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영상으로 시를 쓰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사진으로 시를 쓰는 것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다. 디카시는 이제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 그렇다면 영상으로 시를 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말을 잘 못 한다. 말하는 법부터 배워야만 하겠다. 영상 작업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마침 300만 원의 교육비가 나왔다. 다음 달부터 유튜브 공부를 할 예정이다. 영상 편집도 배워야 할 것이고 파워포인트 등도 배워야만 하겠다. 지금은 편집도 모르고 그냥 촬영해서 보관용으로 올려놓은 상태이다. 이왕 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한 번 해보자.
아까운 시간에 내가 올린 영상을 보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영상을 제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제가 좋은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가르침 부탁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행복하세요. 존경합니다. 성불하세요.
https://youtu.be/DS63sv6GvQw?si=U53R0eDxiZnTXYEI
https://youtu.be/zxa4xmJtO3s?si=B6XQ1AP1AUjCU1mv
https://youtu.be/Pea5sr5fWfU?si=hO4mvNIXKZQK_HGy
https://youtu.be/1fnrsO-Zo2I?si=R62JeDnizdDQkGxs
https://youtu.be/bn7flqrWTsI?si=rTe8xlCxT_dZpLgI
https://youtu.be/bn7flqrWTsI?si=rTe8xlCxT_dZpLgI
https://youtu.be/eg6EG5pOJbU?si=lPok0F82IbgvkLNQ
https://youtu.be/c9fHs9u13FI?si=MYH1IJn4-DY4wkJ2
https://youtu.be/grx_dkxima4?si=8owmWYfMBfPKf9ef
https://youtu.be/L6lTDjypOtM?si=8fy6h7fV84mawyby
작품해설 - '사람의 길'을 찾아서
■ 정 효 구
(문학평론가)
1. '사람의 길'에 대한 탐구
《잠시 머물다 가는 지상에서의 사랑》은 배진성의 두 번째 시집이다. 그는 1989년도에 이미 시집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을 세상에 내놓아, 능력 있는 젊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은 바 있다. 따라서 이번의 시집을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갖고 마주했다.
배진성의 두 번째 시집에서 이른바 ‘사람의 길’이란 무엇이며, 그 길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야말로, 참다 운 ‘사람의 길’이 사라진 시대임을 고통스럽게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것이요, 그 진정한 ‘사람의 길’을 복원하고 만들어 가 는 일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임박한 최대의 과제임을 절감한 데서 나타난 것이다. 배진성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참 다운 ‘사람의 길’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아예 「하수구를 따라 흐르면서」 그것아 진정한 길인 것으로 철저하게 착각을 하고 있는 시대다.
2.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리 시대의 뻔뻔함
그러면 이 시인은 그와 같은 세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 식하고 있는가.
배진성은 <발바닥이 뜨겁다>의 일절에서, 세상은「얼굴만 내밀어도 얻어터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세상은 언제 나 개개인을 폭력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치면서 달아나 버린 다.
그런가 하면 그에게 세상은「깨진 유리들의 유리밭을 그렇게 맨발로 걸어」 가야 하는 곳이고,「발광하다 잠시 쓰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이처럼 험악한 얼굴을 하고 일방적으로 인간들에게 달려든다는 사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탐욕과 타락한 꿈에 의하여, 세상은 더욱더 난폭한 공간, 공포로 가 득 찬 공간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배진성은 이렇듯 타락한 세상과 타락한 인간이 수레의 톱 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거니 와, 따라서 그의 시에는 어둠과 공포로 가득한 세상과, 그 세 계와 야합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적인 실상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내용이 공존해 있다.
배진성은 인간들의 탐욕스러운 실상 중에서도, 먼저 자신들의 탐욕과 타락한 욕망에 맞추어 길까지도 마음대로 구부려 놓고, 마침내 그 길이 진정한 길인 줄 말며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그는 <문둥이>의 일절에서 이 사실을「구불구불하게 길을 구부리며 가는 사람들 /저 질긴 꿈은 부러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어서 <시론>의 일절에서는「길이 바퀴를 만들어 굴리던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와 /버렸다 /바 퀴 속에서 태어난 길 위로 /또한 바퀴가 달리고」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시론>의 인용된 일절이 시사해 주는 것과 같이, 그 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탐욕의 시대에는, 길로 상징되는 자연보다 바퀴로 상징되는 인간의 욕망이 우선한다. 따라서 세계의 순리와 질서는 파괴된다.
배진성이 다음으로 주목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 리 시대 인간들의 뻔뻔함이다.
그는 이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어둠의 대낮>에서 「사람 들은 /너무 밝아서 탈이다」라고 외치는데, 바로 사람들의 이 렇듯 너무나 밝아서 오히려 탈이라고 할 만큼 뻔뻔한 속성이, 세상을 더욱더 그릇된 방향으로 몰고 간다.
「가장 부끄러운 얼굴과 손의 노출을 /사람들은 노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배진성의 말처럼, 부끄러움이 사라진 우리 시대의 인간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세계를 타락시키고 파괴시 키는 장본인이다.
시인은 이와 같은 인식 아래,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낸 다. 그 결론이란 작품 <사람의 숲으로 찾아드는 바람>의 일절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데, 「세상을 갈쿠리에 찍혀 질질 끌 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고 보면, 세상이 인간들을 끌고 가기에 앞서, 인간들의 그 탐욕과 무서운 욕망이 오히려 세상을 그 욕망의 갈쿠 리로 찍어서 끌고 가는 셈이 아닌가.
3. 감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배진성에게 인간들의 세계는, 감옥 혹은 무덤의 모습을 하 고 나타난다.
작품 <즐거운 무덤 속>의 일절에서처럼, 그는 「어머니의 젖무덤에서 /젖을 떼면서부터 /세상은 무덤이었다」고 토로한 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이제 「우리들 의 일상」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배진성의 시에서는, 이처럼 무덤이 감옥의 상징이 되고 있지만, 뒤주와 자동차도 매우 인상적인 감옥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뒤주>라는 시의 일부분을 살펴보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우리들의 울음이
갇혀 있습니다 속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쉽게 토해 낼 수 없는 불덩이의 가슴
우리들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닥불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밖에서 한 번 더 못질하는 동안
안에서도 한 번 더 못질하고 있습니다
그런 뒤주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뒤주의 감옥 속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뒤주는 전설적인 사도세자의 울음소리가 갇힌 공 간만은 아니다. 이 속에는 우리 시대의 타락한 인간들이 갇혀 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공포의 세상이 갇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감옥과 같은 뒤주를 과연 누가 만 들었느냐 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공포의 세상과, 그 f속의 타락한 인간들이 공동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들은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자기 자신 들과 그들이 창조한 세계를 함께 가두고 있는 모순된 존재들이다.
이 감옥과 같은 뒤주 속에서 사람들은 생명을 상실해 간다. 배진성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작품 <쥐>에서, 「커져서 /하염없 이 작아지는 쥐들 / 결국 독 안의 쥐들이 많다」는 말로 표현하 고 있다.
이 구절은 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를 하나의 감옥으로 비 유하고, 이어서 그 속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독 안의 쥐로 비 유하고 있다.
육체적 욕망과 탐욕의 노예가 된 현대 산업자본주의 사회 속의 인간들이야말로, 독 안에 든 쥐처럼 무력하고 왜소하며 비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옥과 같은 이 세상 속에 갇혀서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배진성의 작품에는 이런 질문들과 함께, 그에 대한 시인 나 름의 대답이 행간 여기저기에 담겨져 있다.
그가 감옥과 같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터득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작품 <발바닥이 뜨겁다>에서 시사되는 바 와 같이, 세상이 나를 치면 내가 세상을 치고, 그가 나를 치면 내가 그를 치는, 이른바‘치고 달리기’식의 삶을 통하여 무쇠처럼 단단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멘트 벽을 들이받으면서도」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팽이처럼 강해지고, 마침내는 내가 세상 속에서 단단한 팽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팽이처럼 돌릴 수 있는 경지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 세상을 더 악한 힘으로, 강한 세상을 더 강한 힘으로 정복한다는 것은 세계를 더욱더 악의 소굴로 몰아넣 고, 무력의 논리로 이끌어 가는, 그야말로 악순환의 고리를 낳을 뿐이다.
물론 배진성은 다소 반항적인 심정으로 이런 방법을 제시해본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참된 ‘사람의 길’에 이르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4. 대지의 깊은 속살에 뿌리내리기 위하여
여기서 배진성은‘사람의 길’에 도달할 다른 길을 모색한 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그 길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결의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외나무다리가 걸쳐져 있는 강
그런 강물 속으로
지금 징검돌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야 할 우리들이 있습니다
<외나무다리>라는 이 시의 일부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 이,‘사람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외나무다리>밖에 걸쳐져 있지 않은 험난한 강이다.
그러나 그 강이 아무리 험난한 강이라 할지라도, 그 강은 우리가 건너기를 바라며 앞에 놓여 있고, 우리는 그 강을 어떻게 해서든지 건너야 한다.
따라서 이 강을 건너는 일이 불가능해질 때, 그리고 그 강을 공들여 건너지 않을 때, 이 세계는 영원히 감옥과 같은 어 둠의 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어둠의 땅에 우리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배진성이 작 품 <별의 뿌리는 마땅히 환한 어둠 속에 있어야>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상황 속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세계 전체가 뿌리를 알몸으로 드러낸 채 버티거나, 씨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버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지의 깊은 속살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잘 여문 씨앗을 영원히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5. 길 밖으로 외출 중인 사람들에 대한 간곡한 외침
배진성은 위와 같은 질문 앞에서‘사람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여러 가지로 모색해 본다.
