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의사
58세 여성 A 씨는 마음이 착잡하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당화혈색소가 7.8%나 나왔기 때문이다.그녀는 누구보다 당뇨 예방에 최선을 다해왔다. 당뇨나 고혈압은 자기 관리를 못한 사람들이나 걸리는 병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평생에 걸쳐 한 번도 45kg을 넘겨본 적이 없고, 외식을 하지도 않거니와 어쩔 수 없이 하더라도 백미 밥은 일절 입에도 대지 않고 반찬만 깨작거린다.하루에 못해도 8번씩은 혈당을 재어보고, 150이 넘어가면 무조건 아파트 계단 오르기 5세트를 한다. 만약 5세트를 하고도 90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5세트를 더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녀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탄산음료를 맛도 보지 못했고 반 공기 이상을 먹어본 적이 없다. 물론 현미 위주의 잡곡밥이다.
그녀의 집에는 당뇨 예방에 좋다는 음식들이 가득하다. 돼지감자나 카무트가 끊이지 않고, 방탄 커피와 여주 달인 물만 마신다. 그녀는 당뇨와 관련된 유튜브를 모두 탐독하고, 당뇨병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지식에도 통달했다. GI 지수나 혈당 스파이크, 저탄고지, 단식요법 같은 개념을 알기 쉽게 신규 회원들에게 친절하게 댓글로 알려줘서 카페에서 그녀는 일명 "당뇨 박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마을 회관에서 교육해달라고 요청받은 적도 있다.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결국 병원을 방문하고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게 된 낙오자들을 보며 의사들은 거대 제약회사와 짜고 환자들을 '고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히 약의 노예로 만들기만 한다며 분개한다.(그녀는 요즘 스타틴의 단점과 위험성에 관해 관심이 많다.)
그녀가 이렇게 강박적으로 당뇨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다름 아닌 인슐린 치료를 받는 오빠와 이른 나이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부친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에게 유전적인 영향이 있을까 그녀는 노심초사한다.하지만 오빠는 젊은 날에 담배도 잠시 태웠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술도 안 마신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비만하다고 할 체형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몇 번을 이야기 했음에도 오빠는 여전히 백미밥을 먹고 있다. 위험성이 있으면 어떻게든 관리를 해서 인슐린만큼은 피해야 했을 텐데, 그녀는 그런 노력 없이 의사가 하자는 대로 덜컥 인슐린을 맞고 있는 오빠가 밉다. 자기까지 도매금으로 당뇨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게 속상하다.
그런 그녀가 당화혈색소 7.8%가 나온 것이다.
‘그나마’ 유명한 대학병원의 내분비내과 교수님 진료를 예약해 뒀지만, 진료의뢰서도 필요하고 해서 동네에 당뇨 좀 본다는 내과 선생이 있어 찾아가기로 했다. 번거롭지만 식사 일기와 혈당 기록을 적은 A4 용지를 가지런히 철한 파일을 챙겼다.가보니 시설은 말끔하고 깨끗한데 직원도 몇 명 되지 않고 대기하는 사람들도 몇 없다. 원장 약력이나 붙어 있나 싶어 이곳저곳 둘러봐도 그런 것도 딱히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이곳에서 치료받을 것도 아니었지만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교수님이 주는 약을 고분고분히 먹을지도 아직은 고민 중이다)얼마 후, 자기 차례가 되어 원장을 만났다. 만약 저 사람이 약부터 권한다면, “왜 나에게 생활 습관을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고 대뜸 약부터 권하냐”며,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의사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