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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May 18. 2023

현미경으로 볼까 망원경으로 볼까

너에게 나를 보낸다 010




현미경으로 읽는 사람과 망원경으로 읽는 사람




현미경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망원경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취우(翠雨) 한 방울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옹달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시냇물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강물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다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몽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위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산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산맥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오늘 아침에 특별한 떡국을 먹었다. 밤새 떡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온 막내가 가래떡을 가져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간다. 곁에 월대천이 있다. 월대천과 어시천과 도근천이 만나 바다로 간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길이 바다가 된다. 이 물길을 경계로 외도와 내도로 나누어진다. 오늘은 다리를 건너 내도로 간다. 내도 알작지로 간다. 알작지의 돌들은 오늘도 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알작지의 젖은 돌들, 저 마음 깊은 속까지 젖어 있을까?


나도 이제는 내 마음을 가다듬고 떠나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나야만 한다. 내가 아는 어느 나라는 자식들이 성장하면 스스로 떠난다고 한다.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수행자의 길을 걸어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 그 아름다운 길로 가야겠다. 아니, 아름다운 길 하나 만들어야겠다. 세상 사람들이 삶에 지쳤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아름다운 쉼터 하나 만들어야겠다. 알작지의 돌들이 한쪽에서 잘 말라가고 있다.


알작지의 돌들이 잘 말라가고 있다, 옷이 마르면 마음속까지 잘 마를 수 있을까?


알작지의 돌들을 보면 태생이 다른 돌임을 알 수 있다. 고향이 다른 돌들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한라산 높은 곳에서 온 돌들도 있고 낮은 곳에서 굴러온 돌들도 있으리라. 깊은 바다에서 온 돌들도 있고 낮은 바다에서 떠밀려온 돌들도 있으리라. 그리고 이 해변이 고향인 돌들도 있으리라. 얼굴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지만 이 돌들은 사이좋게 잘 지낸다. 바다가 밀려오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바람이 불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의 가슴을 안아주기도 한다.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눈이 오면 함께 덮을 줄도 안다. 그리고 해가 뜨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함께 따뜻해지기도 한다. 


알작지의 돌들은 고향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다. 하지만 알작지의 돌들은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춘다.


나는 어쩌면 저 바다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저 하늘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토성에서 왔으리라. 하지만 나는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다. 나는 어쩌면 전생에 죄를 지었으리라. 가족들 몰래 심장병을 알아버린 나는 가출을 하였다. 그때는 심장병 환자 하나 있으면 집안 말아먹는 시대였다. 육영수 여사님께서 심장재단을 만들어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편지 속에서 나는 언제나 건강한 아들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서른 살까지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나는 어쩌면 바다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하늘에서 왔으리라.


저 돌들도 언젠가 모래가 되리라. 나도 언젠가 흙이 되리라. 하지만 서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벌써 오십을 넘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더 오래도록 살 수 있으리라. 이제는 두 아들 모두 참으로 잘 성장하였으니 나는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리라. 오래도록 꿈꾸어왔던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잘못된 자식 사랑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우리들이 진정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은 무엇일까?


저 돌들도 언젠가 모래가 되리라. 나 또한 언젠가 흙이 되리라.


반질반질한 돌을 보니 문득, 컬링 경기가 생각난다. 돌이 돌을 밀어내고 때로는 돌이 돌의 엉덩이를 가볍게 밀어 동그라미 안으로 밀어 넣어주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삶과 죽음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시와 스포츠에 대하여 생각한다. 스포츠는 정해진 룰에 맞추어 열심히 하면 된다. 하지만 시는 정해진 법칙이 따로 없다. 열심히 시를 살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으리라.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삶에서 시작한다. 정정당당한 시와 삶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이 아름답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아직은 몽돌이 되지 못한 바위에서, 살아있는 미역을 뜯어먹는다.

             

자갈이 되어가고 있는 바위에서 자라는 미역을 먹어본다


나의 배아는 이제 미토콘드리아처럼 암모나이트처럼 염소의 뿔처럼 전갈의 꼬리처럼 등이 휘어진 태아로 자라나고 있다. 나는 이제 전생과 후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현미경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망원경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 기타 함께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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