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삶글

배진성 시인의 꿈삶글 0018

― 꿈 / 장석주 시인을 아시나요

by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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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나는 아름다운 산을 하나 가꾸고 싶다
그 산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나무처럼 살고 싶다
그 숲 속에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싶다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그 쉼터에는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절망이 너무 깊어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가끔 찾아오면 좋겠다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라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러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들의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세상에 대하여
너무나 분노한 사람들과
한 때의 실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나무를 심어주고 싶다
산에 나무를 함께 심으면서
그들의 아픈 가슴에도
또 다른 희망의 나무를 심고
사랑의 씨앗을 뿌려주고 싶다

자연의 큰 거울 앞에서
희망을 되찾은 그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나는
그들과 내가 함께 심었던
그들의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안부 편지와 함께 가끔 보내주고 싶다
세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자라나는 나무를
보기 위하여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직접 올 수 없더라도
늘 가슴속에서 함께 자라나는
자신의 나무 때문에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가 끝끝내
함께 가야 할 길
겨울이 깊을수록
더 잘 보이는 길
실패한 사람을
함께 이끌어주고
넘어진 사람을
함께 일으켜 세워주고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우리들이 함께 풀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나는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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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JsxoO5LET0?si=E0_aSdw6pthmGCrG




장석주 시인을 아시나요



나는 아직도 장석주 시인을 잘 모른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라는 것은 아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른다


오늘 아침 우연히 그의 글을 읽게 되었다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참으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술과 담배와 포커를 배우셨는지 궁금하다

장석주 시인은 '스무 살 이후를 사는 건 기적이다'

나는 '서른 살 이후를 사는 건 기적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오늘 아침 오랜 나의 꿈을 다시 꺼내어 읽는다






감나무와 젖꼭지나무




나는 누구에게도 아쉬운 말을 못 한다

꼭 필요한 말도 부탁 같아서 꾹 참는다


감나무 앞의 젖꼭지나무 키가 크다

햇빛 받지 못한 감나무가지 죽었다


키 큰 나무들이 햇빛 독차지하는 세상

그늘에서 말도 못 하고 죽어가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잊히는 사람들


그늘에서 죽어가는 감나무가 나 같아

젖꼭지나무 허리를 결심처럼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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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시인과 소설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현실이다

악의 꽃들이 무성하다 계엄령도 전쟁도

생중계로 방송되는 무시무시한 시절이다

나는 악의 꽃이 피는 나무의 뿌리를 찾아간다

장님 무사와 앚은뱅이 주술사가 알려 주었다

우리가 가야 할 생명의 길을 확실하게 알렸다


악의 꽃이 피는 나무 뿌리까지 바꾸어야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한강 작가와 조정래 작가가 있다 윤동주 시인과 함께 징소리 속으로 가서 징을 찾는다


1990년 1차 심장수술, 판막은 건들지 않고 두꺼워진 벽을 헐어 막혔던 길만 넓혔었다 하지만 2018년 2차 심장수술은 벽의 뿌리까지 파내야 했고 대동맥판막을 뜯어내고 새로운 금속판막을 삽입했으며 승모판막도 대대적인 수리를 해야만 했다 그 후로 나는 더욱 추워졌다 피가 묽고 차가워 여름에도 내복을 입어야만 한다 나는 이제 늘 빨치산의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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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7JsxoO5LET0?si=NFaHzZBg74hfZEca



장석주 / 즐겨찾기 / 28분

스무 살 이후를 사는 건 기적이다



봄은 끝났다. 가는 봄은 곧 돌아올 봄이다. 앞으로 무심히 오는 봄날을 몇 번이나 더 맞을까 헤아려보다가 일순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얀 양파 뿌리 같은 봄비 며칠. 활엽수엔 새잎들 돋아 초록이 짙어지는데, 작약과 모란의 꽃망울이 생기는 계절은 이토록 풋풋한데 나는 어쩌자고 쓸쓸한가? 나는 아무런 꿈도 야망도 없이, 술과 담배, 포커도 배우지 못한 채 고작 시나 쓰던 청년이었다. 어쩌다 김소월, 다자이 오사무, 에릭 사티 같은 자멸파 예술가들에 마음이 홀려 그들을 흠모하며 따랐을 뿐이다.


그 젊던 날엔 앞날이 안 보이고 현실은 팍팍했으니 살기에도 죽기에도 애매했다. 끝내 미치지도, 하룻밤 새 유명해지지도 않은 난 새벽에 헤르만 헤세나 알베르 카뮈의 번역소설을 뒤적이다가 먼 데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먼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하며 찾고 있을 듯했다. 모란꽃 같은 첫사랑을 갈망했지만 낯선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화들짝 놀라는 숙맥이니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는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청년이었다. 몸엔 살점이 없고 팔다리가 가는 청년은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죽을 듯이 연모했던가? 몇 밤을 불면으로 새우며 얼굴은 창백했던가? 첫사랑의 꿈은 아득해지고, 나는 속물이 되어 아무 쓸모도 없는 나이만 자꾸 먹었다.


