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회록(懺悔錄)
― 참회록(懺悔錄)
1
월대천 징검다리 건너다가
물속의 달을 보며 참회록을 쓴다
나는 누군가의 가슴을 환하게
켜주는 꽃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내도 알작지 개구리바위 보다가
물속의 달을 보며 참회록을 쓴다
나는 누군가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노래였던 적이 있었을까
이호테우해변 폐동이왓 팔각정에서
말등대 불빛을 보며 참회록을 쓴다
나는 누군가의 밤길을 안내하는
등대 같은 별빛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호동 붉은왕돌할망당 폭낭과 볼레낭
아래 켜진 촛불을 보며 참회록을 쓴다
나는 누군가의 간절한 꿈을 밝혀주는
촛불 같은 기도였던 적이 있었을까
도두동 추억애(愛) 거리를 지나 도두항을 지나
도두봉에서 잠든 새들의 숨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사람은 꽃과 새가 함께 사는 별이라는 것을,
2
참회하지 않은 사람은 괴물이 된다
반성하지 않은 나라는 전쟁을 한다
돌이켜 생각하니 전쟁처럼 살았구나
나는 늘 전쟁의 포로가 되어 있구나
세상에는 전쟁보다 사랑이 더 많은데
나는 늘 전쟁 속에서만 헉헉거렸구나
나보다 좋지 않은 나라 미국 영주권이
500만 달러(약 71억 원)라고 말을 한다
나는 최소한 미국보다 훨씬 좋은 나라
알고 보면 나는 얼마나 부자 나라인가
나는 이제부터라도 나의 전국방방곡곡
나의 금수강산 구석구석을 사랑해야지
사람은 누구나 꽃과 새가 함께 사는 별
한 사람 안에는 강과 숲과 우주가 있다
그리하여 어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우주를 사랑하는 일이다
어느 날 밤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나는 지금부터 오직 사랑만을 해야겠다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가 꽃으로 피어있고
옹달샘의 숲 속에는 모두가 알을 품고 있다
3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 기숙사를
나오겠다는 말에 발을 걸고 싶었다
음식이 부실하다고 기숙사를 나와,
윤동주는 너무 부르주아는 아닐까,
아이코, 나는 늘 이 모양 이라니까
나는 아직도 우물 속에 살고 있다
누워계신 아버지 대신 나간 울력
두레박 타고 내려간 깊은 우물 속
나는 아직도 막힌 물길을 뚫는다
가난이 나를 우물에 가두었구나
선천성 심장병이 쪼그려 앉혔고
치료하지 못한 가난이 종교였다
지폐는 나뭇잎 한 장만도 못한데
나는 평생 부적만 믿고 살았구나
나는 이제 겨우 윤동주를 따라
기숙사에서 나와 큰길을 간다
*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인가
영주권을 500만 달러(약 71억 원)에 판매한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실히 장사꾼이 맞다
트럼프가 미국의 천박함과 경박함을 고백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사람이다
품격이고 국격이고 다 필요 없는 사람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협박을 해서라도
전쟁을 해서라도 무엇이든지 빼앗으려 한다
참으로 무서운 장사꾼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괴물이 나타났다 악마가 나타났다 위험하다
세계 곳곳에서 위험한 지도자들이 어지럽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남일 같지 않은 것은 왜일까
https://youtu.be/xhG1I8SikGI?si=yAV6xyMnoZnc8w7R
내가 나를 키우는 것이 인생이다. 사회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 사과나무를 키우듯이 나를 키운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고생은 행복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큰 행복이다.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을 읽으며 많이 반성하는 요즘이다.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던가? 내 몸 하나 살리기 위하여 살아온 것은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얼마나 기도를 하였을까. 사람의 그릇은 스스로 정한다. 나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딱 그만큼의 그릇이다. 이웃을 생각하고 동네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동네만큼의 그릇이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그만큼 큰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늦었지만 나도 이제는 나의 그릇을 좀 키워야만 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은 창씨개명을 하기 닷새 전에 지은 시이다.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서의 부끄러움, 반성과 성찰 등이 주제로 시를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슬퍼지는 시이다. 요즘은 '나라'를 생각하는 시절이다. 요즘 <서울의 봄> 영화가 우리들의 겨울을 녹이고 있다. 시인의 임무에 대하여 생각하는 요즘이다. 어떻게 되찾은 나라인데, 우리는 지금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언제까지 분단된 나라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야만 할까.
