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 이어도 시인과 배진성 시인

―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45

by 강산





다랑쉬 이어도 시인과 배진성 시인과 이어도공화국/배진성





「이어주는 섬」//섬들이 징검다리처럼 있다/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다/섬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나를 밟고 지나간다//내 안에 섬들의 발이 있다/내 가슴속에 섬들의 발자국이 있다//내 가슴속에 이어도가 있다/내 가슴속에 이어주는 섬이 있다/나는 징검다리 같은 이어도가 된다//


「노인성이 유숙하는 섬」//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서귀포혁신도시에서 중문관광단지까지/이어도 길을 걷다가 태평양으로 간다/설문대할망의 막내아들을 만나러 간다/남극노인성이 유숙하는 이어도로 간다//바다에서 해(海)를 본다 물이 아프다/인간들의 욕망이 낳은 쓰레기들의 섬/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욕망들의 얼굴,//바다 해(海) 글자를 더 자세히 본다/어머니가 보인다 어머니가 아프다/아픈 어머니에게 방사능 오염수까지 먹인다/태평양의 수평선이 트로이목마를 끌고 온다/북극곰의 신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바다와 하늘이 함께 뜨거워지고 있다//이제 막 성인이 된 막내아들이/뜨거운 어머니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다/유숙하던 노인성도 곁에서 돕는다/서천꽃밭 꽃감관도 불사화를 가져온다//용궁으로 가는 올레에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랫소리 들려온다 하늘에는 서천꽃밭이 있고 땅에는 마고성이 있고 바다에는 이어도가 있다//어머니를 살리려고 노인성과 꽃감관도 떠나지 못한다//서귀포는 어디라도 문만 열면 태평양이다/서귀포시 해(海) 1번지/서귀포시 태평양로 1길/노인성이 유숙하는 섬에 연꽃 한 송이 문을 연다//


「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서른 살까지 사는 것이 꿈이었다 왼쪽 가슴이 아팠다 남몰래 가슴을 안고 쓰러지는 들풀이었다 내려다보는 별들의 눈빛도 함께 붉어졌다 어머니는 보름달을 이고 징검다리 건너오셨고 아버지는 평생 구들장만 짊어지셨다 달맞이꽃을 따라 가출을 하였다 선천성 심장병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나의 비밀은 첫 시집이 나오고서야 들통이 났다 사랑하면 죽는다는 비후성 심근증, 심장병과 25년 만에 첫 이별을 하였으나 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바다는 나를 이어도까지 실어다 주었다 30년 넘게 섬에서 이어도가 되어 홀로 깊이 살았다 나는 이제 겨우 돌아왔다 섬에서 꿈꾼 것들을 풀어놓는다 꿈속의 삶을 이 지상으로 옮겨놓는다 나에게는 꿈도 삶이고 삶도 꿈이다 <꿈삶글>은 하나다 꿈과 삶과 글이 하나로 만난다//


「연어의 종착역」//고향집 바로 앞에/연어의 종착역 표지석이 있다/나는 연어가 되어/참으로 먼 길을 거슬러 돌아왔다/나도 이제는/붉은 알을 낳아야만 한다// ―『배진성』1


