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시간들

나를 숨쉬게 해줬던 공간

by 예 진리




카페를 갈 때면, 각자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쉬러 오고, 누군가는 버텨내기 위한 공간인 듯 했다.


내 사연은 어떠했을까- 카페라는 공간은 내게도 잠시 도망치듯 도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순간 나는 카페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더 예쁘고, 더 조용하고, 내 취향이 더 묻어나는 공간을 찾아 헤맸다. 아마, 내 마음의 어떤 공허함을 그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커피 한 잔과 내 취향에 맞는 조명과 음악이 나를 숨쉬게 했다.





내게 습관같은 카페는 연희동에 위치한 앤트러사이트였다. 오전 9시의 앤트러사이트를 정말로 좋아했다. 앤트러사이트는 큰 검정색 외관인 카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앞이 안보일 정도로 깜깜한 복도가 펼쳐진다. 어두운 동굴을 지나 펼쳐지는 앤트러의 공간이 내겐 언제나 아늑했다.


커다란 나무로 가득 찬 통창에 알록달록한 초등학교 건물과 육교가 얼핏 보이는 모습이 참 좋았다.

조용함과 함께 먹는 라떼와 레몬 마들렌은 내게 지금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매개가 되었다.





일층에서 커피와 레몬 마들렌을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카페 직원은 보통 주문을 받으며 손님의 인상착의를 메모로 기록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나를 발견하고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가져다 주는 직원들이 항상 신기하다 생각했다.


그 시간만큼은 서울이 덜 빠르게 느껴졌다. 나는 그 조용한 순간을 붙잡고 싶어서, 일부러 일찍 나가 앤트러에 앉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카페에 앉아 일기를 쓰거나 블로그를 하고 싶었지만, 대체로는 과제를 하거나 발표준비를 했다. 그렇게 카페는 나의 작업실이자 피난처였다. 집 앞에 내 취향의 카페가 많았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 정말 큰 부분이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직장인이 되었다. 과제도, 발표 준비도 없는 삶. 막상 내가 하고싶은 일을 카페에서 할 수 있음에도, 할 일을 가지고 카페에서 노트북을 키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카페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내지 못하는 이상한 직장인이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때의 나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 과제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카페에 들어서면, 그 공간은 나를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켜고, 집중했다. 그 시간은 나를 위한 것이었고, 나는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있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없는 지금의 나는 카페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그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을 쓰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지만, 막상 카페에 앉으면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아마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최소한의 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동력이 사라진 지금,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가 나를 마비시키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일부러 해야 할 일을 만든다. 마감이 없는 글쓰기,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블로그 포스팅, 아무도 보지 않을 노트 정리.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커피만 식히고 돌아오게 될 것 같아서.





서울은 늘 빠르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뛰었고, 카페에서도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다. 그 속도는 때로 나를 숨 막히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움직이게도 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서울의 속도에 나를 얹는 일이었다. 그 속도에 맞춰 걷고, 쓰고, 해내는 동안 나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직장인이 되고, 과제가 사라지고, 마감이 없어지면서 나는 서울과 조금씩 멀어졌다. 카페에 앉아도 노트북을 켜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서울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그 속도에 더 이상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서울을 완전히 떠난 건 아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전엔 서울이 나를 움직이게 했는데, 이제는 내가 서울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남았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싶지만, 그 글조차 서울의 속도에 묻히는 것 같아 멈칫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