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혼자남의 먹방일기]
발렌타인과 화이트데이의 달콤한 소란 사이에 묘하게 자리 잡은 날이 있소. 아주 희한한 날이요. 숫자 3이 두 번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돼지의 살코기를 탐해야 한다는 3월 3일이오. '삼겹살데이'라고 한다오.
3월의 첫 출근날인 화요일. 고작 나흘만 버티면 된다는 위로조차 헛헛하오. 수없이 반복해 온 출근이지만, 이 출근의 고단함은 도무지 굳은살이 배지 않소. 그래도 이 무거운 엉덩이를 뉘일 의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으며, 관성처럼 버스에 몸을 실는 구려.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다, 오늘이 그 상술의 절정인 삼겹살데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얄팍한 고놈의 몸쓸 무슨무슨날이라며 코웃음을 쳤지만, 내 안의 가장 원초적인 허기가 그 얄팍함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라 속삭이고 나는 결국 "그래, 이왕 속을 거라면 눈부신 한낮에 속아보자."
오전의 짐스러운 업무들을 털어내고 성수동으로 향했오. 목적지는 고깃바.
홀로 고독하게 육식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작은 성소 같은 곳이요. 일본의 어느 라멘집처럼 견고하게 둘러쳐진 칸막이 안쪽, 오롯이 나만을 위해 허락된 한 뼘의 화로가 놓여 있는데, 이건 뭐 도서관에서 고기를 먹는 거 같소. 그렇지만 누군가의 시선을 견뎌내며 혼자 고기를 굽는 수고로움 없이, 철저히 고립되어 미각에만 집중할 수 있는 완벽한 은신처라고 할 수 있겠소.
달아오른 무쇠 불판 위로 선홍빛 삼겹살을 조심스레 눕히면, '치이익' 경쾌하게 피어오르는 꽃같은 소리는 지친 영혼을 달래는 한 편의 위로곡 같소.
고기가 익어가는 영겁의 시간 동안, 차가운 맥주 한 모금으로 타들어 가는 식도를 적셔보오. 찌릿하게 번지는 알코올의 기운에 비로소 '크아!' 살 거 같소!
노릇하게 몸을 뒤척인 고기 한 점을 들어, 짭조름한 된장을 살짝 입힌 뒤 눈처럼 흰 쌀밥 위에 얹어 보오. 입안을 가득 채우는 돼지기름의 고소함과 쌀알의 단맛이 완벽한 화음. 천천히 씹어 넘기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절대적인 행복이 '훅' 들어온다오.
소금을 가볍게 머금은 두 번째 조각 역시 배신하지 않는 황홀경을 선사하오. 나도 모르게 뜨거운 콧바람이 새어 나오오. 그것은 맛있는 것을 탐한 자만이 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찬사! 달콤짭짤한 소스를 곁들이고, 알싸한 김치로 입안을 달래며 고기와 밥, 그리고 맥주를 쉼 없이 교차하다보면, 어느덧 차오르는 포만감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너그러움이 찾아온다오.
거 무슨무슨 데이를 상술이라고 하는 사람들 참 낭만없소. 상술이면 또 어떤가! 이런 허울 좋은 핑계라도 있어야, 쑥스러워 건네지 못했던 마음을 고백하고, 선물도 쥐여주고, 대낮부터 삼겹살을 구워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지갑을 열고 마음을 쓰며 이 팍팍한 세상을 굴려가는 것이고, 그러라고 돈 버는 거지 이 사람아!
완벽한 점심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면, 온 몸과 마음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긴 개뿔. 역시 노는 게 최고다!
PS. 다음 무슨무슨 데이는 화이트 데이다. 3월 14일.
PS2. 다음 쉬는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다. 화요일이다. 그리고 5월 25일 월요일은 부처님오신날 대체 공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