「징검다리」//하나//길이었다 덜 자란 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어머니는 방물을 파셨고 새벽 샛강의/입김 자욱한 안갯속으로 떠나시곤 했다/나는 담장 밑에 펼쳐놓은 꼬막껍질에/쑥국 끓이기 놀이를 하며 자랐다/노을만 어렵게 어렵게 감아 들이던/바람개비가 스스로의 바람결을 가늠할 수 있을 때/물오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파랑 간짓대 들고/오리 떼를 몰아내던 골목이 심하게 흔들렸다/어머니 뒷모습을 지우던 안갯속으로/하얀 꽁무니가 사라지고/나도 그 속으로 따라 날아가고 싶었다//둘//할아버지 산소가 보이는 징검다리 사이로 햇살이/주검처럼 부서지며 흘러갔다 하류에서/한 몸으로 몸을 섞기 위해 취로사업 나가신/아버지가 무너진 둑에 묻히고 작업복이 천수답/허수아비에 내걸리던 날도 나는 그 저수지 뚝에서/삐비 꽃을 뽑아먹고 돌아오는 길/가로수 구멍 속에 몇 개의 돌을 더 던져 넣었다/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줄도 몰랐다/그 해 여름 장마는 담장의 발목을 적셨고/두꺼비 같은 우리 식구들은/한밤중에 회관으로 기어 올라갔었다//셋//학교 앞 코스모스로 기다리기를 즐겼다/하학종소리 사이로 보이는 형의 검정고무신 앞은/발가락이 먼저 나와 있었고 생활 보호 대상자/가족 앞으로 달려오는 옥수수 빵과 건빵/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는 뿔 필통 속 몽당연필로/흔, 들, 리, 며, 징, 검, 다, 리, 건, 넜, 다,/끈이 풀리는 소리로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는/우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그리하여/우리들은 징검다리를 잘도 건너 다녔다//넷//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끼고 기차놀이하던/우리들은 그 새끼줄 속에서 자유로웠다/우리들의 기차는 징검다리를 비로소 건너 다녔고/오후의 서툰 기적소리 울리며/동구 밖까지 나가 놀던 소아마비 동생은/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찾다가 찾아보다가/어린 집배원이 된 큰 형도/동생의 소식은 가져오지 못하고 한 떼/건너가는 동네 아이들만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다섯//여울물 소리는 끈이 풀리는 소리였고/또다시 묶이는 소리였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던/누이가 파란 눈의 아이를 보듬고 돌아와/빨래터에는 방망이질 소리가 잠들지 않았고/헛발 짚은 어머니는 물속에 더욱 자주 빠지셨다/……………… 배고픔과 어머니 ………………/들판에 흐드러진 달맞이꽃 사이로 그렇게 어머니는/젖은 보름달을 이고 늦게 돌아오시곤 했다// (1987년 예장문학상 당선작 「징검다리」) ―『배진성』2



「경운기」//들판에서는 늘 보리타작하는 소리가 들린다/정미소 주인이셨던 아버지가/벨트에 물려 끌려가던 날부터 축이 헛도는/천장에서 다시 떨어지듯 우리 식구들은/빈 들판으로 내쫓겼다 발동기 같은 큰 형은/발동기를 뜯어 짊어지고 논둑길을 넘어 다녔다/타맥기도 부서진 아버지 갈비뼈처럼 풀어/옮겨 맞추곤 했다 경운기들이/손쉽게 해치우고 들어가 쉬는 동안에도 우리는/들판에서 밤늦도록 이슬에 젖어야 했다/카바이드 불빛 아래서 카바이드를 녹이는 물처럼/우리 식구들의 가슴은 애타게 들끓었다/불이 꺼진 뒤에도/카바이드 깡통 속에는 몸살 나게 아름다운/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보리 한 됫박 퍼내어 바꿔온 복숭아를/보리 창고에서 나눠먹곤 했다 큰 형 몸에서는/늘 기름 냄새가 났고 바뀐 논에 말뚝을 박을 때마다/우리들의 들판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함부로/골병들어 거덜 난 보릿대를 곁에 쌓는 작은 형/보리 무덤에 검불을 쓸어내는 누이는/갈퀴와 고무래처럼 한없이 슬픔을 후볐다/가마니 한 장 크기의 그늘 속에서 조용히/기어 다니다 잠들곤 하던 나는 자연 숙제로 기르던/거꾸로 매달린 형의 무/그 속에서 싹트는 콩 거꾸로/자라던 허약한 순만 바라보며 그렇게 자랐다/그리고 많은 날들 다음으로 오는 오늘/털털털 탈탈탈 털털털털털 탈탈탈탈탈/들판을 온통 뒤집어엎어버리던 경운기가/골목마다 들쑤신다/추곡수매 공판날 줄서가는 아침/하곡수매처럼 저 멀리 노인들이 손수레 밀고/끌고 오신다 빈 들판에 바람이 껍질을 벗고/지나간다 그 길가로 바람의 껍질이 차갑게 쌓여/있다 월경리 사람들의 깊은 사랑을 실어 나르는/경운기는 힘센 들짐승이다 그러한 아침/나는 다른 계절 속으로 떠나 눈길에 경운기/발자국을 만들며 고향으로 가는 길을 걸어서 간다// (1988년 제22회 《문학사상》 신인발굴 시 부문 당선작 「경운기」) ―『배진성』3


