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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Jan 12. 2023

나의 두 번째 가게, 그리고 친구의 꿈

성수 린(leeeeean)의 이야기

지난달, 아주 작은 가게의 문을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론 두 번째 가게이기도 하지만, 친한 친구의 서른둘 인생을 걸은 가게이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짐작이 안됩니다. 짧은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싶지만, 담고 싶은 마음이 많아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친구의 가게를 함께 차렸습니다."

= 나와 가장 친하고, 내가 가장 의지하고,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의 독립을 함께 준비했고, 함께 영끌했고, 여전히 함께하고,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정도일까요. 아무튼 성수동 LCDC 뒷골목에 자리 잡은 술과 음식이 있는 곳 린(leeeeean)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태오, 그리고 린(leeeeean)



1. 열둘에 만난 우리가 벌써 서른둘이 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는 태오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처음 만났다. '독수리 슛~~'을 외치며 간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슛을 날리던 모습이 녀석의 첫 기억이다. 그리 친하게 그렇다고 멀게도 지내지 않으며 우리는 같은 중학교에 올라갔다. 중학교 3학년 수련회, 그때까지 우리는 딱히 이렇다 할 교류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련회 이후로 우리는(아니 적어도 나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십대와 이십대를 함께했던 태오

졸업까지 줄곧 짝지를 했으며, 고등학교를 가서도 같은 학원을 다녔다. 성인이 되어서도 인생에 상징적인 모먼트엔  녀석과 함께였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던 노량진 반지하에서 스물셋을 함께 보냈고, 스물넷 늦은 나이에 입대하던 날에도  곁에는 태오가 있었다. 물론 내일 없이 피시방에서 서든어택을 하며   며칠을 보냈던 시절에도 우린 함께 있었고, 주말이면 낯선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 압구정 홍대를 가리지 않고 다닐 때도  태오와 함께였다(지금도 우리는 동거를 하지만, 요즘은 여자친구가 생겨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다).


스물 다섯 신당동 옥탑방 살던 시절
스물 아홉 OBPC를 도맡아 주었던 태오
작년 선데이워커스의 첫 일도 태오와 함께


그저 즐거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앞으로를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게 아닐까. 서른 하나를 앞두고 있던 서른의 끝자락에 린(leeeean)을 준비하기로 했다.



2. 그래서 태오 넌 뭘 하고 싶은데?

처음부터 지금의 린(leeeean)을 모습을 상상했던 건 아니다. 그게 뭐든(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하더라도) 태오가 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함께 준비를 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그 정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내 전화 한 통에 서울로 달려와 준 친구였으니까. 태오가 없었다면 OBPC를 두고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서른 하나를 맞이하며 태오의 독립을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반년 정도를 어영부영 날려 보냈던 것 같다. 선데이워커스를 막 시작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작년은 전체적으로 호흡이 고르지 못했던 한 해였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을 거다 정말로.) 어영부영 준비를 하던 반년 동안 '술을 팔자'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나도 태오도 술은 여자랑 마시는 게 아니면 마시지 않는 편이다. 둘이서 10년 동안 술을 마신 기억이 다섯 번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술을 판다고? 그야 뭐... 술을 팔아야 돈을 많이 버니까!


자리를 보러 다닐 때쯤 피드에 썼던 글



3. 사람을 모았다.

거기까지였다. 그다음이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치트키를 쓰기로 하는데, 치트키 = 데이데이 친구들이었다. 자리를 보러 다니고,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그래픽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친구들과 함께했다.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11월을 목표로 날을 정하고, 덜컥 계약을 해버리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또 흘러갔다. 우리가 상상한 메뉴를 실재하게 만들어 줄 셰프, 다인도 만났다(셰프님을 만나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고, 연락을 드렸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부적으로 약속했던 오픈 날짜는 지났고, 11월의 끝자락이 되어서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가오픈 전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이 시절의 이야기를 언젠가 길게 쓰고 싶긴 한데, 지금은 당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꼭 기록할 수 있기를.



4.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났다. 아직까지는 특별한 광고도 없이 순수하게 찾아오시는 분들과 지인, 그리고 지인들의 친구들을 맞으며 보내고 있다.

린의 입구

태오는 마음이 조금은 쫓기는 듯하다. 당연히 그럴 거다. 출자했던 예산은 바닥이 난 지 오래고, 매일 손님이 풀로 부킹 하는 상황도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조금만 버텨보자, 눈앞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있어보자." 뿐이지만, 나는 확신이... 있다. 그러니까 함께 잘 견뎌보자고.


어제는 생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나는 생일의 대부분을 태오와 함께했었다. 어제도 여느 생일처럼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린(leeeeean)에 펼쳐질 풍경을 나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게 무엇이든 무엇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겠지.




아무튼 린(leeeeean)에는 태오(Taeo)라는 이름의 메뉴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음식들 가운데 다른 것도 아니라 고작(?) 잡채를 가장 좋아하는 태오. 린(leeeeean)에서는 태오 = 잡채지만, 여대륜에게 김태오는 그리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린(leeeeean)이 어떤 곳이고 어떤 술과 음식을 파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도 못한 채 글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린, 그리고 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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