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13. (월) -> 격리 생활 10일 차, 마지막 날. 비가 오고 나니 날씨가 추워졌다.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다. 내일이면 밖에 나갈 수 있겠구나.
앞으로 글라스고(Glasgow)에서 일 년 동안 살 예정이니 일주일 동안 미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내 집 마냥 익숙해져야겠다.
2021. 9.14. (화) -> 아침 7시 즈음 일어났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Pret A Manger> 카푸치노(왼쪽), 치킨 베이컨 치즈 샌드위치(오른쪽)
곧바로 City Centre 쪽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천천히 어슬렁어슬렁 걸으면 20~30분 정도 걸린다. 최대한 현지인인 척, 주머니에 손 넣고 쿨하게 걸었다. 마침 어린아이들도 학교 등교 시간이었다. 옛날 어렸을 적 영국 잉글랜드 그리고 웨일즈에서 살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다시 올라왔다. 그 당시 학교 교복 입고 등교하던 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20년 후 서른 살이 되어서 다시 이곳에 오게 될 줄이야.
제일 먼저 BRP 카드를 수령하러 우체국으로 갔다. 정확히 무슨 용도의 카드인지는 모르겠으나 Residence Permit 그리고 유효 날짜 등등 적혀있는 걸 보니 영국에서 언제까지 지내는 걸 허락받은 자를 증명해주는 카드인 듯싶다. 나중에 영국 외에 다른 나라 돌아다니고 또 영국으로 들어올 때 이 카드가 꼭 필요하다고 반드시 들고 다니라고 입국 심사하시던 분께서 얘기하셨던 같다. 주민등록증처럼 소중히 여겨야겠다.
우체국에서 나온 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났기에 얼른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음식점을 찾아 헤맨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너무 지쳐서 걷다가 그냥 슝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Pret A Manger>라는 프랜차이즈인 듯싶다. 부리또도 팔고 여러 샌드위치, 음료 등을 파는 곳이다. 들어가서 카푸치노 한 잔 그리고 샌드위치 하나 주문을 하고는 계산을 하는데 한국에서 만들고 간 카드 계산이 안될까 조마조마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있는지 여쭤봤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근데 계산을 받던 아르바이트생이 오늘 처음 근무였나 보다. 나 대신 아르바이트생이 이리저리 헤매 줘서 내가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라는 여유로운 말을 해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제는 아무 문제없이 잘 됐다. 이렇게 영국 와서 첫 주문 결제가 완료되었다.
카푸치노 맛은 마시고 '와, 이 커피 짱이다'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친근한 맛이었다.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아주 살짝 더 싸다.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평범한 맛이었다. 좋은 평범한 맛. 집에서 아침 식사로 약간 질긴 빵에다가 닭가슴살이랑 베이컨 넣고 마요네즈 듬뿍 발라서 만들어 먹는 그런 익숙한 맛이었다. 나중에 학교 다니면서 아침이나 아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그런 샌드위치였다. 앞으로 자주 들러야겠다.
스코틀랜드 왕립 음악원
학교 기숙사
비 오는 거리를 처벅처벅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앞에 와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나 외에 어르신들 그리고 정장 입은 분들 빼고는 다들 우산을 안 쓰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신 얇은 비 옷들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고 그냥 평범한 옷차림에 비를 맞는 분도 있었다. 우산을 써도 머리 외에 다 젖을 정도니 그냥 우산을 안 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학교는 현재 학생증이 없으면 출입을 못하기에 주변만 돌아다녔다. 학교 근처에 바로 걸어서 1분~2분 거리에 기숙사가 있다. 대학교 다닐 때 오히려 학교에 앞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이 통학하는 학생들보다 수업에 자주 늦곤 했는데, 나도 과연 그럴까 싶다. 학교 근처에는 여러 크고 작은 극장들이 있었다. 점점 조금씩 공연들을 시작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 되면 극장에 가봐야겠다.
강
오후에는 숙소 기준으로 City Centre 방향 반대편으로 산책을 나갔다. 분명 나갔을 때는 비가 안 왔는데 현관문을 나선 지 5분 만에 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영국 날씨란... 마치 속을 알 수 없는 고양이와도 같다. 자기 맘대로 이랬다 저랬다...
