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콜레스테롤 약, 스타틴이 암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연구에 따르면 스타틴을 복용하는 암환자는 복용하지 않는 환자에 비해 사망률이 낮았습니다.
2. 스타틴은 총 네 가지 경로의 지질 대사에 관여합니다. 이 말인즉슨 스타틴을 복용하게 되면 단순히 콜레스테롤만 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지질대사물질들의 생산도 함께 줄어들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원유 생산이 줄어들면 단순히 기름 가격이 올라 차를 몰기 부담스러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플라스틱이나 아스팔트, 나일론과 같은 다른 재료까지 덩달아 구하기 힘들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예를 들어 스타틴을 처방받았다면 코엔자임 Q10를 함께 드시라는 권유를 하는 이유는 바로 코엔자임 Q10이 만들어지는 데에도 이 효소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스타틴의 다면적 효과(Pleiotropic effects)라고 부릅니다. 비록 코엔자임 Q10이 덜 만들어지는 건 신경쓰이는 일이긴 합니다만, 따져볼수록 스타틴은 많이 남는 장사인 것이, 우리는 스타틴 하나로 항염증 효과, 항산화 효과, 경화반 안정화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과 의사들이 스타틴을 기적의 약이라며 추켜세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항암 효과 또한 이 다면적 효과 중의 일부로 인정하는 추세로 보입니다.
4. 스타틴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중간산물이 재료가 되는 지질대사산물은 총 네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일단 대표적으로 콜레스테롤이 있고(당연히), 두 번째는 코엔자임 Q10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소프레노이드 경로라고 하여 단백질이 세포막에 결합하여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질 고리를 만드는 데에 이 중간산물(메발론 산)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다면적 효과는 이 이소프레노이드 경로가 방해받는 결과와 관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머지 하나의 이름은 돌리콜 경로)
5. 이소프레노이드 경로에서 만들어진 이 고리는 생각보다 중요한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세포가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지를 결정하는 단백질이, 작동하느냐 마느냐가 바로 이소프레노이드 경로에서 만들어진 고리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RAS라고 하는 단백질은 세포가 분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데 이 RAS 단백질이 최종적으로 승인되어 작동하려면 FPP라는 지질 꼬리가 꼭 필요합니다. 스타틴이 작용하게 되면 FPP가 덜 생산되고 결국 RAS 단백질이 만들어져도 승인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세포막 결합 불가)
6. 이 RAS 단백질은 의외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췌장암이나 대장암등과 관련된 원암유전자(proto-oncogene)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췌장암의 경우 RAS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을 확률이 95%나 될 정도입니다. (KRAS 유전자) 암세포가 끝없이 분열할 수 있는 비밀 중에는 이 RAS 단백질이 꺼지지 않고 끊임없이 분열하라고 명령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7.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RAS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 항암제를 개발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RAS 단백질을 완전히 차단하거나 생산량을 무작정 조절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큰 일이었습니다. 왜냐면 RAS는 낡은 세포는 버리고 새 세포로 분열하는, 말 그대로 생명 그 자체에 관여하는 단백질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버그 잡겠다고 한 행동이 컴퓨터를 더 이상 켜지지 않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8. 그런데 스타틴은 이 RAS 단백질의 생산량을 직접적으로 조절하지는 못하지만, 세포막에 결합하기 위해 필요한 지질 꼬리를 덜 만드니 암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9. 실제로 스타틴을 복용하는 암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사망률이 낮게 보고됩니다. 암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식도암, 유방암, 폐암, 간암, 췌장암, 자궁내막암, 직장암을 포함한 다양한 유형의 암 환자에서 스타틴을 복용하던 환자군은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낮았습니다. 예를 들어 간세포암 환자 15,422명을 후향 분석해 보니 스타틴 사용이 간세포암 환자의 사망률 감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왔고, 65세 이상 췌장암 환자 12,57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스타틴의 잠재적 이점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암 예방 효과를 보고한 논문도 있습니다.
