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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Jan 31. 2021

지리산은 시인을 낳는다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0





지리산은 시인을 낳는다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0





1


지리산 학교에 찾아갔더니

지리산 학교와 지리산 행복학교는 다르다고 하더라

연락도 없이 무작정 예술곳간 몽유에 찾아갔더니

시인도 없고 안주인도 없고

고양이와 별나무 사진들만 나를 반겨주더라

주위에 지천인 매화나무들만 매화꽃을 뱉어내고 있더라

악양뜰 연인송을 찾아 갔더니

매실인지 살구인지 모를 푸른 시간들만 매달려 있더라

주인 없는 원두막에서 도시락을 먹고 다리 아래로 갔더니

다슬기며 우렁들이 

'나 잡아 봐~라'

하며 느리게 느리게 기어다니고 있더라


2


나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 시인을 딱 한 번 만났다

마라도에서 온 짜장면 집에서 딱 한 번 만났을 뿐

연락도 없이 몽유에 찾아 갔다가 역시 허탕을쳤다

그가 준 지리산에 오시려거든과 몽유운무화 한 점

나는 그의 모습과 삶에서 송정암 혜범스님을 본다


3. 납자


눈꺼풀이 없다는 물고기를 생각합니다

밤에도 자지 않고 용맹정진 하기 위하여

물고기처럼 목탁을 만들었다는

탁발 스님들을 생각합니다

배 속을 비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목어와 목어 소리를 생각합니다

처마 끝에 매달려

저 멀리 날려보내는 풍경소리를 생각합니다

밤마다 별나무 찾아서 용맹정진 하시는

지리산 족필 시인 이원규 시인을 생각 합니다

사람은 역시 미쳐야 아름다움에 닿을 수 있듯이

꽃에 미치고 별에 미치고 시에 미쳐서

갈수록 더 아름답게 미쳐서 살아가는

지리산 행복학교 시인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 나는 참으로 좋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눈꺼풀과 입술은 있는데

귀문과 코문은 없을까요

보는 것도 가려서 보는 것이 좋겠지요

말도 물론 가려서 하는 것이 좋겠지요

소문은 언제나 멀리 날아서 가겠지요

향기도 언제나 멀리 날아서 가겠지요


나는 오늘도 눈꺼풀 반만 뜨고 앉아서

참선수행중에 있습니다

다리가 저려오면 풀어서 경행을 하면서도

묵언수행은 늘 중단할 수 없는 수행이지요 

그대가 별나무를 찾아 족필시를 쓰듯이

나는 가끔 이어도공화국에 별나무를 심습니다

아니, 나는 그냥 나무들만 심는데

먼 곳에서 별들이 찾아와 별빛과 달빛으로

나무들의 비단 옷을 만들어 줍니다

이어도공화국에서는 밤새 비단 옷 짜는 소리가 들립니다

삼베옷을 짜서 수의를 입혀 상여소리에 실려보내도

나무들은 저마다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부활을 합니다


오늘 밤에도 이어도공화국에서는

물레질 소리도 들리고 베틀에 앉아 졸린 눈 비벼가며 꿈처럼 발을 툭툭 차시며 부지런히 북을 왔다 갔다 주고 받으시며 별빛 달빛을 짜고 계시는 그리운 어머니도 보입니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별빛 달빛으로 기워 입은 수행납자를 따라나서는 운수납자 도반이 됩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11년만의 신작시집, 시와 사진의 만남

지리산으로 내려가 21년째 살고 있는 이원규 시인이 11년 만에 신작시집을 펴냈다. ‘오후시선 3’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도서출판 역락)는 시와 사진이 어우러진 한국 최초의 시사진집이다.
51편의 신작시에 10년 동안 이원규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을 곁들였다.


저자소개


이원규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1984년 [월간문학], 1989년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 『돌아보면 그가 있다』, 『옛 애인의 집』 등과 산문집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등을 펴냈다. 제16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였다. 오래전 지리산으로 들어가 시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생의 한철을 잘 보내고 있다.


