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호 시인의 포토에세이
― 김인호 시인의 포토에세이
첫눈의 숫눈 위로 그리운 이름이 걸어왔다
따뜻한 손 편지처럼 이름이 하나 걸어왔다
『나를 살린 풍경들』이 바다를 건너서 나에게 왔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한라산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숨결로 그린 수묵화들
손으로 쓴 글이 아니라 마음의 발로 찍은 발자국들
한라산이 어찌하여 지리산 뒤에 솟아있는 것이더냐
섬진강은 어찌하여 바다를 건너 마음까지 적시더냐
*
내가 아는 시인들 중에 가장 정답고 가장 따뜻하고 가장 잘 생긴 시인, 김인호 시인이 눈설레 속으로 걸어간다. 아직은 어두운 새벽에 지리산으로 간다. 숫눈길에 발자국을 찍으며 노고단으로 간다. 마고할미에게 인사를 하고 섬진강을 내려다본다. 다시 돌탑을 돌아 반야봉을 올려다본다. 더 멀리 천왕봉을 우러러본다. 꿈처럼 나도 따라서 섬진강을 보고 지리산을 본다. 김인호 시인의 따뜻한 숨결처럼 아침이 번진다.
김인호 시인은 조국 대표를 닮았다. 아니다. 조국 대표가 김인호 시인을 닮았다. 김인호 시인은 조국보다 더 부드러운 미남 시인이다. 그리하여 김인호 시인 곁에 서면 누구라도 따뜻하게 피어나는 들꽃이 된다. 김인호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김인호 시인의 고향은 광주의 변두리였었다. 광주댐 가까운 곳에서 김인호 시인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다. 인천의 직장 동료들과 장례식에 참여하였고 가까운 소쇄원과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나를 살린 풍경들』이 30년 넘은 인연의 끈을 풀기 시작한다.
김인호 시인의 출발은 편지였다. 『땅끝에서 온 편지』『섬진강 편지』『꽃앞에 무릎을 꿇다』『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나는 구례다』『구례의 들꽃』『나를 살린 풍경들』……, 나는 영광스럽게도 김인호 시인의 첫 시집의 해설을 썼다. (앞으로 언젠가는 김인호 시인의 꿈과 삶과 글에 대한 긴 글을 써볼 작정이다. 특히 이번에 받은『나를 살린 풍경들』은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곱씹어야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키워드는 녹명과 호모 심비우스 그리고 데미샘과 사성암이 될 것 같다.)
* 김인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땅끝에서 온 편지』해설
아름다운 삶과 진실한 시에 대하여
― 김인호 시인의 시세계
배 진 성 (시인)
시인 김인호, 내가 아는 그의 삶은 최소한 정직하다. 그리고 그의 시는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답다. 그의 시에는 때로 눈물과 분노가 함께 섞여 있지만 그것은 결코 절망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시적 역설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에 대한 절망 때문에 몹시 어둡고 아픈 시절을 꽤나 오랫동안 버텨왔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정도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제 사랑과 사기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시들은 우리에게 더욱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처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생명까지도 구할 수 있는 생명수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소중한 것들을 망각하고 일상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번 자신을 반성하고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줄 맑은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에는 그런 투명한 힘이 있다.