근처에 강이 있어서 강을 따라 쭉 걸을 생각이었지만 오전에 오랜만에 너무 많이 걸었는지 무리한 탓에 골반이 쑤셔와 나간지 30분 만에 숙소로 방향을 돌렸다. 비가 얼마나 하늘에서 부어대던지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이나 영상도 못 찍었을뿐더러 지도를 볼 여유도 없었다. 무작정 온 길 그대로 돌아오면 되는 거였는데 또 모험심이 발동해서 다른 길을 택해서 숙소로 왔다. 그 길이 그 길이겠거니 싶었지만 그 길이 그 길이 아니었다. (어느 도시에 처음 갔을 때 가장 길을 잘 익히는 방법은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한참을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코로나 검사 팩을 부치던 우체통이 보이는 익숙한 길가에 들어선 순간 마음이 놓였다. 우체통 앞에 있는 식당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저녁시간이라 숙소 들어가는 길에 음식을 포장해왔다.
칩스(왼쪽), 치킨베이컨치즈빵(오른쪽)
칩스는 영국 돈으로 £2, 한국돈으로 ₩3500~4000원 정도 할까. 엄청 푸짐하게 준다. 한국에서는 질리도록 감자튀김 먹는 게 소원이었는데 여기서는 얼른 먹고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먹게 된다. 그 정도로 양이 많다. 빵은 아침에 먹은 것과 비슷하다. 대신 납작하게 뎁혀서 줬는데, 버터를 발랐는지 아주 고소했다. 아까 돌아다니다가 과일 채소 가게도 지나쳤는데, 내일은 과일이나 채소 등을 사서 먹어야겠다. 점점 김치가 땡긴다.
오늘의 걸음
오늘 3시간 21분 동안 걸었다. 약 10km~11km.
잠은 잘 자겠다.
2021. 9.15.(수) -> 꿀잠을 잤다. 누워서 핸드폰 만지작 거리다 불 끄고 핸드폰 내려놓은 후 바로 기절한 것 같다. 일어난 후 어제 너무 무리를 했는지 골반과 허벅지 뒤가 너무 아팠다. 화장실 갈 때 다리가 후들후들거릴 정도였다. 운동해서 아픈 근육들은 운동으로 풀어줘야 한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기에 일어나자마자 뭉친 근육들 스트레칭을 했다. 유튜버 '자세요정' 님의 영상들 보면 골반 근육을 풀어주고 자세 교정해주는 좋은 영상들이 많은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으시게 되어 구독도 하고 영상 보면서 열심히 운동도 하는 편이다. 유튜브로 무료로 이렇게 좋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니,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한 두 시간 천천히 음악 들으며 스트레칭하니 밖에 나가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영국 Sainsbury's 에 파는 농심 신라면(왼쪽), 점심으로 먹은 베이컨 버섯 스파게티(오른쪽)
이것저것 사러 Sainsbury's에 들렀다. 작은 동네 마트 느낌이었다. 반가운 라면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과일은 한국보다 싼 편이다. 한국 마을 시장에서 파는 과일들보다 비슷하거나 살짝 싼 가격이다. 여러 음식 재료들을 사들고 숙소에 와서 점심을 해 먹었다. 양파, 베이컨과 버섯이 추가된 업그레이드된 스파게티다.
산책 길
공원에 있는 휴지통
점심을 먹고는 햇살이 좋아서 산책하러 나갔다. 사람들도 많이 나와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특히 강아지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과연 강아지들이 우리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까 싶었다. 휴지통에 강아지 똥도 같이 담으라고 적힌 걸 보아 신선해서 사진을 찍었다.
버섯 감자 베이컨 볶음
저녁으로는 버섯 감자 베이컨 볶음을 해 먹었다. 소금을 너무 많이 쳤는지 짰다. 베이컨 자체에 간이 어느 정도 되어있었나 보다. 앞으로 감자요리를 자주 해 먹게 될 것 같다. 감자 향이 정말 좋다.
영국 길거리를 걷다 보면 노숙자들이 정말 많다. 집 없이 길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신지 아니면 집은 있는데 일이 없기에 길거리에 앉아서 컵 하나 앞에 놓고 하루 종일 앉아계시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눈빛에는 본인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기진맥진이 가득 차 있다. 몇몇은 오히려 길거리에 앉아있게 된 본인들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될까 미안한 마음도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며 도와주고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지나치는 내 모습 그리고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무엇이길래 그들의 간절함을 무시하나 싶다. 동전 몇 푼으로 선한 모습을 지키는 것이 아닌 정말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주고 두 발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영국에 오고 나서부터 '이제 무엇을 하고 싶니?' 스스로에게 묻기보다는 '이제 저에게서 무엇을 원하시나요?'라며 하나님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힘조차 낼 수 없어 다른 이들의 이야기나 간절함에 눈과 귀를 닫고 혼자 끙끙 대던 적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