목차


1부

몹시
청별항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왼쪽 얼굴을 보여줘
아니 불씨
참회도 없이
저 당산나무의 몸무게
접사
안개
철없는 내 사랑은 무정란이어도 좋았다
사랑의 낙법
이팝나무 졸업식
저격수

2부

나 때문에
생각 한 끼
말똥가리 천
아직 늦지 않았다면
밤, 폐사지
단 하나의 천수천안
아, 사뿐 날아오르는 것들
청춘 채굴기
건달 예인
화살기도
후회막급 시인
동네시인 만세

3부

그때는 울고 지금은 웃는다
눈물이 핑 돌때까지
먼저 핀 꽃
팽나무가 웃었다
억새는 새가 아니다
딴마음

날 좀 버려줘
쓰레기 고고학
설마
사랑의 안락사
사랑의 신심명
개불알풀 꽃 시인이여

4부

각서
외딴집
얼음새꽃
사이버 제삿날
김광석
대리모
솔바람 태교
지리산 팔베개
방외인
나는 칠불사로 간다
지리산 옛길
그 얼마나
영지影池


출판사 서평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이 시인은 21년 동안 지리산 빈집을 전전하며 8번 이사를 했다. 지금은 섬진강 건너 백운산 매화마을 인근에 거처 ‘예술곳간 몽유’를 마련했다. 지리산과 낙동강 도보순례 등 3만 리를 걸으며 생명평화운동을 하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둘레 27바퀴 거리인 110만km 이상을 달렸다. 길 위에서 시를 쓰며 독학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번 시사진집은 시와 사진이 따로 또 같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사진이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는 가슴과 머리와 붓으로 쓰는 게 아니라 ‘시는 발로 쓰는 것’이라며 족필(足筆)의 시학을 주창하는 이원규 시인이 지리산과 한반도 곳곳을 누비며 시를 쓰고, 이 땅 곳곳에서 자생하는 야생화와 우리의 토종 나무들 위로 떠오르는 별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지난 10년 동안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몽유운무화)를 담고, ‘별 나무’ 사진을 찍으며 그 현장에서 시를 써왔다. ‘카메라로 시를 찍고 시로 사진을 찍는 일’에 몰두해온 결과물이다.

오지마을의 야생화와 별 사진 찍으며 건강 되찾았다

10년 순례의 길 위에서 얻은 결핵성늑막염으로 건강이 무너졌을 때 우리나라 야생화의 놀라운 생명력에 주목했다. 홀로 전국의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며 야생화와 별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건강을 되찾았다. ‘별 볼 일 없는 세상’에 밤마다 홀로 별천지를 찾아 헤매었다. 오지에서 야영을 하며 밤새 지난 인생을 복기했다. 이번 시집은 인생과 순례와 몸과 별과 꽃의 한 바탕 춤이다.

이미 『돌아보면 그가 있다』 등 5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펴낸 바 있는 중견시인 이원규는 그동안 5번의 사진전을 여는 등 사진가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문재 시인은 그를 두고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족적을 돌아보면 한반도 남쪽이 다 자기 영토다. 낙동강 줄기를 두 번, 지리산 둘레를 세 번 걸어서 돌았다. 4대강 줄기를 다 걸었고 1년간 탁발순례를 하며 남도 땅을 밟았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를 지원했다. 가히 ‘걷기의 제왕’이다. 그는 요즘 밤하늘의 별과 지상의 나무가 한 프레임에 들어가는 ‘별나무’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야생화보다 훨씬 까다롭다. 반경 40㎞ 이내에 도시가 없어야 한다. 달이 뜨거나 날이 흐리면 1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한 나무를 3년 이상 지켜봐야 겨우 한 컷이 나온다. 이 시인은 ‘천생 사진가’가 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전국을 걸으며 장소 헌팅을 해놓은 데다, 모터사이클로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기동력이 있다. 게다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50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그가 한층 미더워 보였다. 그의 시와 글, 사진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신작시집 2권 동시 출간과 인사동 마루갤러리 사진초대전 연다

