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도공화국 꿈삶글 0046
「오, 이론과 기법의 명예를 높이신/분이시여,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저런 명예를 가진 자들은 누구입니까?」//그분은 말하셨다 「네가 사는 저 위 세상에서/들리는 그들의 명예로운 이름 덕택에/하늘의 은총으로 저렇게 구별되고 있지」//그렇게 가는 동안 어떤 목소리가/들려왔다 「고귀한 시인을 찬양하라/떠났던 그의 영혼이 돌아오고 있노라」//그 목소리가 멎고 잠잠해진 다음, 나는/커다란 네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즐겁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표정이었다//훌륭한 스승님은 말하기 시작하셨다/「저기 세 사람 앞에서 마치 주인처럼/손에 칼을 들고 오는 분을 보아라//그는 최고의 시인 호메로스이다/다음에 오는 이는 풍자 시인 호라티우스,/셋째는 오비디우스, 마지막이 루카누스다//조금 전 한 목소리가 부른 시인의 칭호를/나와 함께 모두가 갖고 있기 때문에/나를 찬양하는데, 그것은 잘하는 일이다」//다른 사람들 위를 나는 독수리처럼/가장 고귀한 노래의 주인 주위에/아름다운 무리가 모이는 것이 보였다// ― 단테의『신곡(神曲)』35
「종달새」//종달새는 이른 봄날/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싫더라/명랑한 봄하늘/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요염한 봄노래가/좋더라/그러나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훌렁훌렁 뒷거리길로/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가슴이 답답하구나// _ (1936년 3월, 평양에서, 윤동주 19세)/22. 종달새(시) _ 1집, 삼판// ―『윤동주』22
제18장//대도(大道)가 폐하면/인(仁)이니 의(義)니 하는 것이 나서고,/지략이니 지모니 하는 것이 설치면/엄청난 위선이 만연하게 됩니다/가족 관계가 조화롭지 못하면/효(孝)니 자(慈)니 하는 것이 나서고,/나라가 어지러워지면/충신이 생겨납니다// _ (제18장 대도가 폐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이 - 윤리적 차원의 한계 ―『도덕경(道德經)』18
「땅의 심장」//땅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그 숨이 용암이 되어/심장을 만들었다//뜨거움이 식으며/세상은 단단해졌다//땅의 맥박은 느리지만/그 느림이 생명을 지탱했다//나무는 그 심장 위에서 자랐고/바람은 그 위에서 노래했다/돌마다 그 맥이 이어졌다//심장은 땅의 기도였다/보이지 않으나/그 울림이 만물을 깨웠다//하늘도 그 박동에 귀를 기울였다// _ (『숨의 연대기』제2부 - 돌과 바람의 언어(형태의 창조) 4 「땅의 심장」) ―『청람 김왕식』15
「사과꽃망울」//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사과나무 속에서/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사과나무 속에서/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사과나무는/진득하니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_ (2012년 『이어도공화국 4 - 꿈섬』 「사과꽃망울」) ―『배진성』11
올리브 나무를 공부하다가 산소삽목기를 알게 되었다 올리브 나무의 탄생부터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올리브 나무 삽목을 하였다 삽목 방법을 알아보다가 산소삽목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삽목을 흙에다 하지 않고 물에다 하는 방법이었다 흔히 말하는 꺾꽂이가 아니라 물꽂이였다 흙에다 꺾꽂이를 하는 것보다 물에다 꺾꽂이를 하는 방법이었다 뿌리가 나오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서 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꽂이의 일종일 산소삽목의 핵심은 번식하려는 식물 삽수에 끊임없이 수분과 빛을 공급하고, 균 발생을 억제하며 산소 포화도를 높여 뿌리 형성을 촉진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물리적 조건과 약제를 조합하여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원리였다 기존의 삽목 방식과 비교했을 때 기후나 병충해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 성공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또한, 산소삽목은 비용을 대폭 절감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의 관리만으로 대량의 식물 번식이 가능하며, 인력 소모를 줄여 생산 비용이 적다고 하였다 이 방법은 방치 농지 활용에도 효과적이어서 추가적인 비용 없이 나무나 작물을 생산해 농가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고 하였다 나도 좀 배워서 해보아야겠다 비싼 산소삽목기를 구입하지 않아도 버려지는 어항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옛날부터 