작품 <길>이 그 대표적인 실례인데, 여기서 그는 여러 가 지 길의 형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길만 있는 길은 너무
외롭습니다
길만 걸어가는
길은 너무 무섭습니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길은 너무 무섭습니다
사람만 가는 길은
너무 외롭습니다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너무 무섭습니다
오직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너무 외롭습니다
길 아닌 길로 가는 사람은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길은 그래서 늘 위험합니다
배진성은 <길>이라는 작품에서, 외로운 길과 무서운 길, 그리고 외로운 사람과 무서운 사람의 실례를 여러 가지로 제 시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없고 길만 있는 길은 물론, 길만 걸어가는 길도 무섭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은 물론, 길 아닌 길로 걸어가는 사람 또한 매우 무서운 존재다.
뿐만 아니라 사람만 걸어가는 길은 매우 외롭고, 오직 길만 걸어가는 사람 역시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시인은 참다운 ‘사람의 길’에 도달하려는 뜻을 가지 고 여러 가지 유형의 길을 탐색해 보지만, 사실상 이렇듯 수많은 길들이 우리를 진정 ‘사람의 길’로 이끌지 못하는, 이른바 ‘위험한 길’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가로놓인다.
배진성은 길의 위험성을 이렇게 타진해 보고, 이어서 ‘사람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길과, ‘사람의 길’에 도달한 상황이 어떤 것인가를 역시 다각도로 고민해 보고 있다.
우선 그의 작품 <길과 사람>에서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한 다. 그 하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은 지금 큰길이 보이지 않고 그래도 샛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시인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별과 보이지 않는 길」이 많은데, 사실 우리가 그나마 이 세상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별과 길의 중요한 역할 때 문이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인은 「길 밖으로 외출 중인 사람들이 이제는 돌아와야 한다」고 세상을 향하여 간곡히 부탁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근간을 이루는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아버지의 삶과 죽음처럼, 우리들 스스로 길이 되거나, 길로 태어나기를 그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6. 생명에 대한 사랑과 희망
배진성이 ‘사람의 길’에 대한 희망을 이처럼 저버리지 않 고, 그 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사람의 길’로 가 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그가 사람에 대한 믿음을 보여 주는 실례를 우 리는 작품 <별은 밤에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에서 찾아볼 수 있거니와,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하여 모든 존재의 내면에 깃든 생명의 바람을 인식하고, 그 바람과 바람이 얼마나 간절하게 서로 간의 교감을 희구하고 있는가에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생명과 생명의 교감에 대한 희구가 살아 있는 한, 인간들이‘사람의 길’에 도달한다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배진성은 이와 같은 맥락 위에서 우리가‘사람의 길’에 도 달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의무 사항이자 책임 사항이며 지 상 명제임을, 작품 <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잎 하나에도 문이 있고 아침 이슬 한 방울에도
그 세계 속으로 열려 있는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길은 목숨으로라도 끝내 열어야 하는 문입니다
시인은 모든 존재의 중심에서 생명의 바람을 느꼈던 것처 럼, 역시 모든 존재의 내면에서 생명의 문을 보고 있다.
그는 이 생명의 문과 생명의 문이 서로 열려서 내통할 때, 그 속에서 크고 아름다운 ‘사람의 길’이 열릴 것임을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사람의 길은 목숨으로 라도 끝내 열어야 하는 문입니다」라고 단호한 결의를 표명한다.
그러면 생명의 문을 열어 놓고, 그 생명의 바람을 불게 한 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배진성의 작품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와 <더 큰 사 랑>, 그리고 <11월과 1월>에서 이 물음과 관련된 사실에 자기 나름대로의 대답을 제시해 놓고 있다.
먼저 그는 작품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에서 「가을 바 람은 자꾸 날더러 /단풍이 돼라 하네 /마지막 남은 목숨 사랑만 하라 하네」라는 말과,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 / 떠나 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는 바람이 돼라 하네」라는 구절을 통하 여, 생명에 대한 사랑과 그 생명에 대한 희망이 곧 ‘사람의 길’로 가는 길임을 시사하고 있다.
7. 무덤조차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세계
이어 작품 <더 큰 사랑>에서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사랑을, 밥과 하늘의 이미지에 담아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나는 따뜻한 밥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
누구나 오셔서 드십시오
식기 전에 잡수십시오
하늘은 나의 밥입니다
마음이 고픈 사람
누구나 오셔서
맛있게 잡수십시오
사랑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다른 생명의 ‘따뜻한 밥’이 되어 주는 일, 그래서 육체적으로 배가 고픈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여들어, 그 밥을 먹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처럼 모든 생명이 자발적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밥이 되어 줄 마음을 갖추었을 때, 그리고 작품 <11월과 1월>의 일절 이 말해 주듯이 「나란히 눕는 11월」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진 정한 동반자로 나란히 설 수 있을 때, 그들 사이에는 「더 큰 가슴의 길」이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 <별과 꽃과 무덤>의 일절이 말해 주는 내용처럼, 별의 무덤에서 꽃이 피어나고, 꽃의 무덤에서 별이 솟아나는, 이른바 무덤조차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세계가 열 린다는 것이다.
배진성은 자신의 작품 <별무덤>을 통하여 밝힌 것처럼, ‘사람의 길’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당 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라는 말로, 그가 진정 ‘사람의 길’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음을, 아니 그 길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길’을 찾아내고, 그 길에 도달하려는 그의 노력은 아름다웠고, 그 노력이 바로 그의 시에 깊이와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 이외에, 배진성 시의 정신적 원형으 로서의 고향과, 그의 시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미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 보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시 세계 역시 넓게 보아 ‘사람의 길’을 찾아내고, 그 길에 도달하여야 할 그의 노력과 결부되는 것이 사실이다.
1993년 문학사상사에서 발행한 두 번째 시집 <잠시 머물다 가는 지상에서의 사랑>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잠시 머물다 가는 이 지상에서>로 재출간을 하고 싶습니다. 시는 자식과 마찬가지로 낳은 후에도 잘 보살펴야 하는데 저는 그동안 그러지 못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잘 보실 피고 잘 가꾸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아등바등, 함께 살아온, 낡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께서 주신, 26년 묵은, 선천성 바람병은, 드디어, 떠났습니다 지금, 떠나는 아버지의, 세상의 등이, 언뜻, 보입니다 그리하여, 나와 함께, 새로, 태어나는 아버지의 영전에 나의, 죽음을 바칩니다 가장 편안한, 안식처였던, 바람, 속을 빠져나온 길은, 이제, 사람의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약사여래가 떠난 길은, 지금, 유복자를 낳은, 늙은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별무덤 다도해, 그리고, 사람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가는, 유복자들이, 바람, 속에서, 바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 나의 길은 그렇게 아직은 ⌈ . ⌋가 없는 ⌈ ,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쉬어 가는 것이 나의 삶이고 나의 詩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쉼표 속으로 길을 가고 있습니다 )