「우리들의 고향」//

「길이 있는 풍경」//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아침 시선은/고춧대 하나에 꽂혀 있었다/외톨이처럼/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참새/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고춧대가 휘청거렸다/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춧대가 드디어 꼬꾸라졌다//새는 약속처럼/한꺼번에 떠났다/고추나무는/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그러한 밭에서 걸어 나온 길로/살벌한 평화처럼/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은 반란이다」//고향의 밤 별들이 싸운다 밤하늘은/반란이다 바람이 분다 쓰러진다 다시/넘어진다 별은 쌈질하는 입이다 주점/젊은 여자의 열린 자궁 속이다 길들이/제 골목을 찾아 들어가도 동네는 앞으로도/시끄럽다 물소리도 밤하늘을 쥐어뜯으며/이어져 흐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고향 우리 집은/골목 끝으로 몰렸다 동네의 개들은 무리 지어/일제히 짖어댔다 끝에 매달린 우리는 건너로/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곡식들이/줄기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솟아올랐다/태풍의 눈이 다시 무섭게 쏘아보았다 우리들의/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포식한 어둠은/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악을 썼다 몽둥이질/낫을 들고 휘둘렀고 쇠스랑으로 후려/갈겼다 검은 까마귀는 떼로 몰려와 무덤을/만들었다 무덤 속에도 하늘이 있었다 떠가는/흰 구름 변두리에 걸린 빛의 폐곡선에/갈라진 고향의 고샅길들이 감기고 있었다 그/하늘 속에는 메마른 공동우물이/파헤쳐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_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우리들의 고향」) ―『배진성』4


「고백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당신과는 발가락도 닮지 않았다/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백하면서 해는 서산마루를/붉게 걸어가고, 나는 잠을 깬다//밤에만 피는 꽃잎 속에서 나는/살아있다 어둠은 나의 집이다/그 집에는 천년을 열어도 다/열지 못할 많은 문이 있다/천년에 딱 한 번, 한꺼번에,/잠깐 어둡게 열렸다가, 스스로 잠긴다//그 속에는 발가락도 닮지 않은/사랑하는 당신이 있다/고백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살아있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한다/사랑한다 그리하여 나는 고민한다/고민한다 그리하여 나는 불러본다/불러본다 그리하여 나는 울어본다/울어본다 그리하여 나는 웃어본다/웃어본다 그리하여 나는 도망친다/도망친다 그리하여 나는 쓰러진다/쓰러진다 그리하여 나는 돌아본다/돌아본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살아난다//사랑하기 위하여, 저만치/저만치 피어 있는 꽃 한 송이//집에 돌아와 편지를 쓴다/유서처럼 마지막처럼 시를 쓴다/당신 곁에서 죽지도 못하고/어둠의 나라에서 이렇게 살아 있다// _ (1989년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 「고백한다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 ―『배진성』5


