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의 피에타
2021년 겨울, 제주의 아픈 속살을 마주하다
제주도에 정착하기 전이었던 2021년 겨울, 제주 여행 중에 눈보라를 만났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눈보라에 갇혀 꼬박 하루를 보내는 동안, 숙소에 비치된 제주 다크투어 안내서를 뒤척였다. 다음날, 언제 눈이 내렸느냐는 듯 도로에는 눈 한점이 없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명징한 청색으로 높아졌다. 그리고 흰 눈을 가득 머금은 채 우뚝 솟은 한라산이 보였다. 그 풍경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다. 그 눈부신 풍경을 가로질러 4.3 평화기념관으로 향했다. 섬을 자주 들락거리면서도 정작 마주하기 두려워 외면했던 제주의 아픈 속살을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비로소 똑바로 응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자각이 생겼던 것이다.
박제된 광기, 그 서늘한 심연으로 걸어 들어가다
어두운 전시장 내부를 걷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던 중, 벽면에 새겨진 서늘한 문장 하나가 시선을 붙들었다.
나는 하루라도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없다.
인간의 광기가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박제되어 있었다. 마약 중독이라는 개인의 병증 뒤로 그 잔혹함을 숨기려는 시도는, 어쩌면 우리 안의 공포가 만들어낸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악의 깊이를 목격한 순간, 나는 그 서늘한 진실을 뒤로한 채, 바닥으로 깊게 침잠하려는 몸의 무게를 견디며 한 발씩 내디뎠다.
다랑쉬굴의 학살 현장을 재현해 놓은 풍경은 숨이 막힐 듯 스산했다. 어둠 속에 흩어진 유골과 놋그릇들 사이로, 나는 환청처럼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압도당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세계의 제노사이드 코너에 이르렀다.
사진 속에 박제된 비극적 진실들을 하나하나 목격하며, 아도르노의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마주하기 힘든 비극의 잔상들을 남겨두고, 실내를 빠져나와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며 공원 곳곳에 세워진 조형물 사이를 느릿하게 산책했다. 수많은 희생자의 이름이 벽처럼 세워진 각명비를 지나 분향소에서 묵념을 올렸다. 그리고 <비설>을 향해 걸어갔다.
생명의 의지: 마지막 숨까지 모아 품어낸 처절한 사랑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조각상 <비설(飛雪)> 은 출구가 보이지 않게 엇갈린 겹겹의 벽을 따라 내려가는 구조 속에 있었다. 벽면에는 제주의 자장가가 나직이 적혀 있었다.
우리 아기 잘도 잔다 남의 애기 잘도 논다...
도지밑에 검둥개야 앞마당 노는 개야...
우리 애기 공밥 주고 우리 애기 재워주렴
자장가를 따라 읊조리며 굽이진 벽들을 휘돌아 나갔다. 길 끝에서 시야가 트이며 하얀 눈이 쌓인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그 한가운데 물에 젖어 검게 빛나는 동상 <비설>이 엎드려 있었다. 1949년 1월 거친 눈보라 속에서 두 살배기 딸을 품에 안고 스러져간 변병생 모녀의 모습이다. 죽어가는 찰나에도 자신의 옷을 벗어 아이를 감싸 안았던 어머니. 그 처절한 포옹 위로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에 설치되어 있다는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 <피에타>가 겹쳐졌다. 변병생의 굽은 등 위에서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콜비츠의 서늘한 슬픔이 읽혔다. 녹아내리는 눈줄기가 눈물처럼, 혹은 진땀처럼 동상에 맺혀 있었다.
먹먹한 가슴으로 기념관을 나와, 케테 콜비츠의 전시 <아가야, 봄이 왔다>가 열리고 있는 포도뮤지엄으로 향했다. 전시실에서 만난 콜비츠의 판화들이 기념관에서 보았던 <비설>과 만나 거대한 통곡으로 변했다.
판화 속에 거칠게 새겨 넣은 손마디와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감싸 안은 그 억척스러운 팔뚝이 신발마저 벗겨진 채 눈 속에 힘없이 늘어져있던 변병생의 발과 맞닿았다.
그 팔뚝과 눈 위를 맨발로 걷는 여인의 필사적이고도 초월적인 에너지. 그것은 생명을 지켜내려는 본능적 의지 그 자체였다. 이는 전시장 안에서 만났던 광기 어린 문장들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지점이었다.
인간의 조건: 어느 방향성으로 마음을 기울일 것인가
참혹한 학살의 기록 끝에서 마주한 <피에타>의 포옹은 아도르노가 말한 절망에 대한 침묵의 대답이었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 광기와 죽어가면서까지 생명을 살리려는 초월적 의지, 그 모순된 두 에너지는 마치 인간의 속성인 듯,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었다. 숨이 막힐 듯 무거운 이 공존의 진실 앞에서 나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도르노가 경계했던 야만이란 비극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광기를 목격하고도 사랑의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 태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삶은 결국 어느 쪽으로 의지의 방향을 틀 것인가 하는 끈질긴 선택의 연속이다.
2026년 3월 오늘, 다시 비설을 떠올리며
모든 관계에서 사랑의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삶의 방향성을 되묻는 태도, 그것만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길임을, 눈밭에 엎드린 <비설>의 여운이 콜비츠의 통곡으로 이어지던 그 길 위에서 새삼스레 되새겼다.
5년이 흐른 2026년 3월 오늘, 화면 속 세상은 다시 불타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흩어지는 소식을 마주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세 개의 이미지가 레이어처럼 겹쳐지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눈부신 설원 위에서 맨발로 아이를 안고 엎드려 있던 변병생의 시린 등, 그 마른 등 위로 투명하게 겹쳐졌던 케테 콜비츠의 처절한 통곡, 그리고 지금 화면 속 화염을 뚫고 나오는 이란의 피에타들. 시공간을 달리한 이 세 겹의 이미지는 소름 끼치는 기시감이 되어 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것은 형상과 광기, 그리고 방관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야만의 인화지(印畵紙)다.
1949년의 제주와 2026년의 중동은 남의 일이 아니며, 그 안에서 작동하는 파괴의 야만과 이를 넘어서려는 사랑의 의지는 서로를 비추고 있다. 결국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이 비극의 레이어들이 겹쳐질 때마다 기어이 사랑의 방향으로 몸을 트는 끈질긴 분투의 과정일 것이다.
야만이 다시 일상이 된 2026년의 봄날, 겹겹이 쌓인 피에타들의 굽은 등이 나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사랑은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느냐고. 무겁고도 깊은 질문을 품은 채, 나는 다시금 나의 방향성을 점검하며 오늘의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