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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ul 31. 2024

꿈은 깨어지고



꿈은 깨어지고



꿈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幽霧)에서.


노래하던 종다리,

도망쳐 날아 나고.


지난날 봄 타령 하던

금잔디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大理石) 탑(塔)이 ―

하루 저녁 폭풍(暴風)에 여지(餘地) 없이도,


오 ― 황폐(荒廢)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塔)은 무너졌다.


_ (1935.10.27. 탈고. 윤동주 19세)

_ (1936.07.27. 개작. 윤동주 20세) 

 


1935년 10월 27일에 탈고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 에는 개작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상당히 뒷부분에 실려 있는데 나는 탈고한 날을 기준으로 해서 앞부분에 싣고 먼저 다루기로 한다. 앞에 소개한 <공상>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공상>에 등장하는 탑 이야기가 여기서 이어지기 때문에 <공상> 다음에 이어서 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서를 바꾼 것이다. 1936년 7월 27일 작품으로 되어 있으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약 9개월 후에 개작한 작품이다. 화자가 현실에서 느낀 안타까운 감정이 영탄법을 사용함으로써 고스란히 전달되는 시다. 일제의 침략으로 황폐화된 조선의 모습과 이상을 잃어버린 화자의 고백을 통해 뼈아픈 민족적 상실감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살펴보면 많은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시에 나타난 종다리 이미지도 맨 마지막 시에 다시 등장한다.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으로 쓴 <봄>에는 즐거운 종달새 이미지가 의미 있게 다시 나온다. 


언제나 현실은 괴로운 법, 차라리 꿈을 헤매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종달새는 달아나고, 탑은 무너지고, 금잔디도 쑥밭이 되어버린 허무의 질곡만이 가로놓여 있다. 깨어진 꿈, 무너진 탑,... , 어디다 이상의 푯대를 세울 곳도 없다. 처참하게 현실 의식만이 피멍 들게 널브러져 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 전체의 선이 무너진 자리, 가혹하게 짓밟힌 이 시대의 윤리와 역사적인 희생물로서의 개인이 숨 쉬기엔 너무나도 산소량이 부족한 시기의 좌절감이 잘 드러나있다. 완전히 절망할 줄 알아야만이 희망의 새 순에 닿을 수 있는 시대 상황이었다.


나라를 잃은 뼈아픈 민족적 상실감을 느낄 수 있는 윤동주 시인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모란봉에서><종달새> 등이 있다.(이렇게 아예 종달새라는 제목의 시도 있을 정도로 종달새 이미지는 자주 등장한다.)


'유무(幽霧)'는 '그윽한 안개'라는 뜻이다.

'그윽한 유무'는 겹말 표현이다.

'금잔디'는 잡풀이 없이 탐스럽게 자란 잔디를 말한다.


* 원문표기

- '떴다' -> '떳다'

- '노래하던' -> '노래하든'

- '도망쳐' -> '도망처'

- '날아나고' -> '나라나고'

- '금잔디' -> '금잔듸'

- '무너졌다' -> '문허젓다'

- '새긴' -> '색인'

- '하루 저녁' -> '하로져녘'

- '깨어졌다' -> '깨여졋다'

- '무너졌다' -> '문허젓다'          


나는 윤동주 시인의 책을 어떻게 만들까? 우선은 윤동주 시인의 백여 편의 시들을 쓴 순서대로 편집을 할 예정이다. 윤동주 시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시와 삶이 함께 성장했는가를 알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에서 배운 것들로 나는 또한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를 탐구하는 책을 만들 예정이다. 법정스님께서 머물렀던 불일암을 다시 깊이 생각하며 법정스님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배울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기본을 다시 생각하는 마음으로 윤동주 시인, 백석 시인, 정지용 시인, 한용운 시인, 이육사 시인, 김종삼 시인, 이용악 시인, 김수영 시인.......,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 비하여 오늘날의 시인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모국어로 시를 쓸 수 없었던 암울한 시절에도 윤동주 시인은 꿈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다. 오늘날의 시인들은 얼마나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있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시절에 시를 쓸 수 없다는 것은 오직 게으름 때문이다. 멀리서 검은등뻐꾸기가 운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운다. 욕심 벗고 욕심 벗고 욕심 벗고 운다. 소똥구리가 울음소리를 뭉쳐서 굴린다. 말은 똥이다. 시도 똥이다.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가 시를 쓴다. 말을 굴리는 말똥구리가 시를 쓴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뻐꾸기는 울고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날아오른다.   


꿈속에서



꿈속에서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경쟁적으로 희사금을 기부했다

무기명으로 뭉텅이 뭉텅이 쌓었다

나는 그 많은 돈다발들을 모았다

원로회에 제출했는데 그냥 가란다

잔치는 끝이 났으니 돌아들 가란다

금액 확인 하고 가야겠다 말한다

금액은 철저히 비밀이라고 말한다

마을 규약이 그러니 돌아가라 한다

불합리한 규약은 바꾸어야만 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 투표를 한다

뭔가 찜찜했던 사람들 환하게 웃는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다


센강은 흐른다



센강이 흐른다

한강이 흐른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강이 흐른다

센강이 흐른다

한강에는 배가 드물고

센강에는 배들이 많다

강물은 흐르고

센강은 대서양으로

한강은 태평양으로

쉬지 않고 흘러서 간다

사람들은 강을 끼고 살고

강은 사람들을 품고 산다

강은 둘 다 말이 없는데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강남과 강북이라 말하고

좌안과 우안이라 말한다


https://youtu.be/MZf522i19XE?si=ByruzCjy3-tXDO0o

https://youtu.be/vzUsUSrXAyc?si=rk1cIhJPdZ6zzBN4


https://youtu.be/EuFcsQAAXWY?si=maO96W1wZtSWN95p

https://youtu.be/z5_ESrq16fU?si=m1SF8v7a-iZOK2QQ

https://youtu.be/1Dq7M8MGgwI?si=74sTfzb6iY_QPRDG



집 불일암 - YouTube

https://youtu.be/YtO3mWHpXHs?si=SJjrkASn0Eml_EvI

https://youtu.be/G1O3o-GjDaw?si=t5W8iMTviuXQAu04

https://youtu.be/56NraupG6GI?si=UbSkDETM0BAYoXU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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