꿈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꽃을 주고 싶었다 나무를 선물하고 싶었다 산소삽목을 잘 배우면 꿈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로즈메리도 삽목하고 무화과나무도 삽목 하고 올리브 나무도 삽목 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오늘 잎과 입에 대하여 생각한다 식물의 잎과 동물의 입에 대하여 생각한다 나는 고흐를 읽다가 올리브 나무를 만났다 올리브 나무를 보다가 삽목을 알았다 삽목을 생각하다 산소 삽목을 알았다 산소 삽목을 공부하다 증산작용을 알았다 증산작용을 공부하다 잎과 뿌리를 알았다 식물의 잎들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한다 잎들은 일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잎을 부른다 동물들도 입으로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 사람들도 입으로 참으로 많은 일들을 한다 밥을 먹고 말을 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입 속의 잎이 다른 입 속으로 뻗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왜 나의 잎은 오늘도 한결같이 숨어있을까
https://youtu.be/axXUe0B2TOA?si=Bv0zaXVSZEbItivC
종달새는 이른 봄날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더라.
명랑한 봄하늘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길로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_ (1936.3. 평양에서, 윤동주 20세)
https://youtu.be/Quj9XuAsTJU?si=b4ectEese-Ni9HpB
1936년 3월에 평양에서 쓴 작품으로 연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 특징인 작품이다. 봄하늘을 가볍게 날아오르는 종달새와 어두운 뒷골목을 배회하는 화자의 답답한 심정의 대비가 돋보인다.
화자의 답답한 심정은 시를 창작한 시기를 고려했을 때 신사참배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심정은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인 <가슴 1>에서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래'는 '날개'를 뜻한다.
* 원문표기
- '이른' -> '일은
- '질디진' -> '즐드즌'
- '명랑한' -> '명량한'
- '구멍 뚫린' -> '구멍뚤린'
- '고기새끼' -> '고기색기'
내가 지금 윤동주 시인을 다시 만나는 것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문이다. 아, 그런데 김응교 교수님께서도 이 두 문장이 윤동주 시인을 연구하게 만든 문장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아름다운 <서시>가 탄생하기 위해서 윤동주 시인은 어떻게 태어났으며 또한 어떻게 살았을까.
시인의 탄생, 명동마을에서 김응교 교수님은 만주와 명동마을과 김약연 선생님에 대하여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이 직접 쓴 습작노트와 시집 원고와 기타 편지로 보냈던 시 등을 차례대로 쓰고 가능한 나의 이야기는 줄이려고 한다. 나중에 이어도와 제주도에서 백두산을 거처 윤동주 시인의 고향까지의 순례를 함께 쓰려고 하는데 우선은 자료 수집 차원에서 1차적으로 기록하는 단계이다.
김응교 교수님은 폭넓은 지식과 뜨거운 열정으로 윤동주 시인의 시뿐만 아니라 백석 시인이나 정지용 시인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 등의 많은 글들도 함께 인용하여 글이 매우 풍요롭고 유익한 많은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다.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곳은 만주다. 만주의 명동마을이다. 그 '만주'란 단어가 나오는 시는 <오줌싸게 지도>와 <고향집>이 있다.
1931년 일제의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다(1932~1945) 만주국은 일본인, 조선인, 한족, 만주족, 몽골족 등 오족을 협화 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졌다. 따라서 만주에 거하고 있던 조선인은 국제법으로 만주국인이 되었다. 재만조선인은 한일합방으로 일본 국적의 신민이 되었는데, 1932년에 만주국이 세워지고 조선계 일본인으로 귀속되었다. 디아스포라는 '씨 뿌리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디아스포라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한다. 유대인에게 쓰였던 이 단어는 이후 특정 민족이 흩어져 살 때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까 윤동주 시인은 '조선인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다.