해방의 봄은 제주의 봄으로 불타오르고, 사일구의 봄은 오일육의 봄으로 잡히고, 서울의 봄은 광주의 봄으로 피바다 되었다. 삼월의 봄은 제주에서, 사윌의 봄은 서울에서, 오월의 봄은 광주에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지금은 투표만 잘해도 독립운동이요 애국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물욕에 눈이 멀어져서 스스로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지금도 친일파들의 세상은 아닐까. 그리하여 우리들은 스스로 기회주의자들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운 안락보다는 떳떳한 가난이 더욱 값진 것은 아닐까. 선택의 순간이 또 다가오고 있다. 우리들은 참으로 선택을 잘해야만 한다. 격랑의 세월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어떻게 살았는가. 송몽규와 윤동주는 어떻게 죽었는가. 우리가 어떻게 되찾은 조국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그 많은 피를 헛되게 하여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참회록> 이 시의 주제는 투철한 역사의식을 동반한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구절은 바로 이러한 자아 성찰의 자세가 극명히 나타난 것으로, 온몸을 바쳐 자신을 꾸준히 되돌아보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그렇게 하여 절망과 암흑의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화자는, 마침내 욕된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과 철저한 자기 참회의 실존적 자아 성찰을 통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다음은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속 참회록에 관한 내용이다.
윤동주는 1월 29일에 창씨개명계를 신고했다. 그런데 이 ‘1942년 1월 29일’이란 날짜는 반드시 그의 시 ‘참회록’이 쓰인 ‘1942년 1월 24일’이란 날짜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가 창씨개명계를 신고한 날은 ‘참회록’을 쓴 지 닷새만이다. 그래서 그 시기와 작품의 제목과 내용, 그리고 상황을 볼 때, 그가 ‘참회록을 씀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각오를 일단 정리한 뒤에 연전에다 창씨개명계를 신고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그걸 위해선 자신의 손으로 창씨개명계를 신고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각오했을 때, 그 뼈아픈 욕됨으로 인해 쓰인 것이 ’ 참회록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통상 시인 윤동주를 '민족 문학'으로 표현한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식민지 조선은 우리말조차 쓸 수 없었다. 20대 청년 서정주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당대 문인들이 앞다퉈 일본어로 시를 쓰고 작품을 발표했다.
그런 암흑기에 20대 청년 윤동주는 아름다운 우리말 시어로 식민지 현실 속 자신의 내면을 절절하게 성찰했다. 실제로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최현배 선생이 강의하는 조선어 수업 시간이 되면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경청할 정도로 우리말을 사랑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 자체가 식민 지배 자체를 거부하는 불온한 행위였다. 일제 말기 터진 '언어독립투쟁', 조선어학회 사건(1942~1943)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름다운 토박이 우리말을 모으고 연구하며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려는 행위조차 잔혹하게 탄압한 자들이 바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다. 조선어학회의 실질적 목대잡이(지도자의 순우리말)였던 고루 이극로 선생은 함흥경찰서로 압송된 지 3일 동안 일곱 번이나 물고문을 당하고 혼절했다.