이원규 시인은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에 이어 신작시집 『달빛을 깨물다』(천년의시작)를 6월 하순에 연이어 출간한다. 그의 6번째 시집과 7번째 시집이 거의 동시에 출간된다. 그리고 두 권의 시집출간에 맞춰 인사동 마루 갤러리에서 6월26-7월2일까지 사진초대전 『별나무』도 열린다. 사진전 오픈은 6월26일 오후 7시, 시집출판기념회는 6월29일 오후 5시 마루갤러리. 지리산 21년, 그리고 11년 동안의 칩거를 끝내고 두 권의 신작시집과 한반도의 토종나무 위로 떠오르는 별들을 담은 ‘별나무’ 개인사진전으로 돌아왔다.




[조용호의 문학공간] 

꽃과 별과 통정하는 지리산 시인의 소망

조용호 / 기사승인 : 2021-01-29 17:24:22


지리산 입산 23년 정리한 이원규 산문집 '나는 지리산에 산다'
탁발순례 거쳐 야생화 사진 몰두하다 '별나무'를 찾아다닌 사연
비 내리는 산중, 어두운 능선에서 밤새 찾으려는 궁극의 실체는
"밤마다 아프게 콕콕 찌르는 신이 시요, 시가 가시였다! "

학이 노닌다는 섬진강 '소학정'에 올 첫 매화가 피었다고 지리산 시인 이원규가 페이스북 담벼락에 소식을 올렸다. 아직 한겨울인데 벌써 꽃망울을 내밀다니, 알고 보니 그 매화는 동지 무렵부터 피어나는, 일찍 피는 매화로 '지리산 선수'들에게는 소문난 나무였다. 이원규가 마침 지리산 입산 생활 23년을 정리하는 산문집 '나는 지리산에 산다'(휴먼앤북스)를 낸 터여서, 주말에 훌쩍 섬진강가로 내려갔다. 과연 소학정에 매화는 피었으되, 겨우 인사만 하는 형국이어서 큰 감흥은 얻지 못했는데 정작 사람 꽃이 우중충한 한겨울 함박웃음을 짓게 했다.


▲섬진강 매화마을 첫 홍매화 아래 선 '지리산 시인' 이원규. 그가 23년 전 지리산으로 떠나 시와 꽃과 별과 사람을 붙들고 살아온 세월을 산문집으로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이 산문집에도 언급한 '할매화'가 그 꽃인데, 섬진강에서는 소학정과 그 아래 할매 집을 포함한 세 곳이 유독 일찍 매화를 피운다고 했다. 툭 트여 양명한 지형인데다, 지하에 따스한 수맥이라도 흐르는 것 같다고 시인은 추측했다. 소학정에서 시인의 집으로 가다가 불쑥 들른 집에 마침 할매는 계셨다. 할매와 함께 마당가 홍매화 아래서 사진을 찍으면서 물었다. 이 집 매화는 왜 유독 일찍 피느냐고. 할매,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내가 이쁘니께!"라고 답하시었다. 잠시 할매 머리 위에 얼굴을 내민 홍매화가 들썩거렸다. 홍매화가 웃은 건지, 카메라가 흔들린 건지는 모르되 그날 그 집 마당에 핀 또 하나의 홍매화는 분명 그 분이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이 분을 '할매화'라고 명명했다. 유난히 일찍 피는 홍매화를 찍으러 들렀을 때 할머니는 "꽃만 찍지 말고 향기까지 찍어봐!"라고 할(喝), 죽비를 내리쳤다고 했다. 이원규가 도시살이를 하루아침에 접고 서울역에서 노숙하다 구례행 열차를 타고 내려와 지리산 사람이 된 지도 23년째다. 시를 쓰면서 사진을 찍어온 그는 '지리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씩 살아보는 동안 나의 스승은 언제나 뒷집 할머니였다'고 산문집에 적었다.


