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가능성 있는 프로덕트를 알아보는 체크 포인트
주니어에게, 최대 5년까지는 '전문성' 획득에 매몰되기보다는 다양한 업무 Scope을 폭넓게 경험하며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라는 조언이 많다. 30년 이상을 바라보는 커리어 장기전에서, 초반에 스스로를 잘 탐색하라는 말은 꽤나 합리적이다.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난 이걸 싫어해', '난 이런 걸 잘 못해'라고 자기 자신에게 제약을 걸었던 경험은 학생 시절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여러 차례 팀 개편을 경험하며 다양한 업무 기회가 많았던 조직 특성에 더해 나 역시 체질적으로 새로운 업무 경험을 즐기는 편이다. 23년을 맞이해 이제 갓 4년차가 된 나에게 좀 더 업무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하는 선배도 있지만, 아직 20대인 나에게는 충분히 헤메고 다양하게 경험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물론 나에게 애정을 갖고 조언을 건넨 선배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따라서 내가 담당하는 메인 프로덕트 외에 주변적으로 업무 Scope이 넓어지는 것에는 아직 전혀 부담이 없다.
게다가 내가 5년 후에는 이 직무가 재미없다고 느낄 지 누가 알까? 나는 작년의 나와는 다르고, 내년의 나는 올해의 나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매년 그래왔듯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또 다른 관심사를 갖게 되는 그런 순간에 폭넓은 경험은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다. 21살, 대학에 입학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성장해 왔다(성장에 대한 하나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Connecting the dots 개념과 닿아있기도 하다). 새로운 업무를 '실제로' 해 볼 때마다 기존에 알지 못했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혹은 잘 하지 못한다고 지레 판단했던 좁은 세계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다만 PM으로서 메인으로 담당하는 Product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확인해 보아야 할 체크포인트는 있다.
성장성이 있는, 소위 말해 '가망 있는' 프로덕트와 아닌 프로덕트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이다. PM이 하기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시장매력도와 마켓 사이즈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2023년에 거중기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해 주는 프로덕트를 만든다면,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시장 수요는 없을 것이다.
스타트업 연쇄 창업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의 강도가 아니며 진입하는 시장의 사이즈가 충분히 큰지를 본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아무리 경쟁 강도가 강하다고 해도 시장만 크게 존재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역량으로 도전해볼만 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쟁 강도가 적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점유율 확보가 가능하다고 해도, 전체 시장이 작다면 그 파이를 다 먹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윤을 얻기 힘들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내 프로덕트를 결정하기 전 확인해야 하는 2개의 축은 크게 이렇다.
1. 프로덕트 자체의 성장성 (시장의 성장성/성과 창출 가능성)
2. 프로덕트 매니저 개인의 커리어 성장성 (역량 성장 가능성/성과 창출 가능성)
(1) 프로덕트 시장의 성장성
앞서 언급한 프로덕트의 시장성이다. 프로덕트 아이템은 회사가 속한 산업과 주력 사업에 영향을 받으므로 사업 구조적 관점을 탑재해야 한다. 아이템 자체가 고성장이 예상되는 프로덕트라면 당연히 'get on a rocket ship'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특수 기간 동안에는 배달 서비스 관련 프로덕트라던가, 비대면 협업 tool 관련 프로덕트 등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점쳐볼 수 있다. 반면 코로나 19 기간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고객 행동이 연계된 프로덕트를 맡는다면 성과 창출 가능성이 다소 높지 않을 수 있다.
(2) 프로덕트 성과 창출 가능성
시장 자체의 이슈 외에 한가지 체크포인트가 더 있다. 조직 내부적으로 이 프로덕트에 얼마나 전사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한 이슈다. 내가 맡으려는 프로덕트가 아무리 시장 성장성이 높아도, 이 회사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과 다소 동떨어진 프로덕트라면 현실적으로 조직 차원의 지원이 부족할 수 있다. 지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인력과 비용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아니라, 유관부서 실무자가 이 프로덕트 협업을 위해 크게 나서주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가령, 개발자가 내 프로덕트와 동시에 타 프로덕트를 병행해서 개발하는데 자꾸 암묵적으로 내 프로덕트의 개발 우선순위를 낮추어 진행하는 것이다. PM은 특히나 혼자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특히나 치명적일 수 있다.