• 자서(自序)
제1부 부활을 꿈꾸며
잠 속에서 비로소 눈을 뜨는 늑대 13
쌍둥이 마을에서 14
팽이 15
꿈속까지 따라 들어온 까마귀 떼 16
위기의 계절 17
가을비에 젖고 있는 귀뚜라미의 귀 18
길과 사람 19
가시나무새와 누란의 양파꽃 20
엘리베이터 속에서 전화를 한다 22
붉은 염소 24
눈발로 오시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 26
물방울 속의 방과 물방울 속의 방울 28
동백원에서 29
오리와 밤나무 숲 31
창공 32
숲 속의 바람과 숲 밖의 바람 33
문 34
바다로 간 화가 36
머리만 떠오르고 있었다 37
밤, 사람의 길을 찾아서 38
발바닥이 뜨겁다 40
별은 밤에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45
또다시 팽이 46
가을마당에는 낙엽 몇 잎 뒹굴어야 47
제2부 부활 이후 또다시
막차 51
사막의 나무 한 그루 53
겨울 자정, 기름 탱크 위에 앉아 있는 54
사람의 숲으로 찾아드는 바람 55
63 빌딩 57
자궁과 무덤은 둘 다 둥글다 58
고드름 59
고향 60
즐거운 무덤 속 61
별과 꽃과 무덤 62
왜 우리 시대에는 의적이 없는가 63
죽음은 삶보다 입이 더 크다 65
여자 66
잠과 겨울 67
길의 욕망 68
문둥이 69
제3부 바람이 바람에게 쓰는 편지
아버지 73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75
박쥐 76
보리밭 77
여행 일기 79
바람이 바람을 부르는 날에 여자들은 81
집 한 채를 짊어지고 가는 지게차 83
쥐 84
가난과 자유 85
악어 연못 86
남자와 여자 87
시장에서 88
별의 뿌리는 마땅히 환한 어둠 속에 있어야 89
명화원 앞에서 91
시론 93
어둠의 대낮 94
제4부 길은 이제 유복자를 낳은 늙은 미혼모가 되었다
별 97
봄 98
감나무 가지가 부러지고 있다 100
무덤을 둘러보며 노래하고 있었다 102
아침 양화대교 103
안개 105
우산 106
연휴는 언제나 나를 죽게 한다 108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 109
군고구마 110
길 112
외나무다리 113
별무덤 114
여수항 116
뒤주 117
11월과 1월 118
더 큰 사랑 119
제1부 부활을 꿈꾸며
내 잠의 뒷골목으로 언제나
붉은 혓바닥을 늘어뜨린 늑대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온다
숲을 끌고 오는 늑대
홀랑 털을 벗어버리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저
황홀한 눈빛의 허무 이미
어찌할 수 없이 불타오르는 몸뚱어리
안으로 불붙은 숲은 오래가지 못하리라
늑대는 스스로 쓰러지고
사랑의 환상은 불처럼 사그라지리라
숲이 모두 타올라버린 산길에서
이제 겨우 빠져나가는 여우 한 마리
잠 속에서 비로소 눈을 뜨는 늑대는
새까맣게 타버린 영혼으로 활 활
불길을 피워 올리며 따라가고 있다
한 완벽주의자의 꿈처럼 시인처럼
쌍둥이 마을에 와서 내가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았다 보이지 않는 나와 보이는 내가 함께 태어났다 우리는 모두가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란성쌍둥이 혹은 일란성쌍둥이로 태어난다 보이지 않는 나와 보이는 내가 서로 형이라고 우기면서 우리는 말다툼처럼 살아간다 나는 지금껏 보이지 않는 내가 형으로 행세해 왔다 입양아처럼 푸대접받는 동생이 아프기 시작하고, 이제 그런 동생도 사랑하리라 쌍둥이는 형이 죽어도 죽고 동생이 죽어도 따라 죽는다 의리가 너무 좋아서 탈이다 형이라도 살았으면 좋은데 동생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좋은데 그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쌍둥이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또한 하나이다
쌍둥이 마을에 와서 나는 소동패놀이 아이들에게 둘러 싸인다 소동줄에 감겨 형과 동생이 함께 끌려간다 트인 동쪽 쌍봉산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 동네 사람들도 오래도록 산을 바라보고 있다
헛발 딛는 내가 넘어지려 할 때
마다 곁에서 어머니는
옷고름 풀어 만든 팽이채로
아픈 허리를 감아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지쳐 쓰러진 만큼
나는 바로 설 수 있었고
발아래 흐르는 강물 소리에
늘 젖어있는 몸이었습니다
그러한 겨울은 따뜻하였고
겨울 밖에서도 오오래 오오래
무지개를 감아들이며
제자리서기로 돌고 싶었습니다
나란히 눕습니다 훌쩍거리는 식구들의 울음소리에 맑게 깨어납니다 옆에 누워 있는 식구들의 뼛속이 환하게 들여다보입니다 그 속으로 강물이 흐르고 관절도 없는 뼈들이 다가와 어루만져주기도 합니다 폐쇄적이 되어버린 나에게도 말을 걸어옵니다 그러한 밤들이 차라리 정겹습니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며 아침이 옵니다 무섭게 옵니다 어젯밤 벗어 놓은 살을 입고 옷을 입고 우리는 석고상처럼 걸어갑니다 길가 유리관 속의 마네킹들이 씨익 웃습니다 그럴 때마다 관절에서 까마귀 떼가 날아오릅니다 어젯밤에 나의 껍데기를 먹어치우지 못한 까마귀들이 놀란 모습으로 날아갑니다 미안하다는 듯이 나에게 왠지 모를 목발을 던져주고 사라집니다 내 곁으로 강이 흐르고 그 강물 속으로 나의 목발을 던져 버립니다 길을 빈 몸으로 걸어갑니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걸어갑니다 깨진 유리들의 유리밭을 그렇게 맨발로 걸어갑니다
그해 봄부터 봄까지
봄이 다 가도록 꽃만 피었습니다
그해 여름부터 여름까지
여름이 다 가도록 비만 내렸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가을까지
가을이 다 가도록 바람만 불었습니다
그해 겨울부터 겨울까지
겨울이 다 가도록 눈만 내렸습니다
당신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하루에도 네 계절을
한꺼번에 걸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에서는 세상이 더 잘 보입니다
귀뚜라미가 가을비에 젖고 있습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비에 젖고 있습니다
가을비가 가을밤 가득 고이고 있습니다
깊어지고 있습니다
귀뚜라미가 가을밤을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귀를 뚫지 못하는 귀뚜라미가 울고 있습니다
귀를 뚫던 귀뚜라미들이 문득
귀를 막아버리는 가을밤
가을비로 내리고 있습니다
그 침묵 속으로 다시
귀뚜라미가 귀를 뚫고 있습니다
가을비에 귀가 젖고 있습니다
귀도 젖고 코도 젖고 눈도 젖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 밖에서는 세상이 더 잘 보입니다
사람들은 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 사람들은 길을 비껴 길 가에 집을 짓는다 꽃과 나무 또한 길 가에 머문다 사람들은 모두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은밀한 만남과 이별 그리고 가슴 떨리는 그리움이 있다 샛길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길은 그래서 사람을 닮았다 세상은 지금 큰길이 보이지 않고 그래도 샛길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길은 길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내 20대의 길에는 약속이 없다 지금도 죽으면 별로 떠오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살아 있다 그렇게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별과 보이지 않는 길이 많다 보이지 않게 깊이 뻗어 흐르는 뿌리가 꽃이 되기 위하여 박차고 나온다면 우리들의 나무는 시들어 죽을 것이다 길 밖으로 외출 중인 사람들이 이제는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길은 늘 기다리고 있다
당신과는 발가락도 닮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해는 서산마루를
붉게 걸어가고 나는 잠을 깬다
밤에만 피는 꽃잎 속에서 나는
살아있다 어둠은 나의 집이다
그 집에는 천년을 열어도 다
열지 못할 많은 문이 있다
천년에 딱 한 번 한꺼번에
잠깐 어둡게 열렸다가 스스로 잠긴다
그 속에는 발가락도 닮지 않은
사랑하는 당신이 있다
고백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하여 나는 고민한다
고민한다 그리하여 나는 불러본다
불러본다 그리하여 나는 울어본다
울어본다 그리하여 나는 웃어본다
웃어본다 그리하여 나는 도망친다
도망친다 그리하여 나는 쓰러진다
쓰러진다 그리하여 나는 돌아본다
돌아본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살아난다
사랑하기 위하여 저만치
저만치 피어있는 꽃 한 송이
엘리베이터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풀벌레도 없고 풀도 없고
나무도 없고 흙과 뿌리도 없다
물도 없고 강도 없고 바다도
여전히 없다 또한 징검다리도 없고
새도 없고 생명이라곤 나밖에 없다
그리하여 나도 없어져버린다
나도 죽어 있다 모른다 이제 더 이상
만남도 있을 수 없고 다만
극과 극이 통하고 있는 중이다
길도 보이지 않고 정전처럼 꿈도
꺼져있다 그냥 그렇게 끊임없이
올라갈 뿐이다 혹은 내려갈 뿐이다
인기척은 아예 생각지도 말자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은 모두가
한꺼번에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도대체
멈추지 않는다 비상정지를 눌러도
정지할 수 없는 지상의 시간
이 발전소가 죽어도 다른 발전소가 살아있고
어디서든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다
비상전원도 항상 준비되어 있어 나는 멈출 수
없다 있다 없다 있다 없다니까!
내 영혼은 멈출 수 없는 가슴으로 너를 부른다
아, 그렇다 전화기가 있었구나 이것만 있으면
나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너에게 전화를 한다
늘 통화 중인
단 하나뿐인 사랑에게 또다시 전화를 한다