"한글을 알거나 모르거나 아무 상관없이 툭툭 던지는 말씀들이 경전보다 더 소중했다. 오히려 어설픈 지식은 장애였고, 한글을 잘 모르는 삶의 지혜가 더 명징해 눈물겨웠다. …지구라는 인류의 마지막 어머니다운 생존자들이 아니신가. 이 우렁각시들의 말씀이 모두 시의 주름 선명한 얼굴이었으니, 창작은 고사하고 이 할머니들을 표절하는 일도 참으로 벅찬 날들이었다."
이번 산문집은 이원규 시인의 지리산 '입산' 생활 23년을 사진과 함께 종합 정리하는 성격을 지닌다. 야생화 사진에 5년 넘게 몰두하다가 이후 '별나무' 사진에 공력을 쏟아온 그의 사진 작품과 배경을 알차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원규는 야생화 사진에 몰입하기 전 10여 년 동안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며 한반도 남쪽 3만 리를 걸었다. 걷다가 쓰러졌다. 처음에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무너졌는데, 결핵성 늑막염으로 판정돼 등에 구멍을 뚫고 흉수를 뽑아내는 고통 끝에 살아났다.

그는 야생화가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바이크를 끌고 지리산 곳곳은 물론 전국 지방도와 국도를 다 돌았지만, 발바닥을 땅에 대고 수만 리를 걸었지만, 정작 그 땅의 꽃 이름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시작한 야생화 사진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레 병도 나았다. 그는 여느 야생화 사진들과는 차별되는 '몽유운무화(夢遊雲霧花)'를 지향했다. 물안개 속에 피어나는 꽃들을 찍기 위해 습한 곳에서 온몸이 젖은 채 살다시피 했다. 그는 '우비를 입고 카메라를 품고 있다가 지독한 산안개가 밀려오면 그 속에서 얼굴을 슬쩍슬쩍 내미는 야생화들을 마구 찍었'는데, 그것은 '숨막히는 통정, 오래 꿈꾸던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고 쓴다. 이후 이 조건과는 상반되는, 맑은 날이어야만 제대로 보이는 별 사진에 새롭게 꽂혔다.


▲물안개와 어우러진 '몽유운무화' 산구절초(위)와 앵초. [이원규 제공] 


"숲속에 홀로 누운 밤이면/ 나의 온몸은 나침반/ 그대 향해 파르르 떠는 바늘// 밤에 외눈의 그대 깜빡일 때마다/ 나의 몸은 팽그르르 돌아/ 정신이 없다// 극과 극의 사랑이여/ 단 하룻밤만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다"('북극성') 

별을 찍되 나무를 프레임 안에 넣는 별나무 사진을 지향했다. 낮에는 나무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그곳에 가서 별을 기다렸다. 많은 곳들이 빛 공해로 인해 별을 볼 수 없는 환경인지라 제대로 별과 나무와 꽃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별들은 어두워져야만 비로소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별들도 어둠에게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한다. "촐싹대지 않고 자기만의 빛으로, 함부로 다른 빛을 밀어내지 않으며 너무 눈부시지도 않게 화답을 한다. 우리 모두 어두워질수록 더 환해지는 등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밤마다 별빛 샤워를 하며 기가 막힌 정수리부터 발바닥 용천혈까지 별침을 맞았'으며 다시 '발로 쓰는 족필(足筆)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낮에는 별과 어울릴 나무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별을 기다린다. '별 수양버들'(위)과 '별 감나무'. [이원규 제공]


"육칠 년 동안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를 찾아다니다 삼년 넘게 별 사냥을 다니는 일이 내 생의 크나큰 사치이자 행복이 되었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 이끼가 자라도록 흠뻑 젖은 내 몸과 마음을 양명한 별빛에 말리고 있는 셈이다. 사냥은 사냥이되 일방적인 총질을 하지 않는 일이니 사냥이라 쓰고 사랑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시베리아 탐방 기행단을 이끌고 바이칼 알혼섬에 가서 그곳 밤하늘의 은하수도 담아냈다. 그는 "내 생애 받을 복을 미리 다 받는 느낌이었다"고 감격하며 "이제 우리나라 오지마을의 별빛을 찾아 헤매는 일만 남았다"고 쓴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밤에도 곳곳이 휘황한 "별이 잘 안 보이는 나라, 아예 별을 잊고 사는 나라, 보여도 잘 안 보는 나라에서 '여기 있소'하며 별을 찍어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온몸이 캄캄하게' 산속에서 별을 기다리다보면, 책상머리에서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아득한 옛 기억들이 별처럼 솟아났다. 청년 시절 탄광 후산부로 살았던 그 기억도 별을 기다리는 어둠 속에서 채굴했다.


