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회사에서 홀로 서야 하는 경력직, 그리고 나이듦에 대해
IT 서비스에 몸담고 있는 만큼 경력직의 이직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한다. 우리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나가는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일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저 응원한다.
다른 회사에서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경력직의 경우, 그 사람의 경력 및 백그라운드와 성향 등의 다양한 정보에서 시작해서 현재 우리 회사에서 어떻게 적응하는지까지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물론 대다수의 경력직은 신입사원과는 다르게 업무에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다. 어려운 지점은 경력직에게 '허용된' 적응의 시간은 꽤 짧다는 것이다. 문화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한두 달이면 적응을 마치고 능숙하게 일하기 시작하기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나 조직이나 기업문화, 그리고 유관부서 및 팀원들과 일하는 방식까지 합을 맞추기에 사실 한두 달은 짧은 시간이다.
세 달 전쯤 우리 팀에 합류한 주니어 PM이 최근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으면서 야근이 잦아졌고, 점점 버거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지난 주 파트 회의에서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고민을 토로했다.
"우리 회사랑 조직 fit이 안 맞는 것 같아요."
그 분은 경력직 타이틀을 달고 입사하긴 했지만, 사실 내 또래라서 더욱 마음이 쓰였다. 미래의 나는 절대 겪지 않을 일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어서 더 동질감이 들기도 했다. 이 날을 계기로 그 분의 적응기를 돌아보면서 한 가지 절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경력직에게는 섣불리 조언할 수 없다.
주어를 바꿔 말하면, 경력직은 조언을 받기가 어렵다.
생각해 보면 나부터도 그랬다. 우리 팀에 들어온 신입사원 막내에게는 업무적인 것이든, 사회생활에 대한 것이든 (그 친구가 요청한다면) 상대적으로 편하게 조언 혹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줄 수 있다. 그 친구를 아끼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게 말해 주는 거고, 나도 신입사원 때 선배들에게 조언을 요청해서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힘들다고 말하는 경력직에게는, 속에 담긴 생각들이 목구멍에 걸려 그 어떤 말이든 쉽게 나오지가 않았다. 그 분의 업무 스타일을 100%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최근에 한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면서 의도치 않게 타산지석 삼게 된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원칙대로 일하는 편이고 1부터 100까지의 프로세스를 확인 후 진행하는 스타일인데, 처음에는 새 조직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사 후 3개월이 지난 후에도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문의할 때가 있었고, 업무의 맥락을 재차 확인한다거나 전체적으로 업무 스타일이 유연하지 않고 진행이 늦어진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분의 일하는 방식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지나치게 경직되게 일하지는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결코 내 의견을 털끝만큼이라도 내보일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혼자 생각하고 말면 되지, 나라고 뭐 완벽한가? 일전에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쓴 적도 있다. '원치 않는 순간에 요청하지 않은 동료에게 조언받기를 즐기는 사람은 없다'고.
어떻게 보면 경력이 길다, 혹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경력직은 연차가 찰수록 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가 스스로 어려울 뿐더러, 설사 용기를 내서 요청했을 때에도 조언이나 디렉션을 받기가 저연차에 비해 훨씬 어렵다. 어쨌든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과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모두들 직장에서 남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 텐데, 굳이 남의 10년 묵은 단단한 자존심을 건드리는 위험과 감정적인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를 감수하고 그(경력직)에게 조언을 한다고 해도, 그 사람도 이미 자신만의 가치관과 행동 패턴이 정립된 나이 든 어른인 이상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가능성도 낮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으로부터 진심을 담은 (아무렇게나 제 좋을 대로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려 깊은 조언을 받기가 정말 귀하면서도 어려운 이유다. 만약 나에게 진심 어린 애정과 통찰력을 담아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고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튼 이 경험을 나에게 다시 적용해 본다. 나 역시 나이와 연차를 채울수록 점점 더 주변인의 조언을 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즉, 가만히 있으면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객관화하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지금보다도 훨씬 많이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타인의 의견과 조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새로운 환경 그리고 업무에 적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1. 아직 주니어로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지금, 최대한 많이 질문하고 배우자. 5년차가 되어서도 여전히 신입이 할 법한 질문을 하고 있지는 않도록.
2. 내가 인격과 능력 모두를 신뢰하는 사람에게 평소에 자주 의견이나 조언을 구하자. 나보다 후배이든, 나보다 선배이든은 상관 없다. 주변 사람이 나에게 조언하기를 어렵게 느끼도록 자존심의 벽을 세우지 말자.
3. 만약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시작하는 순간이 내게도 온다면, 첫 한두 달은 마치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최대한 많은 것들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자. 최대한 저자세로 온보딩 기간동안 많은 것들을 파악하고, 한 번 물어본 것은 다시 물어보지 않도록 기록하고 적용하자.
다른 회사에 경력직으로 간다는 것, 새로운 곳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발걸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