「엘리베이터 속에서 전화를 한다」//엘리베이터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풀벌레도 없고 풀도 없고/나무도 없고 그래서 나뭇잎도 없다/물도 없고 강도 없고 바다도/여전히 없다 또한 징검다리도 없고/새도 없고 생명이라곤 나밖에 없다/나도 죽어 있다 모른다 이제 더 이상/만남도 있을 수 없고 다만/극과 극이 통하고 있는 중이다/길도 보이지 않고 정전처럼 꿈도/꺼져 있다 그냥 그렇게 끊임없이/올라갈 뿐이다 혹은 내려갈 뿐이다/인기척은 아예 생각지 말자 이렇게/아무것도 없는 것은 모두가/한꺼번에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 엘리베이터는 도대체/멈추지 않는다 비상정지를 눌러도/정지할 수 없는 지상의 시간/이 발전소가 죽어도 다른 발전소가 살아 있고/어디서든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다/비상전원도 항상 준비되어 있어 나는 멈출 수/없다 있다 없다 있다 없다니까!/내 영혼은 멈출 수 없는 가슴으로 너를 부른다/아, 참 전화가 있었구나 이것만 있으면/나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 너에게 전화를 한다/늘 통화 중인/단 하나뿐인 사랑에게 또다시 전화를 한다/그러나 신호가 떨어질 리 없다 이미 없는 너/…(미래)에게 전화를 해도 우리는 통화할 수 없다/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다 (안에도 역시)/없다 신호가 떨어져도 나는 할 말이 없다/수화기만 들고 있을 뿐이다 소화기도 없다/불날 리도 없고 떨어질 리도 없다/신호가 떨어질 리 없다 떨어질 리는 절대 없다/어, 어어, 어! 그러나 나는 떨어진다 가장/깊은 혹은 가장 높은 지하로 떨어진다/너는 한 365층에서나 엘리베이터를 타라/타라니까 올라타라고, 내 말이 안 들려(?)/가벼운 마음으로 ― 너는 처음부터 가벼웠으니까/내가 있을지도 모를 그러한 땅으로 타란 말이야/나는 눈 감고 목숨까지 감고 가장/깊은 하늘에 깊이 누워 있을 것이다 별눈을 뜨고,// _ (1989년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 「엘리베이터 속에서 전화를 한다」) ―『배진성』6


「시인의 월급은 얼마나 된다냐」//참으로 오랜만에 들길을 간다/두엄자리 곁에 세워진 아버지의/낡은 지게를 지고 저물녘을 간다/참깨 베러 가신 어머니의 산밭으로/늦은 마중을 간다 오랜만에/바람을 비껴 여름 한쪽 끝으로/산길을 오른다/노을이 차마 곱게 익는다//일찍부터 외항선을 탄 만수/뱃사람이 된 만수네가 새로 장만한/논을 바라보며 들길을 간다/일곱 번씩이나 떨어지고도 다시/행정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현길이,/이미 기울어 버린 그 집에서/마지막으로 팔아넘긴 논배미를 지나/쓸쓸하게 걸어간다 새를 쫓는 깡통소리와/반짝이는 반짝이의 마음들이 노을 속으로/새를 날려 보내며 또 내일을 염려하는 가슴을/가다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허수아비는/쓰러지지 않고 동그랗게 질린 비닐 얼굴들이/하늘까지 닿으려는 마음으로 솟아오르곤 했다//콩밭으로 바람이 기어들어가고 밤은/들쥐처럼 숨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어머니와 산길을 내려온다 가끔/고개 치켜드는 벼 포기 사이로 추억들이/발소리를 숨죽이며 기어 나왔다 나는 참깨를 지고/어머니는 토란대를 이고 오셨다 가슴조인/달빛이 풀어지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 내려온다//― 어머니, 저 이제 시인이 되었어요/― 그래, 시인이 뭣 허는 것이다냐/― 예, 지금까지 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에요/ 밤낮을 밤으로만 지내면서 말이에요/― 그러냐, 그럼 이제 취직이 됐단 말이냐/―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럼, 시인이 뭣 하는 것인디 그러냐/ 오랜만에 니가 웃기까지 하고 말이여/― 예, 앞으로/ 우리들의 고향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래? 그럼 인쟈 테레비에도 나온다냐/―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게 아니에요/― 그라믄, 시인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된다냐/ 먹고살만한 직업이다냐/ 요즘 시상에는 돈이 최고드라/ 봐라, 만수는 돈 있승께 다들 걱정허는/ 장개도 쉽게 간다드라/ 돈 많은 이쁜 색시가 낼모레 온다드라/― 어머니, 하지만 저는 그렇지를 못해요/ 앞으로 어머니를 팔지도 몰라요/ 앞으로 고향을 팔아먹을지도 몰라요/ 시인은 가난한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을 갈고닦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더욱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우리들의 이야기가 들판 가득 출렁일 때 달빛은 우리가 걸어온 들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와 고향을 위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팔아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땅의 눈물 같은 시 한 편으로 살고 싶습니다// _ (1989년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시인의 월급은 얼마나 된다냐」) ―『배진성』7