▲지상에서 춤추는 별 반딧불이(위)와 은하수 아래 부부소나무. [이원규 제공]

"저 멀리 빛난다고 다 별빛은 아니었네/ 점촌역전 골목의 지하 다방/ 그녀의 청보라 스웨터에 별들이 반짝거렸지/ 한번 불붙으면 펄펄 뛰는 팔각 성냥갑/ 달달하게 녹기 전에는 날 세운 각설탕// 오빠야, 내도 차 한 잔 마실게/ 옆자리 앉자마자 허벅지 쓰다듬으며/ 근데 얼굴이 캄캄한 오빠는 뭐 하는 사람?/ 나야 뭐, 지하 막장에서 벼, 별을 캐지/ 아, 죽어야만 2천만 원짜리 그 막장 꺼먹돼지!/ 그래 그래 별마담, 커피 두 잔 부탁해// 철없는 시인이 되었다가 폐광하고/ 경제학 원론을 불태우던 그 시절/ 지하 1층 별다방에서 별똥별을 보았지/ 밤마다 9톤의 별들에게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며/ 지하 700미터 막장에서 운석을 캐냈지/ 오후 네 시에 팔팔 항목으로 들어가/ 자정 무렵 시커먼 포대자루로 기어 나오면/ 코피처럼 폐석처럼 쏟아지던 별빛들// 세상도 나도 너무 밝아져 다 식어버렸네/ 지천명 넘어서야 밤의 지리산 형제봉/ 해발 1100미터 산마루에 홀로 누워/ 아득하고 아련한 별빛들을 소환하네/ 아주 가까이 빛나던 것들은 모두 별빛이었지"('별다방') 빨치산 패잔병으로 숨어 살던 아버지도 탄광 생활을 하다 숨지기 전 몰래 도둑처럼 집에 와서 어린 그에게 고무로 만든 말을 선물했다고 했다. 장난감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아이는 그를 링컨을 닮은 수염 많은 아저씨로 기억했고,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운다는 소리를 듣던 어머니가 후일 그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그의 아들이 다시 청년시절 탄광을 떠돌았다. 지하 깊은 막장에서 운석 같은 별들을 캐내던 그가 밤의 지리산 형제봉 산마루에 홀로 누워 아득하고 아련한 그 시절의 별빛들을 소환한다. 별빛에 깊이 중독되었다가 반딧불에 홀리기도 했다. 그는 '사람도 짐승도 지상의 별이겠지만 그래도 초여름과 늦여름의 가장 아름다운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은 반딧불이'라고 쓴다.


▲지리산에 내려와 빈 집들을 전전하다 소장수가 살던 집을 구해 외양간은 사랑방으로 고쳤고, 창고는  '예술곳간 몽유'라는 갤러리로 꾸몄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원규의 지리산살이는 그동안 사진집과 시집으로 알려지고 페이스북으로도 중계돼 왔지만, 이번 산문집은 지리산 '등산'이 아닌 '입산' 23년을 정서한 완성본이라 할 만하다. 이제 다시 어떤 여정을 걸어갈까. 그는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는 말을 품고 산다고 했다. 탄광과 도시를 떠돌다 훌쩍 지리산으로 내려와 산짐승처럼 시와 꽃과 별을 붙들고 살아온 시인. 비 내리는 산중 야생화 곁이나, 어두운 능선에 올라 밤을 새우며 그가 '통정'하려는 궁극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 생애 유일한 신(神)은 시(詩)였고, 시는 곧 가시 같은 것이었다. 밤마다 아프게 콕콕 찌르는 신이 시요, 시가 가시였다! 짐짓 모른 체 돌아누워도 옆구리를 콕콕 찌르고, 벌떡 일어나 풍찬노숙의 먼 길을 걸어도 티눈처럼 돋아나 발가락을 콕콕 찌른다. 바깥에서 나를 찌르는 이물질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내 몸 속에서 아직 살이 되지 못한 뼛조각 같은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그러나 나는 아직 이 가시의 맨 얼굴을 본 적이 없다."