그러나 신호가 떨어질 리 없다 이미 없는 너
미래에게 전화를 해도 우리는 통화할 수 없다
아버지는 붉은 염소였다
해맑은 아침으로 나가
저물녘이면 언제나 붉은 노을이
되었다 우리들이 몰러가지 않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풀만 뜯던 염소는
저녁이 오는 줄도 모르고
우리들이
그의 말뚝이 되어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 풀밭으로 무성하게
소문의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도
바람에 낙엽 져 갔다
들판 가득 겨울이 내려 쌓이고
근심도 함께 내려 쌓였다 그런
겨울 속에 초원을 묻혀버린 염소
봄은 또 오고야 말 텐데 배고픔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뜯어먹을 풀을 찾아
서산을 넘어 하늘 끝으로 갔다
그런 아버지의 말뚝이었던 나는
이제야 늦게 빈 말뚝을
뽑아 들고 염소를 찾아 나선다
또한 나의 말뚝으로 박히는 염소
그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지만,
저물녘마다 노을이
붉은 울음을 온몸으로 토해내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바람이 섞인 눈발이 오보에 소리처럼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습니다
야간자습이 끝나고 풀려나는 교문
앞으로 자가용을 몰고 와 기다리는
그런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어둡게 떨고 있는 나무 그늘에 어둡게
어두운 아버지가 서 계십니다
절름발이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끌고 오신 고물 자전거처럼
망가진 모습으로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그러나 가슴속에서 꺼낸 털목도리를
아들에게 감아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아버지 같은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눈발로 오시는 아버지의 발자국소리는
나에게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병석에 누워 계셨던 아버지도 이제는 없습니다
한국의 노동자이셨던 아버지도 이제는 없습니다
주정뱅이이셨던 아버지도 이제는 정말 없습니다
가끔 조금은 따뜻했던 아버지가 이제 없습니다
밤새 눈이 내리고 아버지가 되어야 할
내가 있습니다 하늘이 문득
아버지 어깨처럼 무겁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물방울 속의 방에서 한 아이가
방울을 흔들고 있습니다
방울 소리는 밖으로 들려오지 않고
나 또한 그를 온전히 안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물방울 속의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는 물방울
슬픔만 쟁쟁히 괴어
원을 이룬 완전한 감옥입니다
그의 눈동자 속으로
찬 별이 떠오르고
아직은 어두운 겨울 새벽하늘을
떠다니는 목숨들
아침이 오면 자유롭게 떨어지리라
물방울, 그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는
나와 앙증맞은 물방울
그리고 만화경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또 다른 물방울들
개나리방에 색칠된 그림들을 봅니다
열여섯 살 수경이는 정신박약아답지 않게
어머니 뱃속에 이쁜 수경이 모습을 심어놓고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우겨댑니다
수경이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고
울고 있습니다 야무지게 따라 울고 있는
침묵의 시간
열아홉 소아마비 강춘이는, 똑바로
세상을 응시하는 곰을 그렸습니다
눈빛이 반짝입니다 다리가 짧은 곰 인형
자신이 타고 다니던 휠체어에 올려놓았습니다
결코 쓰러지지 않고 웃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나무처럼
다리가 자라날 거라고 말합니다
강춘이 몰래 우리들 사이로 흘러가는
하염없는 강물소리
스물일곱 살 그녀의 강가에는 안개로
가득합니다 온통 회색빛 어둠 속에 갇혀있는
붉은 혀들
( 정신분열증 같은 혹은 자폐증 같은 어둠 )
뿌리만 간신히 남겨놓고 점령당해 버린 세상
그 속으로 끊임없이 새를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 늦은 밤 이제는 돌아가야 합니다
남아 있는 그녀의 붉은 혀는 쉴 새 없이 더욱
짧아진 나의 혀를 뿌리까지 물어뜯고 있습니다
나는 한 때 많은 오리들의 주인이었습니다
새벽안갯속으로 오리의 꿈과 함께
모두 날려 보내고 지금은 밤나무 숲에 있습니다
어떻게 다시 찾아왔는지 오리 한 마리 반갑습니다
나의 간짓대를 희롱하며 새벽길을 뒤흔들던
개구쟁이 오리였습니다 누나들의 빨래터에서
미운 장난을 즐겼고 제방까지 넘어 다니며
어른들의 못자리나 보리밭을 덮치기도 해서
나를 번번이 골탕 먹이던 오리였습니다
다른 오리들이 집에 돌아와 알을 낳을 때도
그 오리는 잠도 없이 거들먹거리거나
괙괙, 걸걸한 목소리로 노래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밤새 그러다가도 제일 먼저 새벽길로 나가
저만치에서, 생각난 듯 한쪽 다리를 숨기고 서서
뒤돌아보던 그 오리는 자기만 아는 풀숲에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알아버린 나는
또한 그 오리 몰래 그 알을 꺼내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오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오늘밤 밤나무 숲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닭의 품에서 태어난 그 오리는 오늘도 맨발로
밤나무 숲을 조심스럽게 걸어 다닙니다
그리고 아침 퇴근길 나와 함께
이제는 밤나무도 없는 밤섬을 빠져나와
……………, 밤섬 입구에서 살고 있습니다
새들은 열려있는 새집을 더 좋아한다
저마다
가슴속에 창공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낡아 가고 있다 낡아 가고 있다
우리들의 창공은 그렇게
열려 있는 새장이다
숲 속의 바람은 언제나 숲 속에 있어야 숲 속의 바람이고 숲 밖의 바람은 아무리 숲을 두드려도 숲이 열리지 않아야 숲 밖의 바람이 된다 그러나 아, 나에게는 오늘도 숲이 없다
사람들은 문(門)을 믿지 못합니다
자물쇠를 먼저 준비하고 열쇠는
강물에 던져버립니다 문은 너무 잘 열려도
문답지 못합니다 쉽게 열리면 쉽게
낡아 갑니다 너무 열리지 않아도 우리는
질식해 죽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하나쯤의
열쇠는 누구나 갖고 싶습니다
문을 열어줄 때에는 언제나 머뭇거리면서
문만 보이면 언제라도 열어보고 싶습니다
문고리만 보여도 열고, 정작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문을 잘 걸어 잠급니다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문 잠그는 소리 속에 번번이 갇히고
맙니다 안에서는 쉽게 열 수 있는 문(問)도
밖에서는 열쇠가 없으면 열 수 없습니다
도둑들은 열려있는 문보다
닫혀있는 문(聞)을 더 좋아합니다
문 앞에 서면 언제나 두들겨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문을 함께 열어보고 싶습니다
아무도 열지 못한 당신의 문을,
기꺼이 열어보고 싶습니다 시간처럼
열렸다가 곧 닫혀버리는 문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 함께 살 수 있는 문을
열고 싶습니다 문은 낡을수록 사람 냄새가 납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잎 하나에도 문이 있고 아침 이슬 한 방울에도
그 세계 속으로 열려있는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길은
목숨으로라도 끝내 열어야 하는 문입니다
평생을 한결같이
온갖 귀만을 고집하여 그린
그런 화가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변함없이
갖가지 입만을 고집하여 그린
그런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운명적으로 만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조리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낌없이 하얗게
하얗게 지워진 세상에서
눈빛만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결정적으로
그들은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목숨을 놓아버린 한 생명이
링거병을 부축하고 둘러선 가족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저 멀리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림으로 살아난 그들은 이제
귀도 없고 입도 없는
바다가 되어 빛으로 꿈꾸고 있습니다
저물녘 바닷가에 비스듬히 서 있던 우리 집,
밤부터 허물어지고 있었다 파도의 잦은 삽질에
집이 기울고 있었다 뒤꼍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숲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봉창으로 바다가 거세게 들이닥쳤다
이미 방바닥은 젖어들고 벽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며칠 밤이 계속되었다
식구들은 바다에 떠오르다가
썰물에 밀려가고 벗겨진 몸으로 다시
해안선에 걸려 있었다 꺼칠한 어둠이 누워있었다
해안선은 언제나 불안하다
파도가 아니라 거대한 기중기였다
중장비 같은 한 떼의 엄청난 어둠이 몰려와
집을 모조리 퍼내어 바다를 매립하고 있었다
소리쳐 몰아내려 할 때마다 중장비는
나를 하늘 높이 끌어올리기도 하고
바닷속 깊이 처박아 물을 먹였다 괴물을 당해낼
재간이 나에게는 이미 없었다 뼛속까지 물어뜯기고
결국 버려졌다 버려졌다 버려졌다 버려져 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머리만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 위로, 아무것도 없었다
더 이상의 기다림은 허락할 수 없으리라
기다림은 우리를 늙게 만들어 놓고
끝내 배반하고 말리라 내가 모르는 곳에서
언제나 나를 향해 던져지는 표창들
사랑은 그렇게 근본적으로 슬프다
강물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들의 무죄와