김응교 교수님은 만주에 대하여 주변성, 디아스포라, 혼종성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 만주땅에 자리한 명동마을 공동체의 특수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과 명동마을의 소년들에게 잉걸불을 일의 켰던 규암 김약연(1868~1942) 선생님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한다. 관북의 대표적인 선비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1899년 2월 기골이 장대했던 서른한 살의 김약연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신천지 간도로 향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도 부패와 수탈이 심해지자 문재린의 증조부인 문병규, 문재린의 장인인 김하규의 가솔 등 백사십여 명과 함께 북간도 화룡현 불굴라재로 이주했다고 한다.
명동촌은 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 김약연 선생을 비롯해 윤하현, 문병규, 남위언, 김하규 이렇게 다섯 가문 140여 명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1899년 2월 18일 고향을 떠나 두망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명동'이란 중국보다 동쪽에 있는 조선을 밝게 하자 라는 의미로 십여 개 부락을 합친 총칭이라고 한다. 명동촌은 1905년에 거의 완성이 되었고 선바위골, 장재촌, 수남촌 등 명동을 중심으로 한 오십 리 안팎에 잇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1917년 12월 30일에 윤동주는 태어났다. 부유한 농부였던 할아버지 윤하현, 명동학교 선생이었던 아버지 윤영석(1895~1962), 어머니 김용(1891~1947)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결혼 당시 아버지는 열여섯 살, 어머니는 스무 살, 어머니가 네 살 연상이었다. 1919년에 할아버지 윤하현은 교회 장로가 되었고, 윤동주의 아버지 윤영석은 불과 열여덟의 나이에 베이징에 유학을 다녀와 명동학교 교원이 되었고, 1923년에는 도쿄로 유학을 가서 영어를 배우다가 '관동대진재'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때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는데 '네버 마인도(Never Mind)'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엽서를 써서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게다가 교회에서 공중 기도를 할 때 특출한 언어 감각을 발휘하는 시인다운 기질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 윤동주 시인의 인문학적 식견은 이러한 인텔리 아버지의 토양에서 비롯된 듯싶다고 송우혜 선생님은 윤동주 평전에서 밝히고 있다.
가족관계를 볼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김약연과 송몽규라고 한다. 먼저 김약연은 윤동주의 어머니 김용의 오빠였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김약연은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김약연의 조카이자 제자였다. 만주 지역의 민족지도자였던 김약연의 외삼촌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윤동주 시인을 형성한 배경에는 규암 김약연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간도의 한인 대통령'이라고 불렀던 규암 김약연 선생님은 아쉽게도 해방 3년을 앞둔 1942년 10월 29일 용정시 자택에서 "내 모든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일흔넷을 일기로 돌아가셨다. 지금도 명동마을 명동교회 건물 바로 옆에 비석이 있다.
명동마을로 이주한 이들의 목표는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토지를 사면 제일 좋은 땅을 학교 밭인 학전으로 떼어놓고 서당을 차렸다. 서당에서 먹을 감자며 옥수수를 학전에서 키웠다. 도착하자마자 공부할 곳을 세우고 학전을 일구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인 디아스포라들이 새로운 땅으로 향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온 제주도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학교부터 짓기 시작한 이유와도 비슷한 일일 것이다. 그 교육의 중심에 바로 규암 김약연 선생님이 계셨다.
문익환 목사의 부모님이신 문재린 목사와 김신목 사모의 회고록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을 보면 간도 이주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선조들의 땅에 들어가 땅을 되찾는 것, 둘째는 북간도의 넓은 땅을 활용해 이상촌을 건설하는 것, 셋째는 추락하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인재를 교육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토회복, 이상촌 건설, 인재 교육이라는 세 가지 목적이 그들로 하여금 두만강을 건너게 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북방 지역은 실학의 전통이 흘렀다. 명동마을로 이주한 실학적 유학자들은 서당 세 곳을 만들었다. 김하규의 소암재, 남위언의 오룡재가 있었고, 김약연은 1901년 자신의 호를 따서 '규암재를 지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1908년까지 규암은 <맹자>를 가르쳤다. 윤동주 시인도 김약연에게 <맹자>를 배웠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맹자>의 영향을 많이 느낄 수 있다.
