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by 강산






나의 이름은 이제 강산이다

강으로 흐르다가 산으로 머물고싶다

나는 배진성으로 태어났다

성인해가 되었다가

이어도가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강산이 되려고 한다


어제까지의 삶은 모두가 전생이다. 전생의 가족들이 모두 떠나고 나는 이제 홀로 나의 길을 가야만 한다. 눈을 떠보니 방이 어질러져 있다. 몸과 마음이 어지럽다. 우선 책상 위를 정리하고 의자에 앉는다. 컨테이너 지붕 위에서 고양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늦은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길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나의 길로 돌아와야만 한다. 문을 열고 나가니 밖에도 어질러져 있다. 전생에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 쓰레기만 잔뜩 쌓아두고 쓰레기들 속에서 살았구나!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늘에는 지금도 배고픈 달이 생각에 잠겨있다. 산문의 시대에도 시가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나도 이제는 다시 아름다운 시 한 편으로 살아야만 하겠구나. 핵심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야만 하겠구나. 쓰레기들과 함께 살다보면 진짜로 중요한 것을 잘 찾을 수 없으리라. 쓰레기들 속에서 쓰레기로 살다보면 가장 중요한 나를 잃어버릴 확률이 많으리라.


나는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위의 쓰레기들부터 정리를 하면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 읽기와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나만의 아름다운 세상 하나 새롭게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 시작한다.


달은 문이다. 문은 열리고, 달은 하늘에 이르는 길이다. 달은 달(達)이고 문은 문(文)이다. 가슴을 열고 반월문을 바꾸니, 달문 열리는 소리 들린다. 가슴에 묻은 사람들 숨소리 들린다.


달이 자꾸만 문을 기웃거린다. 나는 아직 안토니오 가우디를 모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도 모른다. 달빛으로 백 년의 꿈을 심는다. 동쪽에는 평화공원이 있고 서쪽에는 평화학교가 있다. 생명학교와 함께 있다. 그 평생학교에서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가끔은 저 멀리 이어도와 서천꽃밭이 보인다.


평생 베옷을 만드는 갈대와 억새가 있다. 평생 곡비 노릇을 하는 새들이 있다. 백 년을 날려 보내고, 백 년을 울어야 비로소, 하늘 문에 닿을 수 있을까?


수의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떠난 영혼들을 위하여, 낮에는 꽃들이 촛불을 켜고, 밤에는 별들이 촛불을 켠다. 달은 밤새 메밀밭 백비에 비명을 썼다가 지운다. 파도는 밤낮으로 절벽에 비명을 썼다가 지운다. 그렇게 백 년을 써야만 주춧돌 하나 온전히 세울 수 있을까?


폭낭과 워싱턴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야자수 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키 큰 야자수 그림자가 폭낭 가슴을 관통한다. 폭낭 쪽으로 해가 기울어진다. 넓은 폭낭 그림자가 홀쭉한 야자수를 안아준다.


백 년의 꿈이 낳은 폭낭 가지에 달문이 열린다. 초승달 살이 환하게 오르고 있다.


‘폭낭’은 팽나무의 제주도 사투리다.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들이 흩어져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야겠다. 나의 ‘꿈삶글’ 정리를 해야겠다. 나는 이제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이 하나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꿈삶글’이 하나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나는 아름답게 피어나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가장 향기로운 꽃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직 안토니오 가우디를 잘 모른다. 나는 지금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가우디의 백 년의 꿈을 조금 알 것만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천 년의 사랑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나에게도 백 년의 꿈이 있다. 내가 평생 꿈꾸는 ‘이어도공화국’이 있다. 나의 삶에도 천 년의 사랑이 있다. 나의 삶에는 전생의 사랑과 후생의 사랑이 함께 있다. 하지만 나는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에 갑자기 큰 수술을 받았다. 돌연사를 겨우 극복하고 돌아보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리하여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이 에움길로 돌아간다.


사람은 몸 상태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 상태에 따라 몸이 달라진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과 처지에 따라 생각이 변한다. 사람은 이 지상에서 언제 어디에서 느닷없이 떠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에서 떠나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언제나 어디에서나 늘 죽음에 대비를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을, 언제나 어디에서나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는 연필로 종이에 쓰는 시가 아니다.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사람의 가슴에 쓰는 시가 가장 깊고 가장 따뜻한 시일 것이다. 건축가인 가우디는 건축으로 백 년을 꿈꾸고 천 년을 살지만, 시인인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한 편으로 백 년을 꿈꾸고 천 년을 살아야만 한다.