굴뚝의 하늘에 코를 들이대고 호흡하는
우리들의 눈물 없는 슬픔
길은 아무래도 나와는 동성인가 보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밤새 찾아가
보아도 길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나를 길들이고 알몸의
프로이트는 산책길에서 나를 찾아온다
그들은 자유에 대하여 나에게 들려주고
나의 자유는 나의 고삐를 놓아버린다
나는 그렇게 하수구를 따라 흐른다
흘러가다가 드디어 그 하수구의 세상까지
내팽개쳐진 채로 흐른다 어떤 녀석이
한 때는 애인이었던 사람을 껌을 씹듯
나를 질겅질겅 씹고 뱉어버린다
푸른 신호등은 늘 내 앞에서 고장 나 있고
나는 나의 길에서 동성연애자가 되지 못해서
더욱 슬프다 썩지 못하여 밤새도록 아프다
나의 자유는 그리하여
나의 죽음까지도 독신으로 만들고 말리라
생맥주 거품처럼 곧 자지러지고 말
나는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그러나
저 거품이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밤의 아들을 낳고 싶다 어둠의 딸을
건져내고 싶다 오라 나의 가슴을 향하여
돌진하라 어둠이여 나의 멸망을 자초하는
길일지라도 나는 오늘 너의 벌거벗은 몸을
안고 쓰러지고야 말리라 벌거벗은 어둠이여
너의 숨찬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저쪽에서는 벌써 어둠끼리 섞이고
밤은 이제 잠들지 않는다 막차는 오지 않고,
1
치고 달리기다 오늘도 세상이 나를 치고
달린다 내가 칠 때 당신은 달린다 당신이
칠 때 내가 또한 달린다 세상과 나는 늘
그렇게 치고 달린다 자 이제 박수를 쳐라
2
박수소리 속에서 새들이 날아오른다
발바닥이 뜨겁다 신발을 벗고 싶다
뛰기는 당신들이 뛰는데
발바닥은 내 발바닥이 뜨겁다
3
발바닥이 뜨겁다 두더지 발바닥이
뜨겁다 지하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의 발바닥이 다시 뜨겁다
4
보리밭에서 발견되곤 하던 두더지가
이제는 도시의 길가에서 말을 한다
5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나는 말을
참 잘하는 두더지예요 나를 좀 때려주세요
― 때려주세요 정신 못 차리는 나를
정신 번쩍 들도록 힘껏 때려주세요
6
얼굴만 내밀어도 얻어터지는 세상
불쑥불쑥
솟아나는 힘을 잠재우는 권력
지금 망치질하는 사람들
정신없이 휘둘러대는 사람들의 발바닥이
뜨겁다
7
나의 삶은 치고 달리기 작전이다
자, 나를 잡아보세요
나는 지금 당신의 손 끝을 살짝
벗어나고 있어요
내 길의 흔적이라도 잡아보세요
8
짤랑, 어엇, 앗쭈
한 번 때려 볼라고요 너무 세게
치지 마세요 좀 봐주세요 알았지요
제발 부탁이에요 아야,
너무 아파요 아야 아야 살살 때려요
아프단 말이에요 너무 아프다니까요
아야 아야 아야 아야야야야야야야야
그만 때려요 당신은 눈물도 없어요
아야 아야 그만 때리고 말로 해요
인정도 없어요 자식도 없어요 애인도
당신은 없어요 당신은 혼자 살 수 있어요
아야 너무 해요 당신은 너무 한다고요
아파요 아파 거기가 아니라니까요
아야 아야 거기가 아니에요
살살해요 그래요 우리 이제 쉬었다가 해요
잘해봐요
아야 아야 거기가 아니에요
빗나갔어요 지금 당신은 빗나가고 있어요
천천히 다시 한번 해봐요
그래요 그렇게 서둘지 않고 하니까 되잖아요
자 호흡을 맞춰봐요 아이 그게 아니에요
눈을 감아버리면 어떻게 해요
아야 거기가 아니에요 헛눈팔면 안 돼요
이제 그만해요 힘을 조금만 줘야지요
아야 그만해요 아야 아야 이제
그만 놔줘요 아야 아야 아야 아파 아야
아파 아파 아야아야 아파 아파
머리가 깨지겠어요 아야 그만해요
말로 해요 아파요 아파 죽겠어요 아야
아파요 아파 말로 해요 아파 죽겠어요
죽겠어요 , , , , , 후휴 , , , , ,
9
에이, 별것도 아니네
10
세상에는 그렇게 별것이 별로 많지 않다
세상이 다시 나를 치고 달린다
발바닥이 뜨겁다 신발을 벗고 싶다
집에 돌아와 지하에서 줄넘기를 한다
발바닥이 뜨겁다 발을 벗고 싶다
나를 버린 나뭇가지를 잊지 못하고
끝내 그리움으로 흩날리는
나뭇잎은 오히려 변절이다
나뭇잎들이 떠다니고 있다
모든 나뭇잎의 몸에는 바람이 섞여있다
남자들처럼 사람들처럼
모든 몸에는 바람이 잠들어 있다
오늘밤에도 별은 잠들지 못하고
우리들 몸속으로 흐르는 별들은
서로의 바람을 그리워하며 짧게 운다
저는 이제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끊임없이
허리를 감아주셔야 바로 설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몸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세상 속으로 힘껏
단 한 번만 내던지시면 됩니다
시멘트 벽을 들이받으면서도
저는 이제 스스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머니, 풀었던 옷고름 여미시고
보십시오
저는 지금 아스팔트 위에서도 이렇게
세상을 웬만큼은 돌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큰 절 올릴 수는 없지만,
아버지께서 약을 드시다가 방바닥에
엎질러버린 물방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약 냄새 가득한 계절의 황혼
원효대사님의 <금강삼매경>의 독경 소리에 맞춰
사내아이 하나가
토성의 가을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하나 둘 떠나가는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오르고
가랑잎 몇몇 약사여래의
주위를 돌아 바람으로 살아나고 있습니다
제2부 부활 이후 또다시
막차는 첫차이다
밤에 출발하여
새벽에 도착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지금
갑자기 다급해진다
아들들의 황급한
귀향을 기다리느라
아직 떠날 수는 없다
안개를 풀어내는 안개
그곳에서 아버지는
막차를 기다린다
첫차를 기다린다
막차는 첫차이다
밤에 출발하여
안개라는 형식으로
새벽에 도착한다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린다
그리고 또다시
길로 태어나는 아버지
― 나는 아직 나의 삶을 유보하고 살아야 한다
세상에 비가 내리면
나는 비로소 갭니다
세상이 젖어갈수록
나는 맑게 갭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해가 뜨면
나는 너무 무겁게 쓰러집니다
아, 공단동의 불빛은 환장하게 아름답다
눈부신 불빛 아래로 생쥐 한 마리가
눈빛을 가리고
차갑게 달아나 들쥐가 되고 있다
발광하다 잠시 쓰러진 세상
살아있기 위하여 오늘 소모해 버린
꿈과 사랑의 유량을 측정(SOUNDING) 한다
별똥별 하나가 위험하게
화려한 불빛 속으로 뛰어들고
나는
잔잔하게 잠든 실신한 바다가 되고 싶다
길을 간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피어난
코스모스가 다시 그 설레는 꽃길을 간다
앞으로 나란히 구령에 맞추어
가을 아침을 꿈길인 듯 간다 그 꽃길에서
꽃들이 제 몸을 뜯어 날린다 꽃잎이 지고
또다시 어디론가 날개를 펴고 간다
꽃 속에서 여자 하나가 나와 버스를 탄다
벌써 빈 몸인 것들이 따라 올라탄다
오늘 같은 날은 아무에게라도 깃들고 싶다
그러나 버스는 여전히 흔들리고
흔들리는 여자는 서 있다 흔들리며
빈 꽃대궁들도 서 있다 여자는
속옷을 입지 않았고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가슴에서 불그레한 향기가 흘러넘친다
옷이 젖는다 여자는 계속 웃으며 눈길을 준다
꺼칠한 가을의 가슴들은 스며들고 싶다
버스를 내려서도 꿈속까지 밀려들고 싶다
여자의 몸에서는 꽃 냄새가 흘러넘치고
눈 속 가득히 날개의 하늘이 푸르다
어린애처럼 폴짝폴짝 뛰어가는 짧은 치마
안아주고 싶도록 귀엽고 예쁘다
골목길로 들어서는 가을의 뒷모습이
첫사랑 같다 처음부터 순결한 것은 아니었다
속옷바람으로 그림책을 보는 여자들 사이에서
담배 연기처럼 옷을 갈아입는다 집에서
여자들은 속옷으로 갈아입고 지낸다
그렇게 가을은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또다시 사람의 숲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있다
겨울은 곧 수산물 공판장으로 입항하리라
갈치를 미리 낚아온 사람들은 비늘을 번뜩이고
바람의 꿈과는 상관없이 오늘도 돌고 있는
세상은 갈쿠리에 찍혀 질질 끌려가고 있다
63 빌딩은 63층 때문에
당당히 63 빌딩일 수 있다
다른 모든 것을 만족하고
층이 많아도
63층이 없다면 우리는
63층짜리 빌딩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층이 없어도 된다는
그런 말은 아니다
허공 중에 63층만
그 층의 칸만 달랑
묻혀있을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63층 빌딩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직 뼈로만 직립하는 11월
마른 나뭇잎들은
그 길가로 물러서서
길 끝으로 길을 트며 가고
부스럭거리는 영혼을 위하여
나의 뿌리는 그렇게
밤새
더욱
투명해지기 위하여,
목숨마저
깎아 내려야 했다
그렇게 길은 열리고
나의 고향은 이제
앙상하게 거덜 나 버린
늙은 창녀이다
그래도 그런 고향을 팔아
고향에 가 닿으려는
나 또한 늙은 창녀가 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폐허
그런 늙은 창녀를 나는 밤마다
온몸으로 사랑하는 늙은 창녀
어머니의 젖무덤에서
젖을 떼면서부터
세상은 무덤이었다
즐거운 무덤 속
젖을 잃은 아이들이
한 때 울었지만
무덤은 언제나 우리에게
획을 긋는
사랑을 가르쳐 준다
― 사랑은 사랑할 때 사랑으로
떠나는 것이 더 큰 사랑이다
오늘도 별똥별이 밤을 그으며
떨어진다
죽음은 이제 우리들의 일상이다
바람에 일렁인다
죽음은 그렇게 가벼운 낙엽이다
― 낙엽은 무거워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돌아가기 위하여
스스로 몸을 자유롭게 버린다
천년을 두고 침묵하는 무덤은
이 지상의 모든 말들을 품고 있다
덜 피어난 꽃이 떨어질 때마다
별은 떠오른다
별똥별 하나 떨어지면
지상에 꽃 한 송이 피어나고
별의 무덤은 꽃이다
꽃의 무덤은 별이다
그렇다면
무덤 위로 떠오르는 별은
무덤 속으로 피어나는 꽃은,
나는 종종 의적이 되고 싶다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헛된 꿈을 함께 훔쳐내어
병원에서 혹은 병원 밖에서
가난으로 죽어가는
이웃의 꿈과 생명을 건져내는
이 시대의 의적이고 싶다
주의하라
고백하건대 나는
가끔 책을 훔치며 연습한다
번호로 불려 나와 있는 문패 앞에서
나는 당황한다 벽보다도 더 단단해지는
문 앞에서 왕왕 돌아서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친구를 불러내던 그
호박꽃 낮게 피어나는 담장은 이제 없다
그 아래로 서울의 강은 검게 흐르고
안개도 자주 낀다 의적이여
