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우리들의 앞날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이 돌아오려 한다
대나무 있었던 자리에 살구나무 심는다
대나무 뿌리가 얽히고설켜서 쉽지 않다
대나무는 줄기보다 뿌리가 더 강하다
대나무가 차지한 땅에는 얼씬도 못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섭다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음모가 진행된다
대나무 뿌리는 줄기보다 더욱 촘촘하다
대나무 뿌리는 마디마다 언제라도
죽순을 밀어 올릴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대나무 뿌리는 줄기보다 더욱 단단하여
곡괭이로도 잘 파지지 않는다
대나무 뿌리에는 마디마다 잔뿌리가 있다
그리하여 대나무는 줄기보다 뿌리가 무섭다
우리나라는 이미 대나무 뿌리가 점령해 버렸다
살구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다
죽은 줄 알았던 대나무가 다시 살아날 것 같다
아, 살구나무를 살려야만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형식 재판관, 조한창 재판관, 김복형 재판관
이 세 사람, 설마 김형두 재판관은 아니겠지,
헌법재판관의 선택에 우리 운명이 갈릴듯하다)
우리들의 앞날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이 돌아오려 한다
도깨비 날뛰는 불이다
환장할 가슴들 태운다
산불이 꺼지지 않는다
봉화가 꺼지지 않는다
계엄령 선포로 뿔났다
국민들 마음이 불났다
봉홧불 횃불로 번진다
나라를 망하게 할 건가
우리는 일어나 싸운다
망국의 악마를 잡는다
윤석열 대통령 가두고
김건희 여사도 잡는다
기레기 언론도 부수고
내란당 국힘도 없앤다
극우의 유튜버 색출해
전광훈 목사도 잡고서
사탄들 모조리 쫓아내
새로운 나라로 대개혁
검찰도 경찰도 개혁해
민중의 나라로 만들고
친일파 친미파 몰아내
선민의 나라를 세우자
태극기 부대를 계몽해
태극의 나라를 만들자
계엄령 내란을 일으켜
전쟁의 불씨가 꽃핀다
― 태백산맥 1-2. 가슴으로 이어진 물줄기
1
등잔 불꽃이 그을음을 긴 꼬리로 남기며 가물가물 타고 있었다. 등잔 불빛은 온기 없는 반딧불처럼 허전하고 미약했다. 그 불빛은 세 사람이 넉넉하게 자리잡기에도 비좁은 느낌의 방안 어둠을 사르는 것도 힘겨운 듯싶었다. 등잔 주위만 가까스로 밝혀졌을 뿐 천장 구석구석에는 묽은 어둠이 그대로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 불빛마저 새어나가는 것을 저어했음인지 지게문에는 남루한 이불이 무겁게 쳐져 있었다. 미동도 없이 바짝 쪼그리고 앉은 세 사람은 돌덩이였고,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는 미약한 불빛은 그들 세 사람의 그림자만을 터무니없이 크고 진하게 찍어내고 있었다. 그들의 그림자는 세 벽을 가득가득 채운 채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괴물스럽게 일렁이고는 했다. 늪처럼 잠겨드는 방안의 침묵은 무슨 견고하고 무거운 물체처럼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윗목에 앉은 하대치는 큼큼 밭은기침을 만들어내며 자리를 고쳐앉았다. 자정이 넘어가고 있을 것이고,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하대치의 그런 몸짓의 의미는 두 사람에게 전류보다 빠르게 전달되었고, 전등에 반짝 불이 켜지듯 확실한 반응이 나타났다. 아랫목에 앉은 노인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방바닥에 놓인 곰방대를 더듬더듬 주워 들었다. 그 손이 완연하게 떨리고 있었다. 노인의 옆, 반닫이를 등지고 앉았던 여자는 꺾어세운 무릎을 더 단단히 가슴팍으로 끌어안듯 하면서 윗목의 하대치에게도 눈길을 쏟아부었다. 눈물로 젖은 그 눈길에 두려움과 초조가 엇갈리고 있었다.
"그려......" 노인은 힘겹게 말을 꺼내놓고는 목이 타드는지 삐쩍 마른 목을 길게 빼듯이 해서 침을 삼키고, "가먼 워디로 갈 것이다냐?" 안타까운 듯이 물었다.
하대치는 얼른 대답하지 않았다. 방바닥을 내려다본 자세 그대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마지못한 듯 대꾸했다.
"지도 잘 모르겄구만이라."
자식의 정이라곤 명주 실오라기만큼도 느낄 수 없는 그 무뚝뚝한 말을 듣자, 니가 모르먼 고걸 누가 알어, 하는 호통이 목구멍을 치받쳐올랐지만 판석영감은 어금니를 깨물며 말을 억눌렀다. 그건 앞에 앉은 것이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듣던 옛날의 자식이 아니라는 슬픈 확인이었고 절망적인 체념이었다.