1906년 북간도 용정에서 이상설의 주도로 서전서숙이 설립된다. 하지만 이상설이 헤이그 특사로 떠나면서 서전서숙은 일 년 만에 문을 닫는다. 명동마을에서도 신학문 교육이 필요하자 1908년 4월 27일 규암재, 소암재, 오룡재를 합하고 서전서숙을 계승해 신학문을 가르칠 명동서숙을 개교한다. 1909년 4월에는 명동서숙을 명동학교로 확대 발전시켜 김약연이 초대 교장에 취임한다. 명동학교에 부설되었던 명동중학교는 1910년 3월에 세워졌다. 이후 1925년까지 발전하면서 15년간 유지되었다. 신학문을 가르쳐야 하니 젊은 선생을 스카우트해야 했다. 그래서 서울 기독교청년학교를 나온 정재면 등 우수 교사를 초빙했다. 당시 정재면은 원산의 장로교 교회가 파견한 북간도교육단의 일원으로 용정에 있던 독실한 신자였다. 김약연은 교사 정재면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이렇게 명동촌은 민족운동과 기독교 민족교육의 본거지가 되어갔다.
고흐를 읽다가 올리브 나무를 만났다
올리브 나무를 보다가 삽목을 알았다
삽목을 생각하다 산소 삽목을 알았다
산소 삽목 공부하다 증산작용 알았다
증산작용 공부하다 잎과 뿌리 알았다
식물의 잎들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한다
잎들은 일이 너무 많아 새잎을 부른다
동물들도 입으로 참으로 많은 일 한다
사람들도 입으로 참으로 많은 일 한다
밥을 먹고 말을 하고 사랑을 속삭인다
그런데 왜 나의 잎은 오늘 숨어있을까
하나
길이었다 덜 자란 몸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어머니는 방물을 파셨고 새벽 샛강의
입김 자욱한 안개 속으로 떠나시곤 했다
나는 담장 밑에 펼쳐놓은 꼬막껍질에
쑥국 끓이기 놀이를 하며 자랐다
노을만 어렵게, 어렵게 감아 들이던
바람개비가 스스로의 바람결을 가늠할 수 있을 때
물오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파랑 간짓대 들고
오리 떼를 몰아내던 골목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머니 뒷모습을 지우던 안개 속으로
하얀 꽁무니가 사라지고
나도 그 속으로 따라 날아가고 싶었다
둘
할아버지 산소가 보이는 징검다리 사이로 햇살이
주검처럼 부서지며 흘러갔다 하류에서
한 몸으로 몸을 섞기 위해, 취로사업 나가신
아버지가 무너진 둑에 묻히고 작업복이 천수답
허수아비에 내걸리던 날도 나는 그 저수지 둑에서
삐비 꽃을 뽑아먹고 돌아오는 길
가로수 구멍 속에 몇 개의 돌을 더 던져 넣었다
어머니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는 줄도 몰랐다
그 해 여름 장마는 담장의 발목을 적셨고
두꺼비 같은 우리 식구들은
한밤중에 회관으로 기어 올라갔었다
셋
학교 앞 코스모스로 기다리기를 즐겼다
하학종소리 사이로 보이는 형의 검정고무신 앞은
발가락이 먼저 나와 있었고 생활보호대상자
가족 앞으로 달려오는 옥수수빵과 건빵
나는 그것이 좋았다 우리는 뿔 필통 속 몽당연필로
흔, 들, 리, 며, 징, 검, 다, 리, 건, 넜, 다,
끈이 풀리는 소리로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는
우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징검다리를 잘도 건너 다녔다
넷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어 끼고 기차놀이하던
우리들은 그 새끼줄 속에서 자유로웠다
우리들의 기차는 징검다리를 비로소 건너 다녔고
오후의 서툰 기적소리 울리며
동구 밖까지 나가 놀던 소아마비 동생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찾다가 찾아보다가
어린 집배원이 된 큰 형도
동생의 소식은 가져오지 못하고 한 떼
건너가는 동네 아이들만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다섯
여울물 소리는 끈이 풀리는 소리였고
또다시 묶이는 소리였다 방직공장에 취직했던
누이가 파란 눈의 아이를 보듬고 돌아와
빨래터에는 방망이질 소리가 잠들지 않았고
헛발 짚은 어머니는 물속에 더욱 자주 빠지셨다
……………… 배고픔과 어머니 ………………
들판에 흐드러진 달맞이꽃 사이로 그렇게 어머니는