어둠의 발끝만 치지 말고 안개의 목을 벌목하라
그리고 네가 갇힐 감옥까지도 훔쳐내어라
하늘이 지상의 푸르름을 훔쳐내어
하늘 가슴으로 열리는 이 가을에
나는 바람 속 나무 같은 의적이 되고 싶다
문을 훔쳐내는 벽을 훔쳐내는
하늘을 사랑하는 죄인처럼
결국 나를 훔쳐내는 의적이 되고 싶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리하여 산 자는
말을 하고 싶다
죽은 자에게 말을 하고 싶다
죽은 자에게는 밤낮이 없듯이
이제는 죽음 또한
밤낮을 가리지 못한다
죽음은 분명히
삶보다 입이 더 크다
꽃 앞에 서면 벌써
나는 단풍이다
꽃을 보면 나는
뻔뻔스러워진다
벌어진 꽃을 보면
나는 더욱
부끄럽게 슬퍼진다
사랑은 그렇게
사랑 다음날 아침
비로소
모습이 보인다
다시 한번 꽃 앞에 서면
바람 속 겨울이다
그래도 살아있는 밀잠자리 한 마리
잠은 나보다 힘이 세다
번번이 나를 쓰러뜨려 놓고
목을 눌러
일어서지 못하게 한다
잠은 나를 깔아뭉개기도 하고
길처럼 지근지근 밟고 다닌다
나는 언제나 잠에게 당하고야 만다
잠은 힘이 장사여서
나를 항상 이긴다
잠이 겨우 지쳐 쓰러지면
나는 비로소 쪼그려 앉아 운다
처녀막을 잃어버린
그날 밤처럼 운다
그리고 노출을 경계한다
가장 부끄러운 얼굴과 손의 노출을
사람들은 노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얼굴과 손을 가리고 싶다
그렇게 겨울은 오고
겨울은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
가을 들불이다
쇠를 태우면 물이 된다
불이 물을 만든다
그것이 사랑이고
사랑은 언제나 흐른다
또한 물은 불을 다스린다
불이 약해지면
불끈 주먹을 꿈꾼다
그러다가 불의 목숨이 꺼지면
냉철한 쇠몽둥이가 되어
쓰러뜨린다
그래서 자유와 사랑의
모습은 길을 닮았다
새까맣게 타버린 들판에도
봄이 오면
사랑, 그 징그러운 손으로
겨우내 누워만 있던
땅을 들어 올리며
길을 들어 올리며 돋아난다
죄를 짓지 않아도 손톱이 쑥쑥 자란다
비가 오지 않아도 발톱이 쏙쏙 빠진다
구불구불하게 길을 구부리며 가는 사람들
저 질긴 꿈은 부러지지 않는다
제3부 바람이 바람에게 쓰는 편지
소문난 효자이셨다는 아버지 지금은
일곱 형제 모두 떠나고 할아버지 산소를
끝까지 사수하시는 낡은 고향 같은 아버지
치알봉 넘어 다니며 땔감을 져나르셨던
아버지 아들 없는 작은할아버지의
양자이셨던 아버지 지금도 명절 때마다
며칠씩 성묘 다니시는 아버지 산을 몇 개씩
이라도 넘어 혼자서도 잘 다니시던
그런 아버지 6・25 때는 총을 들고
마을을 엄호하셨다는 정자나무 같은 아버지
그 추운 겨울 보리밭에서 붙들려
죽을 만큼 얻어맞고 목숨을 간신히 비켜가던
인민군의 총살형 아래 쓰러져 업혀 오셨다는
아버지 경찰이셨다는 아버지
돌팔이 의사이셨다는 아버지
학교 소사이셨다는 아버지
방앗간을 운영하고 타맥을 하고 발통기를
돌리셨다는 아버지 농촌에 발붙이고 살면서도
논배미 한 뼘 없이 살 수 있었다는 아버지
노름판에서 하룻밤새 돼지를 팔고
집을 넘기고 끝내 어머니마저 날려 버리셨다던
아버지 짐승들 거간을 하고 논밭 중개를 하고 개
돼지를 잡고 밭수를 받아주고 산도 지켜주고
동네방네 아픈 사람 주사는 몰래몰래 찔러주고
늘 초상집에서 지내셨던 아버지 온갖 우환을
한 몸에 걸치셨던 아버지 세월의 망령들과도
한데 어울려 함께 춤추시던 아버지 그러나 이제는
병들고 귀 멀고 거동도 못하시는 아버지
출두요구서나 임의 동행권은 아직 죽음으로부터
받지 못한 아버지 측근이라곤 늘 다투시며
함, 께, 해, 온, 어, 머, 니, 뿐, 인, 아, 버, 지,
홀로 일어선 사람은 홀로 걸어가지 않습니다
꿈은 야행성이다 내 몸에는 박쥐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산다
박쥐는 쥐도 아니고 새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박쥐를 잡는다 새와 쥐도 너무
눈이 부시면 세상을 볼 수가 없다
동굴 속이나 돌 밑에서 낮잠을 퍼질러
잔다 낮에도 꿈을 꾼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까마득하게 깊은 꿈을 꾼다
거꾸로 매달려 불안하게 잠을 자는 젖은 영혼
잠버릇이 고약한 놈은 자주 떨어지고
침묵 속으로만 쏘다니는 놈은 잠꼬대가
심하다 잠들지 못하는 놈도 있다
몸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안개
또다시 안개를 들이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어둠이 골목마다 몰려와 진을 치고
검문검색이 강화되면 나의 박쥐들은
깨어난다 파닥
긴 날개를 펼쳐보고 드디어
우리들의 적막 속으로 날아오른다
침묵의 어둠 속으로 세상은 보인다
우리를 잡으려고 밤하늘 깊숙이 던져 올리는
검정고무신 사이로 가출하던 길도 보인다
꿈속처럼 보리밭이 있었다
보리피리 들려오고 있었다
보리밭에 아기하나 있었다
넓디넓은 보리밭이 있었다
아기눈은 깜박이고 있어다
보리밭에 별빛하나 있었다
아기별은 자라나고 있었다
보리밭에 바람 불고 있었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있었다
버리어진 아기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보리밭에 울음소리 있었다
보리밭에 뱀이하나 있었다
아기하나 쓰러지고 있었다
보리밭에 죽은 아기 있었다
보리밭에 출렁이고 있었다
보리밭이 엉켜 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게도 슬픈 아기 있었다
보리밭에 바람 불고 있었다
보리밭을 떠다니고 있었다
울음소리 그칠날이 없었다
보리밭은 잠들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바람 속
보리밭은 붉은 울음 울었다
털었다
새벽잠을
나왔다
밭으로
아름답다
여행은 때로
본다
펼친다
노트와 만년필
열렸다 이슬은
피었다 잎사귀마다
고왔다
눈동자보다
생각났다
유년의 구슬
싶었다
만져보고
울었다 한참을
맞췄다 입을
되었다 한 몸이
붙었다
이슬과 잉크
돌아섰다 영원히
흐느꼈다
사랑할 수 없는 애인
한다 사랑을
흘린다 피를
싶다 속삭이고
내 사랑 오늘도
않는다 섞이지
부른다 너를
그러나
잠근다 문을
바람 부는 날 여자들은
치마를 입는다
여자가 된 여자들이 치마를 입는다
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바람을 분다
바람 부는 날 여자들은 치마를 입는다
아직 여자가 안된 여자들도 치마를 입는다
여자가 되고 싶은 여자들도 치마를 입는다
이미 여자를 지나와 버린 여자들도 치마를 입는다
바람이 바람을 부르는 날
여자인 모든 여자들이 치마를 입고
바람으로 불리고 있다
헤어나지 못할 하늘이 될 때까지
바람 부는 날 여자들은
치마를 입는다 그런 여자들이
비가 오지 않아도 깊이 젖고
행복하다는 듯이 짧게 웃는다
바람이 부르는 날 여자들은
치마를 입고 몸을 벗는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 여자들은
하늘 한쪽이 허물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런 바람을 입고 홀로 잠든다
열 평 남짓 집 한 채를 짊어지고 갑니다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이 살던 집을
어떤 시러베아들이 번쩍 들고 당당하게 나가
바다에 내던지고 있습니다 완강하게 버티던
무허가의 꿈이 대번에 용가자미가 되고
때로는 도다리가 되어 헤매고 있습니다
아, 저 미칠 것 같은 눈빛을 보십시오
하루 종일 용골차 위에서 걷고 있는 두 사람
그러나 바다에 버려진
집 한 채의 꿈은 끝내 부서지지 않습니다
도로를 질주하는 승용차들은
거대한 쥐를 닮았다
쫑긋 세우고 있는 귀는 깊다
백미러는
달리기 위하여 있다
추월하기에 용이하다
꼬리는 길고
붉은 눈빛이 무섭다
사람을 왕왕 잡아먹고
내빼는
거대한 쥐들이 무섭다
그러나 요즘 쥐들은
또한 슬프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다리가 튼튼해도 가지 못한다
경인고속도로 위에서
머뭇거리는 쥐들이
오늘도 빵 빵 빵 운다
커져서
하염없이 작아지는 쥐들
결국 독 안의 쥐들이 많다
난장에 내던져진 삶 속에서도,
들풀들은 사랑을 소중히
간직할 줄 압니다
사랑은 사람을 사소하게 만들고
사람을 섬세하게 만들어
기릅니다
가난한 들판에 피어난
제비꽃 가슴의 자유를 보며
삶터와 장터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고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새들이 물속을 헤엄쳐 다닌다
그러나 악어 놈은 일 년에 한 번
사랑을 만나기 위해서만 노래한다
길을 잘못 든 청둥오리는
악어에게 잡혀 먹히고
뱀은 뱀을 잡아먹는다
그 긴 뱀을 씹지도 않고 삼키는
뱀의 입과 소화기관
너무나 긴 뱀의 영혼
우리들의 숨통을 칭칭 감는
햇살의, 무서운 이빨 아래서도
악어는 살아있다
가뭄이 악어 연못을 몸살 나게 하고
살이 쩍쩍 벌어진다 벌어진다
그런 악어의 가죽을 벗겨 들고 다니는
악어들, 무서운 악어 떼
그 악어의 발톱 아래서 떨고 있는
꾸역꾸역 하늘 아래로 걸어가는 새들
하늘 속으로 날아다니는 물고기들
결국 물고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한 여자가 바다처럼 눕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기어가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고목처럼 앉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일어서고 있습니다
여자 같은 바위가 있습니다
또 한 여자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또 한 여자가 뛰어가고 있습니다
또 한 여자가 날아가고 있습니다
또 한 여자는 바다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한 여자는 하늘이 되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산이 되고 나무가 되고 있습니다
여자 같은 바람이 낮게 불고 있습니다
공기 같은 여자가 허탈하게 웃고 있습니다
울면서 한 여자가 강을 입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들길로 달아나 사라지고
까치집 같은 남자가 하늘까지
빈 미루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리워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그리울 때
시장에 갑니다 방물장수 튜브다리보다도
더 많이 닳아버린 어머니,
나는 종종 바퀴 달린 낡은 좌판이 되어
땅 속 깊이 뿌리내린 그림자를 더듬어봅니다
높으신 어머니는 늘 낮은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길이 길을 잃어 서성거리는 채소밭에서
이른 새벽 어머니가 뽑으신 무우
그 뿌리 끝으로 끌려 나온 가을 속에서도
우리들의 뿌리는 늘 젖어 있었습니다
시래기더미와 헌 가마니를 깔고
곡성장 어귀에 김치 거리처럼 쪼그려 앉아 계시는
어머니, 어머니!
