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四季) / 배진성
제주의 봄은 사월에 피어난다
서천의 붉은 노을 꽃으로 피어난다
사월의 영혼들이 서천꽃밭 꽃감관으로 부활하고 있다
제주의 여름은 숨비기꽃으로 피어난다
인어들의 숨비소리로 피어난다
포작(鮑作)이 진상하던 전복을 잠녀(潛女)가 시작한 후
숨비기꽃은 더욱 낮게 엎드려 향기로 깊어진다
제주의 가을은 감귤 향으로 익어간다
천 년을 고통나무로 버티어 한 때 대학나무가 되었던 감귤나무
동학농민전쟁이 벌어졌던 1894년에
비로소 폐지된 진상제도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주의 겨울은 한라산으로 온다
구상나무들이 하얗게 옷을 갈아입는다
곰과 사자와 호랑이가 흰 눈으로 나오는 길
설문대할망 자청비 영등신이 드나드는 입구도 보인다
가끔은 신(神)들을 따라 옥황상제가 그 길 따라 내려온다
일만 팔천 신(神)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섬에
다시 사월이 오고 있다 사월의 겨울이 오고 있다
강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겨울이 세상을 뒤덮어도
끝내 복수초는 두꺼운 얼음을 뚫고 나오리라
신(神)들이 벗어놓은 발자국마다 얼음새꽃이 따뜻하게 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