U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upinews.kr




* 어느날 혜범스님의 페이스북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작은 암자의 노스님과 큰 절의 높은 스님께서 같은 날 입적하셨습니다. 큰 절의 높은 스님의 다비식은 거창하게 하고 작은 암자의 노스님 장례식은 쓰레기를 치우 듯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날 다시 들어가서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지워져 있었습니다. 스님만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인지 아니면 아예 지우셨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좋은 글들을 볼 수 없어서 가끔 보는 글을 복사 해서 저장하기 시작 했습니다. 언젠가는 꼭 찾아뵙고 싶은 스님입니다.   



혜범스님 / 받아 지닌 몸,  사느라 귀한 줄 몰랐다.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 나에게 한권의 경이 있으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 종이와 먹이 필요치 않도다.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子 펼쳐봐도 한 글자  없으나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 항상 광명을 놓는구나.


눈이 또 내렸다. 한파가 오고. 길이 끊겼다. 길을 잘못 든 건 아닌가, 하고 후회했던 날도 많았다.


살살 조심스레 산을 내려와 차를 불렀다. 의사는 이제, 수리수리 마수리는 다 끝났으니 온힘을 다해 쏟아 부으셔도 됩니다. 완치라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이라는 불 명호를 주워 삼켰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던가.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 는 입장이었다. 그 글은 어떠했던가. 남은 생 처음 시작했던 그 마음처럼 끝까지 부처님 밥값 갚는 봄바람 같은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시심작불(是心作佛) 시심시불(是心是佛)이라. 


 받아 지닌 몸. 남은 生 원 없이 기도하며 살다가게 해주셔서 가슴 뿌듯한 날이다.




혜범스님 / 바다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네.


강으로 가는 길목에 고사목 하나 있었습니다. 하늘에 검은 두터운 구름장들이 덮이는 삽삽한 날이었습니다. 진저리치듯 부르르 몸을 떨던 나비는 이런 데가 있었네, 하며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생각을 따라 날던 나비가 마침 고사목 하나를 발견하고 그 가지에 앉으려 할 때 난 니가 좋아 하고 고사목이 말했습니다. 나는 모르겠어. 언제 봤다고. 고사목의 말에 나비가 흠칫 웃으며 말했습니다. 탁 트여 아래가 다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妙原을 차지한 나무였습니다. 너로인해 내 꿈이 환해지는 거 같아. 안녕. 그대신 내가 앉아 있는 동안 무너지지는 말아. 그동안 많이도 슬퍼하고 많이도 참았겠지만. 하늘하늘 나풀대던 나비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나비는 그때 냇가에 흘러가는 시냇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뭐, 무너져도 저 표랑의 시냇물 따라 가겠네 뭐. 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시냇물은 졸졸졸 노래를 부르며 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들은 나무가 피식 웃었습니다. 그래, 이제 나도 陽光아래의 坐定을 끝내고 저 시냇물 따라 갈 시간이 되었지. 너는 날개가 있으니 앞에 가. 나는 느려터져서 뒤에 따라 갈게. 그나저나, 난 네가 내게 다가올 때 두 팔을 벌리고,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게 꼭 춤 같더라. 내가 갖지 못한 가벼움이랄까, 왔다 가도 흔적이 남지 않는 그 몸짓. 히이 누구나 타고난 재주 하나쯤은 있잖아. 너는 그렇게 오랫동안 이 자리에 서 있었듯. 이윽고 마른 바람 스치자 날은 어두워졌고 빗방울이 후득후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나비는 하늘을 나느라 어깨가 빠질 것 같은 통증을 참고 있었습니다. 그래, 난 니가 다가올 때 그리고 내게 앉고 기대어 올 때가 좋았어. 변화를 꿈꾸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지. 나무가 설움을 토해내며 쓸쓸히 말했습니다. 어떤 욕심도 어떤 경계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야지. 꿈 없는 잠을 꿈꾸던 나비가 말했습니다. 허공을 끈으로 삼으면 안 걸리는 놈 없겠지. 나무가 말했습니다. 바다는 꽃이라고. 뭐, 바다가 꽃이라고? 나비의 말에 나무가 되물었습니다.




