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의 공허

조금만 느려지고 싶어

by 예 진리




서울의 오후 여섯 시, 모든 인생이 한꺼번에 부딪히는 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마치 마감된 하루를 탈출하듯 쏟아져 나온다.

1분이라도 빨리 사무실 문을 나서는 사람이, 마치 못 탈 것 같은 열차를 타고, 남들보다 5분이라도 빠르게 집에 도착한다.

이곳은 퇴근길에도 경쟁을 하는 듯했다. 나 역시 그 흐름에 휩쓸려, 7시 1분이 아닌 6시 59분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괜히 무언가를 성공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30분이라도 늦게 들어올 일이 생기면, 그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마치 내 하루가 어딘가에서 새어나간 것처럼.





집에 돌아오면 간단하게 밥을 해먹거나, 그릭요거트에 과일과 시리얼을 올려 먹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틀었다. 이상하리만큼 퇴근 후 집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일기라도 한 줄 더 쓰고 싶고, 블로그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었지만, 결국엔 드라마만 보다 잠들기 일쑤였다.


처음엔 집에 들어와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평온함조차 매일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는 퇴근 후의 시간이 또 다른 의무처럼 느껴졌다. 퇴근이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감옥이 되는 것 같았다. 허무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문득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바빴고, 그 안의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 도시. 그러나 모두가 나 같았던 공기. 그 속에서 얻는 묘한 위로와 반복.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줬다. 그렇게 나는 점점 흐려졌다. 존재는 분명한데, 색은 점점 옅어지는 느낌.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던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만이지. 이렇게 멈춰 선 건. 왜 이렇게 조급하게 살았을까. 왜 누리지 못했을까. 하늘도, 바람도, 그 기다림조차도. 늘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나는 나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잠시 앉아 조금은 더운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있으니,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가장 솔직한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문제는 회사가 아니라, 나의 리듬일 수 있겠다는 것을.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 나를 억지로 맞추려 했던 건 아닐까.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멈춰 서도 된다고, 그날의 바람이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퇴근길에 종종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타면 20분이면 되는 거리였지만, 천천히 걸으면 40분이 걸렸다. 그러나 그 20분의 차이는, 내 하루의 결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누군가는 ‘비효율’이라 부를 그 시간에, 나는 하늘을 보고, 낯선 가게의 간판을 읽고, 노을빛이 번지는 아파트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늘 서두르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도시의 표정들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걷다 보면 일의 피로보다 하루를 ‘살았다’는 감각이 더 크게 남았다. 집에 도착하면 조용히 불을 켜고, 음악을 틀었다. 창문 너머로 흐르는 빛과 바람, 그리고 내 호흡. 그게 하루의 끝을 완성시켜주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공허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공허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나’가 있었다. TV 소리를 줄이고, 불을 끄고 앉아 있으면, 도시의 소음 너머로 내 마음의 박동이 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순간.




그것이 내가 그토록 찾던 평화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가끔은 여전히 퇴근길 정류장에 앉아 하늘을 본다. 바람은 여전히 뜨겁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르다. 이 도시의 속도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조금 늦어도, 조금 멈춰도, 삶은 흐른다. 그리고 그 느린 흐름 안에서야 비로소, 나는 나답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