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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잔살롱 Aug 10. 2017

Artist) RAGNAR KJARTANSSON

월간 퍼블릭아트 2017년 2월호 기고 

슬픔을 노래하라, 다시 또다시


라그나 캬르탄손(Ragnar Kjartansson)의 트레이드 마크는 실크 타이와 쓰리피스의 정장, 붉은 턱수염이다. 스로를‘로코코 맨(Rococo Man)’이라고 칭하는 그에게 영감의 원천은 무려 모차르트(Mozart)와 와(Watteau)라나. 신사의 고집을 표현하려는 듯 옷매무새 하나에도 흐트러짐 없는 캐릭터를 구사하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격식을 차리는 법이 없다. 나체로 욕조에 들어가 기타를 치기도 하고, 자신에게 침을 뱉는 어머니와 나란히 서서 영상으로 담기도 한다. 또 기타 치는 퍼포머들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 온종일 늘어지게 노래하고 연주하도록 한다. 겉모습만 봐서 유쾌할 것 같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이다. 그런데 그 슬픔은 처절하거나 애달프지 않다. 그가 이야기하는 슬픔은 감미롭고 매혹적이다. 때로는 통렬하기까지 한 그 감정을 그는 지루하리만치 반복되는 행위로 풀어낸다. 이 행위는 영상, 회화, 드로잉 등 장르를 종횡무진 하지만 그는 감독, 배우, 기획자를 합친 ‘올인원(all in one)’으로서 모든 것을 흡수하는 ‘상황’ 자체를 연출한다. 그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celebrated) 퍼포먼스 아티스트’라고 평한『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문구에 낙서해 ‘세계에서 가장 순결한(celibate) 퍼포먼스 아티스트’라고 고치고 싶다며 웃는 캬르탄손. 그는 주변의 모든 요소를 녹여내고 극적 요소를 활용하는 명백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뉴욕의 뉴뮤지엄(New Museum), 구겐하임(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등 유수의 미술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지난해 런던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와 워싱턴 D.C의 허시혼 미술관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에서의 회고전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아티스트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레이캬비크에서 활동하기를 고집한다. 그의 작업에 가장 영향력 있는 뮤즈는 조국 아이슬란드와 그 위에 이어져 온 역사, 함께 하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가 퍼포먼스 아티스트와 무대 예술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 역시 부모님과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다. 레이캬비크 시립 극장(Reykjavik City Theatre)에서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한 아버지, 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에게 무대 뒤는 놀이터였다. 또 도예가였던 할아버지가 스위스 플럭서스(Fluxus) 작가 디터 로스(Dieter Roth)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것에도 역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배경에서 무대 예술에 대한 아이디어와 퍼포먼스적 발상은 자연스럽게 그를 지배했다. 캬르탄손의 정치적·사회적 성향은 가수였던 그의 대모에게서 기인하는데, 대모는 히틀러의 초대를 받고도 ‘싫다(NEIN)’는 간단한 문구로 거절해 서둘러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일화를 남기기도 한 인물이다. 한편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여전히 숲에 요정(elf)이 산다고 믿으며 요정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환상적인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캬르탄손은 세계를 누비며 일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고 자신을 행운아라고 말한다. 그에게 펼쳐진 새로운 세상과 영감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요정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을 흐르는 주요 모티프는 반복과 지속, 내용적으로는 슬픔이다. 어릴 적부터 공연 연습을 위해 계속되는 무대 뒤 리허설을 보고 자란 그에게‘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었다. 리허설은, 더 넓게는 우리가 반복하는 연습은 완벽을 기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고 무대 위에는 올릴 수 없는 숨겨진 행위다. 그러나 그에게는 반복이 연

습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그의 퍼포먼스는 ‘슬프다, 슬프다’라고 울어대는 직설이며, 그 클리셰(cliche)는 끊임없는 궤도를 돌며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이렇게 탄생, 죽음, 가족과 같은 개인적인 것을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순환으로 제시하고, 정치와 문화에 대한 풍자를 풀어낸다. 이 반복은 관객에게 메시지의 루프가 돌고 도는 이유를 생각하도록 지긋이 채근한다.