잔혹한 고문의 결과 손톱, 발톱이 모두 빠지는 고통 속에 탄압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지막지한 몽둥이질과 비행기 태우기, 통닭구이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결국 악형 속에서 이윤재, 한징은 아예 예심재판도 열리기 전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 윤동주는 '저항 시인'임에 틀림없다.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런 윤동주를 우리는 '민족시인'이라 일컫는다. 항일민족시인 반열에 이름자를 새겨도 전혀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동주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 가운데엔 코뮤니스트들이 있었다. 그것도 절친이자 친분이 매우 두터운 인물이었다.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라는 제목으로 윤동주 유고 시집을 펴낸 강처중이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 절친 강처중에게 보내온 편지 속 시, <쉽게 씌어진 시> 등 5편과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떠날 때 강처중에게 맡긴 <팔복> <참회록> 등 7편, 그리고 종로구 누상동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했던 5살 어린 후배 정병욱(전 서울대 교수)에게 필사본으로 남긴 19편 등 모두 31편으로 최초 시집을 발간했다.
강처중이 발문을 쓰고 시인 정지용이 서문을 써서 1948년 정음사에서 세상에 처음으로 윤동주 시를 소개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정지용은 윤동주가 가장 흠모했던 시인이다. 유학 당시 윤동주가 도쿄에 있는 릿교대학을 그만두고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으로 옮긴 것도 정지용이 다녔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판 발행 당시 남쪽 사회에는 '백색테러'가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윤동주의 절친 강처중은 당시 <경향신문> 창립 멤버이자 조사부 주임기자로서 남로당 언론계 주요 인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 엄혹한 시절, 강처중이 앞장서 주도했기에 윤동주의 시는 당당히 생명의 빛을 보게 됐다. 그렇다면 강처중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1년 앞두고 개봉된 영화 <동주>(2016)에서 강처중(민진웅 분)은 재치 있는 인물로 잠깐 등장한다. 그는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부유한 한의사 집안에서 1916년 맏아들로 태어났다. 17살 청소년 시절인 1930년대 초반, 방학을 이용해 함경도에서 농민 100명을 모아 놓고 브나르드운동을 열성적으로 실천했던 항일독립투사였다.
그는 '영어도사'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영어에 능통했던 인물로 연희전문 문과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총명했다. 리더십도 뛰어나 연희전문학교 '문우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핀슨홀 기숙사 총사가 바로 윤동주, 송몽규, 강처중 셋이다.
그들은 서로 시작(詩作) 비평을 같이하며 깊은 우정을 나눴다. 강처중이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 발문에 쓴 내용을 보면 온순한 성품을 지닌 윤동주와 둘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동주는 별로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건만 그의 방에는 언제나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동주 있나?' 하고 찾으면 하던 일을 모두 내던지고 빙그레 웃으며 반가이 마주 앉아 주는 것이었다. '동주 좀 걸어보자구!' 이렇게 산책을 청하면 싫다는 적이 없었다.
(중략) '동주 돈 좀 있나?' 옹색한 친구들은 곧잘 그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노리었다. 그는 있고서 안 주는 법이 없었고 없으면 대신 외투든 시계든 내주고야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그의 외투나 시계는 친구들의 손을 거쳐 전당포 나들기를 부지런히 하였다.
(중략) 그는 간도에서 나고 일본 복강에서 죽었다. 이역에서 나고 갔건만 무던히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좋아하더니! 그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려니와 그의 아잇적 동무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2년 형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채, 마침내 모진 악형에 스러지고 말았다.
(중략) 그들의 유골은 지금 간도에서 길이 잠들었고 이제 그 친구들의 손을 빌어 동주의 시는 한 책이 되어 길이 세상에 전하여지려 한다. 불러도 대답 없을 동주, 몽규였건만 헛되나마 다시 부르고 싶은 동주! 몽규!"
절친 윤동주와 송몽규의 안타깝고 원통한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 강처중의 애달픈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강처중은 절친 윤동주가 남긴 유품을 잘 간직했다가 월남한 동생 윤일주에게 넘겨준 인물이다.
그런 연유로 절친 강처중이 없었다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유고 시집에 담을 시를 직접 선정하고 시집 편집 자체를 강처중이 오롯이 도맡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 문학을 이야기할 때 강처중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미군정 탄압이 집중되던 엄혹한 시절, 강처중은 남로당 지하활동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냈다. 오로지 절친 윤동주를 추모하며 윤동주의 나라 사랑과 우리말 사랑을 기리고 세상에 알리고자 애썼다.