늦게 쓰는 일기//1966년 참꽃 불타는 2월 28일 새벽 두 시/그믐달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눈썹이/떨어지고 닭도 울지 않았다 개 한 마리가/어둠 속에서 컴컴한 어둠을 향해/컹컹 짖었다 그리고 나는 울지 않았다/울음 없는 아이로 태어나 누워만 있었다/송아지 울음소리가 걸어 나오는 물소리/가느다랗게 들리고 핑경 같은 별들이/말똥말똥 눈을 뜨고 잠들지 못하는 그 사이로/보이지 않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별무덤을 파헤치고 다시 태어났다/그 자리에 나의 탯줄과 함께 누워있는 어머니/무덤가 어린 쑥 잎에도 향기가 오르고/

나는 어머니가 누운 만큼 겨우 일어설 수/있었다 별똥별이 떨어지고 숲이 있는/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지상에/

세상은 있었고 내가 태어나면서 같이 태어난/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한 아침으로/때 아닌 비가 내리고 담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_ (1989년 『땅의 뿌리 그 깊은 속에서』 「늦게 쓰는 일기」) ―『배진성』8


「심우도」//심우도(尋牛圖) 속으로 걸어간다 나의 흰 소는 보이지 않고 검은 소들이 있다//소들이 소나무 아래 모여 있다 멍에도 코뚜레도 없다 숲에서 뜯어먹은 풀을 되새김질하며 서로의 눈빛을 본다 서로의 등을 핥아주는 소도 있고 죽비처럼 꼬리로 엉덩이를 치는 소도 있다 새로 발견한 풀밭을 알려주는지 귓속말을 속삭이는 소도 있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소도 있다//나도 소를 길렀다 나는 늘 길을 들이려고 했다 내가 기르는 소는 코뚜레를 하였고 멍에를 하고 쟁기질을 해야 했다 갱본에서 쉬는 동안에도 말뚝에 박혀 있어야 했다 나의 소는 소나무 그늘에서 쉬어보지 못했다//나는 흰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 생각만 하였다 소와 함께 놀아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소를 업어 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소들이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소는 걸어가면서도 텅텅텅 똥을 잘 싼다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이 풀에게 밥을 준다 나도 소나무 그늘에 앉아 바다를 보다가 소들이 들어간 숲으로 따라 들어간다//숲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찢는다 소나무가 없어져야 땅값이 오른다며 소나무를 죽이고 있다 그해 겨울의 숲처럼 숲은 온통 소나무 무덤이 된다//숲에 소나무가 없다 소들이 함께 모여서 쉴 곳이 없다 가시덤불 속에서 가시에 찔리며 소들이 서 있다//소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렵게 새로 돋아나는 소나무 새싹에 콧김을 불어넣는다//나는 심우도(尋牛圖) 밖으로 나와 심우도(心牛圖)를 그린다// _ (2023년 『이어도공화국 6 - 서천꽃밭 달문 moon』 「심우도」) ―『배진성』9


「다랑쉬」//다랑쉬에는 다랑쉬마을이 들어있다/오름은 움푹해진 백록담도 품고 있다//마을 사람들은 평생 달과 함께 살았다/집들이 모두 불타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도/달과 함께 가재쑥부쟁이와 시호꽃을 피웠다//사람들이 다랑쉬굴 안에서 연기가 된 뒤에도/달은 잊지 않고 찾아와 섬잔대와 송장꽃을 피웠다//무쇠솥과 항아리와 놋수저와 신발만 남기고/열한 명이 들려 나와 바다로 떠난 이후에는/더 이상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어둠 속에는 아홉 살 아이가 울고 있는데/벗겨진 신발 찾으러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잠겨버린 어둠은 열리지 않는다//달이 찾아와 소리쳐 불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곁에 있는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높은오름/돛오름 둔지오름이 힘을 합쳐도 문을 열 수가 없다//남아있는 늙은 팽나무가 그저 바라볼 뿐/무너진 돌담도 집터도 우물터도 안으로 눈물 흘릴 뿐//달을 따라서 달의 고향으로 온 나도 그저/서로의 얼굴만 바라다볼 뿐// _ (2023년 『이어도공화국 6 - 서천꽃밭 달문 moon』 「다랑쉬」 * 다랑쉬예술제에서 춤과 함께 낭송한 시) ―『배진성』10






