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품었던 방들에 대하여

서울 한가운데서 찾은 나만의 평화

by 예 진리





학교 건물 뒤편 언덕을 올라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나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기숙사 건물이 있었다. 서울에서의 내 첫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나의 룸메이트가 될 친구가 웃으며 반겼다.


“안녕?” 나보다 작은 키, 정리되지 않은 단발머리, 얼굴에 비해 큰 안경 사이로 보이는 작은 눈.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인상이었다. 우린 빠른년생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되었고, 그날부터 꽤 오랜 시간을 한 방에서 함께 보내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기숙사 방은 작고 어수선했지만, 그 안에는 내게 필요한 것이 다 있었다. 1인용 침대, 책상, 옷장. 서울에서의 내 공간은 그 세 개의 가구가 놓인 딱 그만큼이었다. 몸도 마음도 작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그 작은 방은 이상하리만큼 충분했다.


나는 기숙사를 좋아했다. 하나의 건물 안에 생활의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구조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밤이 되면 방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고, 멀리서 기숙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하고 안심하곤 했다.









1년 후, 나는 룸메와 함께 하숙집으로 이사를 갔다. 학교 근처를 벗어나 연희동으로 향했다. 연희동은 큰 집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공기도 조용하고, 사람들의 걸음도 느렸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머니와 딸이 사는 주택의 2층을 빌려 살게 되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으로 이어진 나무 계단, 손때 묻은 누런 벽지, 오래된 조명들. 모든 것이 낡았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내 방은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큰 장롱이 세 개, 피아노 한 대,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과 책상, 그리고 침대. 공간이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발표를 준비하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하숙집 어머니는 빨래를 해주셨고, 가끔은 정성스러운 밥을 차려주셨다. 가끔 오해가 쌓여 말다툼을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애정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4년을 살았다. 서울의 속도에 익숙해지던 시절, 그 방은 언제나 나를 잠시 멈추게 하던 풍경이었다.








그리고 어느 봄날, 나는 처음으로 혼자 사는 방을 구했다. 룸메도, 하숙집 어머니도, 밤마다 들리던 발자국 소리도 없는, 진짜 나만의 공간이었다.




신축 오피스텔 15층, 높은 층고와 넓은 창문, 햇살이 부서지는 시간마다 방 안 공기가 달라지는 곳이었다. 집을 구할 때부터 ‘이건 내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7평 남짓한 크기지만, 빌트인 수납장과 미니 세탁기, 건조기까지 알차게 들어 있었고, 작은 책상과 침대를 내가 좋아하는 위치에 두었다.





조명은 은은한 색으로, 커튼은 노을빛을 닮은 베이지로 골랐다. 이 방은 누가 대신 정해준 곳이 아니라, 처음으로 내가 고른 내 삶의 모양이었다. 저녁 무렵이면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노을을 보았다. 건물들 사이로 번지는 주황빛이 벽을 타고 들어오면 하루의 고단함이 조금씩 녹았다.






서울 한가운데서도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게 그때는 조금 놀라웠다. 좁지만 정돈된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그 고요는 외로움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기다려온 평화에 가까웠다. 기숙사의 방이 나를 시작하게 했다면, 하숙집의 방은 나를 자라게 했고, 이 원룸의 방은 비로소 나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서울에서의 내 방들은 결국 나를 품어주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들을, 아직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