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강산 세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산 Jan 30. 2021

구붓하여 구순한 사람

- 강산 시인의 꿈삶글 9






구붓하여 구순한 사람

- 강산 시인의 꿈삶글 9





땅끝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

땅끝에서 온 편지를 읽는 사람이 있다

섬진강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

섬진강에서 온 편지를 읽는 사람이 있다

지리산에서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

지리산에서 온 편지를 읽는 사람이 있다

꽃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이 있다

꽃 앞에 엎드려 꽃을 읽는 사람이 있다

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는 사람이 있다

섬진강에서 지리산을 보는 사람이 있다

광주호 같은 사람이 있다

소쇄원 같은 사람이 있다

뒤란의 대밭 같은 사람이 있다

대밭의 죽순 같은 사람이 있다

마당 가에 심어진 잼피나무 같은 사람이 있다

섬진강에 사는 재첩 같은 사람이 있다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 같은 사람이 있다

섬진강을 낳은 데미샘 같은 사람이 있다

구례 토박이보다 더 토박이 같은 당몰샘 같은 사람이 있다 


시인들 중에는 

정치를 잘 하는 시인도 있다

장사를 잘 하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만드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다듬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가꾸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뿌리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춤추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부르는 시인도 있다

시를 잘 숨쉬는 시인도 있다

시를 참 잘 살아가는 시인도 있다


나는 인복이 많아서

참으로 아름다운 시인들을 만났다

고향 같은 김도수 시인을 만났고

마당 같은 김인호 시인을 만났고

안방 같은 여수의 시인들을 만났다

깃든다는 말

스며든다는 말

구붓하다는 말

구순하다는 말

구붓하여 구순하다는 말

나는 이제 그 말들의 숭배자가 되었다


나를 제자로 받아줄 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제

두 번째 아름다운 스승들이 생겼다



*

내가 인천에서 이경림 시인의 토씨찾기를 읽고 김영승 시인의 반성을 읽고 김중식 시인의 황금빛 모서리를 읽는 동안 김인호 시인은 가끔 인천에서 인천 시인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술을 먹지 않은 나는 가끔 김인호 시인의 스텔라 자동차를 운전하기도 하였다 오토 르망 자동차만 운전했던 나는 가끔 수동 스텔라 운전을 하다가 시동이 꺼져버리곤 하였다 주로 정차 했다가 다시 출발하는 순간 시동이 꺼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김인호 시인은 침착하게 나에게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잘 가르쳐 주시곤 하였다 수동 자동차 운전 뿐만 아니라 타자기로 글을 쓰던 나에게 컴퓨터도 가르쳐 주셨다 아래한글 뿐만 아니라 엑셀까지도 잘 가르쳐 주셨다 김인호 시인은 언제나 앞서가는 사람이었고 친절함과 겸손함을 함께 갖춘 인생의 스승이었다 무엇보다도 시와 인생은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술과 노래와 춤과 삶으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술을 아예 하지 않으니 아름다운 시인 되기는 진작에 글러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김인호 시인의 <雨季2>를 가장 좋아한다 이 시를 읽으면 어머니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들은 참으로 큰 힘을 가졌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 하는 일이 없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고 동찬이 어머니도 그랬다 아마도, 세상의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럴 것이다 동찬이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의 어머니도 처녀시절에는 막내딸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자랐다고 하셨다 하지만 잘생긴 아버지에게 홀딱 반해서 서둘러 결혼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이웃 사람이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 삼씨라도 팔아서 살림에 보태 쓰라는 배려에서 시작된 도붓장사는 어머니의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는 커 가는 자식들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씀 하셨다 살림만 하시던 동찬이 어머니께서도 다섯 자식을 키우기 위하여 우유배달부터 시작하셨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늘 감동을 받곤 하였다 오늘날 이렇게 김인호 시인께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동찬이 어머님의 지혜와 노력이 보태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생에서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듯이 김인호 시인에게는 동찬이 어머니가 있었고 김도수 시인에게는 민성이 엄마가 있었고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어서 참으로 좋다




* 나의 시 나의 삶 / 雨 季 2  / 김인호


우유배달 갔다 와

벗다 벗다 혼자서는 못 벗고

술 덜 깬 나를 불러 벗겨 달라며

발이 물에 퉁퉁 불어 그렇다는 말 감추고

애먼 장화 작은 탓만 하는

아내 마음


.........................................................


