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증인 앞에서 예수를 매질하는 성모 마리아
마음속에 걸린 마른 가시 하나
오늘 아침 눈을 뜨는데 마음이 불편했다. 며칠 전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딸의 쓸쓸한 목소리가 내내 마음 한구석에 가시처럼 걸려 있던 것이 마음을 긁은 것 같다. 시누이의 임신 소식을 전하며 "그렇지 뭐..."라고 힘없이 내뱉던 아이. 전화기 너머로 흐르던 그 짧은 망설임의 기운이 내 몸으로 스며든 것 같다.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아 조바심이 났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건넨 말들이 가끔씩 아이의 속마음과는 결이 조금씩 빗나가곤 했던 기억이 나면서, 그날 위로라고 한 말들이 혹여라도 딸을 더 쓸쓸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려 조심스럽게 문자를 써서 보냈다. 서툰 엄마라 위로의 핀트가 어긋나 미안하다고, 네가 느끼는 그 쓸쓸함은 당연한 것이니 너무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10분 만에 찾아온 다정한 화답
딸은 늘 그랬듯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10분 만에 도착한 아이의 메시지는 마법처럼 그 조급함을 거두어갔다.
"엄마 나 하루 좀 힘들고 괜찮아졌어. 언니 소식에 오빠도 나도 부러움이 먼저 느껴지는 거 보니 우리 아기도 곧 오려나 보다! "
부러움을 시샘이 아닌 ‘희망’으로 돌려 세운 아이의 마음결이 기특해 나는 다시 문자를 보냈다.
"우리 딸은 어찌 이토록 마음결이 곱고 깊을까? 내 딸인 게 참으로 황송하네. ㅋㅋ"
"엄마 딸이니까 그렇지"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닿은 마음
관계를 우선하는 나와 달리, 남편과 딸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침잠하는 성향이었다. 그 다름을 오해했던 시절, 나는 그들이 마땅히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게 세상을 보고 보통의 관계 맺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안타까움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감당하기 벅찬 압박이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딸아이가 입을 닫을 때마다 그 얼굴에서 내가 무심코 강요했던 내 방식의 그림자가 보여 당혹스러웠다. 좁혀지지 않는 성향의 차이 앞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었었다.
어느 날 딸이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나는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엄마가 필요해."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딸의 말을 듣고 암담한 심정으로 고백했다. "네가 원하는 사랑을 나도 주고 싶은데, 엄마가 어린 시절 그런 사랑을 못 받아서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나는 하느라고 하는데 자꾸 어긋나네." 그때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이의 그 깊고도 측은한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이토록 속 깊은 아이인데 나는 이상하게도 무심코 뱉은 말이나 행동이 아이를 또 외롭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올라오곤 한다.
그림 속에서 마주한 나의 그림자
아이와의 대화로 한결 홀가분해진 마음 틈새로 오래전 보았던 막스 에른스트의 그림 <아기 예수를 매질하는 성모 마리아>가 떠올랐다. 오래전 초현실주의 화가다운 불온한 도발이라며 시니컬하게 넘겼던 그 그림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림 속에서 놀랍게도 내 무의식의 그림자가 보였다.
피에타의 전통적인 도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내게 이 전복된 성모상은 그 어떤 성화보다 깊은 참회와 위로를 건네는 '나만의 피에타'가 되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성모의 붉은 드레스는 압도적이다 못해 폭력적이다. 그 거대한 무릎 위에 엎드린 아기 예수의 엉덩이는 매를 맞아 붉어졌고, 매질의 충격으로 바닥에 무심하게 굴러 떨어진 금빛 후광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소스라치게 한 것은 성모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제 자식의 살을 내리치면서도 감정의 동요 하나 없이 굳게 다문 입술, 그 위로 차갑게 드리운 그림자는 사랑이 아닌 아집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본래 예수(딸)의 머리 위에 있어야 할 후광은 딸의 고유한 빛으로 보였다. 그 빛이 나의 서툰 사랑이라는 매질 아래 처참하게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것만 같았다. 매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의 엉덩이는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내 방식의 소통이 실은 아이에게 얼마나 생생한 통증이었는지를 아프게 증언했다.
