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사랑
마흔다섯 살에 다시 위기가 왔다. 서른아홉에 크게 한 번 흔들린 뒤 절약해서 빚을 갚았다. 이제 숨 좀 돌려도 되겠지 싶었는데 소소한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또 줄였다. 커피부터 외식까지 사소해 보이던 지출부터 하나씩 끊어냈다.
마침 아내의 생일이 다가왔다. 식당 예약은 생각도 못했다. 아니, 생각은 했지만 쉽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회사 회식에 참여하지 않고 저녁에 대충 음식 할 준비를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 갔다. 미역, 잡채, 호박, 버섯 새로 산 재료는 없었다. 냉장고에 애매하게 남았있던 재료들을 사용했다.
사실은 미역국에 쇠고기를 넣고 싶었다. 그 정도는 남편으로서 해주고 싶었다. 마트에서 만 원짜리 쇠고기를 손에 들어다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만원이 큰돈이어서가 아니라 그 만원에 나의 절약이 흔들리는 게 싫었다. 결국 쇠고기는 사지 않았다. 집에 있던 황태를 같이 넣고 국을 끓였다. 괜찮은 맛이었지만 내 마음은 자꾸 '이게 최선인가' 질문을 했다.
그때 나태주 시인의 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가난해서 최소한의 아버지만 역할만 하신걸 미안해하셨다. 그 말이 남 애기 같지 않았다. 나도 지금 위기 때문에 최소한의 남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해줄 수 없는 게 더 많아지는 나이,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형편이 부족한 남편이 되었다.
아내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국도, 전도, 잡채도 천천히 먹었다. 괜찮다고 했다. 그 말에 괜히 더 미안해졌다. 그때 알았다. 가난은 남편의 역할을 줄일 수는 있어도 마음을 빼앗가 가지는 못한다는 걸. 돈이 없어서 못해주는 대신 손이 가고, 시간이 가고, 마음이 더 가게 하면 된다는 것을.
한 동안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형편 속에서 최대한의 사랑을 주는 남편이 되고 싶다. 이게 아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