큰 아이, 세쌍둥이 그리고 막내까지 다섯 아이들. 막내가 13개월이 되자 아내는 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겠다고 궁리를 내던 참이었는데, 우연히 가까운 곳에서 우유보급소를 운영하고 있는 초등학교 친구와 25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다섯 아이 이야기를 듣고는 궁금해진 그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는 아내에게 자기 우유보급소에서 배달을 해보라고 제안을 해왔다. 친구로서는 어떻게든지 돕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자괴감에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친구가 돌아가고 아내는 당신이 조금만 도와주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발전소에서 교대근무를 하던 때라 야간근무 때만 빼면 승용차로 도울 수 있겠다 싶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음날, 아내는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하여 연습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자전거를 배웠다지만 오랫동안 타보지 않은 까닭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넘어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못 본 척 담배만 피웠다.


아내는 새벽 네 시면 일어나 보급소에서 집 앞까지 실어 온 우유박스를 싣고 새벽거리로 나섰다. 내가 오전 근무조거나 오후 근무조일 때는 포니승용차에 우유박스를 싣고 내가 운전을 하고 아내는 낮에 미리 확인해 둔 배달할 번지를 찾아 골목을, 계단을 뛰어다녔다. 잠든 아이들이 깨어 울까봐 마음은 바쁜데 일이 익숙하지 않아 몇 번씩 주소와 주문량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아내의 자전거가 오토바이로 바뀌고, 배달할 집 번지들도 익숙해지면서 아내 혼자서 일을 하기 시작하는 날이 많아졌다. 오후 근무를 끝내고 밤늦게 돌아와 잠든 나를 깨우기 미안하다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혼자 어둔 새벽거리로 나서는 것이었다. 처음 인수받을 때는 세 박스이던 배달량이 차츰 늘어 다섯 박스, 일곱 박스로 자꾸만 늘어갔다.


부부동반 저녁식사를 하자는 친구의 초대를 몇 번이나 미루다가 만난 저녁식사 자리에서 친구는 아내를 보며 참 지독하다는 말을 몇 번씩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처음 시작할 때는 이까짓 것 못하겠냐고 시작하지만 두 달을 못 채우고 그만 두는 경우가 허다한데 다섯 아이 키우면서도 매달 주문량을 늘려 가는 우수 배달사원에게 주는 금반지를 독식할 정도의 또순이라 내심 놀랐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배달량이 늘어갈수록 일에 익숙해지고 나는 점점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다. 술이라도 한잔 마신 날은 아내가 새벽에 나서는 기척을 느끼면서도 모른 척 돌아눕는 일도 있었고 몸살기운이 있다고 선수를 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깨어나 문을 열어보니 아뿔싸!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혼자서 일을 마치고 돌아 온 아내가 후줄근 젖은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목을 타고 넘어오는 미안하다는 말 못하고 ‘깨워서 같이 나가야지 혼자 갔다’고 되려 화를 냈더니 아내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으며 장화나 벗겨 달라며 발을 내민다. 빗물에 푹 젖은 발이 퉁퉁 불어 벗겨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장화가 작아서 잘 벗겨지지 않는다고 장화 탓을 하면서….


- 격월간 <삶이 보는 창> 발표





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 김인호 시사진집  

저자 김인호|시와에세이 |2019.12.12

판형 규격외 변형

도서 15,000원


목차


시인의 말·05
제1부
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10
평사리 풍경·12
깃든다는 말·14
화엄사 봄 저녁·16
지리산 운해 문장·18
반야를 오르는 마음·20
산책·22
박형(朴兄)에게·24
고라니 우는 밤·26
숲 울음소리·28
길·30
빗점골·32
은어의 길을 따라·34
가슴사리·36
제2부
봄비 지나간 아침·40
어쩌랴, 봄인 것을·42
섬진강 봄 버스·44
삼팔광땡 구례 장날·46
절절한 봄·48
아침놀·50
떡살구·52
매화 꽃소식을 물어오는 그대 마음·54
차이·56
강의 이름·58
논이 어여쁜 달·60
아침 빛·62
경계를 넘어·64
죽지 못해 장수마을·66
제3부
선암사 해우소·70
명옥헌에서·72
봄눈·74
활짝 핀 꽃보다는·76
석곡 소식·78
수행의 길·80
칠불사 영지·82
산동의 봄은 두 번이다·84
화개, 봄밤·86
새벽안개가 독하다·88
남촌집·90
달뜬 마음·92
돌아서면 이내·94
낙타들 길게 우는 밤·96
제4부
누수(漏水)·100
한겨울 뜨시겄다·102
조닐로·104
코뿔새·106
가을을 잃다·108
떨어진 열매·110
뒤란·112
와온(臥溫)·114
당신의 울음·116
지초봉·118
하지감자꽃·120
어머니별·122
고슴도치·124
나는 저 강의 숭배자다·126
발문(이원규 시인)·128