그려, 자석은 품안엣적 자석이 자석이제 몸 크고 생각 커서 품 벗어나불먼 지 자석이 아닌 법이여, 옛말 이른 것이 틀린 디가 하나또 웂어. 한사코 아래로만 쏟아져내리는 부정의 물줄기를 그만 돌려야 된다고 생각하며 판석영감은 스스로를 다스리려고 애썼다. 아들을 향한 체념을 가슴에 심기 시작한 것이 결코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스무 살 나이가 가까워질 임시부터였으니까 아들의 열받친 행동거지는 일정 때부터 시작되어 이미 십년이 가가워 있었다. 일본인 지주한테 대항해서 소작쟁의를 벌이면서 아들은 가도가도 목마르고 허기진 소작농군의 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일반 소작쟁의만도 삭신 녹아내릴 매타작에 콩밥신세가 확연한 죄로 정해진 세상에서, 일본인 지주를 상대로 한 소작쟁의가 어떤 결과를 부를지는 너무나 뻔한 노릇이었다. 그것은 맨주먹으로 닛본또 휘두르는 순사한테 덤벼드는 것이나 진배없었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성미 급하 나방이나 다를 바 없었다. 피걸레가 되어 내던져진 아들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며 판석영감은 제 살이 찢겨나가는 아픔에 떨며 울었고, 차라리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목숨의 구차함이 비통해서 울었다. 축 늘어진 아들을 수십 번 추슬려 업어가며 판석영감은 피물림하듯 대대로 이어진 소작농의 비애와 운명을 씹었다. 대를 물리는 가난이라는 것처럼 무서운 죄가 없었고, 견디기 어려운 벌이 없었다. 아들은 그 죄를 타고나서 이제 철든 나이가 되면서 그 벌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부지, 지발 암 말도 마씨요. 목심 내걸고 독립운동허는 사람들도 있는디, 뺏긴 지 밥그럭 찾아묵는 일도 못헌다먼 고것이 무신 사내새끼다요. 그라고 우리가 허는 짓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도 다 알고 있당께요. 그려도 허고허고 또 혀야지라. 작인 웂는 지주놈들도 웂는 법인께요."
몸져 누운 아들의 눈빛은 매타작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소견 멀쩡함에 판석영감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을수록 몸은 멍든 옹기가 되어가다가 끝내는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말리라는 불안감이 먹구름으로 가슴을 덮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순사가 들이닥쳤고,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새운 아들은 다음날로 기차에 떼밀려 실려졌다. 징용으로 끌려가는 것이었다. 아들과 함께 쟁의를 벌였던 소작회의 다른 열두 명도 함께였다.
"열분 백분 참고 또 참어야 쓴다. 목심 지키는 일이 젤 중헌 일잉께. 홀몸 아닌 니 시악씨 생각 혀서라도 몸 성히 돌아와야 써. 애비 말 명심혀, 알아듣겄냐?"
판석영감은 아들의 소매를 잡아 흔들며 애타게 말했지만 아들은 아무것도 없는 하늘 그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들은 순사에게 등을 떼밀려 기차에 오르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해도 말 한마디 없었다. 말은 고사하고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떠나가고 말았다. 기차가 산굽이를 돌아갈 때까지 맞바람이 통하는 가슴으로 서 있던 판석영감은, 아 저것이 옛날 자식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 최초의 깨달음은 아들이 자신에게 한정도 없이 멀어져가는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장성한 자식의 모습을 확인하는 대견함도 있었지만 그러나 자식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허잔한 상실감이 주는 슬픔이 더 컸다. 그것은 자신의 가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씻겨지지 않는 죄의식이 고개를 드는 탓인지도 몰랐다.
그려, 다 이 못난 애비 죄여. 이 애비 원망을 속 풀릴 때꺼정 혀. 근디, 불쌍헌 내 새끼야, 니 팔자는 애비를 원망헌다고 풀리는 것이 아녀. 피 타고남스로 매듭매듭 맺힌 한인디, 고걸 워째야 쓸끄나. 한은 맺히기만 혔지 풀리는 것이 아닝께 한인 법인디, 고건 풀라고 발싸심허먼 헐수록 헝클어진 실꾸리맨치로 얽히고 설키다가 종당에는 지 명꺼정 끊어묵는 법인디......
판석영감의 뇌리에는 아버지의 기억이 예리한 아픔으로 찡하게 떠올랐고, 그 기억을 몰아내듯이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기차가 사라져간 산굽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고희진 기자2025. 3. 25. 13:43
은희경·김연수·장강명 등 작가 414명 성명 발표
정보라 “내란 수괴 처단하고 평등사회 건설하자”
장석남 “파면은 상식! 그 무리는 소멸이 상식”
한강 작가가 지난 1월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등 국내 문학계 종사자 414명이 25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을 촉구했다. 성명에는 한강 작가를 비롯해 소설가 은희경, 김연수, 김초엽, 장류진 시인 황인찬 등 유명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강 작가는 ‘피소추인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 한 줄 성명’이라는 이름으로 배포된 성명을 통해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는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은희경 작가는 “민주주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김연수 작가는 “늦어도 다음 주 이맘때에는, 정의와 평화로 충만한 밤이기를”이라고 소망했다.
