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푸집의 포옹
피에타라는 도상에 천착하고 있던 몇 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광화문 동십자각을 지나 국립현대미술관 방향으로 걷던 중, 삼청동 길을 걷던 내 시야 안으로 낯선 형상이 불쑥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단일한 물체가 아니었다. 흰색의 매끄러운 금속 껍데기 같은 존재가 자신과 꼭 닮은 살구색 육신을 품에 안고 있는 기이한 형국이었다. 뒤에서 받치고 있는 형체는 군데군데 조립된 경계선과 볼트 자국이 선명한 기계적인 모습이었고, 그 품에 축 늘어진 존재는 마치 막 허물을 벗고 나온 생명체처럼 매끈하고 연약해 보였다. 무언가를 간절히 붙들고 있는 듯한 그 위태로운 겹침의 실루엣이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그어졌다.
‘저건 무엇일까. 혹시, 피에타인가?’
전통적인 성모의 자애로운 곡선 대신 날 선 금속의 파편들이 가득했지만, 누군가를 품에 안은 그 절대적인 비탄의 형상은 분명 내가 오래도록 파고들던 그 도상을 닮아 있었다. 생경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기계적인 포옹은 한동안 내 발길을 그 자리에 묶어 두었다.
낮고 고즈넉한 한옥 지붕 위에 위태로운 듯 당당하게 떠 있는 그 이질적인 형상은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내 시야에 자꾸만 걸려왔다.
나중에야 작가의 변을 통해 확인한 이 작품의 정체는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 자기-죽음>이었다.
놀라운 점은 성모 마리아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던 그 흰색의 형체가 다름 아닌 '거푸집(Mold)'이라는 사실이었다. 본래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쓸모없이 버려지는 소모품인 거푸집이, 자신이 낳은 작품을 자애롭게 안고 있는 그 전복적인 설정에서 나는 나를 지탱하는 근원의 실마리를 보았다.
형체가 없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품의 모든 형태를 결정짓는 근원인 거푸집. 그 몰드는 내게 나의 근원인 ‘우주의 기운’으로 읽혔다. 성모의 자리에 놓인 거대한 거푸집이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거대한 '우주'로 보이고, 그 안에서 빠져나온 매끈한 피조물이 '작은 나'로 보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한때 열등감에 시달리며 나를 증명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과거의 나를, 이제는 내가 우주의 세포 중 하나임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 지금의 내가 품어주는 장면이었다. 사라지기 전의 순간들을 기록하며 내 존재의 의미를 명징하게 구축해 나가는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가장 정직한 태도다.
그 태도를 회복하자, 나라는 인식 밖의 모든 것들과 화해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의지로 어찌할 수 없었던 타인의 평가나 세상의 풍파조차 나를 빚어낸 거대한 섭리의 일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증명하려 애쓰던 날카로운 긴장이 풀리고, 비어있던 마음의 자리에 세상의 빛과 바람이 순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용백의 피에타를 마주하며 나는 비로소 확신한다. 내가 우주의 한 세포이며, 거대한 근원인 거푸집에 의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성스러운 사랑의 품에 기댄 채, 내게 주어진 생의 장면들을 정직하게 기록할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