출판사 서평


산과 강이 빚어내는 빛으로 아름다운 시를 찍다

김인호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가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김인호 시인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날씨가 화창하거나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함박눈이 내려도 섬진강변을 사진에 담고 시를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노고단과 형제봉과 반야봉 등을 오르내리며 시를 쓰며 사진을 찍는다. 이번 시집 『지리산에서 섬진강을 보다』는 2009년 야생화 시사진집 『‘꽃 앞에 무릎을 꿇다』이후 만 10년 만에 펴내는 것으로 그의 시와 사진 속에는 지리산과 섬진강 자락의 고요와 평화가 깃들어 있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 따라 야근 가는 길
비 그쳤지만 강바람은 아직 시리다

어제 빗방울에 수만 송이 매화가 더 피어났구나
지리산 봉우리 봉우리에는 아직 하얗게 눈 쌓였지만
매화 산수유 몽오리 몽오리는 이제 부풀 대로 부풀었다

뉘라 오는 봄을 막을 것인가
사람의 일도 저렇듯 자연을 닮았으면 좋겠다
성난 마음에도 미워하는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 일어 꽃 피우는 봄이 왔으면 좋겠다

활짝 핀 꽃보다는 마악 터져나는 꽃 모양이 좋다던 그대
그대가 생각나는 그런 꽃 때,
ㅡ「활짝 핀 꽃보다는」전문

시인은 섬진강의 목격자이자 지리산의 증언자다. 그리하여 마침내 화답하는 야생화와 풍경의 말씀들을 또박또박 받아 적은 뒤 세상 사람들에게 사진과 시로 감동적인 ‘섬진강 편지’를 쓰고 있다.
김인호 시인의 시와 사진은 볼수록 더욱 그윽하고 깊고 넓다. 이번 시집 「누수(漏水)」에서 그는 “쓰지도 않는데 계량기가 돈다/마음속 꼭지란 꼭지를 꼭꼭 잠가도 계량기가 빙빙 돈다”며 “마음속 관의 어디가 얼마큼 새는지 모르는 채 나는 오늘도 속절없이 젖어간다”며 깊은 삶의 성찰을 보여준다.
김인호 시인은 이번 시집 「시인의 말」에서 “맑은 섬진강물과 푸른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편지를 띄웠던 날들, 편지를 띄울 그대가 있어 좋았다. 참 좋았다. 내일도 그러하리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20여 년 동안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온 나라 산기슭을 헤매며 야생화 사진을 찍느라 너무 애를 쓰는 바람에 몇 년 전부터 목 디스크를 얻기도 하였다.

모진 세월 쉼 없이 흘러온 어머니 사진 속 젊은 날 가르마처럼 단정한 강의 길 산 굽이굽이마다 피워 올린 골 안개 미소로 짐승들 거친 숨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바다에 닿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순정한 강을 바라보는 산정의 아침이면 갓 태어난 아가의 순한 마음 되는 나는 저 강의 영원한 숭배자다
ㅡ「나는 저 강의 숭배자다」 전문

김인호 시인에게 섬진강은 외로운 기러기아빠의 어머니이자 아내이자 딸이었으며, 지리산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다. 시인은 “아직 멀었다”며 겸손해하지만 시인은 어느새 섬진강과 지리산과 하나가 되어 깊은 상처와 아픔을 위무하고 치료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사진집을 통해 지리산과 섬진강 시인의 큰 숨결을 함께 호흡하며 자연 · 생명 · 평화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김경주 / 좀 길어진 글. 오윤 선배를 기억하며.


나는 종종 그림도 읽는다. 하여 함께 읽어보고 싶은 것은 198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오윤>의 채색 목판화 ‘춘무인 추무의’이다. 


 ‘춘무인 추무의’를 일별해보면 전통연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농악의 ‘판 굿’장면으로 농촌 공동체의 ‘집단적 신명’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먼저 오른 쪽 하단 행렬의 선두에서 깃대 잡이가 들고 있는 영기의 붉은색 바탕에는 ‘춘무인 추무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곧 그것이 작품의 제목이 된다. 이는 강증산의 어록에 있는 말이다. 증산은 <강일순>으로 그의 제자들은 동학의 최제우 다음에 온 큰 스승으로 추앙한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다, 추수한 뒤에 곡식 종자를 가려두는 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이니 이것이 곧 믿음의 길이라” 춘무인 추무의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농본사회에서 땅을 그 삶의 터전으로 살아 온 사람들의 경구다.


