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녹서: 완성되지 않은 기록 혹은 고백

by 예 진리


마치 녹서가 백서가 되어가듯



최근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녹서’라는 단어를 알게되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발표하는 공식 문서라고 한다. 즉, “이런 정책을 생각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 담긴 문서다.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정책의 초안이라는 것인데,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단어였다. ‘녹서’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다면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안이니 마음껏 써내려가봐도 좋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내 삶에도 초안이되는, 아무날도 아닌 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 그럼에도 써 내려가는 나의 마음들이 천천히, 꾸준히 쌓이면 좋겠다.


거창한 결론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 감정, 그리고 사소한 깨달음을 담는다면, ‘초록빛으로 살아있는 기록-녹서’가 되지 않을까.






완성되지 않은 생각들과 하루의 조각들을 모아보려 한다.

하루 동안 스쳐 간 풍경, 특별한 사건이 없던 하루에도 마음을 멈추게 하는 장면들, 커피의 향, 창밖으로 스며드는 빛, 하늘과 바다, 햇살과 노을, 누군가의 말 한마디 같은 것들.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과 사소한 장면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옮겨 적는다.


때로는 흔들리겠지.

때로는 멈춰 서 있을 테고,

때로는 따뜻할 것이고,

때로는 슬플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그대로 의미가 있고,

모든 조각이 모여 하루의 나를 만든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문장, 완성되지 않아 더 아름다운 날들, 하루하루 마음에 남는 장면들을 적어두려 한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내 삶의 초안이 되고, 내 글의 초안이 되리라.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나는 흔들리고, 여전히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에 어떤 충분함을 느낀다.


완성되지 않아도 좋다.

완성되지 않아서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