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미운 아빠 (1)

by 성희

미운 아빠 (1)

인간의 뇌는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조작한다. 그래서 내 기억은 내 가족들의 기억과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경험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에게 아빠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지금의 아빠는 죽음을 앞둔 노인이다. 가엾기까지 하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에서 ‘절대’라는 단어는 인간에게 부질없는 말인가 보다.


40대의 아빠는 직장도 다니고 사업도 하고 그랬다. 근대 다 잘 안되었다. 엄마와 다투는 날이 많았던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에게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쏟아냈다. 일명 ‘백수, 놈팡이, 알콜릭’ 다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딸은 아빠를 보면서 남자상을 그린다. 난 남자를 경멸했다. 그땐 그랬다. 나도 어렸으니까. 아빠는 처음부터 나에게는 아빠였던 터라 한 인간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빠는 나빴다. 정말 나빴다. 지금도 나쁘다.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난 미워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힘들다. 내 마음이 그렇다.


나쁜 기억

아빠에 대한 나쁜 기억이 많아서 어떤 것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거의 백수나 다름없었다. 뭔가 일을 하긴 했다. 사우디에 가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몇 년 일을 하신 것 외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돈을 안 가져가 주는 아빠와 다투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 첫 대학 등록금도 엄마 지인에게 빌렸었다. 지질히 궁상이다. ‘부모가 이 정도도 못해주지? 능력도 안되면서 왜 나를 낳아가지고... 무책임하다.’ 생각했다.

그때는 일자리도 많았다. 사업도 다들 잘 되었던 때다. 근대 우리 집만 매번 망했다.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다. 중학교 때 두 분 모두 일본에 가서 일을 하셨다. 그때 우리 삼 남매는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다. 엄마는 식당에서 아빠는 건설현장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살림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쌓인 빚을 갚느라 생활은 그 전과 똑같았다.


좋은 기억

내 머릿속을 뒤져 좋은 기억을 찾아보았다. 초등학생 때 아빠가 나를 데리고 교보문고에 갔다. 서울에 살았지만 동네 문방구만 보았던 나는 이렇게 커다란 서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초롱초롱한 조명과 알록달록 책들이 참 멋 졌다. 평상시에 아빠가 책을 좋아해서 데려가신 것 같지는 않다. 갑자기 자녀교육에 서점 데려가기가 유행이었나? 나에게는 멋진 신세계 같은 느낌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책을 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교보문고를 나오니 점심시간이었다. 종로 쪽은 중국사람들이 직접 하는 중국집이 많기로 유명했다. 아빠는 탕수육과 짜장면을 시켜 주셨다. 동네에서 먹은 것과는 완전 차원이 달랐다.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아빠가 보통의 아빠처럼 보였던 날이다.

내 기억 속에 좋은 아빠였던 날은 이날 하루다.

그래서 모두 샅샅이 기억하고 싶은데 자꾸 희미해진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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