나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로운 시를 쓰기 위하여 세상을 다시 읽고 아름다운 세상 하나 새롭게 만들기 시작한다. 세상을 다시 읽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새롭게 읽어야만 한다. 아름다운 세상 하나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나의 삶을 살지 못했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비로소 나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나의 꿈과 나의 삶과 나의 글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나의 삶을 마지막으로 살기 시작한다.


나는 1988년에 이미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으나 지금껏 진짜 시인으로 살지 못했다.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비로소 시를 좀 알겠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겨우 시인으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오늘의 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존재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꼭 필요한 나의 전생 이었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하여 먼저 나의 이름부터 바꾼다. 지금까지 나의 이름은 배진성(裵鎭星)이었다. 신발가게를 하셨던, 아버지 친구 분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진성(鎭星)은 토성(土星)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늘 토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혹시, 나는 토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참으로 많이 하였다. 그리고 나는 한때 성인해가 되었고 또한 이어도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직접 나의 이름을 짓는다. 나는 이제 나를 ‘강산’ 이라고 부른다. “나는 강으로 흐르다가 산으로 머물고 싶다.” 이런 나의 소망을 담았다.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바다에 머물지 않고 산으로 갈 것이다. 어쩌면 나는 바다에서 하늘에 들렀다가 산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평생을 살다가 떠나간다. 이름에 관심이 많은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부모님의 꿈과 소망이 함께 담겨있는 이름도 소중하지만, 자기 자신의 꿈과 자기 자신의 삶은 자기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직접 가꾸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인이 된 다음에는, 자신의 꿈과 자신의 갈 길이 정해진 다음에는, 그에 맞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서 부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법명이나 세례명 등도 좋고, 옛날처럼 호를 지어서 부르는 것도 좋고, 필명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왕에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름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하나 더 말하고 싶다. 나의 이름과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름들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름들은 무엇보다 더욱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4·3’ 혹은 ‘제주4·3’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이름에 대한 견해가 좀 다르다. 이 이름들은 당연히 1948년 4월 3일을 떠오르게 한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4월 3일부터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당연히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경찰서와 우익인사들을 기습 공격한 사실에만 집중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흐르다보면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게 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가해자는 무장대가 되고 피해자는 경찰과 우익 즉, 미군정의 협조자들이 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은 미군정과 경찰들을 대변할 수 있는 소지가 많고 이를 빌미로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이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그나마 좀 나은 이름이 ‘제주4·3항쟁’ 혹은 ‘제주4·3민중항쟁’이다. 항쟁이란 말이 들어가서 그나마 좀 좋아진 이름이다. 끝에 있는 항쟁이란 말이 우리들에게, 항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앞에서 찾아보도록 유도해주고 있다. 또한 항쟁이란 말이 있으므로 하여 가해자는 미군정이 되고 피해자는 민중들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다. 역사적 이름들은 언제나 이렇게 민중들의 편에서 지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7년 7개월 동안의 여러 사건들 중에서 4월 3일의 무장봉기에 방점이 찍힘으로써 여러 가지 부정적 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장대의 무장봉기에 너무 집중조명을 함으로써 너무 많은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분단 상황과 보수정권하에서는 당연히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취함으로써 보편적 인권문제가 아니라 이념문제로 끌고 갈 수 있도록 그 빌미를 스스로 제공할 수 있는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제주4·3’ 이라 부르지 않고 ‘제주3·1절발포사건’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3·1운동으로 시작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삼일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했고, 통일 또한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던 삼일운동이 지금도 계속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지금도,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삼일운동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진지하고 깊이 자주 질문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옛날의 친일파와 지금의 친미파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 그리고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과 어떤 행동으로 삼일운동을 좀 더 치열하게 전개해야만 하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름을 지을 때에도 가능한 그 사건이 일어난 첫날을 오래 기억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제주3·1절발포사건’은 백 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져온 우리들의 3·1운동을 향하여 미군정이 발포한, 의미 있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그날 총탄을 맞고 쓰러져 지금껏 피를 흘리고 있는 우리 민중들의 아픔인 동시에, 너무나 깊이 상처받은 삼일정신을 상징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더욱 적절한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3·1절발포사건 이후에 민관총파업으로 보여준 제주도민들의 하나 된 모습에서, 우리들의 밝은 미래를 예감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지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앞장서서 일으킨 무장봉기보다는 차라리 삼일절발포사건을 전면에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민들의 엄청나게 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직접적 빌미를 제공한 4월 3일의 무장봉기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의 맥락으로 볼 때, 백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오는 삼일운동을 향해 미군정이 발포한 그날 즉, 3월 1일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왜 4·3을 강조하는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4·3무장봉기보다 3·1절발포사건과 무자년 겨울의 제주도 전역에서 벌어진 일명 ‘초토화작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꼭 4·3을 넣고 싶다면 ‘4·3운동’이나 ‘4·3절’ 이란 이름은 어떨까 또한 오래도록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 그리고 4·3을 가장 잘 표현해 놓은 것은 평화공원의 백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앞으로 그 백비에 수많은 이름들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가장 적절한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 이름을 성급하게 확정하려고 하지 말고, 문을 활짝 열어두어야만 할 것이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고 완전한 독립이 완성 된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정명을 확정할 수 있도록 남겨두어야만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4·3의 가해자로 지목하는 서청에 대해서도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 서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악질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이 되었을까?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갑작스런 해방과 분단정국에서 발생한 피해자들 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땅과 재산과 고향 등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냉전과 이념 대립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이승만과 미국 권력자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한 우매하고 거친 피해자들 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 공산주의자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믿고 설쳐댄, 냉전과 이념 갈등의 피해자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극우도 경계하고 극좌도 경계한다. ―