하지만 그 땅은 한국사회의 산업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되어 도시로 편입되기 시작함에 따라 ‘공급 고정성’을 지닌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재화로 바뀌고 이에 대한 소유여부는 빈부차별의 고질적 요인이 되어버렸다.


 오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은 그 농촌 공동체의 문화적 토대 위에서 살아온 농민들이거나 산업근대화 과정의 말단으로 막 편입되기 시작한 도시 빈민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 인물들은 특정 인물을 표상하고 있기보다 육체적 노동으로 삶을 유지해 온 ‘몸의 형상’들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계급을 드러내는 ‘무명인’들이다.


 깃발을 앞세우고 놀이행렬을 이끄는 일군의 농악대를 선두로 전형적인 ‘판 굿’마당을 펼치는 남녀노소는 저마다 흥에 겨워 한바탕 어깨춤을 추며 그 뒤를 따른다. 그 행렬은 서로 감았다 풀리기를 반복하며 안과 밖이 교차 된다.지역에 따라 그 형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를 멍석말이, 고동 진, 방울 진, 달팽이 진 등으로 부르며 때로는 ‘자반 뒤집기’ 라는 판짜기를 통해 행렬의 안팎을 극적으로 반전시키기도 한다. 인물들은 서로 엇비슷한 행색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동작이 제각각 생동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그 놀이판에 함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배제와 차별이 없는 모두의 공간에는 목발을 짚은 사람, 아비 어깨위의 목마 탄 어린아이도 함께하고 있다.


 놀이판은 그 무대가 ‘마당’이다. 마당은 농촌사회에서 삶의 바탕이 되는 곳으로 혼례와 장례 등 삶으로 부터 죽음에 이르는 거의 모든 의례와 문화적 의미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곳이다. 따라서 전통연희는 그 공간형식이 서양의 프로시니엄 무대와는 다르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따로 없다는 점에서는 얼핏 서양의 부조리극 무대와 흡사하지만 서구의 전위극 무대는 그들 사회에 팽배한 소통부재와 잠재적 불안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그 핵심은 ‘열린 마당’이 아니라 ‘제거된 무대장치’에 있었다. 하지만 전통연희는 그 열린마당에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참여자 모두는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마당은 곧 경계와 차별 없애며 삶의 시간에 일과 놀이의 균형을 제공한다.


 이  놀이 마당이 생동감을 주고 있는 것은 공감각적 요소와 다시점(多視点) 방식의 화면구성에 있다. 인물들의 어깨춤과 행렬이 보여주는 시각적 요소와 함께 화면에 청각적 요소를 더하고 있는 것은 꽹과리를 든 상쇠와 부쇠, 그 뒤를 따르는 징, 장구, 북 등 이른바 사물(四物)이다. 사물은 기후를 주관하는 뇌공, 풍백, 운사, 우사라는 신격(神格)의 상징성을 가지며 꽹과리는 천둥, 징은 바람, 북은 구름, 장구는 비를 의미한다. 이를 또 음양으로 나누면 가죽으로 만든 북과 장구는 땅의 소리를 나타내고 쇠로 만든 징과 꽹과리는 하늘의 소리를 나타낸다. 이는 우리의 전통악기 구성이 농경사회의 세계인식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며 온 우주를 울리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놀이판을 바라보는 눈의 위치이다. 이는 서양의 투시도법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다시점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에서 행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시점은 부감시(俯瞰視)이지만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점은 같은 땅에서 발 딛고 바라보는 수평시(水平視)이다. 따라서 모든 인물은 원근(遠近)이 없이 평등하다. 하늘과 땅에서 바라보는 두 개의 시점이 하나로 겹쳐지는 곳에서 사람들이 춤추며 논다. 이러한 구성은  단원 김홍도의 씨름판, 혹은 무동 등의 풍속화에서 발견되는 형식이다. 오윤은 전통회화의 시점구성 원리를 차용해 서로 다른 시점들을 하나로 융합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화면에서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꿰어내고 있는 중심 주제는 바로 흥겨운 ‘춤’이다. 춤은 몸 동작이지만 거기에는 공간적, 시간적,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수반된다. 춤은 늘 가락과 박자를 보듬고 있으며 몸짓의 표현과 짝을 이루는 공감각적 요소로 작동한다. 콜링우드가 ‘춤은 모든 언어의 어머니’라고 했듯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인 춤은 몸짓을 통해 전달되는 행위의미와, 그 시각적 요소, 공간적 너비, 그리고 시간적 흐름과 청각적 요소 등이 함께한다. 무용 평론가 존 마틴(John Martin)은 춤의 ‘운동감각’을 우리 몸이 갖는 여섯 번째 감각, 즉 일종의 ‘내적 흉내’로 불렀다. 무의식적으로 흉내를 내는 것, 즉 타인의 경험과 감정을 몸으로 겪어보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이해하고 이 세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사이를 잇게 하는 ‘공감’이라는 끈이다.