10. 이에 무작위 대조 시험 및 코호트 연구 총 3,877건을 분석한 메타 분석 결과가 Frontiers in Oncology 지에 2023년 발표되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진행성 암 환자가 스타틴을 복용할 경우, 복용하지 않은 환자에 비해 사망 위험이 약 4분의 1(26%) 정도 줄어든다고 결론 내립니다. 키트루다 같은 면역항암제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심혈관 보호 효과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 (키트루다는 PD-L1 양성 환자 기준 43% 감소)
11. 다만, 스타틴이 항암 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은 아직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RAS 단백질의 FPP 프레닐화 억제는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명료하고 매력적인 기전이나 실제로는 Rho 계열 단백질의 프레닐화도 항암효과를 보이는 데 많은 역할을 합니다. 또한, 항암 효과를 나타내는 데 필요한 적정한 용량과 다른 항암제와의 병합요법 등 표준 치료법도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해야 합니다. 고용량 스타틴은 근육 소모, 간독성 등이 우려되므로 실험실에서 입증된 항암 효과를 노리고 높은 용량으로 쓰기에 여전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12. 이처럼 항암효과를 기대하고 스타틴을 복용하라 권유드리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많습니다만, 동맥경화와 심혈관질환에 있어서 만큼은 오랜 기간 동안 충분히 검증된 치료제이므로 콜레스테롤이 높으신 분들이라면 스타틴의 다면적 효과(Pleiotropic effects)를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13. 지난주에 소개해드렸던 스타틴의 항염증 효과 또한 다면적 효과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스타틴은 GGPP라는 지질 꼬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Rho 계열 단백질 활동을 억제합니다. Rho단백질이 만들어지기는 하나 활동이 승인되지 않음으로써 (프레닐화 억제로 세포막 결합에 장애) 염증반응의 첫 단추인 NF-κB가 시작되지 않고 이로 인해 IL-1β도 나오지 않게 되어 염증이 증폭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는 천만 원이 넘는 신약의 기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14. Rho 계열 단백질은 세포가 형태를 바꾸고 이동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단백질입니다. 앞서 스타틴의 항암효과 또한 Rho 계열 단백질이 억제됨으로써 전이가 억제되고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문제가 생기면서 얻어지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macropinocytosis) Ras 단백질이 분열을 결정하고 Rho 계열 단백질이 외부 신호를 받고 세포 골격을 변형시키거나 이동하게 하여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혈관 중막의 평활근 세포가 혈관 내피로 이동하는 데에도 염증신호를 받은 Rho 단백질의 활성화가 필요합니다.
15. 오늘 소개해 드릴 항산화 효과 또한 스타틴이 Rho 단백질의 활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Rho 계열 단백질(정확히는 Rho의 일종인 Rac1 단백질)이 활성화되면 NADPH oxidase가 만들어져 항산화 물질을 소비하게 만듭니다. 더불어 일산화질소(NO)의 생산량도 늘어납니다. Rho 단백질은 eNOS mRNA를 억제함으로써 NO생산량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산화 작용은 사고가 난 LDL이 훨씬 빠르게 산화 LDL(ox-LDL)로 변하는데 기여합니다.
16. 스타틴은 유명한 항산화물질에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며 이는 특히나 혈관 건강, 동맥경화의 악화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스타틴은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항산화물질인 Nrf2의 DNA 결합 활성도 증가시키고 HO-1 및 글루타티온 퍼옥시다제(GPx)와 같은 유전자의 발현도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항산화작용은 LDL 콜레스테롤의 저하 효과와는 별개이므로 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17. 참고로 이러한 다면적 효과를 얻으려면 아무래도 지용성 스타틴(Atorvastatin) 이 수용성 스타틴에 비해 훨씬 유리할 수 있습니다. 세포 내로 침투하려면 세포막을 잘 통과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치매와 스타틴은 관련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기억력 둔화 등이 신경 쓰이신다면 수용성 스타틴을 권하기도 합니다. 수용성 스타틴은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를 포함한 내과 의사들은 리피토나 크레스토 모두 상관없이 씁니다. 다면적 효과를 들어 스타틴의 유용성을 강조해 드리고 있습니다만 사실 LDL 콜레스테롤이 떨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스타틴의 효용성은 그 어떤 약보다 뛰어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