다시 말해 시인 윤동주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한국 문학사에서 윤동주의 위상을 정립한 인물이 바로 강처중인 셈이다. 강처중을 통해서 윤동주가 시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처중은 해방 공간 남로당 언론계 비선 책임자였다. 이육사 동생 이원조는 좌파언론 <현대일보> 편집국장이었으며 박치우는 <현대일보> 발행인 겸 편집주간이었다. 그들 셋은 해방 공간 남로당 언론계 거물급 인물이었던 셈이다.
강처중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자료는 없다. 일설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보도연맹원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양주동, 정지용, 황순원과 함께 출옥했다고 한다. 출옥 후 집에서 두 달을 요양한 뒤에 아내에게 공부를 하겠다며 소련으로 갈 것이라며 떠났다 한다.
그런가 하면 이승만 정권에서 1953년 언론인 '정국은 간첩 사건' 배후로 연루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주장에 따르면 한국전쟁 시기 월북한 뒤에 북쪽에서 김일성이 남로당을 숙청할 때 비슷한 시기 숙청당했을 거라는 일설도 있다.
분명한 역사 사실은 강처중이 윤동주의 절친이었다는 사실과 그가 해방 공간 남로당 언론계를 담당한 주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강처중에 의해서 윤동주 시인 최초의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됐다는 점이다.
물론 1955년 증보판을 발행할 때는 강처중의 발문과 정지용의 서문은 완전히 삭제됐다. 반공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이승만 정권 1950년대를 생각하면 '납북' 문인 정지용조차 불온한 인물로 대중의 기억에서 애써 지워버렸던 시절이었으니까.
요컨대 윤동주가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 혜성처럼 나타나 샛별 같은 존재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인물이 바로 절친 코뮤니스트 강처중이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일제강점기 말기 사방에서 탄압이 죄어오던 그 시기 윤동주가 친하게 친분을 쌓았던 인물이 철학자 박치우였다. 박치우는 경성제대 법문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1세대 철학자다. 한국 철학계 거두인 박종홍(전 서울대 교수)과 신남철(전 김일성대 교수) 그리고 박치우는 서양 철학을 함께 공부한 철학 1세대에 속한다. 경성제대 재학 시절 박치우는 일본인 철학 교수로부터 '천재 철학자'로 높게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서울대 철학 교수로서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한 박종홍은 알아도 일찌감치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던 신남철은 잘 모른다. 아니, 신남철은 어느 정도 알아도 박치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박치우가 윤동주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전무하다.
이는 아마도 찰학자 박치우가 코뮤니스트로서 해방 공간 박헌영이 북쪽 김일성을 만나러 갔을 때 세 번이나 수행했던 비서로 남로당 핵심이론가였다는 이념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짙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동안 윤동주와 친분이 두터웠던 철학자 박치우가 아예 대중의 기억에서 배제된 이유는 그런 배경을 안고 있다.
박치우와 윤동주가 교분을 쌓게 된 계기는 윤동주가 숭실중학교를 다닐 당시 박치우는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임했던 시기와 연관이 깊다. 윤동주는 숭실중학 시절인 1935년 6월 <동아일보>에 박치우가 소개한 '국제작가대회' 행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국제작가대회' 행사는 1930년대 중반 무솔리니, 히틀러, 프랑코 등 유럽 파시즘이 대두하자 국제사회 명성이 자자했던 작가 업튼 싱클레어, 버나드 쇼, 막심 고리키, 토마스 만, 로맹 롤랑 등 38개국 230명 작가들이 참석해 파시즘에 반대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둘의 깊은 친분은 1935년 9월에서 1936년 3월까지 숭실학교 '학생 YMCA 문예부'가 발간했던 <숭실 활천>을 통해서 이뤄졌다. 박치우도 윤동주도 황순원도 이 잡지에 글을 쓰면서 교류가 시작되었다. 숭실학교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굽히지 않으면서 학교는 강제 폐교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1938년 4월 윤동주가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할 당시 조선일보 학예부에 작품을 써 보냈는데 그 당시 박치우는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서 친밀한 교류는 계속되었다. 둘만의 친밀한 관계는 연희전문 문과 시절 내내, 그리고 1942년 봄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윤동주와 박치우의 친밀한 관계는 윤동주가 남긴 유품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윤동주가 남긴 유품 가운데 박치우가 1941년 7월 17일 윤동주에게 보낸 엽서가 있다. 그 엽서에는 제기동 "(자신의) 집으로 찾아올 때 집에 있는 개를 조심하라"며 자상하게 주의를 당부한 글귀가 남아 있다.
