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생각, 감각 저장소
어제부터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이신 손웅정 감독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아들과 국경을 넘나들며 보름씩 자가격리를 했을 때 일상의 모든 것과 차단된 채 지낸 시간 동안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그 유별난 시간 동안 감옥에 갇힌 사람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고, 뛰러 나갈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약에 묶인 생활이 오히려 기회가 돼서 그간 흘려 넘겼던 사소한 것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되레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겨서 책까지 쓰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잘살게 됐다고 여기면서 인간은 꼭 필요한 것을 넘어서서 불필요한 것을 너무도 많이 쌓아두고 살아온 듯합니다."
라는 문장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25살에 독립을 하여 7평 정도 되는 원룸에서 4년 이상 자취를 했다. 수원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이사를 하던 두 달 전, 짐을 싸면서 어떻게 이렇게 좁은 방에 물건이 끝도 없이 나오는지 이사용 대형박스 열개도 내 짐을 감당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호주를 떠나기 위해 짐을 싸던 한 달 전, 수많은 짐 앞에서 어떤 것을 싸야 할지 수도 없이 고민하고 추리다 결국엔 엄마까지 동원해 캐리어 두 개를 더 가져왔다. 줄이고 줄인 짐 중에서 절대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록을 위한 '노트'와 생각을 위한 '책'이었다. 4년 동안 열심히 모아 온 책들이 거의 200권 가까이 됐고, 그중에서 20권을 추스르는데 얼마나 곤욕이었는지 모른다. (원래 다섯 권만 가져오려 했지만 책 다섯 권으로 최소 일 년을 타국에서 지낸다는 건 도무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한국에 있는 책들을 생각하면 아직 못 읽어 본 책엔 어떤 말이 적혀있을지, 읽어 본 책엔 그때 그 책에선 뭐라 말했었지? 궁금해서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짐을 챙기면서 느꼈던 것은 내게 중요한 것은 예쁜 옷, 신발, 가방이 아닌 주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 사진, 선물들을 고스란히 모았다. 예쁜 연두색 하트 상자에 보관해 뒀다가 한 번씩 들여다보면 소중한 마음들과 기억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곤 했다.
출국 전 갤럽의 강점테스트를 분석하는 강사자격증을 가진 친구가 나의 강점을 분석해 줬는데 8번째 강점 '수집'능력이 떠오른다.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보관하려고 하는 본능이 강점이라고 한다.
어제 교수님과의 짧은 통화에서 현실에 의해 애써 외면해 왔던 10년 전 나의 꿈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공부할 생각은 없냐? 그림 공부를 한번 해봐."
맞다. 교수님께서 내게 심겨주신 꿈이 있었다.
"찰리 브라운처럼 복음이 숨긴 만화가가 되는 것"
고등학생 때까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을 그저 부러워하며 바라만 봤다. 그림 그릴 일이 있으면 직접 그리지 않고 항상 잘 그리는 친구를 찾아가 의뢰(^^)를 했었다. 스무 살이 됐을 때, 내가 그린 그림을 우연히 보신 교수님께서 극찬을 해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이후 몇 번 끄적거리긴 했지만 항상 해야 하는 것에 우선순위가 밀려 '에이.. 이 정도는 누구나 그릴 수 있어'라고 적당히 타협하며 잊고 살았던 나의 꿈의 조각들. 이제는 외면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자질에 감사하며 예쁘게 가꾸고 멋지게 개발하려고 한다. 나는 글과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그 꿈은 곧 현실이 될 것이며 책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질 것이다. 그래서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재정, 관계, 건강, 에너지 등등 모든 부분에서!
오늘도 내 마음속엔 꿈의 공장이 끝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 꿈의 조각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무진장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