젖은 보름달을 이고 늦게 돌아오시곤 했다
― 어머니, 시인은 월급이 없어요
참으로 오랜만에 들길을 간다
두엄자리 곁에 세워진 아버지의
낡은 지게를 지고 저물녘을 간다
참깨 베러 가신 어머니의 산밭으로
늦은 마중을 간다 오랜만에
바람을 비껴 여름 한쪽 끝으로
산길을 오른다
노을이 차마 곱게 익는다
일찍부터 외항선을 탄 만수
뱃사람이 된 만수네가 새로 장만한
논을 바라보며 들길을 간다
일곱 번씩이나 떨어지고도 다시
행정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현길이,
이미 기울어 버린 그 집에서
마지막으로 팔아넘긴 논배미를 지나
쓸쓸하게 걸어간다 새를 쫓는 깡통소리와
반짝이는 반짝이의 마음들이 노을 속으로
새를 날려 보내며 또 내일을 염려하는 가슴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허수아비는
쓰러지지 않고 동그랗게 질린 비닐 얼굴들이
하늘까지 닿으려는 마음으로 솟아오르곤 했다
콩밭으로 바람이 기어들어가고 밤은
들쥐처럼 숨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와 산길을 내려온다 가끔
고개 치켜드는 벼 포기 사이로 추억들이
발소리를 숨죽이며 기어 나왔다 나는 참깨를 지고
어머니는 토란대를 이고 오셨다 가슴조인
달빛이 풀어지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어 내려온다
― 어머니, 저 이제 시인이 되었어요
― 그래, 시인이 뭣 허는 것이다냐
― 예, 지금까지 제가 되고 싶었던 것이에요
밤낮을 밤으로만 지내면서 말이에요
― 그러냐, 그럼 이제 취직이 됐단 말이냐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것이 아니에요
― 그럼, 시인이 뭣 하는 것인디 그러냐
오랜만에 니가 웃기까지 하고 말이여
― 예, 앞으로
우리들의 고향을 노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노래? 그럼 인쟈 테레비에도 나온다냐
―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 게 아니에요
― 그라믄, 시인 한 달 월급이 얼마나 된다냐
먹고 살만한 직업이다냐
요즘 시상에는 돈이 최고드라
봐라, 만수는 돈 있승께 다들 걱정허는
장개도 쉽게 간다드라
돈 많은 이쁜 색시가 낼 모레 온다드라
― 어머니, 하지만 저는 그렇지를 못해요
앞으로 어머니를 팔지도 몰라요
앞으로 고향을 팔아먹을지도 몰라요
시인은 가난한 직업이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을 갈고닦아 영혼을 맑게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저는 더욱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판 가득 출렁일 때 달빛은 우리가 걸어온 들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머니, 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와 고향을 위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팔아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땅의 눈물 같은 시 한 편으로 살고 싶습니다
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
아침 시선은
고춧대 하나에 꽂혀 있었다
외톨이처럼
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춧대가 휘청거렸다
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
고춧대가 드디어 꼬꾸라졌다
새는 약속처럼
한꺼번에 떠났다
고추나무는
끝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한 밭에서 걸어 나온 길로
살벌한 평화처럼
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
사과나무 속에서
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
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