  나는 이 판화를 볼 때마다 선두의 깃대 잡이로부터 행렬의 맨 마지막 넘어질 듯 따라가는 여인까지 서른다섯 명의 인물들이 펼치는 저 신명의 마당에 문득 서른여섯 번째로 끼어들고 싶어진다.





권순진 / 2019년 1월 28일  · 


호라지좆/ 김중식 


난 원래 그런 놈이다 저 날뛰는 세월에 대책 없이 꽃피우다 들켜버린 놈이고 대놓고 물건 흔드는 정신의 나체주의자이다 오오 좆같은 새끼들 앞에서 이 좆새끼는 얼마나 당당하냐 한 시대가 무너져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들 앞에서 내 가시로 내 대가리 찍어서 반쯤 죽을 만큼만 얼굴 붉히는 이 짓은 또한 얼마나 당당하며 변절의 첩첩 山城 속에서 나의 노출증은 얼마나 순결한 할례냐 정당방위냐 우우 좆같은 새끼들아 면죄를 구걸하는 告白도 못 하는 씨발놈들아 


 - 시집『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

......................................................... 


 시가 언제 쓰진 것인지 반드시 알 필요는 없으나, 작품 이해를 위해 발표 시점과 배경에 관한 정보가 도움이 될 경우가 있다. 이 시는 90년대 초 노태우가 전두환에 이어 집권했을 당시, ‘한 시대가 무너져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들’이 여전히 판을 치는 꼬락서니에 분개하며 조롱을 퍼붓는 해학의 입담이다. 차가운 소주잔에 울분을 섞어 마셨던 술집들의 골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다. 구국을 위한 3당 합당이니 뭐니 둘러대며 거짓과 술수가 난무하고 ‘변절의 첩첩 산성 속에서’ 참을 수 없어 기어이 대놓고 내갈기는 오줌줄기이다. 


 녹여내지 못할 말이 없고 수용하지 못할 낱말이 없는 시의 영역이라지만, 비속어를 이렇게 마구 퍼부어도 ‘정당방위’가 될지 모르겠다. 사실 ‘호라지좆’은 욕이 아니라 식물의 이름이다. 그 뿌리는 ‘천문동(天門冬)’이라는 귀한 이름의 약재이고 호라지좆죽을 쒀먹으면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들었다. 부지깽이 나물이라 하여 반찬으로 무쳐먹기도 한다. 하지만 ‘우우 좆같은 새끼들아’ ‘씨발놈들아’는 분명히 욕설이다. 욕은 욕이되 ‘면죄를 구걸하는 고백도 못하는’ 얍삽한 자들에게 퍼붓는 욕이다.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추락하면서 그 정도 욕이야 까짓 거 못하겠는가. 돌아보면 당시엔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고, 아팠었고 격렬했었다. 1990년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67년생 시인은 시집의 자서에서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고 밝혔듯이 다 지난 일이고 세월이다. 그때 목울대를 떨면서 울분의 술을 들이켰던 자들도, 스스로의 삶을 방목했던 이들도 세월과 함께 무뎌진 용기에 타협으로 적당히 희석한 부드러운 소주를 마실 뿐이다. 대책 없는 젊음의 고단한 삶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된다.


 한때 젊음을 뜨겁게 불살랐던 가치들이 뒤집어지고, 물신주의와 개인주의 시대로 급속히 변화하는 물결 가운데 자아니 정체성이니 하는 것들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이론적 방편으로만 무장되어갔다. 많은 386이 그랬고, 486도 그랬으며, 586 또한 그러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시 ‘이탈한 자가 문득’중에서) ‘그렇게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라고 항변만 할 것인가. ‘단 한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불안에 떨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지금이야말로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아닌가. 돌이켜보면 이 나라 정치 환경이 언제 한번 아름답고 정의로운 시절이 있었냐만 촛불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짜증나고 부아가 치미는 일들의 연속이다. 현실 정치는 여전히 가장 탐욕스러운 기회주의자들의 각축장이다. ‘한 시대가 무너져도 끝끝내 살아남는 놈들’ ‘면죄를 구걸하는 고백도 못하는 씨발놈들’ ‘호라지좆’의 위용 앞에 대가리나 처박을 것들아. 










매거진의 이전글 두부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