프로덕트 매니저 개인의 커리어 성장성은 조금 더 유연한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다. 프로덕트 자체의 성장성은 별로 기대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PM으로서 경험을 얻어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개인의 커리어 성장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특히 주니어라면 더더욱 절대적인 경험의 총량이 필요하다). 이 경우도 3가지 측면에서 경험 성장을 구별할 수 있다.
(3) 구조적으로 사업 성과(매출)와 직접 연계되는 프로덕트
최근 올리브영에서 MD 직군에 대해서 최대 16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러나 그 외의 직군에게는 20~4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22년도 올리브영의 사업 성과를 MD 직군에 직결시킨 것이다.
프로덕트도 마찬가지다. 어떤 프로덕트는 특성상 실제 매출을 일으켜서 직접적인 사업 성과를 OKR 달성이라고 수치적으로 제시할 수 있고, 어떤 프로덕트는 애초에 매출을 위한 프로덕트가 아니어서 간접적으로 회사에 기여한다. 후자의 경우 회사에서 '알아서' 인정해 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PM은 (비록 해당 프로덕트를 Top-down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도) 결국 자신이 직접 사업 성과와의 연계점을 증명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이 프로덕트로 신규 트래픽을 발생시켜서, 앱의 DAU 성장에 기여했어요"를 증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그게 '회사'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데?"라는 질문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질 수 있다. 발생한 신규 트래픽이 실질적으로 다른 서비스까지 방문해서 매출을 일으켜줬다면 고마운 일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단순히 '해당 프로덕트를 위해 우리 앱에 방문하고 구매를 일으키지 않은 유저 트래픽을 발생시켰음' 을 성과로 인정하지 않는 회사(매출만을 사업 성과로 인정하는 회사)라면 PM은 열심히 일했음에도 곤란해질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회사에서 성과를 인정받지 않는다는 문제를 떠나 그 프로덕트를 맡은 PM이 장기적으로 해당 프로덕트를 고도화하려는 동력을 상실하게 할 수 있다. 프로덕트 자체가 '매출'을 핵심 KPI로 하지 않는데, 매출과의 연계를 증명했을 때에만 가치를 인정받는 프로덕트라면 지속가능성은 시간 문제다. 따라서, 만약 PM에게 프로덕트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급적 회사가 바라보는 사업 성과와 프로덕트 지표를 얼라인하기 용이한 프로덕트를 선택하기를 추천한다.
(4) 데이터 지향적인 프로덕트
모든 프로덕트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테스트하여 검증하고, 고도화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프로덕트의 자체 특성상 조금 더 데이터와 밀접한 프로덕트들이 있다. 반드시 인공지능, 머신러닝 기술이 필요한 추천 시스템이나 개인화 시스템 같은 것들이다. 이런 프로덕트들은 PM이 자체적으로 데이터로 일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데이터 전문가와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프로덕트를 위해 데이터 엔지니어, 사이언티스트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경험 자체로 PM은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이런 프로덕트를 맡을 기회가 있다면 도전해 보기를 추천한다.
(5) UI/UX 및 사용성이 매우 중요한 프로덕트
최근에는 프로덕트 매니저와 UX Designer 직군이 분화되는 추세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PM에게 서비스의 사용성은 중요한 과제다. 사용성을 만족시키지 못해 초기 고객을 모조리 이탈시키거나, 재이용 고객의 리텐션이 낮아지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UX 디자인 및 사용자 멘탈 모델, 사용성 테스트 적용이 필수적인 프로덕트를 맡는다면 UX Research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한 심리적 허들이 높고 개인정보유출에 불안감이 높은 핀테크 프로덕트의 경우 Funnel 곳곳에서 사용자 이탈이 발생한다. 본인인증이 조금만 늦어지거나 유저 플로우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에잇, 그냥 안 할래.' 하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물 흐르듯이 매끄러운 사용성이 고객을 달랠 수 있다. 핀테크 서비스 가입 시, 처음부터 한 화면에 모든 정보를 담지 않고 개인정보를 입력할 때마다 '자, 이것만 하면 끝나. 자~ 이제 진짜 마지막 단계! 어때, 안전해 보이지?' 식의 UX가 자주 출현하는 이유다.
물론 PM으로서 UX Design 역량을 본인의 핵심역량으로 가져가고 싶은지는 스스로 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UX Design은 분명 매력적인 업무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UX 개선보다는 데이터 해석과 시장 전략에서 강점을 나타내고 싶은 PM이다.
주니어에게 어떤 도메인의 어떤 프로덕트를 맡을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언젠가 나에게도 선택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다.
세상에 정답지는 없지만 적어도 내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PM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