혜범스님 / 스님은 순간순간 긴장하게 만들어요


......뭐?

왜 그리 숨막히게 살아요?


사람은 생겨먹은 것도 사는 모양도 다 달라. 불편하면 내게서 떠나가. 너 없었을 때도 내 생은 그럭저럭 살았어. 니가 있어서 내가 불편하다는 마음은 없었냐? 해가 뜨면 독수리의 눈은 밝아지지만 부엉이는 눈이 머는 법이야. 


.....까칠하시기는. 스님, 저는 정말 남김없이 다 버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스님께 배우러 왔습니다.

그랬냐? 이 깻묵덩어리야. 그럼 그걸 버리라고.

뭘 버리라고요? 버릴 게 아무 것도 없는데요.

그걸 버리라니까, 이 눔아.


***다음 날 아침 아침공양이 끝나고 상좌를 내쫓아버렸다. 아고아고 너도 중생 나도 중생. 나도 잘못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는 나하고 길이 다르다. 나도 나그네 너도 나그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하며 네가 불편해하는 순간 그러므로 너에게도 뭔가 잘못 된 게 있을 수 있다, 내가 잘못살았다면 미안하다, 하고 토닥거려 줄 것을. 아고아고 절에 할일은 태산 같은데.




혜범스님


송정(松亭), 옛날에는 노송의 숲이 울창하였고 정자가 있어 휴식처로 이름이 높아 마을 이름도 송정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제 노송은 몇 그루 없다. 다 베어냈다. 그래도 정자가 있기는 하나  옛 정자는 없고 마을 어르신들이 세운 조악한 정자가 있을 뿐이다. 정자의 이름도 송정이 아니고 손곡정이라는 이름이지만. 그래도 나는 오며 가며 이 정자에 앉아 쉬곤 한다. 


멀리 부산서 불자가 찾아왔다.

<이 먼 곳까지 어인 일로?>

<부처를 찾아왔습니다.>

<......앞으로는 다시 찾지 마시죠.>

<왜요?>

<보살님이 찾아 다닐 데라고는 없습니다. 부처라니요? 보살님의 처사님이 부처님같으십니다. 코로나가  극성인데 보살님이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걸 허락해 주시는 걸 보면.>

<......>

<참배하시고 내려 가실 때 정자 앞에 얼어붙은 개울, 얼음 밑으로 흘러가는 물 그리고 마을 입구의 노송 두 그루는 꼭 보고 가십시오.> 


 나는 내가 머무는 이곳 송정(松亭)이 참 좋다. 송정(松亭)에 또다시 눈이 내린다.





신은숙 / 2020년 5월 31일 


어제 부처님오신날 봉축 콘서트가 송정암에서 있었다. 해마다 마당을 내어주시고 시낭독의 기회를 주시는 혜범스님 덕분에 일년만에 만나도 반가운 분들.


내가 송정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산신각.  법당 뒷편에 자리해서 여간해선 눈에 띄지도 않는데  몇해전부터 산신각 지붕이 내려앉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번에 한 신도 분의 보시로 산신각이 새로 태어나다시피 했다.

고마운 일인데도 나는 예전의 그 산신각이 벌써 그립다.  올 봄 초 갔을때 산벚꽃이 만발하던 곳. '숨어우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주변이 정비되어 어쩌면 그 산벚나무도 볼수 없을 것 같다.

목련이 촛대처럼 필 때  그 아래서 책(강원작가)보시던 스님과 예전의 산신각을 오버랩해서 그림을 그렸다.

스님도 산신각도 허물어지지않고 오래 머물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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