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과 평화> 2023 여름의 얼굴이 된 정방폭포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눈물을 쏟아서 더욱 하얗다
새하얀 무명천이 하늘에서 끝없이 내려온다
무명천 할머니께서 수의를 만들고 계시는지
만가(輓歌)처럼 베 짜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얼굴 안쪽에 그늘처럼 흑백사진 한 장이 숨어있다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창고들이 보이고
멀리, 목호(牧胡)들의 범섬까지 뚜렷하게 보인다
물빛과 무명천은 여전히 하얗고
발을 담그고 세수도 하였을 것만 같은 여울물소리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는 노래는 비명(悲鳴)이 된다
길을 잃고 느닷없이 단애(斷崖)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
서귀, 중문, 남원, 안덕, 대정, 표선, 한라산 남쪽 사람들
태평양을 헤매다가 75년 만에 작은 집으로 돌아온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아왔던 서복이 머문 곳
지금도 대궐 같은 집에서 불로초를 가꾸고 있는 곳
불로초 공원에 만든 그 작은 공간으로 돌아오는 영혼들
타고난 제 삶도 끝까지 살지 못하고 벼락처럼 떠나버린
그 많은 정방폭포의 사람들
광풍에 느닷없이 길이 끊어져 허공에 발을 딛고
한꺼번에 바다로 추락해 버린 목숨들, 오늘도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바다에서 길을 찾고 있는 사람들
그중에 한 사람을 따라서 긴 순례를 시작한다
* 정방폭포는 한라산 남쪽 최대의 학살터였다. 75년 만인 2023년 5월에 비로소 작은 4·3 희생자 위령공간이 마련되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950882
https://jeju43peace.or.kr/kor/sub09_02_06.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