많은 좋은 시들이 그렇듯 그의 시는 결코 그의 삶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그의 삶 자체를 시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 때문에 이 험난한 세상을 버텨왔고 나름대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터득한, 사람이 살아갈 방법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도 정답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잔디밭 귀때기, 빈터에
관리실 마씨 할아버지 눈치 받아가며
일궈 둔 텃밭에
올봄에도 상추씨를 뿌렸다
씨앗 값이나 나오겠냐는
이웃들 알은체에
그래도 어디냐고
이 팍팍한 도시를 뚫고 푸르게 솟아날 싹들
그 푸름을 지켜보는 마음만으로도
어디냐고, 말없이 웃어주었지만
돌아오는 봄에는
고추에 가지에
오이넝쿨까지 올려
이웃들 한 움큼씩 나누는
고향의 마음씨까지 뿌려보리라
―「故鄕의 마음씨까지」
위의 시 「故鄕의 마음씨까지」는 시인의 따뜻하고 희망적인 마음을 가장 적절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걸작이다. 정서가 메마르고 감정이 거칠어져 사람들이 자꾸만 무서워지는 오늘날의 도시 생활은 우리 인간의 뿌리인 땅으로부터 멀어지고, 악의를 찾아볼 수 없는 식물들을 떠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삐뚤어진 우리 사회를 바로 잡고 우리들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 스스로 먼저 마음의 텃밭을 일구어 이웃들에게 잃어버린 흙의 향기와 추억 속의 고향인 넉넉한 인심을 되살려야 한다고 안타깝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팍팍한 도시를 뚫고 푸르게 솟아날 싹들>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의 어려움과 아픔을 돕고 거들어주는 상부상조의 공동체 생활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시를 쓰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계산법으로 텃밭을 일군다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바보 같은 시간낭비이며 궁상맞은 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텃밭 일구기는 시장에서 몇 푼이면 살 수 있는 채소를 얻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우리가 그저 편리함만을 좇아 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되찾기 위한 상징적인 농사법인 것이다. 우리의 터전이었던 농촌 공동체 생활을 버리고 그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주의적 도시생활을 추구하면서부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시인은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시인의 시 쓰기 역시 현대인들의 물질적인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우리들이 놓치기 쉬운 소중한 것들을 붙들기 위하여 오늘도 밤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며 시를 쓰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이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름답게 죽을 수 있다는 것 즉, 누구에게나 찾아올 죽음 앞에서 자신이 스스로 떳떳할 수 있으며 스스로 진실과 아름다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그런 삶을 위해서는 우선 역사를 두려워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작은 이익과 물질적 풍요 그리고 당장의 편리함을 위하여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세상은 날로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고 험악한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리라.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세상 탓을 하며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사실들을 직시하고 지구가 아무리 삐딱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세상 탓만을 하며 삐딱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욕심과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보다 먼저 자신의 삶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올바른 삶의 길과 올바른 사랑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늘 자신의 진실성을 용해시켜 길을 열어가며 살아가는 강이며 바다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그가 살아가는 즉, 우리 모두가 함께 일구고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좀 더 올바르고 참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늘 자신의 삶 속에서 이웃을 따뜻하게 응시하며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찾아 끝없이 순례를 계속하는 고독한 나그네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에게 세상을 말할 때도 언제나 관념적이거나 웅변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이 불분명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에 독선이나 개인주의보다는 모든 일을 함께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의견까지도 존중하여 수렴할 수 있는 그런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먼저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자세 때문일 것이다. 그는 늘 우리에게 속삭이듯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고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상징과 은유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떻게 보면 매우 상식적이고 상투적인 것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의 치밀하게 계산된 방법이며 또한 타당한 형식적 시작법인 것이다. 오늘날 많이 쓰여지는 일부 시인들과 평론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모호하고 어려운 시가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동감할 수 있는 그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것도 무작정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시적 태도와 그가 추구하는 시세계가 전문적인 시인이나 평론가들을 위한 시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하고 그들에게 쉽게 접근하고자 하는 시인의 따뜻하고 친절한 배려 때문일 것이다.
그는 늘 가까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올바른 삶의 방식과 진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상을 다시 한번 진단하고 보편적 진리에 가 닿으려고 노력한다. 그의 그런 마음을 웬만한 사람이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그는 어쩌면 오늘날 찾아보기 드문 진정한 수도자에 가깝다.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늘 그의 삶과 시가 하나로 일치되기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은 어떠한 세상일까?
그는 <이사 간 앞사람이 버리고 간 화분 하나>에도 물을 정성껏 주고 가꾸어서 <푸른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것은 그의 시선이 늘 버려진 사람들이나 역사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 닿아 있으며 결국 민중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희망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그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은 <지지리도 복 없는 년>으로 등장하는 <소천아짐>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아주 어렸을 적부터의 경험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완전히 체질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천아짐의 불행은 다름 아닌 딸만 다섯을 두고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소천아재는 딴살림을 차리고 <바람 같은 딸들도 다 제 갈 길 찾아가 버려> 이제는 외롭게 혼자 살아가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가장 가슴 아파하는 <소천아짐>의 삶과 자신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그는 한 때 괴로워한 일도 있었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삶이란 말이
우리 가슴에 못을 박았다
아름다운새별
세 쌍둥이 아이들
오줌걸레똥걸레에 묻힌
아내는
빨래판에 박혀 울었고,
나는
한꺼번에 우는
세 쌍둥이 아이들
어쩔 줄 몰라
돌아서 울었다.