실제로 누상동 하숙집 당시 하숙집 주인이자 소설가 김송이 <인문평론>에 쓴 희곡작품과 박치우의 평론을 윤동주는 애독했다. 1942년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떠나고 박치우 역시 항일독립투쟁을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 1943년 봄 박치우는 사회주의자 이육사와 함께 경성콤그룹 관련 모종의 항일혁명활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몇 개월 후인 1943년 7월엔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인 형사 고오로기에게 체포돼 투옥된다.
그나마 강처중은 송몽규의 조카 송우혜 작가로 하여금 조금은 그 존재가 알려졌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박치우의 존재는 3년 전 김성연 교수의 연구논문 <윤동주 평전의 질료와 빈 곳 - 윤동주와 박치우의 서신, 그 새로운 사실과 전망>을 통해 조금 실체가 드러났을 뿐이다. 이 모든 게 분단이 자초한 굴곡진 현대사와 관련이 깊다. 민족 문학이든, 항일투쟁이든, 역사 연구든, 우리말 연구 등 모든 게 반쪽짜리였으니까 말이다.
강처중과 박치우, 윤동주의 벗을 아십니까, 분단 질서가 낳은 '반쪽짜리 한국문학사' ① (23.03.01, 하성환)
500만 달러(약 71억 원)에 미국 영주권을 주는 ‘골드카드’를 조만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https://v.daum.net/v/20250226160908858
정종오 2025. 2. 26. 16:09
2050년까지 북극곰 개체수 30% 줄어들 것으로
처칠에서 포착된 수컷 북극곰 두 마리. [사진=Elisabeth Kruger/ WWF]
[아이뉴스 24 정종오 기자] 지구 가열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북극 바다얼음(해빙)이 빠르게 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극곰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먹이가 부족하면서 사람이 사는 도심까지 내려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생존 위기에 처했다.
WWF(세계자연기금)는 국제 북극곰의 날(2월 27일)을 맞아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어가는 북극곰의 현실을 조명하고,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영상과 관련 사진 자료를 공개했다.
국제 북극곰의 날은 지구 가열화로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과 이들이 처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2006년 만들어졌다.
북극해에서 수영하는 북극곰. 먹이활동이 여의치 않으면서 더 오랫동안 수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Shutterstock/ Le cinquieme reve/ WWF]
북극곰(Ursus maritimus)은 ‘바다의 곰’을 뜻하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큰 육식동물로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북극의 빙하와 해빙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북극곰의 서식 환경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 북극의 전체 빙하량은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2025년 1월 기준 북극 해빙 면적은 평균 1313만㎡로 1981년부터 2010년까지 같은 시기의 평균이었던 1442만㎡보다 약 129만㎡(약 8.95%) 감소했다.
WWF는 2050년까지 북극곰 개체수가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북극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취약(VU, Vulnerable)’ 등급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북극곰은 해빙 위에서 물개가 숨을 쉬기 위해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해 사냥하는 방식으로 생존한다. 기후변화로 해빙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사냥 기회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얼음 위에 누워있는 북극곰, [사진=Elisabeth Kruger/ WWF]
WWF는 녹아내리는 해빙 사이를 힘겹게 건너는 북극곰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서식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했다.
