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나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지만 그냥 무작정 앞으로 가는 삶을 살고 있다. 쳇바퀴 돌 듯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 직전까지 업무를 하다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채 김밥 하나를 목구멍으로 삼킨다. 상사의 가스라이팅으로 나의 순간들이 자주 무너졌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모니터를 보다 눈물을 흘리는 날이 반복되었고, 결국 난 병이 났다.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겼단다.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꾸역꾸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해가 지고, 같은 해가 뜬다.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by.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 현생이 비통하다 느껴지던 찰나,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만났다. 나도 여름이처럼 과감하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삶의 방향성이 조금만 뚜렷해져도 일상에서 부딪히는 작은 파도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단순한 현재의 순간으로 돌아와 나에 대한 아름다움을 살필 수 있을 텐데.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본인의 가치가 정확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나는 부러움을 느낀다. 내게는 이 드라마의 여름이와 대범이가 그랬다. 무작정 시골 마을에 내려와 흩날리는 버스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여름이의 모습과 새벽 5시에 일어나 창문 밖의 가로등이 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대범이에게서 내게는 없는 여유를 보았다. 어린 왕자가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것을 모르고 목적 없이 달려가는 존재들에 대해 '바보'라고 했던가.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가 있지는 않을 걸요? 저도 없거든요.”
by.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들이 비롯될 때, 비로소 삶이 뚜렷해진다. 앞만 보며 달려가던 삶이 옆을 돌아볼 줄 아는 삶으로 전향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들에 묶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것은 이미 나의 삶이 아니다. 남들에 의한 삶이 되어버린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본인들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를 살펴봐주는 ‘안곡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이룬 덕에 살아갈 힘을 얻고 있었다. 아마도 여름이는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여름이는 드라마 마지막에 행복을 ‘모자람이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나도 내 삶에서 충분하다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직장에서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는 것이 억울해 나를 위한 시간을 구별하기로 했다.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적고, 운동을 시작했다. 뿌듯했고, 충분했다. 나로 인해 웃으며 돌아가는 대상자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웠지만 따뜻했다.보이지 않는 것들로 나를 바라봐 주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충분했다.
여름이처럼 무작정 떠날 용기는 없더라도 삶에서 반복적인 행복을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것을 도전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니까, 그냥 해보기로 했다. 슬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에 잔잔한 여운이 남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