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족쇄 풀기
며칠 전까지 회사에서 내년 프로젝트를 위한 제안서를 썼습니다. 몇 개의 조로 나뉘어 각자 맡은 분량을 작성하기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저는 같은 팀의 동료들이 아니라 옆 팀의 동료들과 함께 제안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든 사람이 모이면 누군가는 제 할 일을 소홀히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저와 함께 제안서를 쓰게 된 동료 중 한 분이 그 누군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옆 조보다 진도도 훨씬 더디게 나갔고, 작업물의 질도 다른 조와 비교해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래 팀으로 다시 복귀한 후 팀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그 당시 저희 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 '누군가'를 비롯한 조원들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평소였다면 저도 함께 동조했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조직이 개인의 합 이상이라는 말에 큰 의심을 하지 않지만, 반대로 개인을 바라볼 때에는 조직의 특성을 곧 개인의 특성으로 동일시해서 보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늘어난 수많은 사회적 갈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조직 안에 있는 개인들은 의도치 않게 평가절하당합니다. 아니, 더 심하게는 잠재적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내가 그 조직에 속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취급을 받거나, 최소한 방관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제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팀원들은 제 탓이 아니라는 의미로 저를 위로하고 싶어서 한 말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때 저희 조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냈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결국 외부의 시선에서 저는 부진한 조직 속에 있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문득 만약 제가 반대로 다른 조에 속해서 그 때 제가 있었던 조를 봤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저 또한 지금 저희 팀원들과 비슷한 말을 했겠죠. 되돌아보면 제가 누군가의 평가를 받고 마음이 불편했던 적은 대부분 스스로가 속한 집단의 특성으로 묶여서 일반화되었을 때였습니다. 너는 사관학교 출신이니까, 너는 광주 사람이니까, 너는 남자니까.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입니다.
최근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서 봤던 주토피아2가 생각납니다. 귀엽고 싶어하지 않는 토끼와 무리에 속하고 싶어하는 여우, 호랑이 백댄서 앞에서 노래하는 가젤과 전혀 순하지 않은 양이 함께하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편보다도 더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면서 제가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하던 생각을 계속 돌아보느라 그랬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토피아1을 보던 때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라는 걸 하게 되었으니 전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 거라고 자기위안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