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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Sep 12. 2020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언제부터 글 쓰는 것이 두려워졌을까?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내게 가장 재밌는 놀이이자 취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는 행위가 두려워 한 글자도 적지 않는 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다 정말 영영 글을 쓰지 않고 살아갈까 봐 몸을 일으켜 무엇이든 써 내려가보기로 했다.


나에게 '글'이란 무엇일까?


   글 : [명사] 1.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자로 나타낸 기록.

   2. 학문이나 학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말을 적는 일정한 체계의 부호.


사전적 정의에서 글은 3가지로 나뉘어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야기하는 ''이란  번째 정의와 같다. 일기에 가까운, 생각이나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 그러나 사람들과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번째 정의보다는 문학, 칼럼  전문성에 가까운 글을 먼저 떠올리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 달리 타인이 생각하는 '' 대한 의미가 조금  무겁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글은 내게서 점점 즐거운 행위에서 어려운 대상으로 바뀌어 갔다.


직업의 영향도 컸다. 첫 번째 직업이었던 잡지 기자는 글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일이었고, 두 번째 직업이었던 브랜드 콘텐츠 에디터 또한 속성만 달라졌을 뿐, 글과는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 쓰던 못 쓰던 나는 매일 단어를 오리고 붙여 문장을 만들어야 했고, 그 문장은 해석이 필요한 암호가 아니라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정보 또는 스토리를 나타내어야 했다. 블로그나 일기장에 쓴 글은 언제든지 지우거나 감출 수 있지만, 에디터로서 쓴 글은 영영 지울 수 없는 출판물로 박제가 되었으며, 또 내 글은 브랜드를 대변하거나 대표하는 얼굴이 되기도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직업인으로서 나는 아무렇게나 써 내려갈 수 없다. 대상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고,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안 드는 글이 나오는 날도 많았다. 잘 쓰고 싶다고 생각을 하니 글에 계속 힘이 들어갔으며, 힘이 들어간 순간부터 글은 점점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직업으로 글쓰기와 개인적 글쓰기는 다른 영역이지만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에도 나의 뇌는 직업으로 글 쓸 때와 똑같이 작동했는데, 모든 글은 의미가 있는 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무엇보다 잘 쓰고 싶었다. 그런 강박관념들이 행여나 후진 글을 쓰게 될까 봐 아예 쓰지 않는 것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언제나 가장 두려운 것은 조롱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형편없는 글을 써서 스톡홀름 스트룀멘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조차 키득거리면 어떡하나. 나는 글을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글을 시원찮게 썼더라도 내가 그걸 알아차리기나 할까?

- 「다시 쓸 수 있을까?」 by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저자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말이다. 어찌 이런 거장과 비교를 할 수 있겠냐마는 하물며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써온 작가 또한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책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50여 년 동안 매일 작업실로 출근하여 글을 써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의 나이 77세 때의 일이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였는데, 막상 글이 써지지 않으니 말할 수 없는 공허함과 허탈함이 찾아온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뇌하며 써내려간 책이 바로 「다시 쓸 수 있을까?」 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위트 있는 문장을 쓰면서 글을 잃어 버리셨다구요....?'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스웨덴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으니 말 다 한 거겠지. 아무튼 작가는 잃어버린 글을 생각하며 이런 말을 했다.



선원들은 순풍에 대해 얘기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쭉 끌려가다 보면 큰길이든 오솔길이든 이야기가 알아서 길을 찾아가게 마련이고,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무슨 일이든 생길 수도 있다. 나는 그걸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도무지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다.
-「다시 쓸 수 있을까?」 by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순풍이 불어오듯 자연스럽게 문장이 이어져 글이 써지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그 순간은 오지 않아 그는 떠난다. 스톡홀름 집필실에서 아내의 집, 여름 별장, 그리고 고향 그리스로 계속 이동하며, 글을 찾는다. 다시 쓰기 위해 장소를 옮겨가며 고뇌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나는 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걸까 싶었다. 열심히 찾아 헤매도 오지 않는 글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올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일단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찾아와 매거진도 새롭게 만들었다. 이름하여 '가볍게 쓰기'. 제목처럼 부담 갖지 않고 무엇이든 그냥 쓰고 싶은 걸 쓰기로 했다. 그것이 의미 없는 농담이든 개인적인 일기든. 부디 멈추지 않고 계속 써 내려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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