<God>(2007)에서는 1950년대 라운지 가수를 무대에 올려놓았다. 자주색 벨벳 배경을 갖춘 무대, 간소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말끔히 빗어 넘긴 머리를 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가수는 ‘슬픔은 행복을 정복한다.’고 나지막하게 노래한다. 반복을 거듭하는 노래는 몽환적이기도 하고 매혹적이기도 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슬픔을 토해내는 또 다른 작품 <A lot of Sorrow>(2013-2014)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PS1에서 했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 작업이다.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미국의 인디 밴드‘더 내셔널(The National).’ 밴드는 ‘슬픔(Sorrow)’이라는 노래만을 반복해서 6시간 동안 공연했다. 그 노래는 ‘슬픔이 나를 발견한 이후로, 슬픔은 나를 기다렸고, 나를 정복했다’고 시작한다. 연주는 반복해서 6시간을 지속하고 처음의 감흥이 점점 지루함으로 변해가는 어느 순간 행복감은 엄습한다. 여기서 행복감이라 함은 무대 위와

아래의 구분 없이 전체가 하나가 되어 가는 그 순간에 겪는 소용돌이 감정 같은 것이다. 영상은 여러 대의 카메라로 퍼포머와 관객 사이의 긴장감을 살피며 마무리되고 ‘나는 너에게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마지막 가사로 결국엔 슬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캬르탄손이 사용하는 음악은 단조의 음계인데, 특히나 그가 사랑하는 것은 E 단조다. E 단조는 멜랑꼴리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코드다. 음악을 배울 때 E 단조를 처음 듣고 는 그때서야 비로소 ‘음악’을 느끼게 되었다는 그에게 E 단조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선율을 가리키며 ‘궁극적인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다. 퍼포먼스 <Woman in E>(2016)에 등장하는 여인은 반짝이는 금색 비늘로 된 가운을 입고 하루 종일 기타를 연주하면서 E 단조의 노래를 부른다. 그가 올라서 있는 금색 원형의 무대는 차를 진열해 놓은 자동차 쇼처럼 돌아간다.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그는 날마다 쉬지 않고 걱정과 근심, 생각에 잠긴 상상 병에 걸린 모습으로 노래한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캬르탄손이 선보이려고 했던 것은 새로운 형상의 자유의 여신상 같기도 하다. 그가 미국 정치의 중심지, 워싱턴의 무대 중앙에 세우고자 한 것은 반짝이는 자유의 여신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악기를 연주하며 아름답게 노래하는 숲 속의 뮤즈일까. 어찌 됐든 이 여인이 부르는 것은 하루 종일 낮게 깔리는 슬프고도 슬픈 단조의 노래다.


그의 열정은 퍼포먼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장르 역시도 퍼포먼스 적인 기교로 소화한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2009)’대표작가로 참여했을 때는 매일 하나씩 회화(유화)를 하는 ‘마라톤 페인팅’을 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아이슬란드의 파빌리온에서 6개월 내내 머무르며 144개의 작품을 발표했다. 컴퓨터, 핸드폰, 그밖에 모든 통신기기를 다 끊고, 매일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6시간 동안 그 안에서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전시 공간은 텅 비어있지만, 마지막이 되었을 때 그 공간은 작품으로 가득 채워지는 긴 호흡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를 설명하는 대표작 중 하나인 <Me and My Mother>(2000, 2005, 2010, 2015)는 5년마다 어머니와 나란히 선 자신을 비디오로 담은 작품이다. 캬르탄손의 어머니이자 아이슬란드의 유명한 배우 구드룬 아스문드도티르(Guðrun Asmunds dottir)는옆에선아들의얼굴에침을뱉는다. 가차 없이 얼굴에 침을 내뱉는 어머니와 그대로 받아내는 아들의 모습은 5년 단위로 채집되며, 그 둘의 행위와 늙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이 영상을 처음 제작한 2000년에는 학생이었던 그가 2015년의 영상에서는 턱수염을 복스럽게 늘리고 수트 안에서 근엄하고 단단한 표정으로 그때의 앳된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앞으로도 5년마다 살아있는 역사를 담아 선보인다고 하니, 반복으로부터 쌓인 무게감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해볼 만하다.


캬르타손은 ‘예술은 극악무도한 악마’라고 건조하게 이야기하며 세계는 재앙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슬픔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sorrow conquers everything)’고 비관하며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히 ‘No’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예술을 하며, 늘 익살스러운 웃음으로 이야기하고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그의 아내의 평을 빌리자면, 그는 작품은 ‘따뜻한 허무주의(warm nihilism)’ 다. 그는 슬픔을 노래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의 노랫가락은 왜인지 부드럽고 따뜻하다. 앞으로도 슬픔을 이야기하는 단조 음계는 계속될 것 같다. 이제까지 꺼내온 그의 세계와 작품 하나하나가 만든 무한 루프를 보면 앞으로도 여전히 그렇게 할 것을 가히 짐작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반복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그의 새로운 굴레가 결코 맹목적이지도 따분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라그나 캬르탄손은 1976년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그곳을 기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 비디오, 퍼포먼스, 드로잉, 페인팅 등 경계 없이 자유로운 영역을 펼치는 그는 파리 팔레 드 도쿄, 뉴욕 뉴뮤지엄,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등에서 개인 전을 열었으며, 2009년에는 역대 최연소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아이슬란드관을 대표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에는 바비칸 센터와 워싱턴 D.C의 허시혼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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