소설가 김초엽은 “제발 빠른 파면을 촉구합니다. 진심 스트레스 받아서 이 한 줄도 못 쓰겠어요. 빨리 파면 좀!”이라고 했다. 장류진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합니다”라고 윤성희는 “당연한 것을 당연한 세상 속으로”, 장강명은 “윤석열 파면을 요구합니다”, 정보라는 “내란 수괴 처단하고 평등사회 건설하자”고 했다.
작가들은 헌법재판소에 신속한 파면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애란은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판결을 촉구합니다. 시민들과 함께 법의 최전선을 지켜주십시오”라고, 김중혁은 “헌법재판관님, 어려운 거 없잖아요. 비상계엄으로 헌법을 무시했고, 민주주의를 파괴했어요. 그런 사람이 다시 대통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고 했다.
소설가 박상영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합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라”라고 했다. 임현은 “진짜 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지, 소설 같은 일이 진짜 벌어지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소설도 누가 이렇게 써봐라, 편집자가 가만두나. 벌써 교정, 교열했지”라고 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친구들 중에서 당신을 견뎌낼 수 있는 자들 앞에서나 날뛰세요.”라며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중 한 구절을 인용해 말했다. 시인 황인찬은 “12월 3일 이후 상식과 정의의 시계가 멎었다. 멈춘 시간을 흐르게 하라. 윤석열을 파면하라”고 했다.
시인 장석남은 “높은 이상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상식주의자이다. 국민을 향해 총을 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걸 시민들이 막았다. 그자의 파면은 그냥 상식! 그자와 그 무리는 소멸이 상식. 어렵지 않다”고 했다.
시인 서효인은 한 줄 성명에 대해 “탄핵 선고와 대통령 파면이 지연되고 있는 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들 414명이 각자 한 줄씩의 따로 성명을 만들고 한데 모으는 작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을 촉구하는 문학인들의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이기도 한 송경동 시인은 윤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며 지난 11일부터 단식 투쟁 중이다.
한국작가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농성촌 앞에서 전국 문학인 2487인 명의로 긴급 시국선언을 개최하기도 했다. 시국선언에는 나희덕 시인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윤석열의 계엄령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최소한의 제도적 틀 안에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우리의 믿음을 한순간에 산산조각 냈다”며 “지금은 속도가 정의와 직결된다. 우리 민중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헌재가 제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거기에는 어떠한 분들이 앉아 계실까요? 최근에 8분의 재판관이 내린 결정을 분석해보면 그 속마음이 읽힙니다. 가장 진보적인 분은 정계선 재판관님(이하 존칭 생략함)이고, 다소 진보적인 분은 문형배, 이미선 그리고 정정미 3분입니다. 큰틀에서 보아, 이상의 4분은 12.3내란 사태에 관해서도 시민의 편에 설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4분은 매사에 이른바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재판관입니다. 김형두와 김복형은 비교적 체제옹호적이고, 정형식과 조헌창은 무조건 옹호하는 재판관입니다. 이 분들의 속생각은, "정치적인 문제를 가지고 왜 법원을 기웃거리냐? 너희가 해결 못한다면 우리도 못한다!"라고 요약됩니다.
내란수괴 윤석열 건에 대하여는 8분의 법률적 판단이 아주 다를 것으로 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윤 수괴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또 미룬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시민의 기대를 갑자기 배신하면 충격이 클 테니까 시간을 두고 서서히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기로 작정한 거였습니다. "이만큼 알려주었으니, 이제는 제발 알아서 포기하라!" 이런 메시지를 주려고 지난 100일 동안 저들 8인의 재판관은 이리뒤척저리뒤척 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란 도대체 누구입니까? 진정한 보수가 여기서는 "진보"로 불리지요. 호헌(護憲) 세력인 대다수 시민입니다. 그에 반하여 우리 사회의 "보수"란 헌법도, 상식도, 양심도 내팽개친 파시스트입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도 역시 그러합니다. 겉으로는 헌법을 수호한다고 말하지만, 재판관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은 호헌(護憲)에 관심이 없어요. 그들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비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와 권세, 재력과 명예를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양식(良識) 있는 시민이라면 이제 더는 헌법재판소의 아량(雅量)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가 청산해야 할 대상이지요. 우리와 함께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이땅에서 함께 기르는 동지가 아닙니다. 저들은 우리의 적(敵)입니다!
부디 제 판단이 잘못되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