누군가를 연모했지만 제대로 된 연애는 없었다. 그렇게 세월을 축내며 혼자 우연과 모호함 속에 웅크린 채 엎드려 있었다. 누군가는 군대를 가고, 누군가는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절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먼 이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나는 여중생 가정교사 자리를 구해 중학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고, 남는 시간엔 고전음악 감상실에서 니콜로 파가니니나 막스 부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처음 영접했을 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주 헌책방을 기웃거리거나 프랑스문화원에서 젊은 알랭 드롱이 나오지만 한국어 자막은 없는 프랑스 영화를 뜻도 모른 채 보았다.


고교 중퇴한 뒤 양봉업을 배우거나 외항선을 타고 싶었지만 기술도 노동을 감당할 만한 체력도 없었다. 빈둥거리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는데, 그때 읽은 책은 일본어 중역판이었다. 그랬건만 은유는 화사하고 사상은 바닥이 없는 심연인 듯 깊었다. 니체에 흠뻑 빠졌던 시절은 마종기 시인의 연작시 「연가」를 줄줄 외우던 시절이기도 했다. 봄날엔 누군가 귓가에 “죽은 친구는 조용히 찾아와/봄날의 물속에서/ 귓속말로 속살거리지,/죽고 사는 것은 물소리 같다.”라고 속삭이곤 했다. “의학교에 다니던 5월에, 시체들 즐비한 해부학 교실에서 밤샘을 한 어두운 새벽녘에, 나는 순진한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네. 희미한 전구와 시체들 속살거리는 속에서, 우리는 인육(人肉) 묻은 가운을 입은 채. 그 일 년이 가시기 전에 시체는 부스러지고 사랑도 헤어져 나는 자라지도 않는 나이를 먹으면서 실내의 방황, 실내의 정적을 익히면서 걸었네. 홍차를 마시고 싶다던 앳된 환자는 다음날엔 잘 녹은 소리가 되고 나는 멀리 서서도 생각할 것이 있었네.”(마종기, 「연가 9」) 내겐 죽은 친구도 없었으니 죽은 친구가 귓속말을 하는 법도 없다. 하지만 내 마음 여린데 박힌 시의 화살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니체는 라이프치히의 한 서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사서 가슴에 품고 돌아와 하루 네 시간씩 읽으며 엿새 만에 완독한다. 그때 니체는 나와 같은 스무 살이었다. 쇼펜하우어를 알고 난 뒤 가슴에 벅차오르는 기쁨을 누른 채 제 누이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우리는 무얼 찾고 있는 거지? 일상의 안위, 아니면 행복? 그게 아니야, 어쩌면 너무나 소름끼치도록 그릇된 진실 외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라….” 내가 찾은 것은 일상의 안위도 행복도 인생의 진실도 첫 사랑의 황홀경도 아니다. 그것은 잉여나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내 갈망은 작고 꿈은 소박했다. 겨우 책 몇 권, 고전음악, 혼자 고요히 머물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이면 충분했다.


모란꽃 흐드러진 그해 봄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어디에나 넘쳐나는 햇빛과 만개한 꽃들, 닝닝거리는 꿀벌들, 새의 명랑한 지저귐, 젊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봄날. 어쩌자고 나만 빼고 이 세상이 다 행복에 겨워 웃고 있는가? 어린아이들이 까르륵대며 웃을 때 내가 처한 가난과 불행 따위는 너무나 하찮아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나는 아무나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고 싶었다. 죄송해요, 이렇게 사는 건 다 제 불찰입니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다. 아, 세상은 아름다워라, 라는 찬탄의 말이 저절로 나온다. 노트 한 귀퉁이에 몰래 적어놓은 “삶은 아름답다, 그것 말고 구원은 어디에도 없다.”라는 구절은 카뮈의 것이던가?


모란꽃 피어 찬란할 때 미칠 만큼 살고 싶었다. 삶을 갈망할수록 속은 헛헛하고 기분은 쓸쓸한 건 무슨 까닭일까? 스무 살의 봄날에 내가 찾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루 네 시간만 잘 것, 등단 전 시 2백 편을 습작할 것, 성문영문법과 더불어 하루 영어단어 50개를 달달 외울 것, 가짜와 상투성에 맞서 싸울 것. 고통으로 영혼을 단련할 것, 불행에 겁먹지 말 것 등이 내가 품었던 금과옥조들이다. 스무 살의 봄, 내 꿈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사는 것, 시골구석에서 모란과 작약을 심고 아내와 어린 딸을 건사하는 것, 내겐 그 이상의 어떤 야망도 없었다. 스무 살 이후 내가 살아 있는 건 기적이다. 늘 새로운 봄을 맞는 것도 기적이다. 물풀처럼 한가롭게 흐느적이는 사이 늦봄은 저물고 천천히 사라지는 중이다.


*오늘자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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