불어 터진 라면을 건져 올리는 나무젓가락
그 사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둠의 의붓자식 같은 불빛으로 흔들리고 나의
수화는 이미 빈 남대문시장의 비닐봉지가 되어,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하늘을 휘젓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머니는 그런 나를 기다리시고
나는 아직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뿌리는 언제나 흙 속에 있어야 마땅하다
별의 뿌리 또한 어둠 속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게 환하다 우리는 아직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흙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게 신은
기둥을 일으켜 세워 하늘에 이르는
길을 우리들 몸속에 묻어두었다
별로 꽃피기 위하여 기둥 속
수관을 타고 오르는 목숨들
미처 하늘에 이르지 못한 것들은
해마다 별을 닮은 나뭇잎으로 지고
빈 몸으로 가볍게 서 있는 겨울나무들은
하늘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석유며 석탄이며
광물질의 힘으로 가득한 땅 속을 파헤쳐
전선이며 하수도로 바꿔 묻었다 썩지 못하면
양분이 되지 못하여 꽃도 피울 수 없는 것
사람들은 알전구 같은 별의 구근을 드러내고 있다
별이 피어나는 나무의 뿌리들이 뽑혀있는
공단동의 밤, 사람들이 만든 조화는 아무리
화려해도 이제 더 이상 씨를 남기지 못하리라
별의 바탕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둠이 마땅하다
별의 뿌리는 어둠에 묻혀 있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너무 외로워서 차갑게 불타오르며 우는 별
우리는 평생을 산에 오르다가 그 산이 닳아
없어지면 별이 된다 우리는 흙에서 비롯되어 하늘
에 이르는 것이 마땅하다 별이 자꾸만 떨어진다
입동 근처의 골목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몰려가고
있었다 산책길에 늘 궁금하던 명화원
아이들, 그 불구의 시간들이 떼로 몰려나와
맨발로 떨고 있었다 비틀어진 손이며 발이며
꺼칠한 등나무 같은 아이들이
불타는 짐승(?)들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방차는 불길을 잡아내지 못하고
뛰쳐나온 아이들이 떨고 있는 골목으로
물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명화원 마당의
배추들은 이마에 지푸라기를 감은 채
퍼렇게 질린 입술로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어둠은 또한 당연한 듯이 왔고
밤이 오는 길목으로 시간의 사내는
빠르게 지나갔다 계절의 변화가
변절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계절의 모습일까
죽음이 변절이 아니라면 나는
또 유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가
단풍이 한 잎 빛이었던 시절에도
나는 나의 꿈을 불 지르기 바빴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 죽은 아이들을
끄집어내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이제
뻣뻣한 아이들을 챙기는 예쁜 여선생의
엉덩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명화원은
밤새 불탔지만 아이들의 겨울은 태우지 못했다
7월의 경포대, 여기까지도
통조림 깡통을 뜯고 기어 나온
고깃덩어리들
의 명사십리
모래밭을 굴러다니고 있다
나는 이제 발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시에서
시 이상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이다
길이 바퀴를 만들어 굴리던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와
버렸다
바퀴 속에서 태어난 길 위로
또한 바퀴들이 달리고
창문 밖으로
길 밖으로 던지는 깡통들
결국 길 안에 쌓인다
그런 것들이 나는 요즘 무섭다
무섭지 않다
아!
어둠이 너무 환하다
그래, 이제는
세상이 너무 뻔하다
사람들은
너무 밝아서 탈이다
제4부 길은 이제 유복자를 낳은 늙은 미혼모가 되었다
1
어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가는
말발굽소리가 급하게 들린다
2
사약(賜藥)을 받고,
나라님께 절을 올리고,
긴 수염 적시며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쓰러지며 또다시
……, 다, 시, 한, 번,
태어나는 역사가 있다
3
사약 한 그릇 얻어 마시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 있는 많은 사람들
4
가난한 동네의 하늘에는 아직도
마을 사람들의 성품을 닮은
별들이 그렇게 부질없이 많이 반짝인다
1
한때다, 벚꽃, 한철도 아니고
다만 한때일 뿐이다
하얗게 내리는 나비 떼, 벌떼
나비 나비 벌 벌 날아간다
너무나 정치적인 벚꽃
떨어지고 있다 내가 아닌 내가
떨어지고 있다
시퍼렇게 눈 떠오는 이파리의 어둠
길고 긴 너무나 아득한 길이었다
껍질 속으로만 끊임없이 파고들던
깜깜한 잠행
이제는 나아가야 하리
껍데기 찢어지는 아픔 속으로
걸어야 하리,
길가로 밀려나 자꾸만 넘어지면서도
이제는 끝끝내 가야 하리, 나가야 하리
2
곱게 잘 익은 석양 그 아래서
보리밭이 춥다 기껏 풋보리인 나
사과 하나가 전설처럼 봄에 익는다
크게
가슴으로 익어 가는 서산 저물녘
하늘
그 고랑으로 길을 열며 걸어가는
허리 아픈 바람 그리고 나는,
3
이제 우리는
벚꽃 환히 핀 밤길을 벗으로 손잡고
(벌써 봄은 가버리고 없다)
상심한 별빛이 내리던 감나무
그런 나뭇가지들이 이제는 부러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내려와 꽃피던
별꽃들의 가슴속으로 썰렁한 바람이 일고
감꽃은 떨어져 수심만 가득 피어났다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감꽃을 모아
가난의 목걸이 속에서 웃을 줄 알았다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던 여울물소리도
이제는 떠나버린 아이들처럼 감나무를
기어오르지 못하고 가지만 부러지고 있었다
왠지 모를 근심과 물소리는 하류에서부터 쌓이고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시간 앞에서
고향 사람들은 하나 둘 쓰러져 간단하게 묻혔다
제 무덤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말없이 떠나가거나 야반도주를 시도했다
그렇게 날아가 버린 새들은
실성한 만길이 할머니가 남겨놓은 까치밥이
모두 떨어지고 눈꽃이 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깊이 상처 입은 감나무들은 낡은 바람만 휘감고
이제는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전락하고 있었다 그런 유배의 땅에서도
작은 기쁨들로 채워질 수 있다면,
우리의 시간은 헛되지 않으련만,
이제는 꽃도 없고 까치밥도 없이
그저 늙은,
어둠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앙상한 감나무에서 또한
상심한 별빛이 지고 드디어 가지가 부러지고 있다
이제는
새가 돌아와도 둥지를 틀만한 감나무 하나 없고
보리이삭 피어도 보리피리 불어 제칠 아이들도 없는,
부질없이 미나리아재비만 피어나는 그런 고향에서
또
다른 고향을 찾아 떠나야 하는 막막한 새들과 나는,
산이 불타고 있었다 붉은 폐허의 산이 또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회색빛 하늘에도 붉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는 붉게 뒤집히고 있었다 골짜기에서 유골의 집단이 고함치며 몰려오고 있었다 갈라진 바다에서도 유골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진군하고 있었다 대(大) 지진이 있었던 그 땅 속에서도 땅을 열고 말 탄 해골들이 창을 던지며 덤벼들고 있었다 이미 녹색을 잃어버린 나무에서는 유령들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널 속에서 막 뛰쳐나온 유골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대열 속으로 들어가 거대한 아비규환이 되었다 대하(大河)로 몰려오는 주검들이 죽음을 만들고 있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물에 빠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흰옷을 입은 백골들이 붉은 십자가를 흔들고 있었다 뱀들이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다 처형대로 끌려가는 사람들과 나무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차라리 침묵으로 가득했다 용광로 속에서 시체를 건져 올리는 유골들은 끊임없이 그물질을 하고 있었다 해골을 가득 실은 마차는 아직 피 흘리는 주검들의 아우성 속에서 지체되고 있었다 아직도 칼을 빼들고 대항하는 사람들과 도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대한 화염과 연기가 온 세상을 뒤덮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그 위로 야윈 말을 탄 죽음의 신이 무시무시한 낫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드디어 어둠의 동굴이 열리고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달아나듯 그 속으로 잠적하고 있었다 몇몇 죽음을 피하여 절벽을 기어올라간 사람들도 결국 끌려가고 있었다 그런 세상 위로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고 당신과 나는 죽어도 죽지 못하는 영혼으로 무덤을 둘러보며 노래하고 있었다 새벽이 되어도 산송장들이 몰려나와 문을 두들이고 있었다
아침 여관방처럼, 어질러진 세상
나는 나를 빠져나와, 풀리지 않는 숙취로,
오늘도 세상은 기어이 흐리고
비까지 내린다 남아있는 세계와 반세계
아직도 사람들은 숲에 잠들어 있다
한강은 불안하게 불안하게 여울지며
아직은 흐르고 있다 이어지고 있다
범국민대책회의에서 계획했던
여의도 집회는 날씨 관계로 연기되고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긴 한다는데,
비는 그치지 않는다 강은 흐르고
그 위로 배추색 철교가 지나가고 있다
낡은 국회의사당, 63 빌딩, 쌍둥이빌딩,
당인리 발전소……, 굵직굵직한 건물들
그 시대의 허리를 자르며 지나가는
여섯 칸 전철
당산철교 위에서 엇갈리는 시간의 육체 속에서
그래도 허물어지지 않고
버텨내는 세상은 지금 회색에 휩싸인다
작은 차들이 달리는 반포대교
그 밑으로 푸르게 푸르게 흐르는 강물
언제 들고 일어설지 모르는 강물의 힘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회색도시의
꿈은 길다
검문소에도 비는 내리고 빗발을
가로막으려는 바리케이드가 비에 젖는다
우산이 자꾸만 뒤집히는 시대
성산대교는 좁아터지고 신선도 없는
선유도는 오늘도 공사 중이다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에는 지금
뿌리 뽑힌 풀뿌리들이 비를 맞고 있다
달리는 차들은 싸가지 없이 흙탕물을 튀기고
내뺀다 달아나 없어져 버린다 아모레