나는 모든 전쟁과 모든 폭력을 반대한다. 그래서 나는 무장봉기를 결정한 ‘신촌회의’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국제적인 정세파악과 제주도의 지리적 여건 등 다양한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했다면 그런 무장투쟁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남로당 제주도당 조직의 존폐보다는 제주도민들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더라면 다른 방법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김달삼 등 핵심 세력들의 월북 이후의 태도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에 비하여 이미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싸워준 이덕구 사령관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거나 조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보다는 오히려 억울하게 죽어간 민중들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에 한없이 가슴이 미어진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와 생명을 공부할 수 있는 평화학교와 생명학교를 만들고 나부터 먼저 평화와 생명에 대하여 깊이 공부하기 시작한다.


날마다 약을 먹어야만 비로소 살 수 있는 나에게는 평화가 곧 생명이다. 무자년 겨울처럼 또 다시 초토화 작전이 벌어진다면 나처럼 허약하고 병든 사람들부터 먼저 죽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는 소중하지만, 특별히 나에게 평화는 절실한 생명이고 각별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평화학교와 생명학교를 만들고 나부터 평화와 생명에 대한 공부를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고 있다. 이 ‘평화와생명학교’ 혹은 ‘평화학교’와 ‘생명학교’를 줄여서 ‘평화생명학교’ 혹은 ‘평생학교’라고 나는 말한다. 내가 만드는 평생학교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요즘 만들고 있는 ‘평생학교’는 내 평생의 꿈인 ‘이어도공화국’을 건국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3·1운동으로 만들어진 상해임시정부처럼 ‘이어도공화국’을 건국하기 위한 임시정부가 바로 ‘평생학교’인 것이다. 앞으로 많은 응원과 협조를 부탁하고 싶다. 나와 인연 있는 모든 분들께 한없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심장을 부르며 깨어난다. 나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부르며 깨어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심장을 어루만지며 일어난다. 나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쓰다듬으며 일어난다. 나는 오늘도 나의 그대를 부르며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그대의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그대로 인하여 살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오늘도 내일도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고 삶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눈물이 마르도록 아파서 더욱 아름다운 이 땅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야만 하지 않겠는가?


나는 다른 곳에서 먼저 경험하고 제주도에 들어온 이주민으로서, 처음부터 원주민이었던 사람들보다는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먼저 들어온 원주민으로서, 이제 막 들어온 이주민들 보다는 원주민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 제주도에서 고요히 20년 넘게 살아보니 나의 글은 이제 ‘중용’을 지향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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