케이올리브(K-olive)를 쓰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기 시각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는 2010년에 외국으로부터 올리브를 도입해 국내에서 노지재배가 가능한지를 검토시험을 하였다 묘목을 품종별로 각각 20주씩 가져와 격리재배 온실에서 1년간 식물검역을 받은 후, 2012년 제주도에 노지재배지를 조성해 아주심기를 실시했다 2013년 10월에 첫 수확을 하였고, 2014년에는 1그루당 2.5kg 정도의 열매를 수확하여 제주도에서 올리브 노지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올리브 주산지의 연평균 기온이 14~18℃인 것으로 보아 연평균 기온이 15~20℃인 지역이면 올리브 재배가 가능하다고 본다 도입 품종 중 ‘코로네이키’ 품종은 과실 크기는 작지만 수확량이 많아 오일용으로 이용할 수 있고, ‘프란토이오’ ‘레시노’ ‘마우리노’ ‘버달레’ 품종은 과실 크기가 커 오일용뿐만 아니라 피클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올리브 나무는 과실용뿐만 아니라 원예용으로도 인기가 높아 가정에서 화분 재배를 할 수도 있다


올리브 나무의 품종은 수백여 가지인데, 학명은 모두 올레아 유로피아(olea europaea)로 분류된다 올레아(olea)는 라틴어로 “오일(oil)”, 즉 “기름”을 뜻하며, 이는 기름 함량이 높은 올리브 나무 열매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다


올리브는 물푸레나무(목서)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원산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인도 북부의 펀자브를 비롯하여 크리미아, 시리아, 소아시아, 발루치스탄, 팔레스타인, 메소포타미아, 모로코 그리고 카나리아제도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야생종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식재료가 올리브다 올리브는 건강에 이로운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서 ‘신의 열매’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 세계 올리브 재배면적의 65%가 지중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올리브는 우리에게 수입식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서 올리브의 국내 재배 적응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에서도 올리브 노지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검토되었다


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올리브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즐겨 먹는다 그중에서도 올리브 열매를 압착해서 만드는 올리브 오일은 지중해 요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리브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올리브 오일을 비롯한 올리브 소비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올리브의 대표적인 성분으로는 올레오칸탈, 올레산, 폴리페놀, 섬유질, 비타민 E 등이 있다 2015년 『분자 세포 종양학』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올리브 오일의 올레오칸탈 성분은 암세포를 골라 죽이는 효능이 있다 올레산은 몸속 콜레스테롤의 흡수를 막음으로써 혈액 이동을 원활하게 해 고혈압과 동맥 경화가 발생할 위험성을 낮춰준다 강력한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은 활성 산소가 세포를 손상시키는 것을 막아 노화를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 섬유질은 장 연동을 자극해 배변을 원활하게 하며 체중 감량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비타민 E는 피부를 보호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올리브는 햇빛을 매우 좋아하는 대표적인 양지식물이므로 햇볕이 잘 드는 남쪽 또는 동남쪽 경사지나 그와 가까운 곳을 재배지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올리브는 토양에 대한 적응성이 매우 좋은 편이지만 점토가 많아 공기 흐름과 물 빠짐이 불량한 토양은 재배에 부적합하다 올리브 재배에 알맞은 토양은 물 빠짐이 양호하고 지하수 높이가 낮은 비옥한 사질양토이다 올리브 재배에 적합한 토양은 사토 20~ 75%, 사질양토 5~35%, 점토 5~35%로 구성되어 있다 수분 보습력은 30~60%, 산도는 pH7~8이 적합하다 유기물은 1% 이상, 질소는 0.1% 이상, 인산은 5~35ppm, 칼륨은 50~150ppm, 칼슘은 1,650~ 5,000ppm 함유하고 있는 것이 좋다