“미로”는 그렇게 당당하게 서 있고
신촌은 오늘도 새로울 것도 없이 바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그 자리
방울나무 아래에 포은 정몽주 선생님은
시커멓게 타버린 모습으로 서 있다
선죽교는 오늘도 말이 없고 강물은 머뭇거린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대나무들은 일제히 쓰러진다
허리를 펴지 못하고 쓰러진 채로 강이 된다
안개는 죄를 모른다 안개는 안개를 벗어도
안개로 남는다 안개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몸으로 살다가 아무런 증거도 없이 떠난다
그러나 주범은 역시 안개일 뿐이다
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사람들의 운명은 심하게 뒤바뀌고 손을 쓸
틈도 없이 함부로 결정되곤 한다
안개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숨통을 틀어막는 손도 보이지 않는다
환상 같은 안개만 끊임없이 번져갈 뿐
수상한 것들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 안갯속으로 한 떼의 발자국 소리가
다급하게 달아나고 호루라기의 숨 막히는
목소리가 뒤쫓아간다 그러나 안개는
처음부터 도망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안개는 안개를 체포할 수 없다
모든 안개를 잡아들일 수는 없으리라
그런 정체불명의 사내 하나가
밤의 길가, 가로수 사이에 쓰러져 있는
임산부를 그냥 그대로 남겨놓고
안갯속에서 안개로 걸어 나오고 있다
비가 와도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비가 와도
머물지 못하고
걸어갑니다
걸어가게 합니다
비가 와도 죽음을
일으켜 세웁니다
비가 와도 자꾸만
안팎으로
부릅니다
불러냅니다
연륙교에서 지금
그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위험할 것도 같습니다
바람이 불고
우산은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스스로
우산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은 그렇게 늘
접었다 폈다 합니다
지평선을 지나
수평선을 걸어
사랑 찾아 흐르다가
산을 보고 웃어주고
섬을 보듬어
없는 사랑 잉태하면
낙태수술받은나는절망들만우글대는하늘을빈가슴으로품는다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 바람이 돼라 하네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 가을이 돼라 하네
가을바람은 자꾸 날더러 단풍이 돼라 하네
마지막 남은 목숨 사랑만 하라 하네
오직 사랑으로만 타오르는 꽃이 돼라 하네
가을바람은 자꾸만 나에게 바람이 돼라 하네
가을바람은 자꾸만 나에게 단풍이 돼라 하네
가을바람은 자꾸만 나에게 가을이 돼라 하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이 돼라 하네
봄으로 다시 꽃피는 가을이 돼라 하네
가을바람은 자꾸만 날더러
떠나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는 바람이 돼라 하네
골목 끝으로 바람이 불고
아이들이 따라 들어가
겨울 이야기로 잠든다
빈 길에는 이제
눈발만 나다니고
문을 걸어 잠근다
한 사내의 뒷모습이 반쯤 지워지고,
무너질 듯한 담장 밑에서
고구마를 구워 팔고 계시는 어머니
등에 업힌 동생이
포대기 속에서 울고
곁에서 소아마비 여동생은 춥다고
춥다고 칭얼거리며 파고든다
찬바람이었던 나는 언제나 그런
가족을 피하여 돌아다니기만 했다
시린 손을 불어 보지만
떨어진 장갑 같은 입김은 마음을
우리들의 가슴을 덥히지 못한다
나도 손님들처럼
군고구마 한 봉지 사들고
집에 들어가
옛날의 따뜻한 이야기가 되고 싶다
철공소에서 팔목을 잘린 나는
잉그락 같은 정열만으로
이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드럼통의 설움 속에서 시커멓게
몸을 태우는 사랑의 영혼으로
이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
눈발이 길을 잃고 흩날리는 날엔
가끔은 따뜻했던, 반쯤 지워진 아버지
가슴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그렇게 고구마는 몸을 익히고
한 번만이라도 따뜻해지려고 애쓰고 있는 오늘,
길만 있는 길은 너무
외롭습니다
길만 걸어가는
길은 너무 무섭습니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길은 너무 무섭습니다
사람만 가는 길은
너무 외롭습니다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너무 무섭습니다
오직 길만 걸어가는
사람은 너무 외롭습니다
길 아닌 길로 가는 사람은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길은 그래서 늘 위험합니다
외나무다리가 강 위로 걸쳐져 있습니다
그 위를 아버지가 가고 있습니다
팔 병신인 아버지가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없는 팔이 되어
외나무다리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다리병신인 아들의 없는 다리가 되어
아버지는 지금 건너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다 큰 아들을 업고 갑니다
아버지가 산 고등어 한 마리,
아들이 들고 가끔 흔들며 건너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역사가 아들의 역사를 업고
아들의 역사가 아버지의 역사를 흔들며
외나무다리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역사를 업고 언제나
앞장서가는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외나무다리가 걸쳐져 있는 강
그런 강물 속으로
지금 징검돌이 던져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을 건너야 할 우리들이 있습니다
1
영문도 모를 바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은 그 자리에 바다는 있습니다
바람의 영혼으로 바다는 살아나고
새로 생겨나는 하늘에 별무덤이 떠오릅니다
2
나는 아직도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산이 되고 바다가 되어 꽃으로 피어납니다
사람의 길을 찾아 나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당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
우리는 모두가 무덤을 향하여
열린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무덤의 평화 그
무덤다운 무덤으로 남아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나 아직은
죽어있어도 나의 무덤을 갖지 못했습니다
무덤은 죽음을 살아있게 하는 형식입니다
스스로 떠오르는 무덤은 그래서
죽음으로 다시 태어나 늘 반짝입니다
우리들의 사랑도 그런 무덤으로 남아
죽어서도 행복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습니다
사내 하나가 땅개 한 마리와
바닷가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땅개 한 마리가 사내를 따라
바닷가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사내와 가장 작은 개가
바닷가를 돌아 해안선이 되고 있습니다
걸어가는 사내와 달려가는 땅개는
바다가
되지 못하고 바닷가를 가고 있습니다
뒤주 속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가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비어있습니다
약삭빠르게 눈빛을 쏘아대는
쥐들의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아직 용서받지 못한
사도세자의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죽어가던
그날의 울음소리가 아닙니다
배비장이의 울음소리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우리들의 울음이
갇혀 있습니다 속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쉽게 토해낼 수 없는 불덩이의 가슴
우리들의 몸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모닥불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밖에서 한 번 더 못질하는 동안
안에서도 한 번 더 못질하고 있습니다
그런 뒤주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뒤주의 감옥 속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부서지도록 소리쳐
불러보지만 사람의 역사로만 남아 있습니다
거리에는 이제 직립한
관들만 걸어 다닌다
눕지도 못하는 관들의
세상
나는 차라리
관 뚜껑이라도 열고 들어가
나란히 눕고 싶다
연애가 무서워지는 11월까지,
누구 앞에서나 스스럼없이
가랑이를 벌리는 늙은 창녀
길은 이제 그렇게
누구에게나 떳떳하게 밟히는
더 큰 가슴의 길이고 싶다
홀로 걷는 1월이 아니라
나란히 눕는 11월이고 싶다
길은 그렇게 늙은 창녀가 되었다
그런 창녀는 한때 애국자였다
나는 따뜻한 밥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
누구나 오셔서 드십시오
식기 전에 잡수십시오
하늘은 나의 밥입니다
마음이 고픈 사람
누구나 오셔서
맛있게 잡수십시오
https://youtu.be/hgbnwnHyQMM?si=p1nzugDHOTRIkftI
https://youtu.be/ESRSoMou_Qs?si=5YPjU2VC_h_HgB22
https://youtu.be/ESRSoMou_Qs?si=5YPjU2VC_h_HgB22
https://youtu.be/0oXixCaLTek?si=V2UjohGDIqpr1rNg
https://youtu.be/a-ZJNzCkNbk?si=Q2AMxs3zxyej9z9c
https://youtu.be/ELFIN6sY-bI?si=OnlZoqmJj_1z6Rsw
https://youtu.be/2Kf1YoAgUcg?si=uMh1DuF4A2OvmLuK
https://youtu.be/nZ5nDCVDo1Y?si=XiCiYaE6MBwAtIRH
https://youtu.be/EMiGU2rAp88?si=5hW5oE4JyYHkkIg0
https://youtu.be/K1Cnv4RVRC4?si=UWvcoLm3JQOH2v9I
https://youtu.be/TfTmYUn3sAI?si=jH5fftUO9OfLNzAL
https://youtu.be/a5ndGzx-9OQ?si=RdpdLSXEri1IagIC
https://youtu.be/n3eNx8hn9pQ?si=sHFhs1atTMcnjzKr
https://youtu.be/2bmb77THrjU?si=5gK3wTbWMFQWTCm6
https://youtu.be/qb-fUzXo3R0?si=n6RwMRbYwf81VNsm
https://youtu.be/HJfu-RiQ3OM?si=uVm0U16eErHdrRZi
https://youtu.be/faf_-V6oRgM?si=Hs51wtVXimLi9vqw
https://youtu.be/iy2CsM21SSQ?si=pZZ9fu3h1Q_8hhlh
https://youtu.be/iy2CsM21SSQ?si=pZZ9fu3h1Q_8hhlh
https://youtu.be/n3eNx8hn9pQ?si=ATKr7QuVnOal_mJ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