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일스팟 Jun 06. 2022

시작의 두려움 떨쳐내기

제주도는 정말, 정말로 예쁜 곳입니다.

4월 7일에 이사를 왔으니 제주에 와서 살게된 지 이제 딱 2달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이호테우 해변이 있고, 집 앞을 산책하다 보면 아파트 담장 대신 돌담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웃긴 일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 여행으로조차 올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여기에 살게 되다니. 사람의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막상 그게 내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 왔습니다. 전 내심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언제나 즐거웠던, 이른바 '내적 관종'이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에 다닐 때는 실용댄스 동아리에 들어가 학교 축제 무대에 섰고(제가 춤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결국 제 실용댄스 동아리의 역사는 첫 해에 막을 내렸습니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제가 새롭게 가지게 된 취미는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기와 노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제 이름이 찍혀 있는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사람들로 꽉 들어찬 강당의 무대에서 내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상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글쓰기와 강연을 업으로 하는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불쾌해하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은 해 볼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름 대학교 때는 교내 신문사에서 3년 동안 적지 않은 글을 썼고, 심지어 작년까지 직장에서 제가 하던 일은 보도자료를 쓰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는데도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소개할 때는 농담처럼 '글쓰고 말하는 걸로 밥 벌어먹고 있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가 스스로에 대해서 글을 쓰려니 첫 문단을 쓰는 것부터가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쓰면 너무 없어 보이려나, 이렇게 쓰면 또 겉멋만 들어 보이려나, 이렇게 쓰면 오글거리려나 하는 생각들 때문에 문장 하나도 제대로 마칠 수가 없었습니다.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 말쯤이었나요, 오랫동안 '언젠가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던 저에게 친구 한 명이 지나가듯 브런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와의 내기를 핑계삼아 마감일을 정하고 꾸역꾸역 뭔가를 써 보았습니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썼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지만, 나중에 제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려니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쑥스러움보다는 수치심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어린아이가 힘을 잔뜩 준 채 "나 이제부터 뭔가 써 볼거야!" 하고 외치는 듯했거든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승인해 주신 브런치 관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렇게 제주도에 혼자 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체 뭐가 문제지, 왜 제대로 글이 써지지 않는 거지 하는 생각만 하다 보니 벌써 이렇게 2달이라는 시간이 흘러 버린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머릿속에서는 너무 많은 생각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고, 그 산만한 생각의 흔적들은 안개처럼 명확하지 않은 모양으로 둥둥 떠다녔습니다. 특히 첫 번째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하는지, 또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명분이 필요했거든요.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앞부분이 찢겨져 중간 부분부터 읽어야 하는 책처럼 시작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렇게 매일 밤마다 어떤 글로 시작해야 할지만 고민하면서 머릿속에 뒤섞인 생각들에 파묻힌 채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정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되뇌면서요. 맞습니다. 이건 그냥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글을 쓰는 내일은 결코 오지 않았고, 매번 공허한 상상만 하면서 하루하루가 흘러갔습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져 볼까요. 어쩌면 저는 시작의 명분을 만들 수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사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사실 두려운 건 따로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는 제 글을 읽고 나서 어떤 방식으로든지(혼자서 생각하는 것을 포함해서) 제 글을 평가하게 될 거라는 사실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또 긍정적으로 평가해 줬으면 하는 저의 욕망. 그러려면 시작부터 완벽해야 했고, 치밀한 목차와 짜임새있는 글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품'이 세상에 나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은 건, 그게 바로 제가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진짜 문제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차피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글은 나올 수 없습니다. 명분이 있든 없든, 내가 쓴 글이 만족스럽든 아니든 일단 시작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출발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속도가 붙어 관성이 생기는 기차처럼 말이죠. 도착점을 생각하는 건 그 다음의 문제였습니다.


문득 제가 극단에 처음 가입하던 순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해도  달은 가입할까 말까 고민했던  네요. 연기라고는  번도  보지 않은 내가 과연    있을까,  해도 어중간하고 그 당시에는 성격도 소심했던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무대에 오를  있을까 하는 걱정들이 앞섰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 마지막에는 마치 학창시절 짝사랑하는 여자애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신청서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막상 극단에 가입하고 나서 2번째 연습을 갔던 날에 느꼈습니다. , 생각보다   아니구나. 내가 했던 걱정들은 사실  머릿속에만 있는 거였구나.


비단 극단 활동뿐만이 아닙니다. 일이든, 취미든, 만남이든, 이별이든 대부분의 '처음' 앞에는 수많은 두려움이 있었지만, 일단 시작만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이 놀랄 만큼 싱거웠습니다. 아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스스로의 머릿속에 괴물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던 거겠죠.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세상은 생각보다 대단하지는 않은 곳이었고, 나는 언제나 내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제가 천재라든지 타고난 글쟁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무엇보다 그건 사실이지도 않구요). 다만, 지금의 저는 아무도 눈치를 주지 않는데 혼자서 존재하지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시작의 명분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내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아까 말한 관성을 얻기 위해.


그래서, 이제 뭐라도, 말 그대로 뭐라도 써 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애초에 완벽한 글이라는 건 세상에 없고, 제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냥, 끄적여 보는 거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