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을 낮추다.
글쓰기가 안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본인만의 기준이 높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 보면 아귀찜, 해물탕을 만들지는 못해도 맛 평가는 전문가다. 글도 그렇다. 쓰기는 못하지만 평가는 할 수 있다. 내가 쓴 글을 볼 때마다 ‘묵혀 두었다가 언젠가 경지(?)에 도달했을 때 세상에 내놓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풋)
책을 보면 쉽게 쓰고 본인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작가가 있다.
나에게는 유시민 작가 책이 그렇다. 책 내용이 쉽다는 듯이 아니다. 술술 읽히는 쉬운 단어로 쓴 책이라서 그렇다. 유시민 작가 추천 책들은 어려운 책들이 많다. 추천한 책 몇 권은 앞장만 읽다가 덮었다. 아무튼 자신의 독서 분야와 수준(?), 즉 문해력이 낮으면 읽기 어렵다. 경제서, 역사서가 나에게는 넘사벽 분야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간다. 아무튼 나는 유시민이 아니다. 글쓰기 찐 초보다. 그러니까 글을 못 쓰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 합리화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것을 방패로 기준을 낮추려고 한다!
질보다는 양이다.
질과 양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양이 많아야 질이 높아진다.
나는 요즘 나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 (풋) 나이가 들면 몸이 아픈 거 말고 슬픈 일이 또 있는데 뭘 하든 재미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인생에 좋다는 거 해보기로 했다. '양으로 승부하기!'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얼마 안 되며 그것에 방점을 두고 나머지는 신경 끄라는 거다. 이것도 알지만 잘 안될 때가 많다. 사람이 그렇다. 안되다고 생각하면 진짜 안된다. 적어도 ‘해보면 될까?’ 의문을 품어 본다.
이 시점이 지금의 나다. 나는 나의 마루타가 되기로 한다. 새벽에 일어났는데 팔자 안 바뀌기만 해 봐 이런 심정이다. (풋) 영어공부 비법만 십 년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글쓰기 비법은 십 년까지는 안됐지만 지금까지의 비법은...(두둥) 영어공부 비법과 똑같다! 초보자는 양으로 승부해야 한다. 머릿속에는 소설 한 권이 들어 있지만 글로 쓰면 몇 줄이 안된다. 그것이 현실이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이니 용감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짠)
매일 꾸준히 하기
무라카미 하루끼는 달리고 하정우는 걷는다. 글쓰기를 운동과 많이 비유한다. 공통점은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이기도 하다. 몸이 정신인 셈이다.
그렇다면 매일 무엇을 쓸지가 고민인데 [대통령의 글쓰기]의 강원국 작가는 어떤 이야기든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관찰을 잘하면 일단 성공이라고 한다. 강연을 통해 한 가지 이야기를 해 준 것이 있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자신은 사람들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 지하철에서 보았던 장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지하철 행상 아저씨가 손톱깎이를 팔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그러다 한 두 명 관심을 보이고 거래가 이뤄진다. 아저씨가 손톱깎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데 뚫어지게 아저씨를 응시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있다. 아주머니는 손톱깎이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아저씨를 조용히 불러 혹시 저번에 팔던 칫솔은 없냐고 한다. 당황한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방 아래쪽을 뒤지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가방에서 칫솔 몇 개를 찾아낸다.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얼마인지 묻는다. 아저씨는 그냥 주겠다고 한다. 잠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주머니는 그럴 수 없다며 자기 마음대로 3000원을 아저씨 손에 쥐어 주고는 칫솔을 낚아채고는 지하철에서 쿨 하게 퇴장한다.”
재미있다. 근데 우리가 한 번쯤 목격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근대 글로 쓰니 꽤 괜찮다. 이걸 보면서 아무거나 모두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꾸준히 참 많이 듣던 말이다.
왜 이리 안되는지 모르겠다.
일단 이 말은 음...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서 그런 가?
거부감마저 드는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인생의 매직 단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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