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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Feb 05. 2021

마음 속 몽돌 하나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4





마음 속 몽돌 하나

- 강산 시인의 꿈삶글 14





현미경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고

망원경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아주 먼 곳에서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제주도는 하나의 조약돌로 보이리라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제주도는 하나의 조약돌로 보이리라


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에

그렇게 몽돌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의 해안에는 모래이거나

검은 현무암들이 많다

내가 자주 가는 몽돌밭은

내도 알작지와 화순 황개천 몽돌밭이다


제주시 내도 알작지 몽돌밭


내 마음 속에는 오늘도 몽돌들이 뒹굴고 있다

모난 모서리를 조금씩 갈아서

둥근 몽돌을 만들고 있다

내 마음 속 몽돌들은 사리가 될지도 모른다


내 마음 속 몽돌들은 사리가 될지도 모른다


바다는 오늘도 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돌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지 못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돌도 그 마음을 알아서 아주 조금씩 옷을 벗는다


돌도 그 마음을 알아서 아주 조금씩 옷을 벗는다


바람도 날마다 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돌이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문을 두드린다

돌도 그 마음 알아서 아주 조금씩 문을 열어준다


돌도 그 마음 알아서 아주 조금씩 문을 열어준다


가끔은 돌의 마음을 안을 수 있는 날도 있다

아주 가끔은 물의 품에 안겨 꿈을 꾸기도 한다

바람도 살포시 다가와 함께 안아주기도 한다

돌의 마음도 가끔은 젖어들고 싶을 때가 있다


돌의 마음도 가끔은 젖어들고 싶을 때가 있다


취우(翠雨) 한 방울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옹달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시냇물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강물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다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모래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몽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바위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산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산맥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몽돌 하나에서 세상을 읽는 사람이 있다


물을 좋아하는 나는 늘 물소리에 젖어서 살고싶다

몽돌을 좋아하는 나는 늘 몽돌과 함께 살고싶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늘 살아있는 책으로 살고싶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늘 바다의 파도로 살고싶다


몽돌을 좋아하는 나는 늘 몽돌과 함께 살고싶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간다. 곁에 월대천이 있다. 월대천과 어시천과 도근천이 만나 바다로 간다.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길이 바다가 된다. 이 물길을 경계로 외도와 내도로 나누어진다. 오늘은 다리를 건너 내도로 간다. 내도 알작지로 간다. 알작지의 돌들은 오늘도 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알작지의 젖은 돌들, 저 마음 깊은 속까지 젖어 있을까?


나도 이제는 내 마음을 가다듬고 떠나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아서 떠나야만 한다. 내가 아는 어느 나라는 자식들이 성장하면 스스로 떠난다고 한다.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수행자의 길을 걸어간다고 한다. 나도 이제 그 아름다운 길로 가야겠다. 아니, 아름다운 길 하나 만들어야겠다. 세상 사람들이 삶에 지쳤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아름다운 쉼터 하나 만들어야겠다. 알작지의 돌들이 한쪽에서 잘 말라가고 있다.


알작지의 돌들이 잘 말라가고 있다, 옷이 마르면 마음 속까지 잘 마를 수 있을까?


알작지의 돌들을 보면 태생이 다른 돌임을 알 수 있다. 고향이 다른 돌들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한라산 높은 곳에서 온 돌들도 있고 낮은 곳에서 굴러온 돌들도 있으리라. 깊은 바다에서 온 돌들도 있고 낮은 바다에서 떠밀려온 돌들도 있으리라. 그리고 이 해변이 고향인 돌들도 있으리라. 얼굴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지만 이 돌들은 사이좋게 잘 지낸다. 바다가 밀려오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바람이 불면 서로 어깨를 기대고 서로의 가슴을 안아주기도 한다.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눈이 오면 함께 덮을 줄도 안다. 그리고 해가 뜨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함께 따뜻해지기도 한다. 


알작지의 돌들은 고향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다. 하지만 알작지의 돌들은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춘다.


나는 어쩌면 저 바다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저 하늘에서 왔으리라. 나는 어쩌면 토성에서 왔으리라. 하지만 나는 선천성 심장병 환자로 태어났다. 나는 어쩌면 전생에 죄를 지었으리라. 가족들 몰래 심장병을 알아버린 나는 가출을 하였다. 그 때는 심장병 환자 하나 있으면 집안 말아먹는 시대였다. 육영수 여사님께서 심장재단을 만들어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편지 속에서 나는 언제나 건강한 아들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서른 살 까지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나는 어쩌면 바다에서 왔으리라.나는 어쩌면 하늘에서 왔으리라.


저 돌들도 언젠가 모래가 되리라. 나도 언젠가 흙이 되리라. 하지만 서른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던 나는 벌써 오십을 넘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더 오래도록 살 수 있으리라. 이제는 두 아들 모두 참으로 잘 성장하였으니 나는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리라. 오래도록 꿈꾸어왔던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잘못된 자식 사랑을 지켜보면서 생각한다. 우리들이 진정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은 무엇일까?


저 돌들도 언젠가 모래가 되리라. 나 또한 언젠가 흙이 되리라.


반질반질한 돌을 보니 문득, 컬링 경기가 생각난다. 돌이 돌을 밀어내고 때로는 돌이 돌의 엉덩이를 가볍게 밀어 동그라미 안으로 밀어넣어주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삶과 죽음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시와 스포츠에 대하여 생각한다. 스포츠는 정해진 룰에 맞추어 열심히 하면 된다. 하지만 시는 정해진 법칙이 따로 없다. 열심히 시를 살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있으리라.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삶에서 시작한다. 정정당당한 시와 삶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이 아름답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아직은 몽돌이 되지 못한 바위에서, 살아있는 미역을 뜯어 먹는다.

             

자갈이 되어가고 있는 바위에서 자라는 미역을 먹어본다


나의 배아는 이제 미토콘드리아처럼 암모나이트처럼 염소의 뿔처럼 전갈의 꼬리처럼 등이 휘어진 태아로 자라나고 있다. 나는 이제 전생과 후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지금 현미경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망원경으로 세상을 읽고 있는가?




* 함께 찍은 사진들을 다음에 다시 불러내어 좀 더 글을 쓸 수 있을까. 일단은 사진만 여기에 보관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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