북극해에서 장시간 헤엄치는 북극곰을 포착한 수중 촬영 영상을 통해 북극곰이 생존을 위해 더 오랜 시간 수영해야 하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WWF는 1992년부터 북극 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북극 이사회에서 옵서버 지위를 가진 유일한 극지방 환경 NGO로 활동하고 있다.
WWF는 북극곰 서식지 보호를 위해 개체 연구와 모니터링, 지역 사회 협력, 정책 개선 활동을 지속해 전개하고 있다. 북극 지역 주민과 협력해 북극 야생동물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북극곰이 직면한 위기를 널리 알리는 교육 및 홍보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얼음 위를 걸어가는 북극곰 가족. [사진=Elisabeth Kruger/ WWF]
캐나다 매니토바주 북부에 있는 ‘처칠(Churchill)’은 매년 10~11월 물개 사냥을 위해 북극곰이 모이는 곳으로 ‘세계 북극곰의 수도’로 불린다.
허드슨 만의 해빙이 점점 늦게 형성되고 빨리 녹으면서 북극곰이 육지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현재 처칠이 속한 서부 허드슨만 지역의 해빙 없는 기간은 평균 150일로 추정된다. 관련 연구를 보면 지구 온도가 1.5℃ 상승할 경우 최대 155일까지, 2℃ 상승할 경우 165~170일까지 늘어나 북극곰의 생존과 번식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이미 파리기후협약 목표인 1.5℃를 초과하면서, 북극곰이 직면한 생존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처칠은 생태 관광의 중심지이자 지역 사회에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북극곰 개체군 감소로 인해 생태 관광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서식지 보전을 위한 보다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해빙의 감소로 북극곰이 육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먹이를 찾기 어려워져 사냥 성공률 저하와 체중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
북극곰이 사냥을 위해 장시간 수영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체력 소모가 커지고 생존율이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WWF는 북극해를 헤엄치는 북극곰의 모습이 담긴 수중 촬영 영상을 공개하며, 빙하 감소로 인해 북극곰이 물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극곰이 버려진 드럼통을 뒤지고 있다. [사진= naturepl.com/ Sergey Gorshkov/ WWF]
해빙 감소로 인해 북극곰이 사람이 사는 마을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WWF 관련 자료를 보면 최근 그린란드와 캐나다 등지에서 북극곰이 마을을 배회하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WWF는 도심으로 내려온 북극곰이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러시아 토볼스키(Tobolski) 유전 지역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북극곰이 사냥감을 찾지 못한 채 사람들의 거주지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하면 북극곰과 인간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북극곰 개체 수 감소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WWF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부터 북극 지역 주민들과 협력해 ‘북극곰 순찰대’를 운영, 마을로 내려오는 북극곰을 관리하고 불필요한 사냥을 방지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https://v.daum.net/v/20250226104617353
김영철 2025. 2. 26. 10:46
투자이민 폐지하고 ‘골드카드’ 도입 계획
“100만 장 팔면 7000조 원”
美정부에 직접 지불 방식도 거론
트럼프 “왜 그냥 영주권을 주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목요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불법 이민자를 대상으로 사상 최대 추방 작전을 진행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부자를 상대로 사실상 미국 영주권을 판매하기로 했다. 기존의 투자 이민 제도를 대체하면서 금액 기준을 대폭 높이는 취지지만, 미국 기업에 대한 투자 대신 정부에 직접 돈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실상 ‘영주권 장사’라는 비판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500만 달러(약 71억 원)에 미국 영주권을 주는 ‘골드카드’를 조만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영주권을 의미하는 그린카드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골드카드는 그린카드에 더해 시민권 취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제공할 것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이다. 그는 “그린카드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세련됨(sophistication)의 수준이 더 높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골드카드는 EB-5 비자와 유사하게 미국 투자 및 검증 절차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EB-5와 다르게 골드카드는 돈을 미국 정부에 직접 지불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드카드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특정 금액을 미국에 투자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여기에 더해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EB-5를 골드카드로 대체할 것인데 이것은 실제로는 그린카드 골드(버전)”이라면서 “그들은 미국 정부에 500만 달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골드카드를 도입키로 한 것은 기존 투자이민(EB-5)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에 더해 골드카드 판매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1990년에 도입된 EB-5 비자는 최소 90만 달러(약 13억 원)를 투자할 경우 영주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제도는 2022년 5년 기한으로 재연장됐다.
