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자판기다.
2015년 '자판기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단신 기사를 썼었는데, 5년이 지난 후 다시 자판기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5년 기사를 쓰기 전까지, 자판기를 커피 등 음료를 뽑아 마시는 정도의 물건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해외 사이트에서 본 자판기는 남달랐다. 미국 시카고에는 신선도를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샐러드를, 네덜란드에서는 꽃을 자판기에서 팔고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옮겨 가니 그리스에서는 우유를 자판기를 통해 판매하고 있었다.
자판기는 단순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계라고 생각했는데, 해외 여러 자판기가 시각을 완전히 전환해줬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편리하게 팔 수 있는 스마트한 기계로. 그때 발견한 사례들을 모아 '자판기의 변신은 어디까지 이루어지는가'라는 주제로 한 페이지 기사를 썼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지면에 소개했던 해외 독특한 자판기는 몇 년 뒤 국내에도 상륙했다. 홍대 길거리에 꽃 자판기가 등장했고 손쉽게 꽃을 선물할 수 있어 제법 인기를 이끌었다. 1년 전에는 동작문화원에 갔다가 1층 한쪽에서 샐러드 자판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독특한 자판기라고 여겨졌던 것들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 어귀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쩌면 자판기의 진화는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자판기의 특성을 살펴보면 이만한 물건이 또 없다. 일단 사용이 간결하다. 현금 또는 카드를 넣고 원하는 제품의 버튼을 눌러주면 끝. 1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손안에 물건을 넣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시간 제약이 없다는 것.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물건을 살 수 있다. 점주 입장에서도 편리한 부분이 있다. 자판기는 비교적 공간 제약이 적기에 별도의 공간 없이도 나만의 미니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것. 인건비가 들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다. 이처럼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성장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이러한 점을 증명하듯 올해 또 다른 새로운 자판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니스톱 속에 들어선 정육 자판기는 출시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는데, 정육점, 마트에서만 살 수 있던 고기를 자판기 속에서 발견하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 신선 식품 플랫폼 '프레시스토어'와 미니스톱이 함께 출시한 자판기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간편하게 고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다. 삼겹살은 물론 한우 안심과 소갈비 등을 구입할 수 있으며 구이용 외에 국거리용도 구비되어 있다.
자판기에는 시대도 반영된다. 굿즈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현재, 그에 딱 맞는 자판기가 지난달 등장했다. 1세대 독립 서점인 '유어 마인드'가 선보인 A SMALL BOX라는 자판기가 그 주인공으로 작은 책부터 노트, 굿즈 등을 구비해둔 것.
중고 시장을 겨냥한 자판기도 눈길을 이끈다. 아이파크몰, 롯데마트 안에 설치된 자판기 '파라바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안전하고 편하게 중고 물건들을 거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자판기[명사]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아니하고 상품을 자동적으로 파는 장치.
자판기의 사전적 정의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아니하고'이다. 사람과의 접촉이 꺼려지는 코로나 시대에 최적화된 아이템이야말로 바로 자판기가 아닐까. 타인과의 접촉은 최대한 줄여주면서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시간에 손쉽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있으니.
앞으로 자판기 시장은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가. 샐러드와 꽃, 고기 다음 또 어떤 것이 자판기 속에서 우리를 반겨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