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짜증 내는 사람에게 매우 취약하다. 차라리 불같이 화를 내거나 조목조목 논리 정연하게 따져 물으면 대꾸할 말이라도 생길 텐데, 짜증 내는 이에게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무방비상태로 놓여야 하는 그 상황이 겪어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짜증의 사전적 뜻을 찾아보니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 또는 그런 성미.'라 한다. 그것 참... 저 뜻을 보고는 세상사 마음에 꼭 맞는 게 어딨다고...하며 혀를 찼다.
사실 살아가다 보면 화와 짜증을 구분해서 내는 이는 없다. 그냥 그때 마음이 내고 싶은 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일 때가 훨씬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크고 작게 마뜩잖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고, 개중에 얼마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던 순간이 꽤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엔가 내가 짜증을 받아내야 하는 당사자가 되어보고 난 이후, 단순히 짜증을 낸다는 것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기함할 노릇이며 무력하게 만들어버리는지 단박에 알았다.
내가 누군가와 투닥거리는 그 시작에는 늘 짜증이 있었다. 그게 내 것이었든 그들의 것이었든, 화를 부르는 그 기저에는 짜증 섞인 말투와 행동, 눈빛이 항상 자리한다. 그것들이 오고 간 이후부터는 사실 왜 짜증이 났었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태도 자체에 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사실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것 또한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냥 기분이 조금 풀리는 정도? 헌데 그것도 해보니 화내고 되려 더 무안하거나 별 감흥이 없는 때가 빈도상 훨씬 많았던 기억이다. 화내도 분은 안 풀리고, 화내고 후회한 적이 사실 훨씬 많다.
다 알지만 또 사람인지라 비슷한 상황에서 슬금슬금 화가 치밀어 오르고, 참자 참자 해도 못 참는 한 순간이 오면 나는 또 똑같이 욱 하는 사람이겠지만, 적어도 짜증은 내지 말자고 자꾸 곱씹는다. 진심으로 짜증은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짜증은 내는 이도 듣는 이도 보는 이도 모두 짜증 나게 하는 신기한 구석까지 가졌다. 비루한 생각일지 몰라도 짜증을 낼 거면 차라리 화를 내자 싶다. 화는 내는 이유도 내용도 적어도 뉘앙스라도 담을 수 있으니. 혼잣말이지만 혼잣말 같지 않은 짜증보다야 낫지 않으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곱고 좋고 온화하기만 한 사람일 수 없는 이상, 화도 내면서 살아야 하고 성질도 가끔은 부려가며 살아야 진짜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서 그칠게 아니라 여차 저차 해서 화를 내고 상황이 정리되고 난 후, 사과해야 할 대상이 있으면 적절한 타이밍과 언어로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알고 사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그 사과가 단순히 미안함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실 그때 내가 왜 화를 냈었고 그때 마음이 이러저러했고 그래서 그런 것이니 '화냈었던 나'를 조금 더 이해해줄 수 있겠냐고 상대방에게 여지를 주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사과를 하는 것은 화낸 이의 몫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지 이해만 하고 그칠지는 받는 이의 몫이다. 나의 사과가 당연히 상대방의 화 풀림이어야 한다는 공식은 틀렸다.
나는 사람에게 가장 취약한지라 뒤늦게 인간관계가 가지는 심오하고도 어렵지만 오히려 단순하기도 한 이치들을 이리저리 부대껴가며 배우는 중이다. 어렸을 때는 참 어리석게도 싸우고 나서 먼저 사과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싸우고 나서 그 불편한 어색함을 굳이 참고 견뎠고, 그러던 중 이래저래 사람을 잃어보기도 했다. 진짜 내 사람이 아닌 사람은 싸우지 않고도 자연스레 곁을 떠나게 될 테지만, 굳이 싸움까지 만들 만큼 애정이 각별한 사람이라면 잘 싸우고 잘 풀고 오래도록 보는 게 조금 더 현명하게 사는 법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