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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의 쓸쓸함을 아시나요 #170105

by YEXI Mar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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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것, 버려진 것, 혹은 파헤쳐진 것. 

날 것과 쓸모를 다한 것, 그 중간 경계 어디 즈음에 존재합니다. 그 시작과 끝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어서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간에 결국 우리에겐 영원히 낯선 순간으로 남겠지요. 그저 기나긴 시간을 '중간'의 상태로서 살아 갈 테니까요. 그래서, 아주 잠깐이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은 특별 취급을 받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모르는 거죠. 아마도 평생. 


[잠시 머무는 부산,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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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긴 한 것인지, 날 것과 버려진 것이 뒤섞인 것 같은 이곳을 만났을 때, 채도를 잃고 그저 나일론 꽃들만 낭랑히 쎄한 색을 지니고 꼿꼿이 서 있는 그 모습에서, 알싸한 동질감 비슷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회색의 하늘 아래에서, 투둘한 산책로 사이에 끼어있던 강물은 누군가 파헤친 듯 결을 잃고 흩어져 있었으며, 출처를 알 수 없는 모래더미 위에 시멘트로 세워진 직사각형의 벽이 서 있었고, 커다란 기둥이, 뻗을 곳 없이 서서, 서서... 


누구의 땅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둥글게 뿌려진 모래들은, 마찬가지로 누구의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는 형태로 바스러진 여러 쇳덩이나, 플라스틱이라던 지, 뭐 그런 것들을 그 작은 알갱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안고 있었던, 그런 곳이었단 말입니다. 그런 곳에서 나의 감각은 내게 넌지시 이야기를 던집니다. 나의 날 것이, 또한 우리의 쓸모를 잃은 순간들이, 이곳의 내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발을 뻗는 그 순간은 마치 처음인 듯 몹시도 낯설지만 이내 그 안을 찬찬히 둘러 볼 때에, 그 공간 속에서 이미 경험했던 익숙한 잔상을 발견 할 것이라고요. 

이런 모습으로 시작하였으며 이런 모습으로 끝맺을 거라는, 아니, 실은 때때로 우린 끊임없이 이런 순간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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