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
사과나무는
진득하니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
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세상에는 돌아가는 것들 투성이다
스스로 모래시계 되는 겨울나무를 본다
하늘과 땅의 영혼이 뒤집힌다
발전소, 발전기와 터빈이 한 몸으로 돌아가고 거대한 보일러 속에서 파이어 볼이 돌아간다 그 속에서 사랑과 이별을 껴안은 계절이 돌아가고 물과 불이 돌아가고 해와 달이 돌아가고 삶과 죽음이 돌아가고 나와 하느님이 함께 돌아간다
온갖 것들이 돌아가는 발전소에서 나는
나무 조상들을 태워 별빛을 만든다
번쩍, 번개가 하늘의 소식을 전한다
하느님은 오늘도 야간근무 하고 계신다
땅속 오래 묻혀 있던 나무들
부관참시 지켜보던 별이 눈을 찔끔 감는다
나무의 뿌리에도 발전소가 있어
물관부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들
나무 발전소가 세상을 돌리고 있다
심장내과 복도에는 어둠이 쌓여있다
나의 하느님이신 원장님께서 문을 열고 불을 켠다
잠시 후에 천사들이 들어오며 출근 체크를 한다
피를 뽑아 검사를 하는 동안 나는 세한도를 본다
늙은 한 그루는 소나무가 분명한데
젊은 세 그루는 소나무일까 잣나무일까
나무들보다 둥그런 문이 더 궁금하다
보름달 안에서 반달이 보인다
초승달과 그믐달도 보인다
그 문에서 나의 반월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동맥판막 반월문에서 시계소리가 들린다
반월산에 나란히 누워계신 반달 두 개도 보인다
엎어놓은 반달의 잔디 위에도 눈이 쌓여 있으리라
아직은 나의 반달문이 잘 열리고 잘 닫히고 있으리라
금속으로 만든 반월 문짝이 빠지는 일도 있으리라
문짝이 칼이 되어 대동맥을 갈라버릴 수도 있으리라
문을 지나가는 피가 떡이 되어 핏줄을 막아버릴 수도 있으리라
혈전이 뇌로 가서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비트코인처럼 빛나던 문이 악귀의 입처럼 변할 수도 있으리라
아, 나는 이제 심장에서 나가는 문이 가장 무섭다
아, 나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달이 가장 무섭다
나는 나의 하느님에게 십계명을 받아 들고 나온다
세한도 밖으로 폭설은 멈출 줄 모르는데
늙은 소나무 한 그루 아직은 잘 살아가고 있다
장무상망(長毋相忘), 나의 묽은 피로 붉은 낙관을 찍는다
<몸>이라는 글씨를 써 놓고 들여다본다
두 개의 입 같기도 하고 창문 같기도 하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두 장의 벽돌 같기도 하다
몸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것 같은데
나는 도대체 내 몸 안을 볼 수 없다
콘크리트 같은 내 몸 안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내 몸 안에서
암 덩어리라도 살림을 차린 것일까
이러다가 덜컥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부터 아픈 몸으로 태어나
지금껏 잘도 버텨왔는데
이러다가 덜컥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덜컥 가게 된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일까
이렇게 덜컥 떠나야 한다면
가장 슬픈 것이 무엇일까
구속과 단식을 반복하고 계시는
양윤모 선생님 영상을 보며
강정과 해군기지와 사삼과 평화와
그리고 삼월과 사월과 오월을 넘어
시와 시인의 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한다
나는 지금껏 건강을 핑계로 몸만 따라다녔다
내 마음이 주인이 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죽기 전에
나도 한 번쯤
몸이 마음을 따라가는 날이 오면 좋겠다
벽돌 한 장 내려놓으니
몸이 마음이 된다
창문 한 번 열어보니
몸이 마음으로 열린다
<몸> 글자를 지우고 <마음>이라는 글자를 덜컥 쓴다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 덜컥 보이기 시작한다