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아인슈타인과 랍비)

'미켈란젤로의 그림과 나오미 레비의 문장을 읽다

by 임동숙
SE-54f6a487-4aa5-462c-8470-811bf064d97d.jpg?type=w1600 십자가형을 당하는 성베드로/미켈란젤로(1546~1564)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 노년을 보내던 중, 교황 바오로 3세로부터 성베드로 성당 개축 공사의 총 감독관 자리를 수락해 달라는 요청을 받지만 몇 차례 고사했다. 그러자 교황은 원하는 대로 보수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미켈란젤로는 아래와 같이 말하며 자리를 수락한다. 그의 나이 일흔두 살 때의 일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후 죽는 날까지 로마에 머물면서 교황들만 출입하는 성 바오로 채플실 양쪽 벽에 마지막 프레스코화 두 점을 그렸다. ‘십자가형을 당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회심'이 그것이다.


교황 성하, 제가 가진 능력은 제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나머지 여생을 아버지 성전을 짓는데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며, 또한 아버지께로 물려받은 이 재능을 그분께 다시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 드리며,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오니, 저의 임금은 생각지 말아주시옵소서


SE-16036ad5-4ed4-4a8d-b647-0c2a6ba077bc.jpg?type=w1600 아인슈타인과 랍비/한국 기독교연구소

유대교 여성 랍비인 나오미 레비는 우연히 <아인슈타인이 비탄에 잠긴 어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라는 짤막한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아 글의 출처를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일면식도 없었던 로버트 마커스라는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영혼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아인슈타인과 랍비/한국기독교연구소>라는 책이다.

한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제약을 받는 존재로서,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와 생각과 감정이 그 나머지 다른 것들과 동떨어진 분리된 것이라고 느끼는데, 사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일으킨 일종의 착시적 망상에 불과합니다. 이런 착시적 망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은 참된 종교가 추구하는 하나의 화두입니다. 그런 망상을 키우는게 아니라 그런 망상을 극복하려는 노력만이 마음의 평화에 한껏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비탄에 잠긴 어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문장 곳곳에 줄을 치며 따라 읽어가던 중 위 그림 <십자가형을 당하는 성 베드로>가 떠올랐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에 매달린 베드로의 부릅뜬 눈빛과 팔짱 끼고 있는 군인으로 표현한 자화상의 시선이 대비되어 떠올랐다.


SE-4eacebb2-9c3a-4f44-bc97-a4981d26a047.jpg?type=w1600 순교하는 베드로와 군인으로 그려진 자화상

그림 속 베드로는 금방이라도 꾸짖을 듯 나를 응시하고, 팔짱을 낀 채 땅을 내려다보는 화가의 무력한 시선은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바리새인들과 그들 앞에 낮게 앉아 땅에 무언가를 적으시던 예수님의 그날 풍경 위로 포개진다. 죽음을 앞둔 성 베드로의 부릅뜬 눈빛과 대비되는 이 낮은 시선은, 정죄와 용서가 교차하던 그 성경 속 현장으로 나를 안내한다.

수많은 미술 비평가는 베드로의 눈빛이 16세기 부패할 대로 부패한 교황청에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교황들만을 위한 채플실이니 노화가의 의도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강렬한 시선은 결국 그림 밖의 나를 정면으로 관통한다. 그 눈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쩐지 나는 자꾸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죄 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우리는 날마다 자기 영혼 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지 정직하게 물어볼 것을 요구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일을 몹시 꺼리고 싫어한다.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내가 내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닐까? 벌써 자기 만족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일까?
배우고 성장하고 변화하기를 멈춰버린 것일까? -53P에서 발췌


우리는 때로 영혼을 만나는 일이 우리를 내적 평화나 황홀한 상태로 이끌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혼을 만나지 못할 때가 있다. 진실은, 영혼은 만족이나 축복과 거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혼은 열린 눈과 불편함을 수용한다 -26P에서 발췌


모든 사람의 영혼은 이어져 하느님의 끝자락에 닿아있다던 다석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실감 나는 오후다. 베드로의 마지막 순간을 부릅뜬 눈으로 표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예수를 죽이는 군인으로 설정해 팔짱을 낀 채 무력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낸 노화가. 그의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가슴이 뻐근해 온다.

그 와중에도 시공을 초월해 미켈란젤로로부터 베드로, 나오미 레비, 그리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김준우, 최순임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넘어 이 책이 오늘 나에게 읽히기까지 이어진 그물 같은 인연의 서사가 새삼 경이롭다. 이름 모를 이들의 손길이 겹겹이 쌓여 내 안의 파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린다.


영혼은 사후의 삶뿐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서 현재의 삶을 여는 열쇠이다." 저자 나오미 레비의 이 말 앞에 나는 멈춰 선다. 맞다. 돌아보니 삶에 대한 나의 질문 역시, 결국은 모두 영혼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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