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마지막 작품>
2023년 4월 - 7월
리즈 음악원 (Leeds Conservatoire) 그리고 미국 (LA)
2023년 4월 경, 졸업 작품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8개월간 우리는 5개의 뮤지컬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었다. 이번이 6번째 뮤지컬이다. Megan과 나는 창작 전공이기 때문에 따로 개인 작품 또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것까지 합하면 10개 정도가 되겠다. 10개의 뮤지컬이라니! 정신없이 계속 뭔가를 만들다 보니 눈 깜짝할 새 마지막 작품을 써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 당시 우리는 '경험'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 뮤지컬을 만들면서 이러쿵저러쿵 일들을 많이 겪었기에,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이 당시에는 설렘 반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 반이었던 것 같다. 잘 해낼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 과정들을 또 겪어야만 한다니. 우리 모두 한 달 정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첫 몇 주는 모여서 아이디어를 내며 워크샵을 했다. 뭔가 마법스러운 세계와 현실 세계가 만났으면 좋겠고, 디즈니 음악과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이 결합된 느낌의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등등. 정확히 어떤 인물들이 어떤 사건들을 겪을 것인지에 대한 것들은 감을 못 잡았지만, 이렇게 각자의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쏟아냈다.
한창 뮤지컬을 만들고 있을 당시에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2년간 살던 영국에서 벗어나 3주간 미국 LA에서 지내며 조금은 '쉼과 회복'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LA에 있는 한식당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영국에서는 제대로 된 한국음식 맛보기가 쉽지가 않은데 LA에서는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곳에 가서 살다 보면 고향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빵과 피자, 스파게티, 감자튀김을 좋아한다 하여도 구수한 된장찌개와 매콤 달달한 제육볶음은 계속 코에서 아른거린다. 몸이 안 좋아질 것 같다는 판단이 생길 때면 바로 마켓 가서 김치와 고추, 라면, 삼겹살 등을 사서 한식스럽게 한 끼 잘 챙겨 먹고 푹 자면 다음날 바로 회복이 된다. 신기할 따름이다.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구나 싶다.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에 본격적인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공연날까지 3주 정도 남아 있었다. 미국에서도 계속 곡 작업을 했기에 어느 정도 모든 곡들이 완성이 된 상태였다. 이제 배우들과 리허설을 하면서 수정의 과정을 거친다.
이 수정의 과정이 가장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고난의 시작이기에 생각만 해도 두통이 생기기도 한다. 홀로 방 안에서 곡을 쓸 때 개인적으로 하는 해석과 배우들과 한 공간에서 그들의 반응과 그들의 해석을 관찰하며 비교하자면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리허설을 하면서 극의 흐름 그리고 캐릭터의 감정 흐름에 맞춰서 음악의 템포를 수시로 바꾸며, 가사가 바뀌는 경우도 있기에 바뀐 가사에 맞춰서 음악을 수정하고, 춤을 추며 동시에 노래를 해야 하는 곡에서는 배우들이 충분히 숨을 쉴 수 있도록 그리고 너무 어려운 구간은 없는지 체크하며 또한 배우들이 음악 큐(Cue)들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오케스트레이션 악기 편곡을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들릴 수 있게 수정을 한다.
실제로 공연 날 당시 오후 1시 그리고 저녁 6시 30분 공연이었는데 오후 1시 공연을 한 후 쉬는 시간에 음악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오후 공연을 관람하면서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필요한 부분들을 체크하여 저녁 공연에는 그 부분들을 보완해서 올려야만 했다. 무대 리허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있었다면 좋았겠건만, 뭔가를 만들 때면 리허설 기간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수정의 연속인 것 같다. '완성'된 뮤지컬이라 할지라도, 현재 지금도 '위키드'나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내린 '오페라의 유령'도 계속해서 보완하며 부분 부분 수정하는 것을 보면, '완벽'한 뮤지컬은 있을 수 있지만 '완성'된 뮤지컬은 과연 있을까 싶다.
모든 공연을 마친 지금, 그동안 만든 뮤지컬에 대해 생각을 하면 아직 수정할 것들이 산더미다.
작곡가로서 직접 쓴 곡들을 배우들이 표현하는 걸 보면 신기하며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만든 무언가를 다른 이가 해석하고 표현하는 걸 본 사람들은 이해가 갈 것이다. 고생해서 요리한 음식을 다른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줄 때 느끼는 행복감이라 할까.
이렇게 지난 1년간의 뮤지컬 창작 공부가 끝이 났다.
2021년부터 2022년은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에서 뮤지컬 음악 감독을.
2022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는 영국 리즈에서 뮤지컬 창작을.
앞으로는 어디서 < Life in 'OOO'? > 의 글을 쓰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배우며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기며 소중히 여기기를
마음속 깊이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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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2일
스코틀랜드 던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