러트닉 장관은 EB-5에 대해 “가짜·사기”, “싼값에 영주권을 갖는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EB-5가 실제 투자를 촉진하기보다는 미국 영주권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인식으로 풀이된다.
러트닉 장관은 “왜 우리가 미국 영주권을 위해 EB-5를 나눠주냐”라고 자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변이 ‘왜 우리가 그 대신 미국의 적자를 줄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왜 우리가 공짜로 나눠주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골드카드 판매 전망과 관련해 “우리는 100만 장 카드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100만 장의 카드는 5조 달러(약 7151조 원) 어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약 1000만 장을 판다면 이것은 50조 달러”라면서 “미국의 현재 부채는 35조 달러다. 이것은 환상적일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러트닉 장관은 캐나다를 ‘51번째 주’라고 부르면서 “51번째 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https://v.daum.net/v/20250226132039213
이정현 미디어연구소 2025. 2. 26. 13:20
ESA 연구진, 네이처에 연구 결과 발표 ""물 함유 산화철 광물 확인"
(지디넷코리아=이정현 미디어연구소) 붉은 행성이라고 불리는 화성의 고유한 색상이 과거 액체 상태의 물이 있었다는 증거를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우주과학매체 스페이스닷컴이 2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수십억 년에 걸쳐 화성에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녹’과 동일한 화합물인 ‘산화철’ 성분이 먼지로 분쇄돼 바람에 의해 화성 전역으로 퍼졌다고 여기고 있었다.
화성 남반구를 탐사하고 있는 '마스 익스프레스' (사진=ESA/INAF/Davide Coero Borga)
하지만, 산화철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존재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화성의 산화철 성분에 대해 여러 의견들을 제시해 왔다.
유럽우주국(ESA) 연구진은 화성 정찰 궤도선과 탐사 로버의 관측 자료와 실험실 데이터를 토대로 화성의 붉은 먼지는 수분이 풍부한 산화철 광물 ‘페리하이드라이트’(ferrihydrite) 일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논문은 25일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됐다.
미국 브라운대학 박사 후 연구원 아도마스 발란티나 스는 "다양한 종류의 산화철을 사용하여 실험실에서 화성 먼지 복제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 스위스 베른 대학에 재직하며 ESA의 가스추적궤도선 TGO(Trace Gas Orbiter) 데이터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패스파인더 착륙선이 포착한 화성 풍경 (사진=NASA)
연구진은 화성 먼지를 재현하기 위해 고급 분쇄기를 사용해 샘플을 정제해 화성에서 날리는 미세 입자와 일치시켰고, 그다음 정제된 샘플을 분석하여 실제 화성 데이터와 직접 비교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화성의 붉은 먼지는 현무암 화산암과 ‘페리하이드라이트’(ferrihydrite)라고 불리는 수분이 풍부한 산화철의 조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견이 흥미로운 이유는 페리하이드라이트가 보통 차가운 물이 있을 때 빠르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페리하이드라이트는 화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물이 아직 존재할 때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페리하이드라이트가 표면에 물이 아직 존재할 때만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에 화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녹슬었다는 것"이라며, "게다가 페리하이드라이트는 화성의 현재 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ESA 로잘린드 프랭클린 로버와 미 항공우주국(NASA)-ESA 화성 샘플 반환과 같은 다가올 임무의 결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를 통해 화성을 붉게 만드는 요인을 더 깊이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ESA TGO·마스 익스프레스 프로젝트 과학자 콜린 윌슨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