긴 것은 극심한 분열과 혼란, 그리고 헌정 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탄핵 트라우마'입니다.




탄핵 트라우마. 우리는 보통 과거에 경험했던 공포와 같은 순간이 발생했을때 당시의 감정을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2016년 우리는 민주화 이후 최초로 대통령이 헌정을 농락하는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차에 따라 파면되었습니다. 정당은 여러 개로 나뉘었고, 정치인들은 자신들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이합집산했습니다. 이것을 분열과 혼란이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결국 죄를 지은 사람은 책임을 졌고 그 다음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사람이 책임을 졌던 기억과 본인들이 손에 쥐고 있었던 집권여당이라는 권력이 나뉘어진 것을 트라우마와 사회 분열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때와 같은 헌정에 대한 폭력이 2024년에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생했다는 사실이 트라우마에 더 가깝습니다. 헌정에 대한 폭력보다 권력을 잃어버린 기억이 지금 그들에게 더 큰 공포와 충격이었던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더욱 역설적인 점은 민주주의가 비로소 회복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탄핵 때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이 합의한 법과 원칙이라는 기반 위에서라야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끊임없는 협상과 대화, 그리고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발전합니다. 그 과정에서 만약 누군가가 타락하더라도 다수가 나서 옳은 선택을 위한 의사결정을 반복하면서 사회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임기를 정상적으로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직무를 합법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탄핵은 곧 민주주의의 정신을 이어 가는 것이고, 헌정을 이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비록 그 때의 새누리당은 의리라는 말로 본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끝까지 대통령을 끌어안으려 했던 사람들과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쳐 찢어졌지만, 그 찢어짐과 반성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얼마간 신뢰를 회복하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결국 탄핵은 혼란과 분열의 비극이 아니라 이미 비극을 겪은 사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였던 셈입니다.




최근 계엄 사태에 관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국민의 힘 원내대표가 사퇴했습니다. 요는 두 사람 모두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저는 이제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다'고 말했고, 또 한 사람은 '모욕까지 참으며 직을 수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많은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두고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니 의리를 지켜야 한다', 혹은 '탄핵이 아니라 여당이 주도하는 질서 있는 퇴진이 더 적절하다'와 같은 말들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말 속에는 언제나 행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얼핏 보았을 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문장이라도 그 말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하는 말에 의문을 가지고 이 말의 정확한 의미와 의도가 무엇인지를 언제나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책임이었고, 왜 본인이 평범한 국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책임과 회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질서는 우리가 회복시켜야 할 가치인가요, 결론을 늦추기 위한 수단인가요. 과연 그들이 말하고 있는 질서와 우리가 바라는 질서는 서로 같은 의미인가요. 화려한 수사적 표현 속에는 언제나 진짜 의도가 감춰져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탄핵이라는 단어에 끊임없이 갈등이 생기고 있는 이유 또한 아마 탄핵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야당과 여당 각자의 정치적 수단으로써 활용되고 있는 행간의 의미 때문일지 모릅니다. 비록 역사가 되풀이될지언정 퇴보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밤이 지나고 '서울의 아침'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동시에 탄핵이 또다른 권력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여 그 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금 잠시 욕을 먹더라도 1년만 지나면 국민들은 달라지더라는 누군가의 말과 달리 내일, 모레, 1년 후에도 아침을 맞은 우리가 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2월 7일 그 날, 여의도는 유난히 추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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