창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세 명의 남자들. 그들은 보편적인 소통이 정답이라며 끊임없이 나를 검열하던 ‘내 안의 목격자들’이었다.
내가 그림에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아기 예수의 손이다. 엄마의 치마폭을 놓지 않으려는 듯 꽉 움켜쥔 오른손과, 매질의 공포 속에 팽팽하게 긴장한 채 뻗어 있는 왼손가락. 그 손은 딸의 손이면서 동시에 무의식에서 올라온 내 손이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고유한 빛을 가려온 나의 무지가 빚어낸 참혹한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림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먹먹해졌다.
뿌리로 흐르는 고요한 기도
딸은 문자 말미에 기도를 부탁했다.
"나도 외할머니 기도로 태어났으니까 우리 아기도 외할머니가 기도해 줘야 돼!"
딸은 결혼한 지 3년 만에 기적처럼 나에게로 왔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비로소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안타깝게도 딸 세윤이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나의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장례식장에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어른이 건네신 말씀은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린다. "이 애기가 네 엄마 기도로 태어난 아이구나." 막내딸의 임신을 위해 새벽마다 정성을 들이면서도, 정작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생색내지 않으셨던 엄마. 그 에피소드를 딸에게 들려주자, 딸은 외할머니를 수호천사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인지 말수 적고 단정하셨던 엄마의 성품을 딸이 그대로 닮았다.
그리운 엄마, 세윤이를 통해 엄마를 다시 만납니다. 엄마의 마지막 손주인 세윤이가 첫 작품으로 만든 모빌 <세 여신>처럼, 엄마와 나, 그리고 세윤이는 이미 한 나무의 나이테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튼튼한 뿌리 위로 세윤이가 기다리는 또 하나의 생명이 잎을 틔우기를 꿈꿉니다. 엄마의 영혼이 굽어살피셔서, 한 존재에서 다음 존재로 이어지는 이 기도의 파동이 3대를 넘어 4대의 생명으로 온전하게 닿게 하소서. 그 간절한 울림이 겹겹이 쌓여, 서로 다른 시간의 꽃잎들이 마침내 한 송이 영혼의 꽃으로 피어나는 벅찬 기쁨을 마주하게 해주세요.
사랑한다는 고백 너머 기도의 마음이 흐르는 10분간의 대화. 그 짧고도 긴 시간 속에 딸을 향한 미안함도, 나를 향한 자책도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오는 하루였다.
본문에 언급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의 <세 증인 앞에서의 아기 예수를 매질하는 성모 마리아>(1926)는 미술사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온 아들을 품에 안고 슬퍼하는 전통적인 '피에타(Pieta)'의 도상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인간화된 성가족: 에른스트는 신성(神聖)의 영역에 있던 성모를 아들을 매질하는 '인간적인 어머니'로 묘사하며, 종교적 신화 뒤에 숨겨진 억압과 통제의 실체를 폭로하고자 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후광: 매질의 충격으로 바닥에 뒹구는 금빛 후광은 이 작품의 가장 강렬한 상징입니다. 이는 권위에 의해 훼손된 순수성 혹은 박제된 성스러움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세 명의 목격자: 창틈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세 남자(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그리고 화가 자신)는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사적인 훈육의 현장을 공적인 '사건'으로 전환합니다.
미술 비평의 관점에서 이 그림은 가톨릭 권위에 대한 저항이자 초현실주의적 도발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전복된 성모상은 해석해야 할 '작품'이기 이전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고유한 빛을 가려왔던 나의 무지를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 되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후광을 응시하며 비로소 나는 내 안의 낡은 잣대를 내려놓고, 대물림되는 기도의 숭고한 나이테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