―「여름일기. 1989」
딸 넷 끝에 본 아들놈
돌이라고
곡성에서, 담양에서
모 심다가 밭 메다가 접어두고
장마길, 천리 길 달려온
부모 형제
…… 중략 ……
서둘러 나와 출근 버스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하늘에는
별빛 대신
도시의 야광만 붉게 타오르는
야간작업 가는 길.
―「야간작업 가는 길」
둘도 많다는 세상에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도
노래를 잃지 않는
아내의 푸르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 중략 ……
똥기저귀에
묻혀버린 삶 속에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아내의 사랑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그는 세 쌍둥이 아빠로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아름이 다운이 새별이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섭섭했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는 첫째 딸을 두고 내심으로 아들이길 바라며 둘째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장남이었으며 마음이 여리기 때문에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유교적 관습 때문에 아들이 하나쯤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장남으로서 부모님의 이 같은 열망을 저버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그것이 굳이 남녀평등이니 가족계획이니 하는 말로 위장하는 것보다 오히려 인간적인 고백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도 아니고 한꺼번에 세 쌍둥이를 출산한 일이 그와 그의 아내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으며 그 당시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의 이름처럼 아름다운새별로 참으로 예쁘고 착하게 자라주어 그의 가족들의 희망이 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아내의 고집으로 막내아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소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내가 아는 그와 그의 아내의 인품 때문이라도 그들은 결코 <소천아짐>같은 삶은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 부부의 긍정적이고 성실한 생활 자세 때문에 행복할 수밖에 없을 그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갈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런 아픈 시절이 있었기에 <소천아짐>같은 민중의 아픔을 더욱 깊이 끌어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삶은 그렇게 윤택하지 못하다. 그들은 그 다섯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하여 밤낮으로 열심히 뛰어야만 한다. 그는 밤일을 해야 하고 그의 아내는 우유배달을 다녀야 겨우 살아가는 형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은 어려워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우리에게 그런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란 그렇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랑이란 다름 아닌 희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친절하게도 「욕망」이란 시에서 희망과 욕심을 구별해 줄 것을 간절히 당부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만큼 그에게나 우리에게 희망과 사랑은 중요한 일이며 우리들 삶의 목표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야간작업 마치고
돌아와
목 메이는 밥 몇 숟갈 뜨면
아내는
단칸방 커튼을 치고
나의 편안한 잠을 위해
아이들을 이끌고 골목길로 나선다
햇빛 나는 날에는
그나마 눈을 붙일 수 있지만
비바람 치는 오늘 같은 날이면
아내와 아이들을 내몰 수 없어
비에 젖으면서
핏발 선 눈
휘청이는 걸음으로 / 간다
두 칸 방이 소원인
“祖國 近代化의 旗手” / 나는
아파트 숲을 지나
공장 합숙 방으로
동냥 잠을 간다
―「동냥잠」
우유 배달 나갔다 와
벗다 벗다 혼자서는 못 벗고
술 덜 깬 나를 불러 벗겨 달라며
발이 물에 퉁퉁 불어 그런다는 말 감추고
애먼 장화 작은 탓만 하는
아내 마음
―「雨季.2」
밤샘 야간일 마치고 돌아와 자는 선잠 곁에
매달리는 아이에게 안마를 하라고 등을 들이대 본다.