다랑쉬_-이어도-시인과-배진성-시인과-이어도공화국_배진성-001.png

https://youtu.be/vVCKLvhSmx8?si=9eRdLnQvr5wSoMul

다운로드 (4).jfif

https://youtu.be/DS63sv6GvQw?si=IHI-xV4Z0yvO_dql



늙어서 알게 되는 것들



젊어서는 재력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나,

늙어서는 건강이 있어야 살기가 편안하다.


젊어서는 재력을 쌓느라고 건강을 해치고,

늙어서는 재력을 허물어 건강을 지키려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죽는 것이 더욱 억울하고,

인물이 좋을수록 늙는 것이 더욱 억울하다.


재산이 많다 해도 죽으며 가져갈 방도는 없고,

인물이 좋다 해도 죽어서 안 썩을 도리는 없다.


노인학 교수도 제 늙음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하고,

호스피스 간병인도 제 죽음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옆에 미인이 앉으면 노인이라도 좋아하나,

옆에 노인이 앉으면 미인일수록 싫어한다.


아파 보아야 건강의 가치을 알수 있고,

늙어 보아야 시간의 가치를 알수 있다.


권력이 너무 커서 철창신세가 되기도 하고,

재산이 너무 많아 쪽박신세가 되기도 한다.


육신이 약하면 하찮은 병균마저 달려들고,

입지가 약하면 하찮은 인간마저 덤벼든다.


세도가 등등 할 때는 사돈에 팔촌도 다 모이지만,

쇠락한 날이오면 측근에 모였던 형제마져 떠나간다.


지나가 버린 세월을 정리하는 것도 소중하나,

다가오는 세월을 관리하는 것은 더 소중하다.


늙은이는 남은 시간을 황금 같이 여기지만,

젊은이는 남은 시간을 강변의 돌 같이 여긴다.


개방적이던 사람도 늙으면 폐쇄적이기 쉽고,

진보적이던 사람도 늙으면 보수적이기 쉽다.


거창한 무대일지라도 자기 출연시간은 얼마 안 되고,

훌륭한 무대일수록 관람시간은 짧게 생각되게 마련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 있는 것을 부러워하나,

자식이 많은 사람은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말한다.


자식 없는 노인은 노후가 쓸쓸하기 쉬우나,

자식 많은 노인은 노후가 심난하기 쉽다.


못 배우고 못난 자식도 효도하는 이가 많고,

잘 배우고 잘난 자식도 불효하는 자가 많다.


있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들 관심이 모여들지만,

없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들 걱정만 모이게 된다.


세월이 촉박한 매미는 새벽부터 울어대고,

여생이 촉박한 노인은 저녁부터 심난하다.


제 철이 끝나가는 매미의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고,

앞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의 웃음소리는 그마져 서글프다.


육신이 피곤하면 쉴 자리부터 찾기 쉽고,

인생살이 고단하면 설 자리도 찾기 어렵다.


출세 영달에 집착하면 상실감에 빠지기 쉽고,

축재 부귀에 골몰하면 허무감에 빠지기 쉽다.


악한 사람은 큰 죄를 짓고도 태연하지만,

선한 사람은 작은 죄라도 지을까 걱정한다.


* 지인에게 받은 글





[포토에세이]자연이 그린 겨울

이한결 기자2026. 1. 12. 23:08



겨울의 찬 바람이 바다 위에 하얀 도화지를 펼칩니다. 썰물이 빠져나가며 그 위에 나뭇가지를 정성스레 새겨 넣습니다. 차갑기만 할 줄 알았던 계절이, 자연의 손으로 따뜻한 그림 한 장을 내어놓네요.

―인천 강화군 동막해변에서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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