…… 중략 ……
이제 저 아이도 자라
제 아이에게 등을 내어 주고는
“시원타 시원타” 그래 주겠지
―「家系」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도 그렇게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그의 희망인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오히려 함께 지내고자 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골목길로 내몰아내야만 하는 현실의 고통과 아이러니를 그는 그의 시 「동냥잠」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의 가장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인 「雨季. 2」는 그들 부부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의 아내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절창이다. 그들 부부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현실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솔직히 말해 그들 부부가 한없이 부러웠고 질투까지 느낄 정도였다. 또한 그들 부부의 사랑뿐만 아니라 아이들과의 관계는 또한 어떠한가? 물론 현실적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의 가족만큼 행복한 가족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족의 모델은 아닐까? 그런 질문에 그는 그렇게 간단하고 지혜롭게 우리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풍선> 같은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가족사에서 출발한 시적 관심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인간사회에 대한 탐구와 민족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의식을 확산시켜 나간다. 그래서 그냥 신변잡기쯤으로 읽으려는 독자의 시선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범상치 않은 그의 시를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일상사를 간략하게 기록한 것 같은 여러 편의 시들을 다시 읽게 만들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은유와 상징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리하여 그의 시들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적 관심이 매우 폭넓고 너무나 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정부패의 문제, 환경 문제,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대한 심각한 문제, 부실공사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정치적 폭력과 경제적 비리와 사회적 타락 등의 많은 부분으로 시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는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반드시 미국이란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신식민주의 사관에 빠진 미국이란 나라와 기타 강대국 등의 국제정세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 우리의 입장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런 그의 의식의 확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하고 쉽게만 보이는 그의 시들을 꼼꼼하게 생각하고 따져가며 재차 삼차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하고 있는 가족사는 단순한 시인 개인의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가 말하는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식들 그리고 그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소천아짐과 종도아제 그리고 이복형제들의 의미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시를 비롯한 많은 시들을 함께 읽어봄으로써 그 시 속에 담겨있는 의미들이 그렇게 간단하고 범상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동두천에서는
*누이의 거기에
콜라병이 박혀
우산대가 꽂혀
누이가 죽어갔고
오늘은
바다의 거기에
온갖 쓰레기가 박혀
바다가 죽어 간다.
* 윤금이 살해 사건
―「매립지.2」
이 나라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당신들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아십니까?
당신들은 그 아파트에 살지 않았었고
당신들은 그 다리를 지나가지 않았었고
당신들은 그 지하철 공사장 옆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없었고,
이 나라에서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버텨 온
당신들이 얼마나 독종인지를 아십니까?
당신들은 철근 몇 개 빼먹어서 돈 몇 푼 되냐고
당신들은 철근 몇 개 빼먹어서 어디 덧나냐고
서로서로 짝짜꿍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술판에 돈 판에 앞으로 먹고 뒤로 봐주고
그러다가 무너지고 터지면
오리발도 모자라 십리발
다들 쳐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라
한 두어 달 지나면 잊게 되고 말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암 그렇고말고, 서둘러
안 보이게 뚜껑만 덮어 버리면 그만이지
국가적인 큰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
그런 편한 마음으로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들께
아직 무너지지 않은 콘크리트와
아직 터지지 않은 가스 배관, 저희들은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아직 무너지지 않은 다리와 아직 터지지 않은 가스관이」
나는 지금까지 그의 시에 대하여 혹은 그의 삶에 대하여 극히 일부분만을 이야기했고 또한 깊이 있게 말하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짧은 지식과 삭막해져 버린 나의 감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시와 삶이 그만큼 폭넓고 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그의 고향에 대한 시선과 민중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기 때문에 깊이 있게 논할 필요가 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끌어안아 결국 깨달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그의 생활 자세와 작시법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재능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는 어느 누구의 아류도 아닌 자신만의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일 것이다. 그것은 오랜 습작기를 거친 연후에 자신의 체질에 맞는 자신의 시가 무엇인지를 알고 난 연후에 시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지 그의 시는 아름답고 그의 삶 또한 시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의 시들은 산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 진실로 아름답고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등대이다. 희망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등대가 없는 깜깜한 어둠이다. 그 어둠의 세상에서는 사나운 짐승들이 주인 노릇을 한다. 대부분의 인간들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청정비구니가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중요하고 따뜻한 고향 같은 등대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바람 찬 난장에서 길을 잃거나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좌초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최소한 뼈를 가지고 있고 그 뼈 속에 바다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오래된 고향인 그런 바다에서 등대 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며 영광인 것이다. 그런 등대 같은 희망과 꿈의 시인을 직접 만날 수는 없어도 그야말로 그런 시처럼 살아가는 그 사람의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대 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번 첫 시집이 거친 비바람 속에서 헤매고 있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도록 목숨 같은 불빛으로 타오를 수 있는 기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